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부
평화로운 주말저녁 모처럼 다들 옹기종기 우리 집 거실에 모여 TV를 보며 문화콘테츠를 즐기고 있었다.
다들 무한도전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윤아가 어디선가 빛의 속도로 나타나 채널을 돌려버렸다.
채널이 돌아가자 유리가 제일 먼저 윤아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야! 너 미쳤냐!?"
다른 소녀들도 유리의 뒤를 이어 윤아에게 소리쳤다.
"재미없으니까 빨리 채널 돌려!!"
"무한도전 시작하잖아!! 빨리 돌려!!"
"장난치지마~ 언니들 화낸다~"
윤아는 소녀들을 홱 돌아보며 섭섭함이 가득 담긴듯한 말투와 표정으로 섭섭함을 표시했다.
"와~ 진짜 너무한다.
오늘 천하무적야구단 나랑 산이랑 나오는 날이거든? 모니터 안해줄꺼야??"
"딱히 할 필요를 못느끼는거같은데.. 우리가 신인도 아니고.. 잘했겠지"
"하긴 윤아가 나갔는데 잘했을거야"
"우린 둘째아기를 믿어! 그러니까 무한도전보자"
소녀들의 멋진 디팬스로 윤아는 씁쓸함이 가득 담긴듯한 표정을 짓고 리모컨을 나에게 던졌다.
"칫! 모니터안해!"
소녀들은 윤아가 리모컨을 포기하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채널을 돌리며 윤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굳~! 현명한 결정이야"
"둘째아기는 역시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니까"
"야~ 무한도전 시작한다.
조용히하고 집중하자"
버림받은 윤아는 식탁에 앉아 고개를 기대고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사랑이떠났어.. 이제 다컸다고 안이쁜거겠지.."
윤아의 귀여운 행동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오르려하는데 써니가 갑자기 발로 나를 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 세게.
"야! 내려가! 쇼파 좁아죽겠는데 니가 양심이 있으면 여기 안이러고 있지!"
"내 쇼파잖아!!"
"아~ 진짜 남자가 쪼잔하게!"
"내려갈게 진짜.. 도대체 이게 누구 집이야.."
결국 난 쇼파에서 쫓겨났고, 바닥에 한켠에 앉아 불만이 가득담긴 표정으로 TV를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다 무심결에 소녀들을 둘러보니 넋을 잃고 무한도전을 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소녀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유리가 소녀들과 다시 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너무나도 밝고 즐거워보였다.
소녀들은 무한도전이 끝나자 하나둘씩 숙소로 돌아갔다.
결국 집안에는 태연이와 나 단둘이 남게되었고, 난 소녀들에게 빼앗겼던 쇼파를 다시 탈환하였다
기분좋게 쇼파위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 태연이는 나에게로 다가와서 내 무릎에 베고 누웠다.
난 태연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천천히.. 천천히.. 부드럽게.. 다정하게..
나의 손길에 태연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무릎에 머리를 비비며 행복한듯한 미소를 입가로 내걸었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하게 주말드라마를 시청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로맨틱한 장소에서 로맨틱한 멘트를 치며 로맨틱한 반지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왔다.
프로포즈하는 장면이 였는데 태연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더니 멍한 표정으로 TV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난데없이 나를 보며 기대감이 가득찬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반지 얼마정도할까?"
난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귀걸이, 피어싱 정도만 관심있게 살폈던터라 반지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싸겠지.. 어차피 끼지도 못할거 관심을 버리라.. 그게 인생살이에 편안타."
"........."
우리는 계속해서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드라마에 집중을 했다.
그런데 태연이가 드라마 끝나기 무섭게 인사도 없이 숙소로 쌩~ 하니 가버리는게 아닌가?
태연이는 무엇 때문에 나에게 삐진게 분명했다.
그런데 난 그 무엇을 알수없었고 더욱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잘못한게 없는데 왜 태연이가 삐진걸까?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지만 좀처럼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쇼파위에서 괴로워하며 핸드폰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나의 코를 찌르는 담배냄새.
난 혹시나하며 고개를 들어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는데 역시나 변기위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며 담배를 물고
계시는 한 유리라는 숙녀분.
"아씨! 나도 냄새때문에 집에서 안피는데 니가 왜 펴!!"
"멍청이~ 난 태연이가 왜 삐진건지 알겠는데~"
난 유리의 매혹적인 떡밥을 덥석소리와 함께 물어버렸다.
"뭐.. 뭔데?"
유리는 나의 대답에 피식소리와 함께 실소를 머금더니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들어보이면서 나를 농락했다.
"흠.. 나보고 담배 피지말라며"
"화장실에서는 피게 해줄게.. 빨리 말해줘!"
"멍청아! 반지!"
"반지? 그게 왜!?"
"태연이도 커플링 끼고 싶다잖아!! 어휴~ 이 한심한 남성이란 짐승들은 대가리속에 그거 생각밖에 없어요..
쯧쯧.. 나갈래.. 답답해졌어"
유리가 숙소로 돌아간 후 한참동안 난 실없이 계속해서 웃다가 이제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록 유리에게 농락은 당했으나 내 사랑이 원하는걸 아는 대가로 그 정도 농락이야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었다.
"역시 여자맘은 여자가 잘아는구나 근데 반지.. 얼마정도하지?"
난 반지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세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려오고 잠시뒤 세근이는 상당히 무심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와?"
"마~ 다 필요없고 요즘 사람들 어디서 반지 많이 사노?"
"-음? 반지? 갑자기 와?"
"그냥 선물하게"
"-오랜만에 전화해서 깝치긴, 어디보자.. 근데 얼마까지 생각하고 있노?"
"흠.. 20장?"
"-오~ 새끼! 그럼 뭐 까르띠에 정도? 그 정도 할끼야"
"라져댓~ 나중에 술함묵자"
"-뚜뚜뚜뚜.."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세근이가 조금은 섭섭했지만 예상외로 싼 반지의 가격에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듯이
좋았다.
20만원밖에 안한다니.. 대박이였다.
난 핸드폰을 열어 태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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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백화점ㄱㄱ?
-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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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병원가기로
했쪙~ ㅠ^ㅠ
-앞집도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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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왜?
어디아픔?-_-
-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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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ㅠ^ㅠ
안아프겠지..?
아 맞다.. 나한테
문자하지마 잘꺼야
-앞집도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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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건강검진을 하러간단다.
그렇다고 반지를 사는걸 조금이라도 더 늦췄다가는 태연이가 정말 제대로 삐질것같았기 때문에 급한대로
윤아에게 문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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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넌 내일 건강
검진안하지?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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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왜?
-앞집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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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씨~ 문자하는 꼬라지하고는 사람이 좀 성의있게 문자해야지 받는사람 생각도 안하는 싸가지들이
꼭 어딜가나있어요~ 쯧쯧"
난 윤아의 저 무책임한 문자에 대해 욕을하며 문자를 신경써서 보냈다.
혹시라도 삐져서 안가면 큰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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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낼 백화점
갈꺼니까 준비해
모두한테 비밀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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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태연이에게 제일 어울리는 이쁜 반지를 사기위해 지원군으로 세상이 무너져도 나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것같은.. 약간 복잡미묘한 관계의 우리 윤아군을 소환했다.
하얀눈밭
하지만, 밝은빛이 단 한줄기도 들어오지않는 어두운 공간.
그 위에 한 남자와 어떤 숙녀가 새하얗게 입에서 뿜어져나오는 차디찬 입김을 숨기지못한채 서있었다.
남자는 갈색의 약병을 여자에게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죠?"
여자는 갈색병을 들고 무슨 물건인지 잘 모른다는 어투로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교감신경제랑 부교감신경제의 일종이라고 보시면되요.
적절하게 잘 믹스한거라서.. 블라블라 다 때려치우고 그냥 흥분제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여자는 남자가 건넨 갈색병을 들고 덜덜 떨면서 다시 남자에게 물었다.
"이.. 이걸 저 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기회봐서 타먹이세요.. 이 정도까지는 생각하고 계셨을거같은데.. 아닌가요?
그리고 이거.. 임신테스트기 아시죠?
조작해둔거니까 그 약먹고 관계를 가지게 되면 2주정도뒤에 이 테스트기를 이용하세요.
원래는 제 번호 드리면 안돼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까 연락을 취해야할 것 같아서 드릴게요.
1단계 작전에 성공하시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그럼 꼭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남자가 차가운 입김을 어두운 밤하늘로 뱉어내며 사라지고, 여자는 손을.. 아니 몸을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으윽~ 나.. 정말.. 흑! 이렇게 까지 해야되? 흑흑.. 윤산이 나쁜새끼야! 니가 먼저 좀 오면 아무도 안아파도
되는거잖아! 흑흑.. 나 진짜 못되지는거.. 흐윽.. 싫은데.. 싫다고! 근데 너 때문에 변해야하잖아!! 윤산!!!!!"
윤아는 등허리와 엉덩이를 타고흐르는 히터의 따뜻함을 느낄새도 없이 나를 계속해서 재촉했다.
"하암~ 좀 빨리 밟어봐! 완전 굼뱅이잖아.. 이 좋은 외제차타면서 이것밖에 못밟냐?"
"야!! 지금 빙판길이야!! 나 사고나면 차수리비랑 합의금 같은거 니가 다 내줄거냐?!"
빙판길에서 속도를 내지못하는데에 불만을 가지고 옆에서 계속 지적질하는 윤아에게 화를 내며 결국 우여곡절
끝에 백화점에 도착했다.
우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채로 땅만보고 빠르게 명품매장을 향해서 걸었다.
다행이 사람들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고, 우리는 명품매장안으로 들어가 안도의 한숨을 쉰 후 반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윤아는 마치 자기 반지 고르듯이 이것저것 막 꺼내서 구경했다.
"근데 왠 반지? 나 사주게?"
"너 말고 태연이.."
"에이씨~ 뭐야 그럼 나 왜 온거야!!"
"그냥.. 혼자오면 쪽팔리니까"
윤아는 토라진듯 팔짱을 끼고 매장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버렸고, 난 매장점원과 이야기를 하며 반지를 골랐다.
결국 태연과 어울릴만한 이쁜 반지를 하나 골랐고 매장점원에게 이 반지를 사겠다고 말했다.
"이걸로 할게요.."
"네~ 근데 여성분 반지 몇호..?"
"예? 뭐요? 호?"
"그러니까 반지 사이즈 말씀드리는겁니다 고객님~"
난 태연이의 반지사이즈 따위를 알리가 없었고 재빨리 윤아를 불렀다.
"야! 임윤아! 와봐! 걔 반지사이즈 몇이야?"
"내가 어떻게 알어!? 전화해서 물어보던가"
내 물음에 성의없이 앉아서 대답하는 윤아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다정하게 속삭였다.
"제발 협조 좀 해라.. 내가 나중에 선물하나 사줄게"
"Bag~?"
"뭔 Bag이야.. 이게 진짜.. 아~ 알았어 그러니까 제발 협조 좀 해라.
빨리 사고 가자."
윤아의 도움으로 반지사이즈를 정하고 난 계산을 하기위해 점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잠시뒤 점원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카드, 카드영수증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태연이와 내가 나눠 가질 반지가
담긴 케이스를 나에게 가져왔다.
매장을 나가며 카드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깔끔하게 적혀있는 0 여섯개에 기분이...응?
난 내눈을 의심하며 다시한번 영수증을 확인했다.
깔끔하게 적혀있는 4,000,000............ 설마 20장이 10만원짜리 였나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난 도저히 돈이아까워 환불을 하러 다시 매장안으로 들어가려하는데 윤아가 갑자기 이런 비싼반지를 사주는
남자친구가 있는 태연이가 부럽다느니, 역시 윤산은 통이 큰남자였다는둥 나를 다시 매장안으로 못들어가게 했다.
"태연언니 진짜 좋겠다.
나도 이런 반지 좋아하는데.. 하아~ 나는 누가 이런거안사주나? 아마 태연언니는 정말 행복할꺼야.
이런건 여자의 로망이니까.
근데 이거 설마 태연언니한테 무드없게 그냥 전해주려는건 아니겠지?"
"다.. 당연하지.. 크리스마스때 줄꺼야.."
결국 난 눈물을 머금고 반지를 내 주머니 깊숙히 넣었다.
이 반지를 받고 행복해할 태연이의 모습을 계속해서 상상하며 텅빈지갑에 허덕이는 날 위로하면서..
건강검진을 다녀와서 피곤한 태연은 침대에 엎드려 윤산과 주고 받았던 문자를 되돌려보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때 효연이 노트북을 들고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효연은 태연의 옆에 엎드려 노트북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고 태연은 그런 효연을 보며 한숨을 쉬고 무엇때문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확인했다.
노트북 속에는 천하무적야구단에서 윤아와 윤산이 밝게 노는 모습의 사진들이 올라와있었고, 사진만 보면
누구든 그 두사람이 사귀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될정도로 편집이 잘되어있었다.
태연은 그런 두사람의 모습에 약간 질투가 나려했지만 윤아에게서 온 핸드폰문자를 떠올리며 다시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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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뭐야 이게
나도 까르띠에
반지 좋아하는데!
-둘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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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은 정말 윤산이라는 남자는 싫어할래야 싫어할수없는 사랑덩어리 그 자체인 남자라고 생각하며 효연을 발로
밀어버리고 행복하게 잠자리로 들었다.
현실에서 하다잠든 아기자기한 이쁜사랑을 꿈에서 마저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남자 윤산의 얼굴을 단 1초라도 더 보기 위해서.
윤산에게 받는 사랑의 크기를 알기에 그 사랑의 크기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렇게 세상 무엇도 방해하지 못할것 같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