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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3학년이 되었다. 3학년은 특목고를 가려는 우등생과 인문계를 지원하는 일반 학생들, 그리고 공고나 상고를 선택한 애들로 나뉘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우리엄마 또래의 여선생님인데 화장이 얼마나 두꺼운지 가면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벌써부터 애들을 나누고 학부모 면담 날짜를 정했다. 3학년 담임을 맡으면 일 년 동안 차 한 대 빠진다는 것이 애들 사이에서도 나도는 이야기다. 그 촌지를 생각하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재석이는 민족고등학교 가야지?”
“아직..결정하지 못했는데요..”
“무슨 소리..당연히 민족고지..전액 장학금에 우수한 교수진에 뭘 더 생각해.”
민족고는 유명 기업이 사회복지의 일환으로 설립한 학교다. 선생님의 50% 이상이 외국인이고 수업도 영어로 한다고 들었다. 졸업생 대부분이 외국의 유명 대학으로 선발돼 갈 정도로 우수한 학교였다. 입학시험 응시 자격이 전국 3% 안에 드는 학생인데, 얼마나 많은 학생을 보냈냐 에 따라 학부모 사이에서 학교 평가가 달라졌다. 강북의 어떤 중학교는 3명을 합격시키고 강북의 명문으로 떠올랐다. 그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모여드는 학부모들 때문에 그 학군의 아파트 가격이 10%이상 올랐고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
다만 그 학교는 전교생 기숙사 제도였다. 그런 고등학교를 나와서 외국대학에 입학해서 떠나면 엄마와는 그대로 이별인 것이다. 그것이 싫었다. 그런 학교는 정말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애들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공부보다는 예, 체능 쪽이 좋았다. 단지 머리도 나쁘지 않고 엄마가 돈을 쏟아 부어서 가르쳤기 때문에 성적이 좋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번 주 중으로 어머니 학교에 한번 오시라고 해라..”
“네..”
고등학교와 대학이 연결되면서 장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영어, 수학 같은 과목들을 열심히 배웠지만 그걸 배워서 어디다 쓰는 건지는 배우지 못했다. 커서 뭘 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저 좋은 고등학교, 대학을 가라고만 한다.
어떤 직업이 있는지도 모른 체 대학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고 그 길로 성공하기를 바란다니 웃긴다. 최고의 재능은 열정이고, 그 열정은 흥미와 관심, 그리고 그 일을 정말로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엄마를 떠나면서 까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떠나기 싫다. 나에게 맞추듯 한없이 어려지시던 엄마는 급기야는 약해지고 있다. 어렸을 적에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하듯 점점 약해지는 엄마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엄마에게는 학교에서 면담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선생의 눈에 엄마가 돈으로 보이는 것도 싫고, 내가 학교의 명예나 등급으로 보이는 것도 역겨웠다.
그런 역겨움은 위안이 됐다. 착한남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악한 나는 이 사회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고, 누구도 나를 욕할 수 없다.
“............”
1층에 있는 교무실을 나와 3층 3학년 교실까지 올라가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좀 전에 수업종이 울려 복도에 애들이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들은 보통 종이 울리고 2~3분 뒤에나 교무실에서 나오기 때문에 교실은 여전히 소란했다.
“나중에 봐요~”
“응..어서 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데 옥상에서 3층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명은 미술선생님이고 다른 한명은 학생이다. 학생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3층에서 복도를 따라 사라졌다. 미술은 2층으로 내려오다가 마주쳤다.
“...............”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이상한 느낌이다. 옥상은 보통 잠겨있는데 그곳을 학생과 선생이 같이 내려올 일이 있나 의심스럽다. 미술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도 있고, 나도 엄마, 동연누나, 수영, 상미누나를 거치면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 순진하지만은 않았다.
“............”
3층 위에서 내려가는 미술을 바라봤다. 미술은 2층으로 내려가다 말고 올려다본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피하지 않았다. 미술 역시 피하지 않는다. 눈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웃음이 있었다. 그건 나 뭐했게? 하고 묻는 듯 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자들은 남자의 바람기를 욕하고 남자들은 여자의 지조 없음을 욕한다. 그건 생물의 생존본능을 모르는 무식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를 포함한 암컷들이 지조가 없는 이유는 살아남을 힘이 있는 강한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번 씨를 품으면 몇 달을 허비하고 평생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생존에 유리한 씨를 품어야만 한다. 그래서 더 강한 수컷을 만나면 그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지조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다.
반면 남자를 포함한 수컷은 많은 암컷에게 씨를 뿌리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어떤 동물들은 한 무리에 암컷만을 두고 수컷들은 추방한다고 한다. 인간의 기준으로 그 많은 수컷들을 거느리는 것이 무리처럼 보이지만 수컷은 쾌락이 목적이 아니라 임신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많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수컷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무조건 새로운 여자를 보면 그 안에 씨를 뿌리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저 여자 안에 씨앗을 뿌리고 싶다는 본능이 어이없었다. 집에 가면 항상 받아주는 엄마가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이렇다. 미술이 누군가와 옥상에서 그 일을 했을 거라고 혼자 억측하고 보지도 못한 다른 수컷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왜 웃니?”
“선생님이 아까 그 애랑 뭘 했을까 생각하고 웃었어요..”
“뭘 했을 거 같은데?”
“음..옥상에서 해야만 하는 일?”
“호호호. 너도 하고 싶니?”
밑에서 선생님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술의 말에 야한 기대감이 생겼다. 미술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좀 전까지 생각했던 본능의 소리가 들려왔다. 애써 그것을 털어낸다.
“하지만 수업이 있어서요..”
“그렇긴 하네..유감이네..”
“저도요..”
그리고 각자 가던 길을 갔다. 미술 때문에 똘똘이가 흥분했다. 수업은 국사였는데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읽는다. 희긋희긋한 머리만큼이나 늙은 선생님은 수업에 열의가 없다. 그 선생님에게 있어 우리는 수십 번째 가르치는 수백 명의 애들일 뿐이다.
‘차라리 땡땡이치고 미술이랑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겠다..’
실제로 빈자리가 있다. 다른 책을 펴고 공부하는 애들도 있다. 국사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배점은 낮은데 빼먹을 수 없는 과목일 뿐이었다.
오늘 두 번째 하혈을 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계속 여러 가지 검사를 하라고 시킨다. 하나 검사하고 기다렸다가 결과 나왔다고 하면 의사에게 가고, 또 의사는 다른 검사를 하라고 한다. 서무과에 접수하고 검사실로 가서 기다렸다 검사하고, 다시 의사에게 가서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몇 시간을 보내자 화도 나고 초초해졌다.
“서혜경씨 들어오세요.”
“앉으세요..”
“.............”
“검사결과...유감입니다만 위암..입니다..”
“............그럼..수술을?”
“위암은 1기에서 4기로 분류하고 1기는 1A. 1B, 2기, 3기는3A. 3B, 4기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서혜경씨 경우 대동맥 주위의 림프절 전이가 있습니다. 4기로 수술로 제거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럼...”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해 나가야 합니다..”
“그럼...살 수 있나요?”
“..........5년 생존율로 통계가 있는데..10%미만입니다..”
“5년 동안 살아있을 확률이 10%가 안 된다는...말인가요?”
“네..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간혹 좋은 결과...............”
더 이상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 나왔다.
“엄마..괜찮아? 어디 아파?”
“응?”
어느새 집에 왔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딸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왜 그래? 응? 무슨 일이야?”
“현주야..엄마 죽고 싶지 않아..나 죽고 싶지 않아..흑흑흑”
“왜? 엄마가 왜 죽어! 응? 엄마?”
“흐극. 흑흑..엄마 암이래..수술도 못한데..”
“누가 그래? 병원에서 그래?”
“흑흑흑...응..”
“위암이라고 다 죽어! 안 죽어. 요즘...”
“흑흑..5년을 살 가망성이 10%가 안 된데..흑흑..”
“엄마...............”
현주도 울고 나도 울었다. 한참을 얼싸안고 울었더니 좀 진정이 된다. 아직도 머리가 멍하지만 그래도 눈물은 멈췄다.
“병원..내일 병원 가보자..알았지? 오진일거야..응? 그러니까..알았지?”
“응...”
현주와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도 위암 진단을 받고 의사의 권유에 따라 입원을 했다. 입원소식을 듣고 연주와 재석이가 달려왔다. 연주도 재석이도 현주에게 이야기를 듣고는 울었다. 그들의 울음을 보면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어금니 꽉 물고 참으며 달랬다. 그래도 그 애들에게는 현주 앞에서처럼 추한 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엄마....”
재석이가 내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 모습에 눈물이 나오려 해서 창밖을 바라봤다. 나무에 새싹이 나고 있었다.
암환자 전용 병동이 있을 정도로 암환자가 많았다. 관심 없을 때는 몰랐는데 전체 사망자중 사분의 일이 암으로 죽는다고 한다. 시간은 흥분하고 좌절했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주었다. 입원한 병실은 2인실인데 나보다 먼저 입원한 애가 있었다.
“..............”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본 명찰에는 25살로 현주또래다. 우리는 암이 주는 절망감에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의사가 하는 말을 옆자리라는 이유로 듣게 되었는데 한번 수술했다가 이번에 재발했다고 하는 것 같다. 나보다 먼저 입원해 있었던 그녀는 너무 말라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머리에 털로 뜬 모자를 쓰고 있지만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모습은 너무나 가여운 것이었고 그 애에게 감정이 이입되면서 슬펐다.
“엄마..”
“왔어?”
“누나는 들어가..”
“응..그럼 내일 올게..”
고3인 연주는 저녁에 잠깐 오는 것만을 허락하고 현주가 회사를 휴직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하던 일이 있는데 휴직이 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회사로 돌아갔을 때 그 사이 다른 사람을 뽑아 현주가 하던 일을 하고 있다면 현주는 어떻게 되는 건가? 걱정이었다.
병실에 있는 거야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검사하러 갈 때면 너무 무서워서 현주나 재석이가 있어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미안했지만 말리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재석이가 온다. 재석이도 과외와 태권도장을 그만 두었다. 저녁부터 현주와 교대해서 아침에 현주가 다시 올 때까지 있어준다. 애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오늘은 어땠어?”
“응..그냥 검사하고 약 먹고..누워서 자고..텔레비전보고..그랬어..”
“엄마 그러다 뚱보 되겠다.”
“얘는~”
옆자리에 있는 애는 낮에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있다가 저녁이 되면 혼자였다. 병원이라는 곳이 밤이 더 무섭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그 중에는 죽는 사람도 많다. 25살이던 51살이던 그런 곳은 무서운 것이다. 특히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선고를 받은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참..화분하나 사왔어..”
“아..동백나무구나..”
“이게 동백나무야?”
“그럼 뭔지도 모르고 사왔어?”
“응..꽃이 예쁘기에..엄마 닮기도 했고..”
“호호. 정말? 엄마가 동백꽃 닮았어?”
“그럼~ 엄마가 더 예쁘지만..”
“얘는~”
처녀 적에 여수에 갔다가 동백나무 숲을 봤던 기억이 난다. 섬이었는데, 섬 전체가 붉은 꽃으로 활짝 피어있었고, 아름다운 사찰이 있었던 거 같다. 동백나무를 보니 그 곳에 다시 한 번 갔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음..내가 알아볼게..엄마 다 낳으면 같이 가자..스키장에 못 갔으니까 이번에는 꼭 데리고 갈게..”
“호호. 알았어..”
“귤 좀 사왔는데 줄까?”
“응..”
“귤 좀 드세요..누나..”
“.............”
“여기..놔둘게요..”
재석이가 옆에 애에게 몇 개를 집어 주고는 껍질을 깨끗이 벗겨내 하나씩 준다. 먹여주려는 것을 억지로 말렸다. 둘만 있었다면 받아먹었을 텐지만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입 안에서 터지는 알갱이가 맛있다.
“공부는 잘 하고 있는 거지?”
“응. 걱정하지 마..나 엄마 닮아서 천재잖아..”
“으응..그래도 열심히 해야지..노력하는 사람. 이기는 천재는 없어..”
“알았어..”
처음 울었던 것에 비하면 잘 웃는다. 그러나 알고 있다. 이 애, 눈이 항상 빨갛다. 어딘가 어두운 구석에서 혼자 울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안쓰러웠다. 손 안 가득 느껴지는 부드러운 머리카락,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느낌을 가져본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재석이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나는 사랑해서 좋았다. 사랑받아서 기뻤고, 나를 위해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찼다. 25살 여자애가 혼자 죽음과 싸우고 있는 동안에도 위로받고 있다.
“누울래?”
“아니..하루 종일 누워있었어..”
“그럼..좀 걸을래?”
“음...그럴까?”
“추우니까..이거 입어..”
“응..”
링거를 옷걸이 비슷한 행거에 걸고 밖으로 나갔다. 병동 안에는 기도실도 있고 매점과 식당이 있지만 갈 곳이 많지는 않다. 밖으로 나가자 한쪽 구석에 환자복을 입고서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저씨들이 잔뜩 있다. 담배를 피울 수 있을 만큼 건강하던가 아픈데도 담배가 피고 싶을 만큼 좋은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종교라도 열심히 다녀 기도라도 하던가 담배나 배워 피워볼걸 그랬다.
“안 추워?”
“응. 좋아..”
나무 가지들 사이사이 새싹이 나오는 것을 봤는데 막상 나오니 찬바람과 어둠 때문에 봄을 느끼지 못하겠다. 잔디나 나무들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거보다는 주차장이 더 넓다.
“여기 앉을까?”
“응..”
벤치에 앉자 재석이가 나를 가슴에 안는다. 금방 따듯해졌다. 어깨에 머리를 올리자 편안해졌다. 환자복 주머니 안에 먹지 않은 약들이 만져졌다. 복도나 병실에서 오고가며 마주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어차피 죽을 거면 그런 모진 고생을 다 하고, 아픔에 취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
“응..”
“떨고 있어..추워?”
“아니..무서워..”
죽음이 무서워서 눈물이 난다. 재석이나 애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감정 조절이 안 된다. 재석이가 눈물을 핥아먹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다. 재석이는 내 눈물을 먹어서 자기 눈물로 만든다. 나 역시 재석이 눈물을 먹었다. 그리고 내 눈물로 만들었다.
“울지 마..내가 옆에 있잖아..무서워하지 마..”
“응..그럴게...”
“음..”
오랜만에 키스를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나는 여자이고 싶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깐 동안 암과 죽음을 잊는다.
“엄마..좀 더 숙여야지..거품 들어가겠어..”
“응..”
아침에 재석이가 머리를 감겨 주겠다고 했을 때 웃었다. 현주가 해주면 된다고 했는데도 자기도 하고 싶다며 고집을 부린다. 전에 그러기로 약속하지 않았냐는 말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여름에 발리에 갔을 때였다. 벌써 반년이나 지난 이야기였다.
“엄마 머리카락 많다..샴푸가 계속 들어가..”
“............”
“빨래하는 거 같아..”
“너무 길어? 자를까?”
“아니..머리 길어서 좋아..”
옆 침대에 있는 애가 생각났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가슴 아플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모습으로 변해갈걸 생각하니 슬펐다.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재석이도 안타까워 할 것이다.
“말시키니까 자꾸 거품을 먹잖아..”
“아..알았어..조용히 할게..”
재석이 말처럼 남이 감겨주는 손길이 좋다. 미용실에서 직업으로 의무적으로 감겨주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서투름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옷 안으로 물이 계속 들어갔지만 온도가 적당해서 그냥 있었다. 거품과 비누기를 제거하고는 빨래처럼 짜서 수건으로 말려준다.
“어머! 어딜 손을 넣고 그래?”
“히히. 어때서..”
수건을 옷 안으로 넣어 닦아주는 척 하면서 가슴을 주무른다. 그 손길을 온전히 받으면서 투정을 부렸다. 그냥 주기는 심술이 나서였다.
“엄마~ 재석아~”
“응..우리 화장실에 있어..”
“뭐해?”
“..머리감아..”
“뭐야! 엄마 머리감기는 거야? 내가 와서 해도 되는데..”
“그냥..한번 해보고 싶어서..”
아들이 엄마 머리 감겨 주는 거야 무슨 흉이 될까마는 현주는 알고 있다. 나와 재석이 부모자식으로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그래서 민망했다.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연애질이라고 나중에라도 비웃을 거 같았다.
“나와. 내가 할게..”
“다했어..”
“왜? 아예 목욕을 시켜주지?”
“음..그럴까?”
나는 아무 말도 못하는데 둘이서 잘도 놀린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밖으로 나오니 여자애와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쳐다본다.
“참..화목하시네요..”
“..네...애들이 착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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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린 엄마가 불쌍하고 슬퍼해야 하는데 때때로 부럽기도 하고 얄미웠다. 아침에 재석이가 머리를 감겨주는 것을 봤을 때도 그랬다. 명색이 딸인데, 자신 앞에서 그러고 싶은지 궁금하다.
저녁이 되면 화장을 한다. 재석이가 올 때가 된 것이다. 나도 결혼하면 남편에게 어디서 아들하나 낳아서 오라고 해야겠다. 아니면 아들을 낳아서 그 애와 연애를 해 볼까? 그러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때?”
“응..예뻐..”
“그래?”
26살 먹은 딸내미는 연애도 못하고 늙어 가는데 51살 먹은 아줌마는 병원에서도 화사하다. 혹시나 밤에는 동침이라도 하는 거 아닌지, 괜히 옆 사람들 눈치를 봤다. 엄마를 위해서 1인실로 옮겨줘야 하는 것이 딸의 도리일지 생각해 본다.
“엄마..”
“응?”
“불편하면...1인실로 옮길까?”
“.........얘는...”
“싫어?”
“........그보다..연주는 잘 하고 있니?”
“응..아침에 학교 보내고..저녁에 보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싫다고 안한다. 슬쩍 나가서 간호사에게 물으니 1인실 빈 곳이 없단다. 선심 한번 쓸려고 했는데, 이건 하느님도 시기하시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고소하다.
“...........”
매점에 갔다 오는데 기도실에서 옆 침대 사람을 마주쳤다. 인사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정하지 못했다. 이 여자 울면서 나오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데..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저기요..”
“네?”
“이거..”
“.......”
어차피 같은 병실이다. 같이 걸었다.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라 좀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감정이 있었다.
“뭐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부담가지지 말고 얘기 하세요..동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저희 엄마도 아파서..”
“...그래도 아줌마는 행복해 보이던데요..”
“....좀..푼수라서 그래요..하지만 혼자서 가끔 울어요..”
“알아요..무섭죠..죽는다는 것이..”
“..........”
엄마가 아프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냉정하게 말해서 내가 아프고 죽는 거랑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슬픔과 외로움, 무서움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것은 본인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언니는..언니라고 해도 될까요?”
“네..제가 1살밖에 더 안 먹었지만..편한 데로 해요.”
“그래요? 그럼 26살?”
“네..”
“아줌마를 보면 부러워요..결혼도 해보고, 애들도 키웠고, 다들 좋아해주고 있고..”
“.........”
“전 18살에 처음 수술해서 연애한번 못해봤어요..죽는 것이 너무 억울해요..”
“.........”
“아빠, 엄마는 저 때문에 고생하고, 속상해 하고...흑..”
또 운다. 가슴에 싸인 한이 많았다. 그동안 이별도 경험하고, 아버지의 불륜과 엄마의 근친도 보고 자신도 여러 가지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애에 비하면 그런 건 행복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겪는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도 있고, 목표도 있다.
“아~ 많이 울어서 다 비운 줄 알았는데..아직도 눈물이 남아있네요..”
“...........”
“미안해요..괜히..”
“그런 거..신경 쓰지 마세요..저..어떤 위로도 드리지 못해서..”
“호호. 그게 나아요..어설픈 위로보다는..”
김다희, 이 애 이름이다. 그 일을 계기로 많이 친해졌다. 스스럼없이 대화도 하고,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눠도 먹었다. 그렇게 여자 넷이 아픔을 잊어 보려고 노력한다.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잘 모를 때에도 항암제를 복용하고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는데 이름도 알고 가까워지면서 그녀의 고통 역시 다가왔다. 그녀가 힘들어 할 때면 우리 사이에는 얇은 커튼 한 장이 가로막았지만 그걸로 그녀의 고통을 감추지는 못했다.
“으으.....”
고통이 가득 담긴 신음소리, 몸부림, 그리고 열기,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부터 다르다. 침대 두 개와 약간의 공간만이 있는 병실은 그녀에게서 나오는 죽음의 무게에 짓눌렸다. 엄마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얼굴로 잔뜩 굳어져 내 손만을 꼭 잡고 버텼다.
단지 병실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 공기의 질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그 기억은 나를 병실 밖으로 내몰았지만 혼자 두려움에 떨 엄마를 생각하면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흑흑....”
다희는 아픔을 견디다 못해 울곤 했다. 그 울음은 그녀의 엄마에게 옮겨가고 다시 우리에게 왔다. 솔직한 심정은 엄마가 그런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엄마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진통제 놔 드릴게요..”
몰핀이라는 마약이라고 들었다. 마약은 무조건 안 좋은 거라는 선입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 안에서 절대로 안 좋은 것이란 없다. 백해무익하다고 말하는 마약조차도 여기서는 성약이다.
그녀가 잠이 든 것처럼 조용해지고 밖으로 나왔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그녀의 고통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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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이가 과외를 그만 두었다. 과외를 하는 날이면 재석이가 신경 쓰이고 부담스러워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막상 재석이를 보지 못하게 되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전했다. 이렇게 끝이 난다는 것이 가슴 시리도록 허무했다. 첫사랑 때처럼 울면서 난리를 치는 것이 더 낳았다고 생각했다.
“뭐 생각해?”
“응? 별로..”
“....재석이?”
“...........”
슬기에게도 미안하게 됐다. 그 둘이 연애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말았어야 했다. 괜히 어쭙잖은 충고라고 해 놓고 슬기에게 상처를 줬다. 친구의 애인을 빼앗은 것처럼 재석과 관계를 맺고는 또 혼자서 정리를 해 버린 꼴이다. 이래서는 친구 잘 되는 꼴을 못 봐 훼방만 놓은 것이 되었다.
“너에게 미안하다..”
“........그래...나도 화났던 것도 사실이야..네가 미웠어..”
“..............”
“이제는 괜찮아..재석이 볼 때는 좀 괴로웠는데..안보니까 별 생각 없더라..”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슬기가 재석이와 키스를 했던 것은, 물론 호감은 있었겠지만 분위기를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슬기를 보니 그게 아니다. 슬기는 재석이에게 마음을 줬던 것 같다. 슬기 같은 타입은 한번 마음을 주면 걷어내는 것도 어렵다.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
그러나 자신이 슬기를 도와줄 수는 없다. 나도. 아직 감정 정리가 안 돼 있다. 지금 슬기를 위해 나선다는 것은 핑계가 될 것이다. 내 몸이 그 애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슬기가 재석이와 만난다면 지금 심정으로는 슬기도 보기 힘들 것이다.
“술이나 할까?”
“호호. 술 때문에 그런 일을 격고도 마시고 싶니?”
“그래서 맛 들였나봐..”
“그래..오랜만에 둘이 마시자..”
한동안 양주에 콜라를 타 마셨는데 오늘은 소주를 샀다. 술꾼들처럼 라면하나 끓여놓고 마주 앉아서 마셨다. 소주가 쉽게 넘어갔다. 소주가 아무리 쓰다고 해도 지금 마음보다는 덜 했다. 사람들이 소주를 즐겨 마시는 이유도 그 때문인 듯하다.
“언제부터 좋았니?”
“재석이? 음...왜 영화 보던 날..”
“멋지긴 했었지..그거 보고? 참...센티멘털하네..”
“호호. 그게 아니고..병원에 갔었는데...다친 손을 들어 보이며 웃더라..멋있지 않냐고? 그러면서 사실은 무서웠다고 하는데..”
“..........”
“그 애...떨고 있었거든..싸우기 전에도..싸우고 나서도 한동안...막 안아주고 싶었는데..”
“..............”
“분식집에 갔는데..어쩌다보니 먹여주게 됐는데...그때도..”
“..............”
“지하철에서..손을 다쳐서 그거..못한다고..나보고 해달라고 농담을 하는데..나..해주고 싶어서..해줄까?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
“만약에...”
“응....”
“그 날...내가 그걸 했으면 지금...어떻게 되었을까? 나 역시..헤어졌을까?”
“.......”
지금 당장은 아닐 것이다. 경험상 한창 행복해 하고 있을 시기였다. 2년 혹은 3년, 어쩌면 10년 까지도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 때가 되면 슬기는 31살. 재석이는 25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래서 말렸던 거였다. 결국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생각해 봤는데...네 말처럼 돼서 후회한다고 해도.....”
“그래...네 말이 맞아...미안해..”
결혼. 그것이 기준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순결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 슬기의 목표라고 미리 예단했었다. 그것이 슬기의 목표가 맞는다고 해도 그 후 행복하게 살 거라 장담할 수 없어졌다. 사촌언니의 모습이 그랬다.
“호호..지난일 자꾸 생각하면 뭐하나 싶은데..잘 잊히지 않네..”
“..............”
슬기는 울었다. 말하면서 울었다. 잊었다고 해 놓고서는 울었다. 아마도 이것이 슬기의 첫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창을 봤다. 눈이 온다. 그날, 따듯했던 그 날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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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파서 제일 싫은 것 중에 하나가 동정이다. 허연 화장을 떡칠이 되도록 한 가면마녀까지도 어설픈 위로와 동정을 한다. 차라리 봉투 하나 줄었다고 슬퍼한다면 그나마 참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가 말한 섬..찾았다.”
“어딘데?”
“응..오동도.”
“맞다. 오동도였지..”
그래서 나도 엄마 앞에서 울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슬퍼도 엄마보다 슬프지는 않을 것이고, 나의 눈물이 엄마의 병을 낳게도 못하지만 기쁘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웃었다. 가슴을 채우는 슬픔을 누르고 엄마를 위해 웃었다.
“그런데 동백꽃을 보려면 4월이 절정이라네..”
“음..그러고 보니..엄마 갔을 때도 그 무렵이었던 거 같네..”
“엄마는..참..네..”
“호호. 너무 오래됐으니까 그렇지..너도 엄마 나이 되 봐..”
“히히. 나는 아마 못 잊을걸..”
“그래...넌 잊지 마...”
“4월이면 얼마 안 남았는데..어떡하지?”
“음..잠깐 퇴원해도 되고...의사선생님께 부탁해서 외출 허가를 받아도 되고..”
“음..그런 수도 있구나..”
엄마는 입원을 했지만 암의 진행을 늦추지는 못하고 있다. 의사는 우리를 불러놓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좀 냉정하게 들렸다. 전에 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를 본적이 있는데, 거기서 의사가 환자를 인간으로 생각을 하면 수술을 하기도 힘들고, 수술 후 결과가 잘못되면 견디지 못한다는 내용을 봤었다. 그 때는 의사도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엄마가 환자가 되고 보니 또 다르다. 환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면, 나는 의사가 기술자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입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뿐이다. 우리 엄마가 아프니까. 곧 죽을지도 모르니까. 의사든 하느님이든 의지하게 된다. 너무 의지하다 보니 원망도 하게 된다. 나, 내 가족, 내 것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의사가 나중에 그 일로 고통을 받던 말든 상관하지 않고 지금 순간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인간은 그런 존재다.
“그럼..누나에게는 내가 말할까?”
“음...엄마가 말할게..”
“알았어..”
아마도 엄마도 누나도 이것이 마지막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의사가 포기한 순간 우리가 찾을 것은 신뿐이 없었다. 여수에는 향일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새벽에 올라가 일출도 보고 그 암자에서 기도를 하려고 한다.
“가능하면...둘이 갔으면 좋겠다..”
“호호호..”
“왜 불만 있어?”
“으응..아니..”
“호호. 그럼 웃어..”
“웃.고. 있.잖.아.”
여수로 떠나는 길이다. 엄마와 둘이 가고 싶었는데 누나들이 붙었다. 누나들 역시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큰누나의 경우는 아픈 엄마가 불안했을 것이다. 남자라고는 해도 어린 동생 혼자만 딸려서 보내는 것이 마음이 안 놓여 따라오는 거라 생각하니 아직 어린 내가 한심하다.
“호호..”
현주누나는 그사이 운전이 많이 능숙해졌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엄마가 웃으며 손을 잡아 준다. 확실히 어른이 편하기는 하다. 차도 가질 수 있고, 운전도 할 수 있는 것이 부럽다. 연주누나는 보조석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데 엄마만 생각하면 우는지 아직도 눈이 부어있다. 아직 애기였다.
“얼마나 가야 해?”
“좀 지겹지? 제일 남쪽이라..그래도 많이 왔어..”
“엄마는 괜찮아?”
“응..엄마는 좋아..모처럼 나오니까 가슴이 확 트이는 거 같네..”
바다가 보였다 산에 가렸다 한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지는 불과 한 달이 안 되는데 가족들 모두 마음이 지쳐있었다. 집안을 누르는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는 사람들 마음에 집을 짓고 병들게 만들었다. 그런 것들이 차갑기는 하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가는 기분이다. 이 느낌을 가득 안고 서울로 돌아가면 엄마의 병도 좋아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여기야?”
“음..그런 거 같은데...”
“호텔로 하지..”
“그러려고 했는데..호텔이 없더라..”
“응...들어가자..엄마는 여기도 마음에 들어..”
숙소로 정한 곳은 돌산관광해수타운 이라는 이름도 촌스러운 곳이었다. 언뜻 보면 서울에 많고 많은 예식장같이 생겼다. 목욕탕과 찜질방이 있고, 7,8,9층에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큰누나는 그 펜션을 예약했다.
“그래도 안에서 보니 괜찮지?”
“응..”
“네이버에서 추천한 곳이야..”
창문을 통해 여수 앞바다가 보이고 돌산대교도 보였다. 돌산대교 건너편이 돌산도인 모양이다. 새벽같이 출발한 덕에 아직 해가 남아 있어 바로 오동도로 출발했다.
“엄마..이거 입어..”
“괜찮아..너무 환자 취급하지 마..”
“응..알았어..”
육지와 이어져 있는 약 800미터 정도의 방파제를 따라 걸어서 섬으로 들어갔다. 섬 전체가 동백 숲이라 할 정도로 동백꽃이 덮고 있었다. 잔디광장 중앙에 자리 잡은 모형 거북선을 지나면 작은 상가와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여기로 가자..”
그 옆으로 잘 단장된 산책로를 따라 오르는 길. 지압 효과가 있도록 다양하게 꾸며놓은 길이 있다. 길옆의 크고 작은 다양한 동백나무들이 붉은 미소로 우리를 환영해 주는 듯 했다. 엄마의 따듯한 손을 잡고 누나들 위에서 천천히 걸었다.
“예전에는 이런 길이 없었는데..참 좋다..”
“.....”
[고려 공민왕때 요승 신돈은 전라도라는 전(全)자가 사람인(人)자 밑에 임금왕(王)자를 쓰고 있는데다 남쪽땅 오동도라는 곳에 서조인 봉황새가 드나들어 고려왕조를 맡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불길한 예감이 들어 봉황새의 출입을 막기 위해 오동도 오동나무를 베어 버린 전설이 있으며 멀고 먼 옛날 오동숲 우거진 오동도는 아리따운 한 여인과 어부가 살았는데 어느날 도적떼에 쫓기던 여인이 벼랑 창파에 몸을 던져 정조를 지키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돌아온 남편이 오동도 기슭에 정성껏 무덤을 지었는데 북풍한설이 내리는 그해 겨울부터 하얀 눈이 쌓여 무덤가에 동백꽃이 피어나고 푸른 정절을 상징하는 신이대가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비석처럼 세워진 돌에는 오동도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엄마가 알고 있는 이야기랑은 다르네..”
“엄마가 알고 있는 것은 뭔데?”
“응.. 어느 마을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볼일이 있어 뭍으로 나가게 되었어..그런데 돌아오기로 한 날이 지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데..달이 가고 해가 가고..남편을 기다리던 부인은 병이 들었고..죽으면서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남편이 돌아오는 배가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고 했데..”
“...........”
“부인을 묻은 곳 후박나무 위에 수많은 흑비둘기 떼가 날아들어서 ‘아이고 답답 열흘만 더 기달리지. 넉넉잡아 온다 온다. 남편이 온다. 죽은 사람 불쌍해라. 원수야. 원수야. 열흘만 일찍 더 오지 넉넉잡아서..’ 하고 울더레..그리고 남편이 돌아왔데..”
“...........”
“남편은 매일 무덤에 와서는 통곡을 하고 돌아갔는데, 어느 날 보니 무덤에 전에는 보지 못한 작은 나무가 하나 나 있고 그 가지에 붉은 꽃이 피어 있더란 이야기..”
“슬프네..”
“응..그래서 동백꽃은 여인의 마음에 비유되어 ‘여심화’라고도 해..”
“죽은 부인이 무덤에서 남편을 기다린 걸까?”
“음...그럴지도 모르겠네..”
산책로 끝에는 하얀 등대가 서 있었다. 오동도 정상이었다. 등대 전망대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봤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더욱 파랗게 보였다.
“와..고래다..”
저녁에 수산시장에 갔는데 고래가 잡혀 시장에 나와 있다. 그 크기가 큰 트럭보다 컸다. 아저씨 한분이 해체하면서 토막을 내서 트럭 위로 던지는데 한차 가득 나올 거 같다. 인근 음식점에서 그 고기를 사가기도 해서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많이 먹어..”
“응..그런데 고래 잡아도 돼?”
“잡는 건 안될걸?”
고래 고기는 생선 보다는 소고기 맛이었다. 엄마와의 추억을 위해 고래가 자살을 한 거 같다고 하자 엄마와 누나들이 웃었다.
“발리 2탄이네..한잔 해야지?”
“얘는~”
“그러자..우리 조금만 마시자~”
고래 고기와 함께 소주를 마셨다. 처음 보는 소주가 있어 그걸로 했는데 더 쓰고 독했다. 엄마가 눈짓으로 술을 못 먹게 말렸다. 나는 처음에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엄마 표정에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면서 잔을 내려놨다. 그리고는 한잔을 여러 잔처럼 먹으면서 누나들에게는 계속 권했다.
“크~ ”
“흐흥~ 재석이는 소리는 마시는데 잔은 안주네..”
너무 티가 났는지 금방 들켰다. 연주누나의 말에 현주누나가 꼬집으면서 더 권한다. 현주누나의 행동에 엄마의 볼이 붉어졌다. 역시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현주누나에게 고기라도 한 점 더 밀어줬다.
“고기도 먹어..속 버려..”
“흥~ 고양이 쥐 생각해 준다고..딱 그 꼴이네..흥~”
“작은 누나도 자~ 아니. 내가 먹여줄게..아 해..”
“그런다고 내가..아..”
들어봐야 귀만 아프다. 입 안으로 한 덩어리 찔러 넣었다. 고기를 씹으면서 눈도 입도 삐죽거렸다. 아주 애 같아서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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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애 써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과장되게 웃지만 울고 있다는 것도 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즐겁게 보내려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행복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그걸로 인해 더 큰 벌을 받는다고 해도 감수할 수 있다.
“이리와..”
“응..”
현주가 연주를 데리고 옆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재석이와 같이 들어왔다. 큰 창을 통해 돌산대교의 조명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백, 수천 개의 조명이 별처럼 흐른다. 이별여행으로 더없이 만족했다.
“아름답네..”
“응..”
재석이가 안아주는 품 안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따듯했다. 재석이에 대한 감정은 마음에 절망으로 가득했던 날, 그 일을 계기로 변했었다. 이제 몸도 병들고 감도 떨어져서 별로 성욕이 생기지 않고 있으니 애정도 줄어야 했는데 그게 그렇지도 않았다. 굳이 몸을 섞지 않아도 이렇게 안겨 있는 것만으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씻을까?”
“으응..좀 더 안겨있고 싶은데..”
“그럼..같이 씻을까?”
“어? 그건..”
이상한 일이지만 같이 씻는 것은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부끄러울 것이 남아 있다는 것도 놀랍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재석이가 내 몸을 번쩍 들어서 욕실로 간다.
‘에이. 몰라..’
옷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가 차곡차곡 싸였다. 혹시나 해서 속옷에 신경을 좀 썼는데 밝은 빛 아래서 보니 너무 노골적으로 유혹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나마도 제거되었다. 알몸이 된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간간히 보이는 주름과 쳐진 가슴, 까만 유두 같은 것들이다.
“너무..보지 마..”
“응...”
나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재석이가 좋아하니 안심이 된다. 욕탕에 물을 받으며 나란히 앉았다. 등 뒤로 재석이 체온이 딱딱한 가슴과 함께 전해졌다. 등을 깊이 묻자 두 팔로 어깨를 감싸준다. 폭 안긴 자세가 되고 보니 재석이가 나보다 더 큰 거 같다. 어느새 이렇게 자랐는지 감회가 새롭다.
“뜨거워?”
“아니..좋아..”
비누거품을 풀어서 몸이 부드럽게 감기고 조금 뜨거운 듯 한 물이 긴장을 풀어준다. 둘이 들어가 앉기에는 좁은 욕조였지만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물이 넘치면서도 끝까지 채워졌다.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잠이라도 들 거 같았다.
“재석아..”
“응..”
“고마워...그리고 미안해..”
“뭐가?”
“그냥..이것저것..”
“그런 말 하지 마..나도..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한 거 많아..”
“응..”
어려서 좀 더 잘해줬으면 좋았을 걸, 그랬으면 내가 친엄마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후회가 되었다.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진심으로 사랑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일 년도 안 돼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전부는 너의 것이었다고 마음으로나마 고백한다.
“엄마..꼭 이겨내서 나랑 오래 살아 줘..”
“...........할아버지 기억나니?”
“외할아버지?”
“응..”
“기억나..”
“네가 그랬지? 젊고 건강하게 있다가 죽었으면 더 좋지 않냐고?”
“응..”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아빠처럼 죽는 것도 복 일수 있지만..가장 행복한 순간에 끝을 맞는 것도 복일거야..예전에 베이비루스라는 야구선수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
“마지막 시합에 홈런 3개를 때리고는 은퇴를 하더라..사람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면서..나도 그렇게 떠나고 싶어..”
“엄마....”
내 어깨에 재석이 입술이 닿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손을 들어 재석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내 인생의 보석이라고 한다면 현주와 연주다. 그러나 여자의 인생을 용 그림으로 생각하면 현주아빠가 용이고 재석이가 용의 눈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씻고 나가자..너무 오래 있으면 안 좋아..”
“응..”
먼저 재석이 몸을 정성껏 씻겼다.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오랫동안 그렇게 했다. 재석이가 나를 씻겨 줄 때도 그랬다. 욕실 안에는 여러 가지 물품이 있는데 집에서는 잘 안 쓰는 것도 있었다.
“이건 뭐야?”
“바디오일? 씻고 나서 몸에 바르면 수분을 유지시켜 주는 거야..”
“응..”
두 손에 잔뜩 짜서는 몸에 발라준다. 예전에 현주아빠가 항문성교를 하자고 이상한 오일을 가져왔었는데 이것과 비슷했다. 기분이 이상해 그 후 바디오일을 쓰지 않았었다. 오늘은 바디오일을 보면서 그 일이 생각난다.
“항문 성교 알아?”
“..응...”
“어떻게 알아?”
“봤어..”
“응...그런 거 너무 보지 마..”
“알았어..”
“오늘 해볼래?”
“엄마..해봤어?”
“아니..”
죽으면 썩을 몸, 아낄 것이 없었다. 더욱이 재석이라면 아까울 것도 없다. 오히려 뭔가 특별한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바디오일을 보면서 항문성교가 떠오르는 것처럼 나를 생각해 줄 뭔가를 하나라도 더 심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항문성교 같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생각나는 대로 오일을 똘똘이에게 발랐다. 아까부터 커져있던 똘똘이가 미스터코리아에 나가는 것처럼 반짝인다. 미스터 똘똘이 대회가 있으면 우리 똘똘이가 일등일 것이다.
“이제 하는 건가? 엄마..잘 몰라서..”
“음..그럼..넣을까?”
“응..살살해야 해..”
똘똘이가 들어올 거란 생각만으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감에 힘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똘똘이 대신 재석이 입술이 닿았다. 혀로 핥는다. 얼굴이 급격히 붉어졌다.
“아냐. 그러지 마..엄마..싫어..”
“쭙..엄마가 너무 힘주고 있어서..난 괜찮으니까..가만히 있어봐..”
“음...”
혀가 들어오려고 했다. 섬광처럼 미리 안을 씻어야 한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런데 또 어떻게 씻는 건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사이에 혀가 밀려들었다. 엉덩이에 힘이 더 들어가면서 조였다.
“윽..히 빼..어마...”
“안 돼..미안..엄마도 마음대로 안 돼..”
간신히 혀가 물러났다. 재석이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때 엉덩이 위로 오일이 쏟아졌다. 질퍽해질 정도로 많은 양이다. 엉덩이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재석이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항문을 열려고 한다. 다시 굳어졌다.
“휴...”
“이제 많이 느슨해 진거 같아..”
욕실에서만 두 시간은 있었다. 씻는데 한 시간, 항문을 넓히는데 한 시간이다. 차라리 그냥 방으로 갈걸 그랬다. 이제는 다리가 후들거려 세면대를 두 손으로 집고 있지 않으면 주저 않을 것 같았다.
“음...”
재석이가 두 손으로 엉덩이를 최대한 벌렸다. 왕난이 닿은 것을 알았다. 손가락이랑은 확연히 달랐다. 세면대를 꽉 움켜잡고 대비했다. 들어오기 시작한다. 변비에 걸리면 이런 감각일 것이다.
“윽...”
“아파?”
“어서..해..”
눈이나 손, 아랫입으로 알고 있는 똘똘이가 아니다. 재석이 머리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모든 모공이 활짝 열리면서 땀을 내보낸다. 세면대를 잡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윽...”
“이제..들어갔어..”
“음...정말?”
간신히 돌아서 보자 왕난은 보이지 않고 기둥이 엉덩이에 붙어있다. 그곳이 쓰라렸다. 피가 나오는 것 같다. 재석이는 엉덩이 사이와 똘똘이 기둥에 계속해서 오일을 부었다. 처음 있던 거에 비해 반통은 써졌다. 그 상태로 재석이가 등을 핥았다. 아팠던 것이 보상받는 기쁨이었다.
“으음...”
재석이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왕난은 그 안에서도 컸다. 직장의 벽을 늘리면서 들어온다. 배 안이 밀리면서 가슴까지 차오를 만큼 크게 느껴졌다. 빠져나갈 때는 마치 배설을 하는 것과 똑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항문이 조였다. 조이지 않으면 똘똘이와 함께 그것이 나갈 거 같아 불안했다.
“엄마..너무..조여..아파..”
“응..미안..엄마도..잘..안 돼..”
“엄마..봐봐..흥부랑 흥부 부인이 박타는 것 같아..”
“...............”
하는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 상상력에 어이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복숭아에 손가락이나 화살을 찔러 넣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똘똘이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까 박을 써는 것처럼도 생각된다. 정말 이러다가 몸이 두 쪽이 날 거 같았다.
“음...”
아픔은 여전했지만 견딜만하다. 무엇보다 피를 보자 첫 경험이 생각났다. 재석이에게 처음으로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 안의 생물에 들어왔을 때처럼 황홀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만족스러웠다.
재석이가 가슴을 주무르며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잡아 비틀었지만 너무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여기서 끝까지 가는 것은 무리다. 거울을 통해 붉게 상기된 얼굴과 만져지는 몸이 보였다.
“엄마..미안한데..나 정말..급해서 그러는데..잠깐만..들어갈게..”
“안 돼..기다려..”
밖에서 현주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급격히 오그라들었다. 재석이가 똘똘이를 빼려고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 초초감에 더욱 조였다.
“엄마..제발..나..엄마...”
딸이 문고리를 잡고 사정을 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것도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재석이가 문을 열었다. 현주가 뛰어 들어와 변기 위에 앉는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큰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의 시선을 외면했다.
“...............”
“미안..금방 나올 줄 알고..기다리려고 했는데...”
현주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돌아보며 말하다 말고 놀라서 쳐다본다. 현주의 시선에 내 안의 생물이 벌렁거리며 물을 흘렸다. 재석이가 결합되어 있는 곳을 숨기기 위해서 안으로 끝까지 집어넣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지려는 것을 똘똘이가 받쳤다.
“뭐..하는..거야?”
“...............”
두 손으로 가슴과 아랫입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똑같은 모습으로 재석이 손이 있다. 그 손이 움직였다. 똘똘이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내밀어 받으며 아랫입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4개의 손이 몸을 만지며 허리가 일렁거렸다. 현주의 시선에 급격히 달아올랐다. 미쳤다.
“으윽..아아..현주야..보지 마..제발..아아..”
“..............”
“제석아..멈춰..어서..빼..”
반대로 빨라지고 있다. 현주도 보고 있다. 재석이가 다리 하나를 들어 세면대 위에 올리고 현주에게 보이도록 몸을 틀었다. 오일이 인제야 제 구실을 하는지 거침없이 들락거렸다. 안에서는 왕난이 벽을 긁으면서 왕복한다.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현주의 손이 가랑이 안으로 들어가서 꼼지락 거린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으면서 눈을 때지 않았다. 급기야는 다른 손으로 가슴을 들어 올리고 만진다. 처녀의 하얗고 분홍, 순결한 가슴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내 딸은 정말 예뻤다.
“아아아..나..아아..”
“엄마..싼다..”
“어서..”
실제보다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내용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다리를 타고 물이 흐르는 감각이 생생했다. 현주의 눈과 계속 마주보고 있었다. 똘똘이에 의해 막힌 항문 대신 요도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강한 물줄기가 현주를 덮쳤다. 현주는 피하지 못했다. 상의를 입술로 물고 신음을 막으며 허리가 들썩거렸다. 검은 숲이 예쁘게 삼각지를 이룬 곳까지 보였다. 손가락은 그 밑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으음...”
“앙아...”
“윽...”
세 명의 마지막 숨이 크게 터졌다. 나도 현주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재석이가 받아 주면서 계속 오르가즘을 느끼도록 어루만져주고 있다. 현주는 좌변기 위에 두 다리를 벌린 체 멍하니 있었다.
“나...나갈게..”
“그. 그래..”
현주가 어색하게 나간다. 똘똘이가 작아져서 나가려 했다. 나는 급히 현주가 앉았던 좌변기에 앉았다. 똘똘이가 입구에서 없어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다. 민망한 소리와 냄새가 가득 찬다. 재석이는 세면대에서 똘똘이를 닦았다. 미친소, 피, 그리고 그것까지 있다.
“너도..먼저 나가있어..”
“괜찮겠어? 내가 씻겨줄게..”
“아니..엄마 괜찮으니까..먼저 나가..”
“알았어..”
현주 얼굴을 어떻게 볼지. 현주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미쳤다. 그러나 현주가 나를 보면서 자위를 한 것도 의외였다. 내 모습이 그렇게 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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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생리가 시작하려나 보다. 그래서 엄마와 재석이의 모습을 보고 흥분했을 것이다. 아니면 너무 참았다가 배설을 해서 몸이 나른해졌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렇게 결론 내렸다. 더 이상 생각해봐야 있던 일이 없어지지 않았다.
“연주야..일어나..”
“으음...몇 시야?”
“5시 좀 넘었어..”
“으응...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
“일출 보러 가야지..”
“아암~ 맞다..알았어..”
이제 돌산대교를 건너 향일암으로 향했다. 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중의 하나이며,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이름처럼 일출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곳 답게 향일암을 향해 오르는, 먼 바다가 붉게 물드는 아침을 맞이했다.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산길을 오르다 체격이 큰 사람이라면 옆으로 틀어야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두 개의 바위가 만들고 있는 길목 같은 바위틈을 지나니 다시 좁은 바위틈 사이로 급경사의 계단이 나왔다. 그 위로 향일암이 있었다.
바다로 향한 담장 앞에 모여 선 10여 명의 관광객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새 붉은 빛으로 터질 듯 요동하던 수평선에서 갑자기 밝은 구슬 하나가 튀어 오르더니 이윽고 커다란 원이 되어 스르르 구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아득하게 솟은 바위절벽 앞에 자리한 대웅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대낮에도 전등을 밝혀야 하는 바위굴이 나오는데 굴을 지나야 비로소 원효대사가 수도하며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관음전과 관세음보살상을 참배할 수 있다. 관세음보살상 뒤편과 옆쪽으로 동백나무들이 벽처럼 둘러 있는데, 하얀 관세음보살상과 붉은 동백꽃의 대비되어 신성한 분위기였다.
"이곳 금오산(金鰲山)은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저 위의 바위가 경전바위고, 앞쪽에 솟은 봉우리가 거북 머리지요."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향일암에 거북 형상이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된다. 삼성각 난간에도 수많은 돌 거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거북의 등에는 각각의 희망을 담은 동전들이 놓여져 있었다.
“잠깐 기도하고 내려가자..”
“응..”
금방 사라져버린 아름다웠던 일출의 아쉬움을 접고 원래의 목적중 하나인 엄마의 쾌차를 기원했다. 동생들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한배. 한배. 정성을 담아 절을 해서 108배를 채웠다. 오직 엄마가 건강하게 돌아오기만을 기원했다.
“누나..어제..미안해..”
“..신경 쓰지 마..그리고 너도 잊어줘..”
“응..쉽게 잊히지 않겠지만..”
새삼 부끄럽다. 동생 앞에서 자위를 했다는 것이 새롭게 상기되었다. 어디까지 봤을까? 상체가 들어난 것은 알겠는데, 밑에도 다 봤을까? 부끄러움과 함께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동생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엄마에게 완벽하게 가려져 있었다. 동생만 내 것을 봤다면 손해였다.
“원래..거기..뒤에다 하니?”
“아니..어제는 엄마가 마지막이니까..한번 해 보자고 해서..”
“그래...아프겠지?”
“글새..그건 엄마에게 물어보지 그래?”
“그걸..어떻게 묻니?”
연주가 엄마랑 동백꽃을 따고 있는 사이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이야 야외에서 그런 사진을 찍을 정도로 발랑 까져 있으니 이야기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에게 그런 말을 묻지는 못한다.
“내가 보기에는...누나는 엄마 닮았어..”
“뭐가?”
“으응..그런 게 있어..히히. 비밀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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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상태를 보고 나갔다. 매번 이 시간에 확인하고 나면 아침까지 아무도 안 온다. 나는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잠깐의 고요 후에 일어나 앉았다. 여수에 갔다 와서 재석이와 현주, 연주 모두 오늘만은 집에서 쉬라고 보냈다. 여수에 가기 전부터 결심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천국. 지옥. 환생 같은 것들을 많이 믿는다. 살아생전 좋은 일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천국에 간다면 가장 좋겠지만, 지옥이나 개. 돼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차라리 낳다.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음 이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존재의 상실이다. 지옥에라도 간다면 많은 고통을 당하더라도 존재한다는 것이고, 존재하기만 하면 다시 기회는 오게 마련이다.
전생의 원수가 현생의 부부로 인연 맺는다는 말도 있고, 전생의 빚쟁이가 현생의 자식으로 태어난다고도 한다. 재석이는 아들의 인연으로 만나 부부로서 끝이 났다. 그럼 우리의 전생은 어떤 인연이었을까?
‘무서워...죽고 싶지 않아..’
혼자 깨어있는 병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약들을 전부 꺼냈다. 상당한 양이었다. 약이라는 것이 원래 독이다. 특히나 항암제는 더 그렇다. 약은 좋은 것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다 파괴한다. 다만 나쁜 세포들이 더 많이 죽었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래서 어떤 약이든 치사량이라는 것이 있다. 이 정도 약이면 치사량이 되기를 기원한다.
“...............”
어둠 속에서 화장품을 꺼냈다. 보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죽은 모습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나의 마지막을 재석이가, 딸들이, 나를 볼 많은 사람들이 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다웠다고 기억해 주기를 희망했다. 하나하나 정성껏 바르고 칠했다.
낮에 준비해둔 유서를 꺼냈다. 별 내용은 없다. 그저 내 행동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과 애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고마웠다는 말을 썼다. 시신은 화장을 해서 재석이에게 동백나무 밑에 묻어 줄 것을 요구했다.
동백나무의 전설처럼 가능하다면 붉은 꽃을 매년 피우며 재석이에게 기억되고 싶다. 비록 죽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기억해 준다면 여자로서 후회는 없다.
“...후....”
막상 약을 먹으려니 떨렸다. 한 알 한 알 신경 써서 먹었다. 사람은 죽은 후에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죽은 후에 알아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죽는 순간에 그 사람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다고 본다.
아빠는 마지막에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것은 아빠가 목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 때문에 순교한다. 그 사람에게는 목숨보다 그 종교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신념에 죽는다. 내가 죽는 이유는 사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빠의 죽음을 보면서 삶을 생각했었다. 사람도 못 알아보고 맛도, 냄새도, 눈도 안 보이는 그런 것들은 사는 것이 아니다. 죽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가족들도 아빠를 귀찮아했다. 애정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재석이가 나를 사랑할 때, 나를 귀찮아하지 않을 때, 아름답다고 말해 줄때 그 애정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죽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사랑을 지키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암이 아니었다면 선택할 수 없었던, 언제 죽을지 알게 된 사람의 특권으로 내가 가장 기억되고 싶은 상태로 죽고 싶다. 그것이 나의 희망이고, 내안의 여자의 자존심이었다.
“...............”
약 안에 진통제가 있어서 다행이다. 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좀 어지럽고 눈이 감긴다. 유서를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51년 인생을 생각하고, 딸들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재석이가 웃는 모습을 생각한다. 눈으로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