< -- 148 회: 삽입한 채 생방송 -- >
“사장님, 제가 한동안 마음 고생했던 거 아시죠?”
그녀가 말하는 의미를 나는 잘 안다. 그녀는 재계 10위안에 들어있는 재벌 최회장의 애인,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세컨드였다.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서 만난건지 그 사연은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현재는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상태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왜 그녀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왔는지 궁금했다.
“제가, 제가 최회장님과 깨진 이유는 바로 제 딸 은아 때문이었어요. 최회장 그작자가, 그 작자가 우리 딸을 약까지 먹이고 건드....... 엉엉!”
나는 그제야 그녀의 딸이 병원에 누워있는 이유를 알았다. 절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끔찍한 비밀을 지금 그녀는 토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는 독한 양주를 얼음도 없이, 컵에 절반이나 따르더니 쭈욱 들이켰다. 불이 타고 있는 배속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지만 나는 말릴 수가 없었다.
“내 딸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준 회장에게 따지러 집으로 갔었어요. 전 모든 걸 버릴 각오가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회장님의 자식들이 많은 건 사장님도 아실 거예요. 2남4녀! 그날 집에 가보니 도우미아줌마 두 명과 딸이 셋이나 있더군요.”
“.......”
“제일 큰딸이 혜정이라고, 라디오 디제이를 하는 얘구요. 그 밑에 아이는 준희, 공중파 기상캐스터구요. 그리고 그 밑에 아이는 뭐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아이들에게 나만 오히려 크게 당하고 말았어요.”
그녀는 마침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무래도 큰 욕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더러운 년, 돈이 그렇게 탐나면 사창가나 가라! 어떻게 딸을 이용하여 그런 더러운 짓까지 벌일 수가 있느냐! 나는 상상도 못한 끔찍한 욕을 들어야 했어요. 마치 다른 여자들을 본 것 같았어요. 혜정이하고 준희는 방송에까지 나오는 애들이었고 전에도 나와 마주치면 인사정도는 하고 다니는 애들이었어요.”
믿지 못할 충격이었다. 첫째 딸 최혜정은 동시간대 FM의 청취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고운 미성이다. 둘째 최준희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그녀를 가슴에 한번쯤 품어봤을 정도로 미녀 기상 캐스터다. 실제로 미녀대회에 나가 입상까지 한 경력이 있는 여자다. 어떻게 그런 그녀들의 입에서 이년저년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가 있을까.
믿기 힘들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내게 동정을 유발시켜 돈을 뜯어내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닐 것이다. 돈이라면 최회장에게 알게 모르게 큰돈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기껏 돈 몇 푼 받으려고 그 더러운 수모를 당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멍한 상태에 빠져있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내 머릴 한 번 더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나중엔 절 때리고 침까지 얼굴에 뱉었어요! 흐흑!”
그녀는 끝내 통곡을 하더니 소파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자리로 가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최 회장이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전 왜 그분이 누웠는지 잘 알고 있어요. 마약을 즐긴 죄로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 거라구요. 그런데 그 딸들은....... 저 진짜 억울하다구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고 올라왔다.
나는 그녀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가지 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복수였고 그 복수는 바로 회장의 딸들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혜정이를 불러요.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내가 완전히 망가뜨려 주겠어요!”
“안돼요. 보디가드도 있는데 어떻게 사장님이 걔를 손댄다는 거죠? 무모한 짓 하지 말아요.”
“흠, 나는 절대로 추하게 강간이나 폭행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걱정 말아요. 내가 안원장의 쌓인 원한을 말끔히 닦아 주겠어요. 당신의 딸에게 큰 선물을 주겠어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난 절대로 허튼소리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도 자칫하면 내 모든 걸 잃어버리는데 거짓말을 하겠어요?”
안 원장은 내 말을 어느 정도는 믿는 눈치였다.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내 침을 묻힌 약을 절반 주었다.
“이건 흥분제도 아니고 또한 독약도 아닙니다. 다만,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언어 장애를 일으키는 약이예요. 그렇다고 벙어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약 일 년 정도 후면 혜정이는 방송을 못할 정도가 될 겁니다. 뭐, 그전에 하차할 가능성도 있구요. 암튼 방송활동은 불가능하게 될 겁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덧붙였다.
“혜정이가 생방 나가려면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군요. 여길 일단 들르라고 하세요.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부르세요. 그리고 어떡하든 그걸 먹여요. 그럼 게임은 끝납니다.”
“저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 안나요. 어떻게 이걸 먹이죠?”
“흐음, 이 방법은 어때요? 최 회장을 마약의 늪에 빠뜨리고, 또 그걸 같이한 여자를 진짜 알고 있다고 하세요. 당장 그 여자가 사는 곳을 가르쳐준다고 하세요. 그 다음에 그 초콜릿을 화해의 뜻으로 주는 거예요. 중요한건 절대로 적의를 드러내선 안 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그녀는 침착하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최혜정은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사실 목소리가 너무나 고운 까닭에 얼굴이 떡처럼 못생겼어도 용서를 해주고 싶다는 주제넘은 상상도 많이 했었다.
아무튼 안원장이 그녀에게 약만 먹이게 된다면 나는 오늘 그녀의 생방송 중에 희롱을 하고 말 것이다. 라디오 작가나 피디가 밖에서 보고 있겠지만 그녀를 조종하게만 된다면 그 사람들을 속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녀는 가장 힘든 생방송을 오늘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성희롱이 아니다. 그녀는 남자의 자지를 미치도록 받아들이고 싶은, 그야말로 섹스가 하고 싶어 머리가 돌기 일보직전의 감각을 가진 채 방송에 임 해야 한다. 미친년처럼 떡을 치며 교성을 지르고 싶은데, 목소리를 차분하게 유지해야 한다.
갑자기 피가 끓었다. 내가 약을 먹이고 여자를 희롱해본게 한두 번도 아니었지만 라디오생방송은 처음이었고 또 그녀가 평소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공인이라는 점도 처음이었다. 미칠 일이었다.
나는 안원장과 조금 떨어진 자리로 가서 초조하게 그녀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말쑥한 여름마의를 입고 있는 그녀는 최혜정이 분명했다. 짐작대로 기상캐스터 최준희를 닮아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분위기가 특히 좋았는데 그녀와 단둘이 앉아 물만 마셔도 물에서 커피향기가 날 것 같았다. 그녀는 안미나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무슨 용건인데 바쁜 사람 불렀어?”
헐. 반말이었다. 저 고운 입술에서 나온, 저 고운 목소리는 반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웨이터가 다가가 주문을 받자 그녀는 언제 반말을 했냐는 듯 새침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물을 벌컥거리며 그녀들의 대화를 주시했다. 안 원장은 미리 준비해놓은 마약에 관한 내용을 조심스레 털어놓았고 짐작대로 혜정의 표정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조금은 안 원장에게 미안한 건지 사과를 하기도 했다.
“미안하게 됐어요. 알다시피 아빠가 당신 때문에 그렇게 됐다니깐 우린 완전히 실성을 해버렸거든요!”
안미나는 웃으며 모든 걸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탁자에 있던 조그만 약을 혜정에게 건넸다. 혜정은 살짝 웃고는 ‘에게? 이게 뭐야? 라는 표정으로 약을 받아 넘겼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드디어 끝난 건가. 나는 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는 안미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가 떠서 그런가. 이번에 나는 안미나에게 걸었고 그녀가 나오자 나는 본론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