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은 그렇게 자신이 내 정액을 받아들여도 된다는 사실을 그에게 정당화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 최악이었다. 최선배가 연주와 할때마다 연주의 몸 속에 사정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것도 모른 체 이제 겨우 소현의 몸속에 딱 한번 사정을 한 것으로 그를 이겼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불끈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소현이 내 그런 기분을 눈치 챘는지 다시 말을 꺼냈다.
“이..이제 다시는 그러지 마.. 그년 한테 사정하는 거..”
“헉..헉.. 그..그래.. 알았어. 다시는 안그럴게..”
“대신... 난 당신이 한만큼.. 성우씨를 받아들일거야... 알겠지?”
“헉..헉...그..그건..”
“그게 당신을 용서하는 조건이야..”
최선배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소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 생각해보니 억울해?”
“...”
“억울하면 그만하고 저리 비켜.”
“...”
“어서..”
최선배는 고개를 떨군 채 뭔가를 생각하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는 내 눈을 피하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그..그래.. 당신 말대로 할게.”
“좋아.. 이제 해도 돼.. 어서 움직여 줘.”
최선배는 다시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그녀도 다시 신음하며 몸을 뒤틀어댔다. 무서운 여자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욕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가 붙인 조건을 듣고 난 뒤 조금은 기분이 풀어졌다. 이제 그가 한 만큼 나도 그의 아내를 마음껏 유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나의 정액을 먹은 남자가 되어버렸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내 앞에서 더 이상 당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선배의 몸짓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소현은 나와 할 때처럼 자세를 바꿔가며 그를 받아들였다. 지금대로라면 몇 남자라도 더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개처럼 업드린 상태에서 뒤에서 공략을 하던 최선배는 어느 순간 괴성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흐어어어억.. 크억.. 흐윽.. 나온다.. 흐으윽.. 당신 보지에.. 나도 쌀거야..”
“흐으응.. 어서 싸줘.. 어서.. 흐으응..”
최선배의 몸이 부르르 떨더니 몸이 울컥거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등위로 털썩 쓰러졌다. 소현도 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들은 그렇게 한 몸이 된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두 남자의 정액을 받아냈다는 사실에 또 다시 아랫도리가 고개를 들었지만 난 생각을 다른대로 돌리려 애를 쓰며 진정을 시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욕실로 들어섰다. 그들보다 먼저 그곳을 나가는 게 모양새가 좋을 것 같아서였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이 몸을 열을 식혀주면서 기분 좋은 느낌을 만들어냈다. 복잡하던 머릿속도 한순간에 텅텅 비어진 느낌이었다. 얼른 몸을 씻어내고 밖으로 나와 옷을 걸쳐 입었다. 내가 옷을 모두 입을 때까지도 그들 부부는 그렇게 엉켜있었다. 난 그들에게 인사도 전하지 않은 채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호텔 밖으로 나온 나는 순간 방향을 잃고 말았다.
‘어디로 가지?’
이렇게 연주를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복잡한 엉킴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새벽 공기를 맞으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만 갔다. 곧 걷기를 포기한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어찌되었든 부딪혀 보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집에 도착 했을 때 연주는 거기에 없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는 꺼져있었다. 그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래 전 황야의 총잡이 영화들을 보면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둥그런 넝쿨 덩어리들이 자주 등장하곤 했다. 거센 사막의 바람에 중심을 잃고 휘둘리는 그 모습이 꼭 지금의 나의 방황과 닮아 있었다. 연주의 행방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만나러 갈 용기가 없었다. 연애기간부터 치면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모두 처음으로 되돌아가 있는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 그녀에게 좋은 남자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최선배가 나보다 더 매력적인 남자인걸까? 오래전 연주와 최선배와의 관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결혼 후에도 지속된 만남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대했던 연주의 모든 행동들이 가식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피식 하는 허탈한 웃음이 지어졌다. 나도 그동안 다른 여자들을 만나오지 않았던가. 더구나 그중에는 바로 앞집에 사는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주가 앞집 여자와 마주칠 때마다 연주는 아무것도 모른 체 이웃이 보여야할 최상의 선한 얼굴로 그녀를 대했을 것이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의 이런 배신감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미숙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나 혼자 가져가기엔 너무 힘겨운 짐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미숙은 항상 내 편이었으니 모든 것을 받아줄 것만 같았다. 미숙은 내 얘기를 듣고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난 그녀의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녀에겐 언제나 남자이고 싶었는데 아이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날 난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 그녀의 냄새, 그녀의 속살, 그녀의 체온이 내게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나의 고뇌는 다시 시작되었다.
며칠 후, 제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연주는 그녀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찾아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서있던 제니가 보다 못해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녀는 연주가 미국 유학 시절에 룸메이트로 지내던 여자였다. 연주보다 두 살 쯤 많았다. 제니는 그녀의 미국식 이름이었다. 평소 연주가 그녀를 그렇게 부르고 있어, 나도 그녀를 제니라 불렀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독신이었다. 그녀가 독신주의자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어딘가에 얽매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브라운 계통의 호피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어깨를 드러낸 민소매 원피스에 청자켓 형태의 볼래로를 걸쳐입고 있었다. 테니스와 선텐을 즐기는 여자라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피부가 탱탱한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건강 미인이었다. 커피숍 한쪽 자리에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동안 주위에 앉은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눈에 띄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네. 5개월쯤 됐나요? 외국에 다녀오셨다구요?”
“네. 들어온 지 보름 정도 됐어요. 근데.. 두 사람 무슨 일이에요?”
“...”
“심각해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연주 이틀 동안 병원에 있었어요.”
“왜요?”
“밥도 안 먹고, 시름시름 앓더니.. 영양제 좀 맞췄어요..”
“휴..”
“무슨 일 있는거죠?”
“...”
“세상 다 바뀌어도 두 사람은 안 바뀔 것처럼 잘 살더니 무슨 일이래요? 두 사람 보고 있으면 나도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는데.. 이젠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
“무슨 일이에요? 두 사람?”
“말씀 드리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 한 눈 팔았어요?”
“...”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얼마동안 침묵이 흘렀다.
“연주는 걱정 마세요. 어차피 빠른 시일 내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제가 책임지고 보살필게요.”
“고맙습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부탁은요. 연주가 저한테 어떤 존재인지 잘 아시잖아요.”
“네..”
“괜찮아지면 제가 집으로 데리고 들어갈게요. 어차피 저도 두 달 후 미국 출장 때까지는 시간이 좀 한가해요.”
“아무튼 너무 고맙습니다.”
그녀와 헤어지고 곧바로 미숙의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향기를 맡고 있는 동안 강한 성욕이 밀려왔다. 그녀로부터 밀려온 성욕을 미숙에게 풀었다. 미숙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성욕의 찌꺼기까지 모조리 빨아내어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그날 밤에도 난 그녀의 품에서 잠들었다. 그녀는 아기를 재우듯 나를 안아주었다.
소현으로부터 초대 전화가 왔다. 주말에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정중히 거절했다. 소현과 둘 만의 자리라면 모르겠지만 최선배까지 함께하는 자리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소현도 지지 않았다. 그녀는 온갖 애교섞인 말들로 나를 현혹시켰다. 그녀와 얘기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그녀의 젖가슴이 떠올랐고, 그녀의 갈라진 틈사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음란함이 머리속에 가득 찼다. 결국 그녀의 의도대로 되었다.
주말 저녁, 고급 와인을 사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문 앞에서 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최선배 앞에서 주눅들지 말고, 피해의식 같은 것도 갖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최선배는 내 정액을 먹은 형편없는 놈이라고 되새겼다. 유치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벨을 누르자 최선배가 문을 열어주며 나를 맞았다. 손을 내밀자 최선배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는 내 손을 오래 잡고 있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에도 자신이 없어보였다. 그날 나의 정액을 먹었던 사실을 그도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내게 당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진 나는 힘있는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주방에 있던 소현이 얼른 달려와 내게 안겼다. 이미 남녀로써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던 사이였지만 그래도 그녀의 행동은 당황스러웠다.
“잘 지냈어요?”
“네, 소현씨는요?”
“난 잘 못지냈어요.”
“왜요?”
“성우씨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 하하하..”
난 어색한 웃음을 웃으면서 최선배를 살폈다. 최선배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었다.
“배고프죠? 어서 이리 와서 앉아요. 이거 다 성우씨를 위해 내가 만든거에요.”
“와.. 대단하네요. 오늘 포식 좀 하겠는데요.”
식탁에 최선배와 마주보고 앉았다. 소현은 내가 가지고 온 와인을 담을 와인잔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최선배 옆이 아닌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순간 또 한번 당황하며 최선배를 살폈다. 하지만 최선배는 이번에도 멋쩍은 웃음으로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어서 드세요. 식으면 맛없어요.”
소현은 내 접시에다 자신이 만든 요리들을 담아주면서 내가 식사하는 것을 도왔다. 소현의 관심은 온통 내게 쏠려 있었다. 그러는 동안 최선배는 쓸쓸하게 건너편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집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마치 내가 그 집의 주인이 되고, 최선배가 손님이 된 듯 한 모양새였다. 식사를 하는 내내 소현은 마치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을 대하듯 아주 사랑스럽게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남편을 앞에두고 하는 섹스도 그랬지만, 지금의 기분도 무척 야릇하고 묘한 자극을 주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도 그 야릇한 분위기를 계속 되었다. 거실 소파로 자리를 옮기자 소현은 먹기 좋게 자른 과일들을 접시에 담아왔다. 그러는 동안 최선배는 주방에서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소현은 내게 몸을 기대앉아 내 몸을 더듬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쏟아내었다. 남편은 잡일을 시켜놓고 다른 남자와 오랜만에 만난 연인처럼 수다를 떠는 그녀의 모습에서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묘한 분위기속에서 나는 점점 긴장이 풀어졌고, 소현의 육체를 탐닉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여갔다. 소현은 잠시 주방을 돌아보고 최선배를 살피더닌 속삭이듯 말했다.
“그날.. 기분 나빴어요?”
“무슨 말이죠?”
“마지막에 저 사람이 했던 말들.. 당신 아내에 대한 얘기들요.”
“아.. 그거요.. 그거야.. 뭐..”
“그런거 같았어요.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소현은 그날 최선배와 섹스를 나누던 중에 그로부터 연주와의 일들을 끌어낸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날 달래주려 이렇게 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었다. 참 세심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네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말이에요.”
“신경을 안쓸수가 있나요? 이젠 당신도 내 남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