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부 (12/26)

11부

"좋은 아침"

요즘 외박하는 것에 대한 질문 따위는 받지 않겠다는 느낌의 당당하고 시니컬한 유리

나도 멋쩍게 손을 들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지?"

옆자리에 앉은 써니의 커피를 자연스레 뺏어 마시며 대답을 하는 유리

"그러게.. 아 배고프다 빵이나 먹어야지"

다들 유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빵을 먹는 소녀들.. 

오직 서현만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노려볼 뿐이었다.

난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서현의 옆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서현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고

뭘 하는 지 쳐다보았다.. 그런데 흠칫 놀라며 마우스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있는 서현이

그제서야 난 내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한줄기 선을 느꼈고 화들짝 놀라며 서현에게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많이 당황했을 텐데 나를 생각해서 인지 아무렇지 않은 척 밝게 웃어주는 서현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오빠 조만간 방송국에서 전화 오겠는데? 

방송에 출연해달라고 하면 나갈 거야?"

난 당연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왜 나가.. 방송 타는 거 싫다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며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내뱉는 서현

"역시 오빠는 다를 줄 알았어.. 그럼 그렇게 알고 우리도 대처해야겠다.."

"응? 서현아 뭐라고??"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는 서현이

"아..아니야! 아무것도"

때마침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소녀들을 뒤따라 도망치는 서현

난 그런 서현을 잡아 무슨 뜻인지 물으려고 했지만 정말 날쌔게 집을 빠져나가 버렸다

입가로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소녀들이 흘리고 간 빵가루와 남은 커피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때 내 등 뒤에서 들리는 윤아의 목소리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난 깜짝 놀라 윤아를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진짜 놀랐어! 너 언제부터 있었어?!"

"나? 아까 전 부터 쭈우우우욱~"

"너 진짜 존재감 없구나.. 너처럼 존재감 없는 애가 어떻게 소녀시대의 센터를 맡고 있냐?

나의 말에 역시나 최고의 반응과 리액션으로 발끈하는 윤아

"닥쳐! 너 영광인 줄 알어! 사람들 나랑 말 한마디 해보고 싶어서 안달인데 너는 이렇게 가까이서

대화하지.. 밥도 같이 먹지.. 그리고 나랑 한번 잤지.. 안 그래?"

난 대담한 윤아를 무섭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미안한데.. 마지막 꺼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기억도 잘 안 나고.."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버리는 윤아

"기억 안나? 내가 기억나게 해줄까?"

날이 갈수록 점점 대단해지는 윤아는 서현이보다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았다

식탁청소를 끝내고 소파로 가서 아침뉴스를 보며 자연스럽게 윤아의 말을 무시했다

무시했다고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윤아 난 그런 윤아를 슬쩍 쳐다보며 뉴스로 눈을 돌렸다

"[스포츠 뉴스입니다 첫 소식 알려 드리겠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4번 타자로 맹활약중인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 이혁선수가 투표인단인 미국야구기자협회(BWAA)의 투표결과에 따라...]"

뉴스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옆에서 꽤엑 소리를 지르는 윤아

"우와아아아아!!!!!! 혁이 오빠가!! 역시 대단하다!!!!!!! 역시 선수시대는 달라도 달라!"

날뛰며 좋아하는 윤아를 난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소녀시대면 소녀시대지 선수시대는 또 뭐란 말인가

이상하게 움찔움찔 거리는 마음.. 이상한 기분에 뉴스에 나온 이혁의 면상을 한번 째려봐주고 윤아에게 물었다

"쟤 알어? 언제 봤다고 혁이 오빠야.. 오빠는.. 이래서 여자들이란.. 쯧쯧"

하지만 윤아의 입에서 들려오는 예상외의 답변

"알어"

난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사투리를 쓰며 윤아에게 물었다 

"니가 우째아노?! 내한테 장난치믄 뒤진다"

이쁜얼굴로 생각만 해도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이혁과의 스토리를 꺼내는 윤아

"너 부산에서 혼자 고독을 즐기고 있을 때.. 언제더라? 아라언니랑 미국 간적 있는데 글쎄 혁이오빠가

아라언니 전 남친이지 뭐야! 그래서 혁이오빠 집에서 자고 밥도 먹고.. 혁이오빠가 내 고민도 들어주고.."

말을 마치고 찡끗 웃는 윤아.. 하지만 난 고민을 들어줬다는 말을 할 때 순간 아련해지는 듯한

윤아의 눈빛을 봐버렸고 난 그런 윤아를 보며 사뭇 진지한 얼굴로 윤아에게 물었다

"근데 무슨 고민? 나한테는 고민 같은 거 말한 적 없잖아.. 나보다 더 친해?"

나의 질문에는 그저 환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윤아

난 답답해서 신경질을 내려고 입을 여는 순간 잽싸게 말을 꺼내는 윤아

"아.. 진짜! 대답을.."

"나 엠마 로버츠도 봤다!"

정말 뜬금없는 말이었다.. 대화의 주제도 안드로메다로 가고..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대답이었다.

난 그런 윤아에게 한숨을 푹 내쉬고 물었다

"하아......... 실물도 그렇게 예뻐?"

마땅히 할 것도 없었고 마침 스케줄도 없었던 윤아와 함께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TV를 시청했다

생각해 보니 점점 더 궁금해지는 선수시대의 정체.... 참지 못하고 윤아에게 물었다

"야! 생각해보니까 도대체 선수시대가 뭐야?"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 윤아

"궁금하지?"

"당연히 궁금하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건데"

"히히.. 선수시대는~ 이혁, 강민호, 이대형, 이용규, 심수창, 김광현, 홍성흔, 민형현, 박기혁. 

특히 혁이 오빠는 선수시대 멤버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야!!"

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는 윤아를 보고 있자니 슬슬 배알이 꼴려오기 시작했다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제 그만해라.. 라고 사인을 보냈지만 계속해서 

이혁 이야기를 해맑게 하는 윤아..

"얼마나 멋진데~ 그 교과서 타격 폼! 미칠듯이 안타를 뽑아내는 타격감에 종종 홈런도 쳐주는 실력!

이 시대의 4번 타자하면 딱 이혁! 바로 이 윤아님이 선수시대로 예전부터 찜해둔 혁이 오빠라 이거지.."

난 똥씹은 표정을 하고 윤아의 의견에 전면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혁 야구 못하잖아?"

어이없단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반박하는 윤아

"메이저리거거든?"

"메이저리거 맞는데.. 수비 못해서 지명타자잖아.. 야구의 꽃은 환상적인 수비지!"

"무슨소리야!! 홈런이지!!!!"

"난 홈런 하나 치느니 안타성 타구 두 개 잡는게 낫다고 생각해.. 야구는 말이야.. 굳이 장타가 필요 없어

나처럼 잘 치고, 잘 잡고, 잘 달리면 되는 거지.. 굳이 팔에 근육을 우락부락 키워가면서 

홈런치려고 애쓸 필요는 없잖아? 그치? 맞지?"

뚱한 표정으로 나의 의견에 동조해주지 않는 윤아.. 혼자 뚱해 있다가 나에게 따졌다

"니가 혁이오빠보다 잘쳐??"

상당히 엣지있는 좋은 질문이었고 난 당황했다.. 내가 이혁보다 타격감이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난 고독한도시를 살아가는 시니컬한 엣지 시크남이었기 때문에 절대 이혁 따위에게 질 수 없었다.

"홈런은 못 쳐도 안타치는 건 자신 있어.. 이혁정도야.. 의심 되냐? 배팅장갈래?"

갑자기 의심 가득 담긴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썩소를 짓는 윤아

"왜.. 왜 그런 표정으로 보냐?! 지금 의심하는거야?"

"가자!"

그렇게 윤아와 집을 나선채로 배팅장을 찾아 한참을 방황하다 드디어 허름한 배팅장을 찾았다

허름한 배팅장과는 달리 구속별로 나뉘어져있는 기계들 그리고 배팅장갑도 있었고, 배트스프레이도 있었다.

스프레이를 뿌리며 윤아를 보고 웃었다

"여긴 괜찮은데? 스프레이도 있고"

"빨리 치기나 하시지.. 너 잘 친다고 했으니까 일단 120km부터 가자! 120km정도는 다치는 거잖아"

120km를 동네강아지 이름 부르듯 부르는 윤아를 속으로 욕하며 120km 공을 뿌리는 기계 앞에 섰다

배트를 두어 번 휘두르며 예상 궤적을 눈으로 익힌 뒤 기계에 돈을 넣고 타격자세를 취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멋진 자세였다.. 흡사 정근우가 타석에 선 듯한 포스를 내뿜는 것 같았다

스릉.. 피슛!

공이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배트를 휘두르려는데 들리는 상큼한 소리

퍽!

"응? 뭐지? 공이 안보였는데 왜 뒤에 매트에 공이 있는 거야?"

밖에 있는 윤아가 배를 잡고 웃으며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잘 친다며 윤가식씨~!"

"에이씨 기다려!"

스릉.. 피슛!

또 한 번 허공을 가르는 나의 배트.. 윤아는 기회를 잡았단 듯이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너 완전 못 치잖아!!"

이상했다.. 120km가 이렇게 빠를 리가 없었다 한참 야구할 때 120km정도의 배팅공은 타이밍은 제대로 

못 맞추더라도 간신히 밀어치는 타격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이 공은 타이밍자체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아예 안 보인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었다.. 윤아를 보며 공이 너무 빠르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공이 120km아니야! 너무 빨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콧방귀를 뀌는 윤아

"헹! 웃기지마 괜히 못 치니까 변명하는 거지? 니가 그럼 그렇지 혁이오빠보다 잘 칠 리가 없지"

결국 10개의 배팅공 중 단 1개를 쳤고 그나마 배트를 맞춘 공도 뒤로 크게 튀는 파울볼 이였다

난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여길 왜 들어간데.."

윤아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왜요??"

"여기 기계가 잘못돼서 120km가 안 나와.. 한 160km정도? 껄껄.."

할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윤아와 나는 넋이 나가 버렸다..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돌아가고 한동안 넋을 놓고 있던 윤아가 킬킬 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무섭게"

"크크.. 너 160km를 파울볼이라도 쳤구나? 우리 산이 잘하네?"

"자.. 잘하는 거 맞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하게 웃어주는 윤아 그리고 나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산이 잘했으니까 이 언니가 맛난 거 사줄게요~."

난 그런 윤아를 시니컬하게 돌아보며 가운데손가락을 치켜들고 말했다

"닥쳐! 니가 왜 언니야 엉덩이 손이나 떼"

그런 나를 귀엽단 듯 쳐다보더니 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소리치는 윤아

"자식.. 튕기긴! 하긴 그게 니 매력이다.. 아무튼.. 자 가자~!! 맛난 거 사줄게!!"

윤아와 나는 저녁을 먹고 집주위에 있는 조용한 술집으로 향해 한참 술을 마시다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섰다

이미 캄캄해진 거리는 지나가는 사람하나 보이지 않았고 시계를 보니 11시를 훌쩍 넘어 12시를 향해 바늘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옆에서 윤아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럽게 쏟아지는 비..

가게 간판 밑에 윤아와 나란히 서서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줄기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술을 취해서 일까? 아니며 오랜만에 이렇게 쏟아지는 폭우가 좋았을까? 손을 내밀어 나의 마음처럼 쓸쓸하게 

손에 떨어져 방울방울 맺히는 물방울을 보며 윤아에게 물었다

"윤아야"

"응?"

"너.. 비오는 거 좋아해?"

그러자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드는 윤아

난 쪼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미친 듯이 쏟아지는 쓸쓸함들 사이로 연기를 내뿜으며 윤아에게 다시 물었다

"싫어?.. 왜 싫은데?"

나의 옆에 같이 쪼그려 앉으며 비속에 손을 내밀며 대답하는 윤아

"그냥.. 이유가 어디 있어.. 뭔가 좀 찝찝하잖아.. 근데 우리 집에 어떻게 가냐? 

술 마셔서 차도 못 타잖아.. 대리라도 부를래?"

철없는 소리를 하는 윤아를 째려보며 말했다

"아이돌그룹 소녀시대 멤버윤아가 남자랑 술 마시고 같이 대리 불러서 타고 가면 기사제목이 참 예쁘게 나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윤아

"하긴.. 그럼 비 맞아야 돼? 비 맞는 거 싫은데.."

난 반쯤 남은 담뱃대를 검지로 강하게 쳤다..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지듯 떨어져나가는 담뱃재..

나는 손에 남은 필터를 던져버리며 윤아의 손을 꼭 잡고 웃었다

의문이 가득 담긴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윤아

난 웃으며 윤아에게 말했다

"내가 비 맞는 거 재밌게 해줄게"

무슨 말인지 몰라 나에게 물으려는 윤아의 입이 채 열리기도 전에 윤아의 손을 잡은 채 빗속으로 몸을 날렸다

차갑게 나의 얼굴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느끼며 집을 향해 윤아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남아있던 감정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빗속을 달려 집 앞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현관비밀번호를 누르며 윤아에게 말했다

"하하하.. 하아.. 잘 자라"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오는 윤아

"니네 집에 좀 있다가 갈게"

난 대답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수건을 하나 꺼내 윤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화장실 안을 채우는 소리

똑!똑!

나는 샤워기의 물을 끄고 말했다

"왜?"

문밖에 들리는 윤아의 목소리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뭔데?"

"나 오늘 진짜 좋았어.. 내 평생소원을 이룬 기분이었거든.. 그래서 말인데..

너 잠들기 전까지만 나. 니 여자친구하면 안되냐? 부탁이야.."

기분이 착잡했다.. 물론 나도 윤아와 데이트를 하며 기분이 좋았고.. 씁쓸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 윤아의 기분도 이해할 수 있겠다.. 윤아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런 말을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윤아에게 항상 상처만 주던 나였으니까..

"싫어.."

문밖에서 들리는 힘이 쭉 빠진 윤아의 목소리

"그래.. 미안.. 오늘 고마웠어.. 나갈게"

"말끝까지 들어.. 니가 내 여자 친구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니 남자친구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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