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했는데 깊이 잠들지 못했다. 잠자리가 바뀐 것도 이유일 수 있지만 양쪽에서 꼼지락거리는 누나들 때문에 움직이지 못해 불편했고 현주누나가 떨어질까 봐 신경 쓰였다. 계속되는 선잠에 몽롱한 상태로 있었다. 어렴풋이 밝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이면 자연적으로 발기하곤 하는데 연주누나 쪽에서 머뭇거리면서 만진다. 누나가 일어났는지 잠결인지 알 수 없었다. 현주누나도 연주누나도 밤새 그랬다. 말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일어나 팬티가 텐트를 쳤다. 그리고 누나 손이 그 사이로 들어와 똘똘이를 잡았다. 의식적인 행동이었고 깨어난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현주누나는 일정한 속도로 숨을 쉬는 것으로 봐서 잠들어 있다. 그걸 확인하고 연주누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러지..마.’
눈을 뜨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도 누나의 손은 물러나지 않았다. 가볍게 주의를 줘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거침없이 만졌다. 현주누나가 언제 일어날지 몰라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현주누나를 향해 눈치를 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음...”
순간 똘똘이가 꽉 잡혔고. 부지불식 신음이 터졌다. 연주 누나의 손길이 애무로 바뀌고 있다. 누구에게 배우기라도 했는지 점점 정확하게 자극해 온다. 내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었다.
‘원죄구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어 그 벌을 대대손손 자손에게 이어지는 것처럼 내가 누나의 입술을 탐한 죄가 이어진 것이다.
‘음...’
작은 누나는 똘똘이를 흔들면서 동시에 겨드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핥는다. 누나의 머리에서 자유로워진 팔은 밤새 눌려 있던 영향 때문에 피가 몰리면서 저렸다. 또 큰누나가 일어날까봐 여전히 움직이기 망설여졌다.
“쭙...”
그래도 큰누나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입술이 봉쇄되었다. 내가 가르친 키스가 충분히 능숙해져서 돌아왔다. 입술이 빨리면서 하체에서 올라오는 쾌감에 벌어진 치아 사이로 혀가 밀려들었다. 한 마리 살아있는 인어처럼 자유롭게 유영한다.
이 상태로는 깨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만약 현주누나가 스스로 일어나 우리 모습을 본다면 큰일이었다. 지금까지 누나들이 질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즐긴 것은 사실이지만 누나들이 서로 싸우는 것도 싫었고 그녀들에게 상처주고 멀어질까봐 조심했다.
‘안 돼..그만...’
연주누나의 손놀림이 뛰어난 것은 아닌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미친소가 제법 싸였다. 연주누나가 경험이 없다면 수습하지 못할 정도의 양이다. 더욱이 갈아입을 속옷도 없고 휴지나 수건도 없었다. 냄새도 그렇고 반드시 현주누나가 알아차릴 것이다.
“윽...”
연주 누나 혀를 물었다. 뭐든지 물어야 했다. 상당히 아팠는지 혀와 함께 얼굴이 물러나고 손놀림도 멈췄다. 겨우 안도의 숨이 나온다. 화가나 눈을 훑기는 누나에게 밑을 가리키며 눈치를 줬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역시 아무생각 없는 듯 하다.
‘터져...그게..나온다고..’
“아...”
똘똘이는 잔뜩 골이나 혼자 껄떡거리고 있다. 연주누나는 고개를 들고 그것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 마음이 어루만지는 손끝에까지 전해졌다. 연주누나는 나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으로 묻는다. 답답하다. 여기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냥 멈춰야지.
‘그냥..두면 가라앉을 거야..’
끄덕 끄덕..
‘좀 더 자...현주누나 일어날 때까지..’
‘응..’
화장실이 가고 싶어 한번 발기한 똘똘이가 죽지 않았다. 여자냄새와 부드러운 살결. 연주누나의 순진한 속옷과 현주누나의 핑크색 레이스. 그리고 보이는 것도 아니고 가린 것도 아닌 여자도 뚤뚤이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래서 작아지지 못하고 있는 똘똘이를 연주누나가 다시 만진다. 어이도 없고 화도 나서 돌아봤다. 그러나 연주누나는 어느새 잠들어있었다.
‘그럼...’
반대로 돌아본 순간 현주누나가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 했다. 손동작도 멈췄다. 마치 잠결인양 연기를 하는 것이 보였다.
‘이 여자들이 단체로 뭘 잘못 먹었나..오늘따라 왜 이래..’
너무 놀라고 황당해 이마에서 땀까지 나온다. 연주누나가 그러는 이유는 나 때문이라는 걸 알겠는데, 현주누나는 엄마 때부터 연주누나까지 오직 집안의 질서와 평화만을 생각하는 줄 알았다. 가끔 질투도 보이고 히스테리도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누나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
조금씩 움직여 만지면서 계속 자는 척 하는 누나는 볼이 빨갰다. 속아주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운. 정말 뻔히 보이는 연극을 둘이 하고 있자니 웃기기까지 했다. 그나마도 화장실이 너무 급해지면서 더 이상 할 수가 없어 몸을 뒤척이며 누나들을 깨웠다. 현주누나는 은근히 손을 빼냈다. 중심에 있던 내가 움직이자 동시에 세 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잘들 잤어? 나 화장실 좀...”
“응...”
“어서 갔다 와..”
한껏 발기된 똘똘이를 조준해 소변을 보는 것도 어렵다. 방광이 비워지면서 말랑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누나들을 생각했다. 마음속에 항아리를 잃어버렸을 때도 누나들을 향한 욕망만은 실현시킬 수 없었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마지막 끈이다. 그녀들을 여자로 만드는 순간 나도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이제 항아리를 찾으니 가슴이 아프다. 나 같은 사람 말고 진실하고 성실한. 그러면서 진심으로 누나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나에게서 떠나갈 그녀들을 생각하니 얼굴도 모르는 매형들에게 질투가 피어난다.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욕망이 타올랐다.
‘.................’
누나들이 좀 못생겼다면 어땠을까? 엄마의 일을 격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엄마가 만약 보통의 아줌마처럼 배도 축 처지고 얼굴도 못생겼다면 과연 그런 관계가 되고, 또 유지되었을까? 다른 애들이 근친을 하지 않는 이유가 근친이 나쁜 일이어서일까 엄마나 누나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일까? 바꿔서 그들의 엄마나 누나가 섹시한 연예인 XXX 같이 생겼다고 해도 아무런 욕망을 느끼지 않을까?
‘참아!’
대신 대답하는 똘똘이를 때리면서 명령했다. 세월의 때로 조금씩 검어지는 녀석이 반항한다. 모가지를 잡고 조였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딸깍..
“.......뭐해?”
“..................”
연주누나가 노크도 없이 들어와 쳐다본다. 뭘 하고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연주누나는 잠깐 멍청하게 있더니 알았다는 듯 웃고는 아직 물도 내리지 않은 좌변기에 앉았다. 누나의 얼굴 앞에 똘똘이 머리가 목이 조인 상태로 검붉어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마저..해..난 신경 쓰지 말고...”
“....그런 거...아냐...”
“호호..괜찮아. 뭐 어때..누나가 해줘?”
이 여자 말보다 손이 먼저 닿았다. 정장 치마로 인해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무릎 위로 험하게 말린 팬티가 보였다. 10년 쯤 같이 산 부부처럼 내 앞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누나만 아니면......’
연주누난 나를 유혹하는 것이 분명했다. 부끄러움이 얼굴에 그대로 보였다. 똘똘이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떨렸다. 내 손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점령해 갔다. 아까의 움직임이 연결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정의 기운을 느꼈다.
‘.............’
“어머!”
참지도 않았고 사정도 알리지 않았다. 미친소 덩어리가 침처럼 뱉어져 누나 얼굴과 웃 위로 떨어졌다. 주의를 주지 않은 것은 내 마지막 경고였다. 누나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를 자극한다면 결국 참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또 미친소의 냄새처럼 유쾌하지 못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이게...그거구나....”
연주누나는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고 이어서 조금 핥아 먹었다. 무슨 맛인지 못느끼자 더 많이 먹었다.
“윽...비려...”
똘똘이 머리가 열리고 미친소가 쏘아져 나가는 것처럼 내 머리 뚜껑이 열리고 폭죽이 쏘아져 올라가 화려하게 불꽃놀이를 한다. 불꽃은 넓게 퍼지면서 참을 ‘인’자를 만들었다.
학교에 나가시 시작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일상에 복귀했다. 한 번씩 집에 들려 보곤 했는데 아파트인데도 불구하고 흉가처럼 느껴졌다. 경찰은 도둑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경찰이 무능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도둑은 아냐..’
어느 도둑이 돈도 안 되고 처분하기 힘든 살림살이까지 들고 갈까.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없다. 더욱이 벽지며 장판을 뜯어냈다는 것은 찾는 것이 있다는 의미고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웃도 모르게 아파트 한 채 분량의 짐을 옮기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할까? 보통 이사 때도 5명이 이상이 몇 시간은 달려든다. 사다리차도 쓰지 않고 야밤에 조용히 옮겼다고 가정한다면 최소 10명은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 인원이라면 조직이다.
‘아버지...’
우리 집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모셨다는 어른과 그 추종자들뿐이었다. 더욱이 아버지가 죽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아버지가 뭔가를 숨겼고...그들은 그걸 찾으려고 아버지를...’
아버지 죽음도 사고가 아닐지 모른다. 의혹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아내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 누나들과 나의 삶이 위협받고 있었다. 모든 것이 가정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숨긴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또 숨겼다고 해도 뭘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나마 아버지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이 반지를 빼고..’
아버지가 준 금반지. 가족들의 생일이 새겨져 있는 표면을 만져 봤다. 아버지는 남자인 우리가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이제 유일한 남자인 내가 누나들을 지킬 때였다.
이런 상황에 나의 친어머니. 아줌마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고, 저번에 아버지를 찾아낸 것을 보면 능력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찾아가서 도움을 부탁하기 어려웠다. 마음에 벽이 그것을 막았다.
“반장~ 교무실로 오래..”
가면마녀와 교감선생님. 그리고 어떤 남자가 같이 있었다. 처음 보는 그는 얼굴이 말상에 눈이 길고 가늘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정장에 깔끔하게 차려 입었지만 보이지 않는 눈동자로 인해 어딘지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느낌을 줬다.
“서울지검 박명수 검사님이셔..”
“아..네..안녕하세요..”
“그래. 네가 재석이구나? 반갑다..”
“너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며? 왜 이야기 하지 않았니..박 검사님이 그 때문에 오셨데..”
“괜찮다면 같이 가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아..강제는 아니고..어디까지나 협조 차원에서..”
“...그러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니라 협조 못할 것도 없다. 또 그를 통해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될지도 몰라 따라갔다. 그는 자기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학교 안에서 간단하게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자세한 설명도 없이 여기까지 데리고 온 그에게 경계심이 생겼다. 그건 위험신호였고, 내 센서가 작동한 것이다.
‘.............’
간접경험이라고 한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여러 상황을 경험해 볼 수 있고,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지금 떠오른 영화는 ‘의뢰인’이다. 나처럼 미성년자 소년이 살인사건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검사가 위협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그 소년은 녹음기로 그 상황을 타개해 나갔다.
“저 화장실 좀...”
“김 수사관님..”
“네..나를 따라와라..”
지금 녹음기는 없다. 그러나 핸드폰에는 그런 기능이 있었다. 영화와 현실은 다를 수도 있고, 미국과 한국이 차이날 수도 있다. 검사의 말처럼 그냥 의례적인 간단한 일인데 내가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녹음을 선택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든든해졌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물품들 말인데...”
“네..”
“이게 전부야? 더 있지?”
“물론 더 있죠..내 팬티도 다 가져갔고..가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먼지까지 다 가져갔으니까요..”
“장난쳐! 그런 거 말고..너의 아버지 물품이 이게 다야?”
“..........아버지는 이혼하시고 나가시면서 대부분 가지고 가셨어요..그 외에 더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네요. 계속 큰일이 있었고..정신이 없어서요..지금은 도둑맞아 확인할 길도 없잖아요..”
“........”
“검사님은 도둑을 잡아 주려고 저를 부른 게 아닌가요?”
“.....그러니까..뭐가 없어졌는지 알아야 잡아 줄 거 아냐..”
“우리가 적은 품목만 해도 수십 개는 되는데요?”
“어린것이 어디서 꼬박꼬박 시비야. 대한민국 검사가 만만해 보여? 이 새끼..이거 겁 대가리가 없구먼..”
“.....제가 왜 겁먹어야 하는데요?”
짝~
“이제 왜 겁먹어야 하는지 알겠지? 너..여기 잃어버린 물건 1000개 적어놔..안 그러면 집에 못갈 줄 알아..알았어?”
“............”
“하여간 요즘 애새끼들은 발랑 까져가지고...어른 알기를 뭣같이 안다니까..시발..”
“검사면...사람을 함부로 잡아다가 때려도 돼요?”
“이게..진짜..열 받게 만드네..돼. 검사는 그래도 돼. 됐어? 꼬우면 네가 검사 하던가..”
“.............”
“잔말 말고...하나도 빠짐없이 다 적어..너의 아버지 때문에 물먹어서 열 받았으니까..괜히 좋은 사람 성질 건드리지 말고..”
우선은 나가야 했다. 줄만 쳐져 있는 종이 위에 대는 대로 칸을 채웠다.
‘아버지 줄무늬 팬티. 사간에 체크무늬 팬티. 삼각에 흰색 팬티....’
짝~
“아 이 새끼..말귀 존나게 못 알아듣네..너 공무집행 방해죄가 뭔지 알아? 당장 콩밥 먹여 줄까?”
“...............”
억울했다. 분했다. 그러나 무서웠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우리 세계에서는 우는 것은 지는 거였다. 그리고 우는 애는 얕잡아 보이게 된다.
딱딱한 나무 책상을 앞에 두고 한참을 적었다. 시계가 없는 방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들도 있긴 했다. 도둑맞을 당시 그 물건들이 집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적었다.
생각하고 적고 생각하고 적는다. 나보다는 나를 지켜보는 그들에게 지루한 시간이다. 어느 순간부터 혼자 있게 되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여기서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 없었다. 그러기 위한 1000개의 물품을 적었다.
‘....................’
300개 까지는 기억나는 대로 적을 수 있었지만 그 후부터는 떠오르는 대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상관없이 그저 있었던 것 같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는 것들을 적었다. 그나마 800개가 넘어서면서 적을 것이 없었다.
“뭐야? 아직도 다 못했어? 이 새끼 이거 돌대가리 아냐? 너의 아버지가 뭘 가지고 있었는지 그걸 몰라? 이래서 애새끼 키워도 쓸모가 없다니까...”
“...............”
“약속은 약속이니까. 1000개 못 채우면 집에 못 간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다. 그 말 뜻 알지? 열심히 해..”
“..............”
“우리는 자장면이나 시켜 먹지? 아..오늘도 야근해야겠네..월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일은 더럽게 시켜먹어요..”
박명수 검사는 자장면 곱빼기를 내 앞에서 다 먹는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먹는데 추하다는 생각보다는 맛있어 보였다. 내 배에서도 소리가 날 정도로 허기가 느껴졌다. 그가 먹던 거라도 한 젓가락 얻어먹고 싶다.
‘치사한 자식...먹는 거 가지고..’
종이 위에 도난당한 물품으로 자장면을 적을 뻔 했다.
‘어머니...’
아줌마를 보고 너무 반가워 어머니라고 부를 뻔했다. 아줌마는 아줌마 연배의 다른 아줌마와 함께 왔는데 텔레비전에서 가끔 보던 대통령 대변인 같은 인상을 줬다. 냉정하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일상의 대화처럼 검사와 이야기를 한다. 박명수 검사는 학교에서 보였던 점잖은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재석군..수고 했어..고생했지?”
“...........”
“미성년자를 보호자 동의 없이 이래도 되나요?”
“하하. 재석군이 도둑을 빨리 잡아달라며 자발적으로 협조한 거라...”
아줌마와 함께 있는 여자는 변호사였다. 아줌마의 목적은 나를 대리고 나가는 것이고 나 역시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뻔뻔하게 말하는 검사를 보니 그냥 나가고 싶지 않다. 처음 보는 변호사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아줌마가 데려온 변호사였다.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아줌마를 믿고 의지했다. 변호사에게 휴대폰을 건네줬다.
“저...이거...”
“뭔데?”
“녹음이요..”
내 생각보다 더 잘 녹음되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녹음한 거라 박명수의 음성이 잡음 없이 들린다. 박명수와 그의 일당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원래는 인터넷에 올리려고 했는데...”
“...........”
“변호사시라니...드릴게요..”
“...잘했어요...”
변호사를 남겨두고 아줌마와 둘이 먼저 나왔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아줌마가 어떻게 알고 변호사랑 같이 왔는지 궁금했지만 그것 보다 먼저 할 것이 있었다.
“고마워요...”
“그..그래?”
다시 침묵.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다. 아줌마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나를 불편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려워하는 것도 같았다. 물과 기름처럼 아줌마와 나를 둘러싼 공기가 융합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무시무시한 골리앗 같은 건물 입구에 두어 걸음 떨어진 상태로 변호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렸지? 가면서 이야기 해..”
“저..진숙아..난 갈 테니까...네가 재석이...집까지 대려다 줘...부탁해..”
“.......알았어..전화 할게..”
현관 앞에서 아줌마는 쓸쓸히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착착한 심정이 되었다.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나타나 구해주는 것이 우연의 연속은 아닐 것이고, 그래도 아들이라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가요..”
“네..”
깔끔한 정장과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 그리고 검정색 뉴 그랜저는 세트처럼 보인다. 안락한 의자에 몸을 묻고 낯설고 힘들었던 하루를 머리 안에서 되뇌었다. 녹음한 것으로 그 검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 물으려 하는데 변호사 아줌마가 먼저 입을 연다.
“원망해요?”
“.............”
“영숙이도 마음고생 많이 했어..항상 네 주위를 맴돌았지..그 애의 삶을 안다면 이해해 줘야 해요..”
“...어떤 삶이요?”
IMF를 겪으면서 아버지의 부도. 그리고 중풍. 어린 동생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가 그대로 나왔다. 그런 것들은 아줌마가 술집에 나가게 된 이유나 몸을 팔은 원인이다. 나를 버린 이유로는 좀 약했다. 동연 누나만 해도 아줌마랑 붕어빵처럼 똑같은 처지였지만 선주를 잘 키우고 있었다.
“재석군 아버지가 재석군을 원했던 모양이에요..”
“아줌마 식당..잘은 기억이 안 나는데...한 5년 쯤 됐죠? 그 전에도 계속 근처에 있었데요?”
“.....아니..그 전에는 독일에...”
“왜요?”
“.........피아노...공부하러..갔었나 봐요..”
“결혼은 안했나요?”
“.....했었는데...”
“그...지배인과요?”
“아니...독일에서...독일 사람하고..지금은 이혼했어요..”
“...............”
이 변호사 아줌마도 웃긴다. 처음에는 신파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더니 이제는 당황해서 더듬거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대답은 잘했다. 나도 당황했다. 내심 아줌마가 지금까지 내 근처를 맴돌며 나만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면서 조금은 기쁘고 흐뭇했었다.
“그래도 어머니잖아..재석군을 낳아준 어머니..”
어머니니까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래서 미웠다.
“변호사님은...성함이?”
“정진숙..”
“어디 정씨세요?”
“경주 정씨인데..왜?”
“시조는 누구세요?”
“음...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시조 어른이 없었다면...지금의 변호사님도 없었겠죠? 그럼...변호사님은 시조 어른 이후 모든 조상님들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나 해서요..”
“..........하지만...어머니는 살아 계시잖아..옆에 있잖아..”
“그래요...살아 있었죠..”
“..............”
“....박명수 검사 일은 어떻게 됐어요?”
“우선 경고만 하고 나왔어요..”
“...........”
뭔가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었다. 같은 법조계라고 감싸주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하지만 이건 증거가 되지 못해요. 디지털 방식이라 조작가능성이 있어서 법원에서 증거로 쓰지 않아요. 더구나 그가 이런 행동을 할 동기도 없고 녹음에는 검사 이름이 거론되지도 않아서..또 전부 입증한다고 해도 경고나 인사이동 정도로 끝나요. 그래도 그를 난처하게는 만들 수 있으니 일단은 가지고 있어 봐요..그가 오늘 같은 일을 한 동기를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요..”
“...알아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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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우습게보다가 한 대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고 반성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진술들을 보건데 그는 아들을 유난히 편애했고 같이 어울렸다. 어떤 식으로든 아들에게 비밀을 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린애였다. 그런 애 하나 휘어잡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 애의 약점도 잡았다. 바로 불륜. 한국사회에서 특히나 싫어하는 죄 아닌 죄가 바로 불륜이다.
‘이제 어떡한다?’
너무 쉽게 생각해 일을 그르쳤다. 뒤늦게 도둑이야기를 듣고 아차 싶었다. 이미 자료가 넘어갔을까봐 조급해졌다. 바로 간통으로 끌고 갔어야 했다. 마음속으로는 간통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이 유부녀와 놀아나는 것을 보고 화도 나고 멸시했다. 그래서 함부로 대했던 것이 실수였다. 이제는 약점이 잡혀서 직접 움직이기 어렵게 되었다.
원래 그가 개봉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위에서는 종결시킨 사건이다. 특검팀은 해체되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사하면서 수집된 자료에 따르면 못해도 1000억 이상이 은닉돼 있었다. 그 돈이면 검사 질 안 해도 그만이었고, 적당히 기름칠하면 승승장구 지검장. 나중에는 총장도 꿈이 아니었다. 또 정계로 진출할 수도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지름길이 될 것이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1000억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만 해도 억 소리 나는 금액이다. 직접 나설 수 없다고 잊어 먹을 수 있는 금액은 절대 아니다.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액수를 나눌 각오를 한다면 동참시킬만한 인물이 몇몇 있긴 했다. 그 중 가장 만만한 것이 지금 연애중인 수경이였다. 돈을 나누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결혼하면 결국 내 돈이다.
‘우선적으로...고소부터 하게 만들어야겠지?’
간통은 친고죄라 배우자 이외는 고소를 할 수 없다. 일단 소장이 접수되면 그 사건을 수경이 맡게 손을 쓰면 된다. 그런 연후 수경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재석이를 구슬려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이다.
따로 보관하고 있던 유재석 자료를 꺼냈다. 30대 여성과 모텔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진들을 추려냈다. 상대 여자의 프로필을 확인해 본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여자라 사진을 보면서 수작을 부려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참아라...돈만 챙기면 이런 여자 널렸다..’
부인이 바람난 줄도 모르는 바보 남편의 이력도 봤다. 뜻대로만 움직여 준다면 익명의 편지를 보내는 것이 제일 무난하다. 편지와 사진을 보고 열 받은 남편이 고소를 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는데, 확률은 반반이었다. 그보다 확실한 것은 만나서 직접 자극을 주면서 설득하고 유도하는 것이다. 한번 실수를 했던 만큼 확실한 길을 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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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하씨?”
“그런데요?”
“서울지검 박명수 검사입니다.”
“.............”
“조용히...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살다보면 인상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예전에 나에게 해를 입혔던 사람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은 사귀어 보면 성격이나 행동도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똑같은 짓을 하곤 했다. 물론 100%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검사라고 소개한 박명수 역시 그런 경우였다. 차갑고 이기적인. 뒤통수를 쳤던 예전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가능하면 말도 섞기 싫었다. 그러나 검사다. 괜히 주눅이 들면서 그를 따르게 되었다. 우리는 회사 근처의 스타 박스라는 커피전문점에 들어갔다.
“용건이...”
“이런 말 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우선 이 사진들을 봐 주세요..”
“이건...”
“..부인께서..나쁜 녀석의 꼬임에 넘어간 모양이에요..”
아내와 처제 친구가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보다 더한 것도 봤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검사양반을 보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어 우선은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이 년을 당장...”
“분개하는 심정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잠시 진정하시고..”
“아니 이런 사실을 알고 어떻게 진정합니까?”
“그래도 정준하씨가 직접 나섰다가 자칫 사고라도 나면...차라리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
이 자식이 원하는 것이 뭘까? 검사가 할 일없다고 남의 뒤나 캐고 다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과도하게 흥분한 척 하니까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흥분하지 않았다면 부추겼을지도 몰랐다.
“우선 고소장부터 써 주시면..법의 심판을 준엄하게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 정준하씨 같은 선의의 피하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저희 검사의 일이니 믿고 맡겨 주세요.”
“고소장이요? 간통으로?”
“네..”
냄새가 난다. 박명수가 원하는 것은 고소장이었다. 고소장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다. 고소장 속에서 묻혀 사는 검사가 고소장 써 달라고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건....전 아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만한 일로 아내를 고소하고 싶지도 않고 이혼은 더욱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시는 이 문제로 저를 찾지 말아 주세요.”
“.......그...아내의 불륜을...그냥 두시겠다고요?”
“아니요. 아내와 잘 이야기 해 보고..아내에게 기회를 주겠어요.”
“..............”
‘자..이제 어떻게 나오는지 볼까?’
“그럼...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저기..선생님...잠시만..”
“네? 더 하실 말씀이 게신가요?”
정준하씨에서 선생님이 됐다. 생각대로 칼자루는 이쪽이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선심 쓰는 것처럼 생색내는 꼴이라니. 역시 첫인상처럼 더러운 놈이었다.
“사실...이건 정부의 극비사항인데...”
“.............”
“사진속의 남자는 유재석이라고 합니다만. 얼마 전 떠들썩하게 했던 일심회의 핵심 간부의 아들입니다. 저희는 그가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심회라면 전직 대통령과 그의 군부 세력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밝혀진. 예전에는 소문만 무성했던 조직이었다. 일심회 회원이라면 정부의 요직이거나 재개의 거물이 대부분인데 그 중에서도 간부라고 한다. 진정한 고수라면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뭔가 더 토해낼 것이 있다.
“....그렇다고...아내와 이혼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세요.”
“국가에 애국하는 일입니다.”
“이보세요.. 대통령이 수천억씩 해먹는 나라에서 애국을 위해 이혼하고 희생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뭔가 생기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
떡밥을 던졌다. 물고 안 물고는 그의 자유다. 나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사실 최근 몰래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보고 질투심이 들끓기는 했다.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 그리고 이어지는 서비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더불어 너무나 자극적이라 그 영상만 보면서 수십 번의 자위를 했다. 이제는 너무 봐서 외울 정도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그 일이 있은 후 아내가 나를 보면서 행복하게 웃는다는 것이었다.
가슴을 꽉 채운 질투심은 두 가지 생각을 만들었다. 하나는 이혼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나를 속이는 아내와 끝까지 살만큼 사랑이 남았는지 회의가 들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덮고 아내에게 충실해지는 것이었다. 질투하고 있는 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근간이다.
“흠흠...뭘 원하시는지...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주시면..최대한..”
“그 정보라는 것이 뭐죠?”
“그건.......”
“........................”
“회수되지 않고 있는 비자금...에 관한 겁니다..”
이건 월척이다. 대박이었다. 이제 보니 이 자식 처음부터 하는 짓이 수상하다. 이정도 문제가 고작 평검사가 처리할 사한일까?
“10%. 회수되는 금액의 10%를 원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추정 액만 1000억이거늘..”
1000억. 머리 위로 무수히 많은 0들이 떠 다녔다. 박명수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을 끊어 먹었지만 가장 중요한 말을 이미 들었다.
“이혼까지 하는 마당입니다. 그 정도는...생각해 주셔야죠..”
“개인 돈이 아닙니다. 국가 재원입니다.”
“싫으시면...할 수 없죠..”
“...........5%...”
장사 경험은 없지만 협의를 통해 7.5%로 합의를 봤다. 돈으로 75억이었다. 75억을 준다면 이혼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거라도 해줄 용의가 있었다. 그가 준비해온 고소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작성하고 넘겨줬다.
“그럼..수고해 주세요..”
“....네...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인생역전. 한동안 텔레비전에 나오던 광고처럼 몸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마음은 따듯한 남태평양 한가운데 쭉쭉 빵빵한 서양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에메랄드 빛 바다 안을 노닐었다.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고, 휘파람이 절로 난다.
“자자..오늘 내가 한턱 근사하게 낼 테니까..모두 일찍 일어나죠?”
“정말? 로또라도 됐어?”
“하하하. 되고말고...로또가 따로 있나..어서들 가자고..”
단란하게 마시러 가서 술과 접대비로 400만원 나왔다. 다음날은 친구들과 마시면서 또 그 정도 돈을 지불했고, 그 다음은 고교 동창들과도 마셨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3천만 원을 마신 후였다. 후회도 되었지만 들어올 돈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박 검사님. 왜 아직도 사건이 진행되지 않는 거죠?”
“그게...아직 증거를 잡지 못했습니다.”
“무슨 증거가 필요한데요? 그 때 사진을 보여주셨잖아요?”
“그 걸로는 간통을 입증할 수 없고요..정사를 나누는 장면이나 정액 같은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해요..”
“...그건...제가 구해 볼 테니까..빨리 추진해 주세요..”
“증거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구속할 수 있어요..”
“알았습니다..”
카드 값을 아내 몰래 해결하자니 여기저기서 삐거덕 거렸다. 연락이 없기에 잘 되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런 간단한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새벽에 작은방으로 가서 문제의 영상을 시디에 복사했다. 마음으로 이혼하려고 정하고 나니까 그동안 싸였던 불만이 종종 폭발했다. 아내도 급격히 냉랭해지면서 이제는 각방까지 썼다. 사실상 별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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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라 애들은 잠시 풀어져서 교실이 산만한 시기였다. 수업 종은 예전에 울렸는데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다. 반장으로서 교무실에 갔다 와야 했지만 애들의 요구로 10분 뒤에 가려고 했다.
드르륵...
“유재석이 누구야?”
“전데요..”
“같이 좀 가야겠다..”
“어딜요?”
“가보면 알아..”
운동 좀 했을 법한 건장한 아저씨 둘이 양쪽에 팔을 끼고 끌다시피 해서 데려갔다. 아저씨 옆에는 가면마녀가 있었는데 나를 보는 시선이 차갑기 그지없이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끌려나온 밖에는 경찰차가 서 있다. 뒷자리에 밀어 넣기 무섭게 차는 출발하고 그대로 경찰서로 직행했다.
“아........”
“............”
시장통보다 소란스러운 경찰서 안에는 보라누나가 있었다. 경찰차 안에서 ‘미린다의 원칙’이라는 묵비권과 변호사 선임권리 같은 것들을 불러주고는 간통에 의해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즉시 저번에 저장해 두었던 변호사 아줌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줌마는 알았다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만 했다.
“미안...”
“아니에요...오히려..제가..”
“흑흑...”
“누나...아직은...울지 마세요...잘 해결될 거예요..”
“이것들이..여기가 어디라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연애질이야!”
“뭐가 연애질이라는 거죠? 서로 위로도 못해주나요?”
경찰의 짜증 섞인 소리에 반응한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구두소리를 울리면서 당당하게 변호사 아줌마가 걸어오면서 받아쳤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간통으로 잡혀와 좁은 의자에 앉아 내 여자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나와 너무나 대비되어 스스로 자괴감이 든다.
“누구?”
“정진숙 변호사입니다. 유재석군 변호를 맡았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네...일단 여기 앉으시죠?”
“아니요. 앉을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여기 공탁명령서와 영수증이요..”
“음...좋습니다. 데리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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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야?”
“공탁금 2000만원 걸고 불구속 공판으로 가기로 결정됐어..”
“...어째서?”
“변호사가 좀만 능력 있어도 그 정도는 해..그리고 유재석인가? 미성년자라며? 교육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야. 기본권을 침해할 수는 없잖아..”
“음...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당신이 준 증거가 워낙 확실하니..지는 일은 없을 거야..걱정하지 마..”
검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안에서도 여러 갈래의 업무가 있었고 간통은 내 분야가 아니었다. 불구속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또 실수를 했는지 알고 당황해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확실한 거지? 그럼...얼마나 걸릴까?”
“뭘 그렇게 조급해 해? 당신답지 않게..1심 판결까지는 4달 정도? 끝까지 항소하면 1년 좀 더 걸리겠지..그런데 이 일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야?”
“응...그 남편이랑 아는 사이야..”
“그래...그건 그렇고 한잔 할까?”
“음...그러지 뭐..”
“무슨 대답이 그래? 싫어?”
“아니~ 좋지..”
술 마시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술 생각도 있었고 담당검사를 맡아준 수경이에게도 신경 써야 한다. 정준하처럼 따지고 들면 한목 띄어줄려고 했는데 수경은 별말 없이 사건을 맡아 줬다. 원래 자기 일이고 하니 크게 의아해 하지 않았다.
지검 앞에 자주 가는 ‘바’ 로 갔다. 분위기도 괜찮고 법조계 인사들이 많이 와 정보도 교환할 수 있는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었다. 수경은 테이블에 앉지 않고 바텐더가 있는 기다란 바에 앉았다. 가볍게 마시자는 의미다.
“그 증거자료...당신도 봤어?”
“아니..왜?”
“으응..그냥..”
“왜 그러는데?”
“별거 아냐...그 보다..오늘 밤 어때?”
“웬일이야? 네가 먼저 그런 말을 하고..”
“여자도 때로는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야..뭘 그렇게 따져? 사람 무안하게..”
“하하. 이거...무서운데? 그럼 갈까?”
“응...”
1시간도 안돼서 일어서는 폼이 처음부터 그 말을 하기 힘들어 술의 분위기를 빌리기 위해서 왔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귄지 2년이 되도록 이런 적은 없었다. 두 사람 차가 모두 근처에 있었지만 술도 한잔 했고 택시를 타고 자주 가는 호텔로 갔다.
“음...이런 거 싫어했잖아?”
“쭙...”
샤워하고 침대에 들어가자 이불 안으로 숨어들더니 성기를 빨아준다. 이불을 꼭 뒤집어쓰고 얼굴과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경험으로 입 안에서 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도도하게 굴던 그녀가 자기 사타구니 안에서 물건을 빨아준다고 생각하니 미치도록 짜릿했다.
“아아...좋은데?”
불현듯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안하던 행동을 하는 것도 그렇고 직업여성 못지않은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심은 의심이고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심한 사정감에 당황했다.
“으음...싸겠어..그만..”
“쭙..쭙...”
나이가 30을 넘어가면서 예전 같지 않다. 한번 사정하고 나면 2~30분은 있어야 발기가 된다. 그런 사정은 그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빨아 당겼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 안에다 정액을 토해냈다. 음문에 하는 것 못지않은 만족감에 침대에 뻗어 버렸다.
“음...끝내줬어..”
“윽...비려...”
수경은 먹어 보려고 하다가 끝내 휴지에 뱉어냈다. 이어서 욕실로 가서 입을 닦고 왔다. 먹어 줬으면 더 좋았을 것도 같고, 먹지 못하는 모습에서 안심도 되고 했다. 능숙한 여자는 밖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아내는. 아내가 될 여자는 순진한 채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어 줬으면 좋겠다.
“당신 무슨 일 있지?”
“아니..별일 없는데..”
‘수상해...’
평소라면 다시 발기할 때까지 30분은 기다리거나 한번 끝나면 나가자고 하던 그녀가 휴지로 성기를 닦아 내고는 다시 핥기 시작했다. 그리고 5분도 안돼서 세웠다. 말을 타는 자세로 내 위로 올라온다. 지금까지 그녀와는 정상 체위 이외는 해본 적이 없었다.
“음....”
출렁이는 가슴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그녀의 율동에 따라 흔들렸다. 과격한 몸놀림에 성기가 빠져나갔다가 엉덩이에 눌려 부러질 것처럼 아프다. 수경이 흥분하면 할수록 빠지는 횟수는 늘어나고 그 때문에 끝까지 가지 못하고 짜증만 났다.
“안되겠어..당신이 위로 와죠..”
“그래..”
바로 누운 수경은 다리를 활짝 벌리고 나를 기다렸다. 손으로 음문을 잡아 보일정도로 벌리고 어서 들어오라는 눈빛을 보낸다. 안에 집어넣기는 하는데 마음속에 찝찝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아아...빨리...더 빨리..”
“음...”
의심은 의심을 낳고, 하나하나의 행동에 일일이 신경이 간다. 관계 중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녀의 재촉 역시 가슴에 불씨를 당겼다. 평소보다 과격하게 밖아 넣는데도 그녀는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빨리 만을 요구했다. 내 페이스를 잃고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헉..헉...싸겠어..안에 싸도 되는 날이야?”
“좀만..좀만 더..”
“헉..헉...으윽...싼다...”
“아아....”
두 번째 사정인데 첫 번째보다 빨리 끝났다. 그만큼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빨리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수경의 신음에 아쉬움이 묻어났다고 느꼈다.
“헉..헉....좋았어?”
“.....응....”
“무슨 일이야? 너 평소랑 틀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진짜? 믿어도 돼?”
“...........시디..그 때문인가 봐..됐지? 더 이상 의심하면 화낸다..”
“...내일 나도 보여줘 봐..”
“맘대로 해..”
오전에 시디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어 결국 사무관을 보내 받아왔다. 시디가 아니라 디브이디였다. 4.7GB가 꽉 차 있었다. 영화처럼 선명한 화질은 아니다. 오래된 흑백영화 같은 화질이었다.
“.............”
수경이 왜 그렇게 발정이 났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영상이 2시간 넘도록 계속되었다. 이건 편집된 영상이다. 2시간을 꽉 채운 행위도 그렇고 간혹 장소가 바뀌는 모습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2시간을 저렇게 움직인다면 틀림없이 남녀 모두 허물이 벗겨져 아플 것이다.
‘수경이 이게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영상은 영화도 아니고 실제 사실도 아닌 그 중간적인 형태를 보였다. 수경이처럼 잘 모르는 여자가 보면 진짜라고 믿을 우려도 있었다. 그럴 경우 나와의 관계와 비교하게 될 것이고 다른 남자에 대한 호기심도 생길 것이다. 결국은 직접 확인해 보려고 할 수도 있다.
‘젠장...’
아내감으로 수경이 만한 여자도 없는데 불안해졌다.
‘그런데...저 여자는 누구야?’
여자는 두 명이 나왔다. 그의 아내는 그냥 사진으로 봐도 미인이었지만 음란한 표정으로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끝내주게 좋았다. 같이 있는 여자 역시 고무공 같은 탄력과 모델 같은 몸매가 안 좋은 화질에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마구 휘어버리는 허리 놀림이 침이 떨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한번 박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것만 봐도 유재석은 사회악이 분명해졌다. 사회에서 경리시켜야 많은 건전한 남성들이 안심하고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쳐 넣으리라고 새롭게 다짐했다.
‘우선 돈부터 찾고...’
변호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학교에서 퇴학이나 정학을 고려하는 것도 무효화 시켜버렸다. 아줌마는 ‘유죄가 확실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말과 함께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 처벌한다면 소송을 각오하셔야 한다.’는 짧은 말로 그런 일을 해냈다.
그래도 학교생활은 변했다. 나는 섬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주위에도 오지 않았다. 그건 학생이나 선생 모두 그랬다. 그렇다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애들 눈에는 경멸. 시기도 있었지만 경외. 부러움도 있다.
가면마녀는 부반장을 반장처럼 대하면서 애초에 반장은 없는 것으로 여겼다. 민족고에 대한 추천 이야기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빛내줄 인재에서 수치로 변한 것을 느꼈다.
그들의 변화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지난 1년. 무수히 많은 사건으로 단련되기도 했지만 그 중 하나라도 이보다 가벼운 일은 없었다. 내 나름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이모의 독설도 견딜 만 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누나들까지 힘들게 만드는 것은 미안했다. 또 변화 없는 큰누나와는 달리 작은누나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미워하게 되었다.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스치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런 작은누나와 함께 있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되어갔다.
“누나..나 따로 살았으면 하는데...”
“어디서? 혼자 어떻게 살려고..”
“흥! 그 여자에게 가겠지 뭐..”
“너! 조용히 안 해!”
“언니는 나만 갖고 그래..”
“....그래도 또! 너 언니에게 맞아 볼래?”
“........”
“작은누나...잘못 아니야..내 잘못이야..누나..나 혼자 살았으면 좋겠어..누나가 이해해 준다면..그러고 싶어..”
“...........알았어.....”
짐도 별로 없어 가방 두 개에 챙겨들고 나왔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누나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영하는 곳은 없을 지라도 갈 곳이 없지는 않다. 아버지가 준 것과 내가 올린 수익으로 3억이 넘는 돈을 갖고 있었다.
우선은 집 근처로 갔다. 어차피 중학교는 졸업해야 하고 그 근처의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이다. 상미누나가 사는 곳 같은 집이 혼자 살기는 편해 보였다. 그러나 대우를 얻지는 않을 생각이다. 슬기누나 역시 나에게 실망하고 상처 받았을 것이 뻔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
“.............”
이런걸 머피의 법칙이라고 한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하나인 슬기누나를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만나 버렸다. 순간 당황해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아니라 누나가 외면했어야 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녀가 외면하는 것을 지켜봐 줄 의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누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밥은...먹었니?”
“.....................”
“들어가자...차려줄게..”
“....................”
혹시 슬기누나는 내 소식을 못 들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상미누나가 말하지 않았다면 누나가 내 소식을 들을 곳이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따라 들어가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어? 만났어?”
“어서 들어가..”
“슬기..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나 봐...며칠을 앞에서 기다리더니...끝내 만나네..”
“네?”
“슬기가 너 걱정하면서 며칠 동안 앞에서 기다렸어..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그만해..그런 이야기..앉아..밥 줄게..”
식사 때가 아닌데 따듯한 밥 한공기와 정갈하게 차려진 상을 내 준다. 배도 고프지 않았지만 이걸 먹어야 하는 건지. 망설여졌다. 슬기누나가 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친절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알아..들었어..”
“지선이가..이야기 했던 모양이야..”
“..............”
“집에 돌아 온 거니?”
“아니요..아직..”
“그럼? 이모네로 돌아가니?”
“...........”
“너..집 나왔구나?”
“....네....”
“앞으로 어떡하려고?”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하려고요..”
“응...그때까지...있을 곳은 있어?”
“...............”
“없으면...여기 있어...상미도 괜찮지?”
“...응....”
몇 번을 사양했지만 그녀들 역시 고집을 부렸다. 결국 방을 얻을 때까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여 며칠 있기로 했다. 식사 후 당장 부동산을 다니며 알아 봤고, 다시 누나들 고집에 같은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같은 층은 없었다. 저층과 고층 중에 제일 위에 층을 선택했다. 바로 위가 옥상인 칸인데 입주할 수 있는 시기가 제일 빨라 2주 만에 들어갈 수 있는 집이었다.
“편해?”
“네...”
잠자리에 들어서 상미누나 이불과 슬기누나 이불을 붙이고 그 가운데 눕게 되었다. 양쪽 누나들이 모두 자기 이불을 덮어줘 내 위로는 두 개의 이불이 덮였다. 밑의 자리는 충분히 넓었지만 위의 이불이 겹치면서 그만큼 가깝게 붙었다. 내 인생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두 명의 누나의 품에서 쫓겨나자마자 또 다른 누나들 사이에 끼였다.
‘이게...축복일까..저주일까..’
“왜 안자? 잠이 안와?”
“네...누나...나 밉죠..”
“응..못됐어..미워 죽겠어..”
슬기누나와 이야기 하고 있는 사이 상미누나 손이 슬금슬금 기어온다. 그러지 않아도 높게 쌓인 이불이 더 높아졌다. 상미누나 손 때문에 들썩거렸다. 슬기누나의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게...그렇게 좋아?”
“......오늘은...어쩐지 외로워서...미안...”
“나 때문에 외로운 거니?”
“.................”
“그 언니...함께 할 때 질투 나지 않았어?”
“.....보라 언니보다는...너에게 더 질투나..”
“왜?”
“.....그냥 내 마음이 그래..”
슬기누나 손까지 더해져 내 가슴위에서 두 여자의 손이 합쳐졌다. 나 모르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듯 싶었다. 슬기누나가 상미누나의 손을 잡은 이유가 저지하기 위해서인지 화해의 의미인지 가늠해본다. 모르겠다.
“오늘...할거야?”
“........”
“오늘은 양보해 줘...나도 해보고 싶어졌어..사랑은 아냐...호기심이 생겼어..얼마나 좋으면 그러는지 알고 싶어..”
“...알았어..”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이 풀리고 상미 누나가 뒤로 물러났다. 슬기 누나의 손은 더 진행해 허리를 감고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겼다. 이야기를 들어 상황을 알고 있던 나는 그대로 끌려갔다. 어떻게 행동해도 두 여자 중 한명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슬기누나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의 문을 부수고 싶었다. 그녀 안에 나의 씨앗을 심고 싶었다.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키스는 하지 마..싫어..이제 널 사랑하지 않을 거야..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다시는 너에게 안기지 않을 거야..”
주문같이 긴 중얼거림 안에는 누나의 혼돈이 있다. 마음속 항아리는 그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똘똘이는 항아리 말을 무시하라고 한다. 갈등으로 멈춰 버린 나보다 혼돈의 그녀가 먼저 움직였다. 직선적으로 똘똘이를 꺼내고는 자기의 문으로 인도했다.
“넣어..아무것도 하지 말고..그냥 넣어..”
“...........”
“윽..읍....”
뻑뻑한 길이 갈라지고 막혔던 벽을 허물며 아주 천천히 전진했다. 슬기누나는 입술을 꽉 물고 내 어깨를 꼭 안으며 버텼다. 똘똘이가 전부 들어갔을 때 누나의 몸은 순간적인 화력으로 뜨거웠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솟아났다.
“들어왔어?”
“네..”
“전부?”
“네...”
“이제...난...처녀가 아닌 거지?”
“네...”
“좋아...그럼 이제 상미처럼 만들어줘..”
“...........”
슬기누나는 슬기누나일 뿐이다. 슬기누나가 상미누나가 될 수는 없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상징이고, 그 원개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똘똘이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속살이 파괴의 아픔을 호소하며 작게 움직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감지하지 못했던 그 맥박은 아마도 처녀만의 느낌일 것이다. 오늘 이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그 감각에 빠져들었다.
“슬기를 느끼게 만들어 줘...”
“그건..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알아..그래도 최선을 다해줘..”
어느새 상미누나가 옆으로 다가와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 슬기누나가 말한 ‘상미처럼’은 상미누나처럼 오르가즘을 느끼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상미누나가 가르쳐준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처녀가 그렇게 되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다.
“.............”
“아...”
조금 움직이면 아파하는 여자를 무슨 수로 오르가즘을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더욱이 키스도 가슴도 못 만지게 하는데.
“..오늘만이야...오늘만...”
“음...”
오늘만을 강조할 때마다 누나의 안이 조였다. 그리고 너무 좁고 뻑뻑했다. 누나는 아프겠지만 우선 길부터 닦아놔야 갰다고 판단했다. 아파서 힘겨워하는 누나의 몸짓을 무시하고 허리를 흔들었다.
“읍..윽...윽...”
쌀거 같은 순간이 오면 멈추고 진정되면 움직였다. 안에서 쏟아져 나온 피로 허벅지가 축축하다가 그것마저도 굳어서 딱딱해졌다. 그때까지도 싸지도 못하고 누나도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한 가지 성과는 길은 넓어진 느낌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키스할게요..”
“그래..오늘만...”
“오늘이 마지막이니까..가슴 빨아도 되죠?”
“응....”
누나에게 마지막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든 그 순간은 움찔거림이 심해졌다. 그리고 뭐든지 허락한다. 나중에는 손으로 가슴과 클리토리스를 만지면서 귀를 침으로 범벅이 되게 만들면서 마지막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누나 입에서도 그놈의 마지막이란 말만 되뇌었다.
“아아...마지막..이야..마지막...”
“응..”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좋은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확실한 상승기류를 타지도 찾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한계에 다다랐다. 너무 참아서 아프고 짜증도 난다. 어느 순간 참는데 사용하던 근육이 풀리면서 다량의 미친소가 터져 나갔다.
“으음....뭔가..들어와..내 안으로...뜨거운 게 들어와...”
“으음....”
슬기 누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미친소를 느껴 보려고 한다. 그렇게 있는 동안 똘똘이는 줄어들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누나의 안이 규칙적으로 숨을 쉬면서 상처의 호소하는 것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니까..한 번 더 해도 되죠?”
“응....오늘만...”
누나 허리가 보조를 맞춘다. 어색하던 것들이 차차로 화합했다. 등을 안은 손이 정신없이 전신을 쓰다듬었고, 나 역시 그녀의 미끈한 육체를 마음에 담았다. 아래의 좁은 굴에서는 아까보다 많은 액이 나와 우리의 결합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으음...좋아지는 거 같아...이상해...아아..”
나에게는 희망의 소리였다.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달라붙었다. 누나의 허우적거리는 몸은 그녀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된 것을 알았다. 좋은 기분까지 느꼈지만 마지막 감각을 찾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거였다.
“으음....”
“윽.....”
역시나 누나에게 오르가즘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안고 서로를 안고 있다가 누나에게서 떨어져 똑바로 누웠다. 내가 누나를 기쁘게 해줄 수도 있다는 그릇된 자만을 버렸다.
“수고했어..”
“.......”
상미누나가 욕실에서 따듯한 물로 적셔진 수건을 갖고 와 내 몸을 닦아 줬다. 슬기 누나는 멍한 표정으로 천장만 올려다봤다. 그리고 눈가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이불에 묻은 피와 함께 항아리의 울림이 들렸다. 똘똘이는 기가 죽어 잔뜩 오그라들었다.
“후회해?”
“....아니....”
“그럼 괜찮아...”
“아무생각 안 드는데...이상하게 눈물이 나네..아플 때도 눈물은 안 났는데..”
“상실감 때문이야..”
“그런가?”
상미누나가 내 손에 수건을 쥐어 주며 눈치를 줬다. 슬기누나에게 다가가 땀과 애액과 미친소와 피로 얼룩진 그녀를 닦았다. 누나의 눈이 나를 향한다.
“한번...더 할까?”
“오늘만?”
“오늘만..”
누나 다리 사이로 들어가 나로 인해 다친 상처를 핥았다. 누나는 손으로 나를 밀쳐내며 도망가려고 했다. 그 다리를 억세게 잡고 아랫입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그래도 부끄러운데...”
다리를 치켜들고 항문을 빨 때도 그랬고 발가락을 핥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겨드랑이에 파고 들 때는 몸만 피하려고 하다가 가슴과 입술을 덮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받아 들였다. 그리고 다시 기운 차린 똘똘이가 들어가지 아주 긴 숨을 내뱉었다.
“으음......”
반으로 갈라지며 똘똘이를 받아들이는 누나의 아래는 보아뱀이 코끼리를 먹는 것처럼 보였다. 또 붉게 달아오른 몽둥이에 뚫려 피를 흘리는 모습과도 흡사했고, 엄마의 엉덩이처럼 흥부가 아내와 박을 타는 것도 연상시켰다.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누나에게 설명했다.
“으음...정말?”
“봐요..”
“아음....뭐가 나와?”
“음..자개장..”
“아아..자개장...”
조금 남아있던 불협화음이 사라지고 누나와 나는 합심해서 박을 탄다. 어떤 때는 금이 나오고 은도 나왔다. 가구도 나오고 아이도 나왔다.
“아이...나의 아이..우리 아이..아아..”
“누나 닮은 딸 일거야..”
“으응...아들..아들을 원해..너 닮아...못된 녀석이 나올 거야...엄마 속 썩이는 나쁜 녀석...”
누나는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도 생겼다. 누나도 그것을 느낀 듯 조급해지고 박자가 빨라졌다. 이탈하려고 했다.
“으음...이상해..금방인데..바로 금방인데..”
“나 닮은 나쁜 녀석이라 그래요..”
“아아..진짜...”
누나는 나를 미워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고 있었다. 나의 상징을 받아들이고도 빨간 혀를 내밀어 목이며 가슴을 핥았다. 나도 그녀의 냄새를 먹었다. 내 냄새를 묻혔다. 가능한 깊이 묻혔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더라도 평생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아아앙....나쁜 놈..너...싫어..미워..아아..나..너..”
“헉..헉...”
“야아...나쁜 놈아...”
“윽....”
“......사랑해...”
빨려 들어갔다. 누나 안에서 빨아 들였다. 한참을 빨아들인 상태에서 멈췄다. 그 상태로 서로의 몸에 조금이라도 밀착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환청 같은 속삭임이 들렸다. 누나의 몸과 사지가 보아 뱀처럼 칭칭 감긴 상태에서 경련하면서 조였다. 그것은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나가 오르가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흐흑흑흑.....흑......”
아까는 소리 없이 울었다. 지금은 목젖이 떨리면서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면서 운다. 나는 그녀를 안은 상태에서 귀에 속삭여 물었다.
“오늘만이야?”
“.....................”
대답을 듣지 못했다. 흠뻑 젖은 머리를 정리해 주고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핥아 먹다가 떨어지려는 순간 들렸다.
“....몰라....."
다시 묻고 싶었다. 그것이 대답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슬기누나는 이미 잠들었다.
“굉장했어..”
“...............”
“보라언니랑 할 때도 그렇더니...나랑 할 때도 그렇게 보일까?”
“그렇겠죠..”
“복도 많아..이제는 아예 두 명씩 끼고 사는 구나?”
“음...”
상미누나는 이미 알몸이었다. 예쁘게 다듬어진 음모 아래로 음란한 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저런 상태로 아무 소리 내지 않고 기다렸다. 그 모습에 갈증을 느끼고 아래에 묻혔다.
“으음...그냥..하지..”
“좀만...”
“왜? 안서?”
“그것보다..맛있어요..이거..”
“변태..”
“섭섭했죠?”
“슬기? 보라언니?”
“둘 다..”
“응...그런 마음이 드네..할 수 없지..뭐...어차피 난 떠날 거니까..”
“....꼭...가야 해요?”
“안 갔으면 좋겠어?”
“네...”
“..............이제 해 줘...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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