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부
집안에 따뜻하게 흐르는 공기에 자연스럽게 눈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하긴, 아침부터 그렇게 무리를 했으니 이렇게 피곤한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난 쇼파에 앉아 하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그러자 써니는 나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어제 뭘 했길래 그렇게 피곤해하니? 쯧쯧.."
"아.. 아무것도 안했어!!"
"오호~ 발끈하는게 수상한데?"
태연이는 조용히 밥을 먹다가 써니의 의심이 가득담긴듯한 눈빛을 받자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당황했는지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계속해서 밥만 먹었다.
난 그런 태연이를 보자 절로 미소가 흘렀다.
기지개를 켜며 컴퓨터로 다가간후 컴퓨터를 켰다.
마땅히 할게 없어 소녀시대 멤버들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하고 있는데 윤아의 연관검색어로 윤산이 뜨는게 아닌가?
깜짝놀라 눌러보니 '윤아 윤산 사귀는거 레알인가요?''얼마전에 둘이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반지샀다는 루머있던데
트루임?''님들아 내 사촌형이 연예부기자임. 근데 윤아랑 윤산 사귄데요'등등..
인터넷상에서 윤아와 나는 사귀는것처럼 루머가 떠돌고있었다.
난 다급한 마음에 큰소리로 윤아를 불렀다.
"야! 이리와봐"
"에이씨~ 밥먹는데 왜 귀찮게해.."
윤아는 진심으로 짜증이 나는지 얼굴을 잔뜩 찡그린채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난 그런 윤아에게 우리의 스캔들 글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런데!! 윤아는 마치 알고있었다는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욕을 하기시작했다.
"이게 뭐?"
"...우리 스캔들..... 설마 알고있었냐?"
"응! 설마 이딴걸로 사람을 귀찮게 한거야?"
"...이딴거라니!"
"이런 스캔들은 하루에도 몇개씩 나겠다~ 너도 신경쓰지말고 밥이나 먹도록!"
윤아가 이렇게 시니컬한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것 같았다.
모처럼 나에게 찾아온 신선한 충격에 약간 멍하고 있는데 나의 후각을 자극하는 감칠나는 커피향기
향기를 느끼는 순간, 누군가가 컴퓨터앞에 커피를 내려놓았고 그 누군가를 쳐다보니 사랑스런 태연이가 찡끗
거리며 나에게 윙크를 했다.
"티콘~! 오늘 뭐할꺼야?"
"아마 대청소할껄.. 이따가 마트도 가야되고.. 왜?"
"이따가 나랑 DVD나 볼래?"
"니 오늘 라디오스케줄 있다이가"
"아아~ 오늘 나 건강검진받은거 결과 나와서 병원가거든!
그래서 오늘 라디오스케줄 없어!"
"귀찮은데~ 알았다.
뭐 생각해볼게.."
난 괜히 퉁명스럽게 말하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레 나의 입가를 타고 흐르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모니터를 통해 비치는 태연의 모습을 바라볼뿐이였다.
정말이지 태연이는 언제봐도 사랑스러운 여자인것 같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는 병원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자둘과 건장한 남자한명이 나타났다.
한 여자는 오랜만에 이렇게 복잡한 병원이 신기했는지 이곳저곳 두리번 거렸고 남자는 긴장이 되는지 마른침을
자꾸 삼키며 그 여자를 잡아 이끌었다.
또 다른 여자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여자를 보았다.
그런데 여자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시간을 지체하자 여자에게 조용히 소리쳤다.
"임윤아! 넌 도대체 왜 온거야!"
"오랜만에 이렇게 큰 병원 오는거란말야~ 모처럼 스케줄도 없고~ 헤헤"
"후우~ 그럼 얌전히 따라오기나해! 사람들이 알아보면 피곤하다구"
"피이~"
윤아는 태연의 질책에 입을 삐쭉거리며 조용히 뒤를 따랐다.
잠시후 그들은 의사에게 도착을 했고 병원측의 배려로 바로 의사와 상담을 할수있었다.
태연이 혼자들어가려하자 간호사는 차트를 살핀후 보호자분도 함께 들어가는게 좋을듯하다며 윤아와 매니저를
같이 들여보냈다.
컴퓨터를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의사는 태연이 들어오자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앞에 있는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 윤아 그리고 매니저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의사는 그들이 자리에 앉자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부시게 시린겨울 풍경이였다.
태연은 의사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가슴아픈일이 생길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윤산의 얼굴이 떠올랐다.
쉽게 미소를 보여주지도 그렇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해주지도 않는 남자였지만 사랑할수밖에 없는 그런 남자
이상하게도 그 남자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태연은 괜히 눈물이 나오려했다.
의사는 다시 한숨을 쉬고는 책상에 앉아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위암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빨리 발견할수록 좋으니까 오신김에 정밀검사를 다 하고 가시는게 좋을것같습니다."
"............"
의사의 말이 끝나고도 방안에는 어떤말도 흐르지않았다.
정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결국 태연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떨어졌다.
윤아는 태연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며 의사에게 따졌다.
"에이~!! 선생님 확실한거 아니잖아요!! 그쵸? 언니! 말좀해봐! 아니다 빨리 제대로 검사받으러가자.. 검사받으면
아니라고 나올거야!! 의사선생님 어디로 가면되요!? 선생님!! 빨리 말좀해주세요!!"
"요즘은 의학이 많이 발전해서 조기발견만 된다면 위암정도는 완치가 가능한편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검사를 받으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제가 미리 연락해두었으니까 바로 검사를 하실수있으실껍니다."
윤아는 터질것같은 눈물을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바닥을 보며 고개를 들줄모르는 태연의 손을 잡았다.
윤아는 손바닥을 통해 흐르는 차가운 촉감에 오싹함을 느꼈다.
오싹함은 등줄기를 타고올라갔고 결국 윤아의 아름다운 눈에서 터져버렸다.
두 여자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은채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청소를 하기 위해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쌀쌀한 바람이 날 공허하게 파고 들었다.
뭔가 왠지 모르게 뻥하고 뚤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따 태연이와 DVD를 볼 생각을 하니 그런 잡생각이 휙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게 느껴졌다.
내 옆에 태연이가 있는데 왜 공허하고 뚤린듯한 기분이 들겠는가.
난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다 태연이와 보기위해 골라온 DVD를 쳐다보았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나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메세지도착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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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콘~ 이따가
우리 고기먹자!!
>_< 마트가서
사와!!
-앞집도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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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피식하고 터져나왔다.
벌써 오래전에 마트를 갔다왔지만 청소기를 내려놓고 겉옷을 챙겨 집을 나섰다.
태연이가 먹고 싶다는데 마트 정도야 수백번도 가줄수있었다.
난 입이 찢어져라 흐르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와 영원히 함께할 사랑하는 여자 김태연을 위해서...
"태연이가 먹을거니까 한우로 사야겠지?"
검사를 마치고 무거운걸음을 끌며 집앞에 도착한 태연과 윤아.
태연은 차에서 내리기전 매니저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오빠.. 나 만약에 검사결과 암이라고 나와도 회사에 말안하면 안돼?"
"태.. 태연아!! 무슨소리야!!"
"내가 말할게.. 그러니까 회사에 말하지마라... 응? 선생님이 아시면 산이한테 말할거니까.. 내가 선생님 만나서
직접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래.. 괜찮지?"
"언니! 산이한테 말 안할생각이야!?"
윤아는 태연이의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태연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을 한채 매니저와 윤아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태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응.. 말 안할생각이야.. 산이 다 큰거같지만 아직 여린 어린애거든.. 분명히 말하면 어디 말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슬퍼할텐데.. 나 그런거 보기싫어.. 매니저오빠 알았죠? 회사에는 말하지마요.. 윤아 너도 산이한테 말하지
말고, 애들한테도....... 아직은 말하지마.. 검사 결과 나오면 그때 내 입으로 말하고 싶어.."
"..........."
"..........."
정적만 흐르는 벤안.
윤아는 고개를 떨어트린채 아무말도 하지못했다.
아마 고민이 될것이다.
아마 많이 혼란스러울것이다.
아마 슬플것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윤산을 걱정하는 태연의 마음...
윤산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작지않다고 자신하던 윤아였는데 태연에 비해 너무나 작은
사랑의 크기를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곧 애써 참았던 눈물이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그때 태연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포근하게 윤아를 껴안았다.
윤아는 결심을 한듯 눈물을 닦으며 벤을 나섰다.
"알았어!! 흐읍~ 말안할게.. 언니 춥겠다.
빨리 집에 들어가자.. 매니저오빠도 이거 비밀로 해요!"
"하아~ 나도 모르겠다.
일단 회사에는 아무말도 안할게.. 하지만 너 치.. 아니 아직은 모르지만 혹시라도 암확진받고 치료 시작하면
그때는 내가 회사에 말할거야.. 그럼 들어가서 일단 쉬어라"
윤아와 태연이는 매니저를 뒤로 한채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들어가려다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며 윤산의 집으로 향하는 태연
"윤아야~ 나 산이랑 약속있어서.... 깜빡했다.
이따가 밤에 보자~ 될수있으면 일찍 들어갈게!!"
윤산의 집으로 들어가려는 태연의 뒤로 윤아가 말했다.
"언니.. 만약에라도 산이가 알게되면 어쩔꺼야?"
"그때 가봐서.. 선택을 해야겠......지?
이따봐~!!"
태연은 마지막은 애써 밝게 찡끗 윙크를 하고 윤산의 집으로 들어갔다.
윤아는 조금씩 사라지는 태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즈막이 중얼거렸다.
"임윤아... 너... 진짜... 나쁜년이다..."
태연이와 먹을 만찬을 요리하고 있었다.
흐릿한 시야에 깜짝 놀라 집안을 살펴보니 스테이크가 익으며 뿜어내는 회색연기로 가득차있었다.
콜록 거리며 오븐위에 있는 환풍기를 작동시키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연기는 사라졌지만 눈에 들어갔는지 자꾸 눈물이 나왔다.
오븐앞에서서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데 나의 등에 와락 안기는 무언가.
놓치지않으려는듯 꼭 마주잡은 손
피가 통하지않아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지만 주인을 닮아 그런지 참 고왔다.
난 또 다시 나를 찾아드는 행복감에 저절로 피어나는 미소를 애써 숨긴채 무덤덤하게 말했다.
"요리하는거 안보이나? 기름튄다~ 저 가있어라"
"싫어...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니도 이제 몇일만 지나면 23살이다~ 정신 좀 차리라"
"싫다니까... 우와~ 이거 고기 진짜 크다!!"
후라이팬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자랑하며 익고 있는 스테이크를 보자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태연이.
난 그 순수함에 또 다시 반하며 태연이와의 시간을 맘껏 즐겼다.
"요건 그냥 고기가 아이다.
티~!본스테이크~ 따라해봐! 티~!본스테이크~"
"티~!본스테이크~"
태연이는 나의 사투리를 따라하며 나의 등에 얼굴을 푹 묻어버렸다.
난 기분은 좋았지만 어디서 찾아왔는지 모를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헤어진다면 얼마나 슬플까?
하아~ 이것도 다 잡생각일테지..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잡생각을 날려버리고 다 익은 스테이크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난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양손에 들고 거실로 향하며 소리쳤다.
"자~ 먹으러가자!!"
집안가득 은은한 고기향이 퍼져있었고 불이 다꺼진 거실에는 태연과 윤산 둘이 DVD를 보고 있었다.
태연은 DVD는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옆에 앉아있는 윤산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참 어려운 눈빛이였다.
복잡한,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해본사람만이 아는 그런 눈빛.
윤산의 얼굴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았다.
매일보는 얼굴이지만 오늘따라 더 사랑스러웠다.
윤산은 무심코 태연을 쳐다보았고 두 사람은 시선이 마주쳤다.
슬며시 시선을 피하는 태연.
왜 시선을 피했을까?
윤산에게 무언가 미안한 일이라도 있던것일까?
윤산의 얼굴을 보는 동안 무언가라도 다짐을 했던것일까?
시선을 피하는 태연을 보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윤산은 태연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무슨일있나?"
"아니~ 아무일도 없어"
"그렇나?"
그렇게 두사람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태연이 빼려고 하는 손을 윤산은 강하게 움켜잡은채 놓아주지않았다.
어금니를 꽉 깨문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강한 결심이 느껴졌다.
태연도 계속해서 손을 빼려다가 윤산의 표정을 보고 손에 힘을 뺐다.
그제서야 부드럽고 포근하게 손을 다시 잡는 윤산.
태연은 그런 윤산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당돌하게 부탁을 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갑작스런 태연의 부탁에 흠칫 놀라는 윤산이였지만 DVD에 시선을 돌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런걸 꼭 말로 해야아나? 천천히 아껴서할게"
두눈을 질끈감고 윤산에게 소리치는 태연
"지금 필요하단말이야!!!!!!!!!!!!!!!!!!!!! 흐윽.. 흐어엉!"
결국 윤산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태연을 윤산은 다정하게 안았다.
"봐라.. 아무일없긴 뭐가 없어! 니 앞으로 울고 싶으면 내가 수쓰기 전에 바로바로 엥기서 울어라.. 알겠나?
그리고 내가 김태연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알제?"
"으앙~ 나도 사랑해!! 진짜 정말 많이 사랑해!! 엉엉~"
윤산은 그런 태연을 꼬옥 품안에 품고는 계속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속삭였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우리 헤어지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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