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을 나오면서 담배 하나를 물고 깊이 빨았다. 카드 한도를 3000만원까지 키웠던 것은 그것이 마치 나의 신용도를 나타내 주는 것 같아 뿌듯했기 때문이었다. 카드내역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대부분 여자가 있는 술집에서 사용한 것이다.
금방 수중에 돈이 들어오리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재판이 진행돼야 하고 그 유재석이라는 애가 겁을 먹고 정보를 넘기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더딜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민사도 아니고 불륜에 의한 형사사건인데다 검사가 찾아 올 정도로 애가 닳아 있었다. 더욱이 증거까지 만들어 건네줬다.
그런 건 다 좋다. 그 돈 아니더라도 3000만 원 정도는 있었다. 문제는 아내가 이혼소송을 내면서 재산분활신청과 그를 위한 가처분 명령에 있었다. 부동산의 처분과 대출이 차단되고 나와 아내 명의로 된 모든 통장에서 거래가 정지됐다. 신용불량이 되게 생겼다. 그래서 부랴부랴 은행을 찾은 것이다.
28%의 이자를 감수하고 36개월 할부로 돌려놓고 나오는 참이었다. 담배가 어찌나 쓴지 속이 울렁거린다. 매달 원금 80만원과 이자 6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거기다 아파트 관리비와 공과금도 혼자 해결해야 했고, 식사도 알아서 챙겨먹어야 한다. 아내는 짐싸들도 친정으로 가버렸다.
“휴....”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형사와는 별도로 아내가 낸 이혼소송. 즉 민사가 진행되었다. 법원에 왔다 갔다 하게 되면서 회사에도 알려졌다. 카드사에서는 독촉전화가 오고 이혼문제로 법원을 드나드는 남자. 등 뒤에서 들리는 수군거림과 시선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아내가 바람났다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두 내가 못난 때문이라 내 얼굴에 침 뱉기였다.
“아줌마 여기 김밥 한줄 주세요..”
“네..”
오늘은 은행에 가려고 혼자 나왔다. 그러나 은행이 아니더라도 같이 점심을 할 사람도 없었다. 내가 피하는 것도 있고, 상대방도 불편해 한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매일 투덜거리는 나를 사람들이 피했다.
‘잘못 생각했던 걸까?’
집에 돌아왔을 때는 완전히 지쳤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냈지만 몸이 천근 무게로 눌렀다.
“응?”
미묘하게 온기가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안방을 열어 봤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거라 변화가 있는 건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이 아내가 나가던 그날 같기도 했다.
“뭐지? 다녀갔나?”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고 몰래카메라의 녹화 장면을 검색했다. 커다랗게 나오는 시계가 오후 5시를 넘길 때 문이 열리면서 아내가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아내는 그래도 내 걱정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나 알아보기 위해 왔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10여분이 지난 후. 다시 한 남자가 들어오는 영상을 보고는 희망이 산산 조각났다. 그 애였다. 둘은 마치 10여년 헤어졌던 연인이 만난 것처럼 문 앞에서부터 얼싸 안고는 온몸으로 애정을 표현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흔적으로 옷가지 들이 하나 둘 떨어졌다.
“아아...오랜만이야..보고 싶었어..”
“저도요..”
아내의 엉덩이가 카메라에 직통으로 보였다. 이어서 그 애가 머리로 엉덩이를 가렸다. 보이지 않아도 뻔했다. 내 아내의 보지와 항문을 파먹고 있는 것이다.
“어서...먼저 한번 해 줘..”
“음...아..너무 조여...부러지겠어요..”
“으응..나 때문에 부러지면...평생 책임질게..걱정하지 마..”
“으음...”
어린놈이 잘도 쑤셨다. 문득 처음 만났을 때 금방 싸버렸다는 아내 말이 떠올랐다. 그 때는 처제 때문에 흥분하기도 했고 실망하기도 해서 아내의 화면을 확인하지 않고 지웠다. 아내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가 그를 이렇게 가르친 것이 된다. 이정도 가르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만나서 그 짓을 했을까?
“씨발년..걸래같은 년...”
그 사이 남자애가 뒤로 돌아가고 엉덩이를 쓰다듬으면서 개치기를 시작했다. 아내는 아주 좋아 죽는다. 남자애의 손 움직임이 이상했다. 잘못 본건지 손가락 숫자가 적었다. 화면을 키워 보니 검지와 중지가 항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누나...화장실 안가도 돼요?”
“으응...관장 했어..”
“아응...또..아아..미칠 것 같아...너무 좋아..”
“헉..헉...”
“아아...”
“이제 여기 넣어도..될 거 같은데요?”
“으응...살살해...저번처럼 찢어 먹지 말고..”
“히히..”
“으윽...음...꽉 차...뿌듯해...”
지난번 영상에서도 이런 장면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때는 단지 뒤에서 삽입한 줄로 생각했다. 거실과 안방은 카메라 거리가 달라 더 자세히 잡혔고 음성까지 들렸다. 오늘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어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 때도 지금도 항문성교를 하는 것이었다.
“아...여기..너무 조여..아파요..”
“호호. 남의 처녀를 범했으면 당연한 거 아냐?”
“으음...”
“백에...오일 있어...”
“아..”
침대 한쪽에 놓인 커다란 가방에서 화장품 통을 꺼내 엉덩이에 걸쭉하게 입히자 화면으로도 반짝거렸다. 기름의 유연성이 더해지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남자애는 병을 거꾸로 잡고 아내의 보지에다 넣는다.
“아앗..아아..꽉 차..버거워..죽을 거 같아...”
“윽..음...좋아요? 뿅 가요?”
“응..뽕 가..나 뿅 가겠어..아앙...”
“저도..안에 싸여?”
“아앗...아니...먹을래..”
“그럼..”
자기 항문에 있던 물건을 잡고는 그대로 입에 넣고 빨아 먹는다. 남자애는 양손으로 아내의 머리를 움켜잡고 흔들었다. 커다란 성기가 목구멍까지 숙숙 들어가며 주머니가 아내의 얼굴을 때렸다. 그렇게 한참을 흔들던 성기를 빼내고는 손으로 흔들었다.
“아아..싸요..”
“응..”
물총처럼 나가는 하얀 덩어리가 아내의 얼굴에 맞고 흘러내렸다. 눈두덩 이와 입술 주변에도 붙었고, 이어서 가슴 위로도 떨어졌다. 그 후 재빨리 다시 성기를 물고는 정말 맛있는 하드를 먹는 것처럼 빨고 핥았다. 저런 행동은 창녀에게서도 본적이 없었다.
“좋았어요..”
“아잉..나도...”
성기를 반질반질 해질 때까지 빨던 아내는 얼굴에 묻은 정액까지 손바닥으로 훔쳐 핥아 먹었다. 걸신들린 여자라도 저렇게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7시가 다 될 때까지 그렇게 몸을 불태우고 핥고 빨고 지랄 발광을 하다가 아내가 부엌에서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남자애가 샤워를 하는 동안 아내는 침대와 뒷정리를 하고 그대로 옷을 챙겨 입는다. 아내의 안에 몇 번이나 사정하는 것을 봤는데 씻지도 않는다.
씨익~
아내의 웃음. 그녀의 눈이 정확하게 카메라를 응시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 후 아내는 옷을 입고 기다리는 남자애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나간다. 현관이 닿치기 전 아내의 시선이 한번 스치듯 지나갔다. 화면을 키워 보자 역시나 카메라를 보고 갔다.
‘혹시....’
저번 영상과 이번 영상을 몇 번을 다시 보면서 확인했다. 아내가 카메라를 보는 듯 한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집안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를 그녀는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아주 짧은 시선이었지만 정확하게 응시했다. 쳐다보는 것이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든 그곳에 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사실상 1심에서 패했다. 원고 측 증거에 대해 피고가 내 놓은 증거 역시 영상물이었다. 정준하가 준 영상에는 정준하 아내와 유재석. 그리고 다른 여자 3명만 있었다. 그러나 아내측이 제시한 증거에는 정준하 역시 있었다. 그들은 함께 거실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와 유재석이 안방으로 들어가고 다른 여자와 정준하가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즉 부부교환 영상이었다. 그건 서로 합의에 의한 것이고 간통은 아니었다.
두 번째 영상은 정준하가 모니터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카메라를 사용한 듯, 선명도에서 차이가 났다. 모니터에 나오는 영상까지 식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 영상은 정준하가 우리에게 증거로 제시했던 그것이었다. 즉, 남편이 작은 방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관계를 가졌다는 상황도 성립했다.
“이게...어떻게 된 일이죠?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요?”
“.....처음에 스와핑으로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저를 속이고 따로 만났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걸...증명할 수 있어요?”
“..............”
‘병신새끼..’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야기 해줬다면 거짓 증거라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준하가 제시한 증거가 너무 확실한 것이라 따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이번 일도 이 자식 때문에 망쳤다. 돈이. 내 인생의 꿈이 훨훨 날아갔다.
“다시..연락드리죠...”
“.......꼭..부탁드립니다..확실한 증거...찾아 볼 테니까..”
“알았어요..”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었다. ‘멍충이’ 정준하에게 매달리느니 새로운 계획을 짜 보는 것이 이롭다. 귀찮게 구는 그를 달래서 보내고 생각을 정리했다.
‘유재석을 바로 치는 것은 안 되겠고...’
건드릴 건더기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내가 한번. 또 수경이 한번 건드렸다. 이제는 진짜로 범죄를 저질러 잡아넣으려고 해도 의혹이 제기될 판이다.
‘누나가 둘 있다고...’
한명은 26살. 다른 한명은 19살. 사진으로는 둘 다 미인이다. 얼마 안 있으면 해가 바뀌고 그러면 27살. 20살이 된다. 27살 첫째는 결혼 적령기에 현재 사귀는 애인도 없었고, 20살 둘째는 성인이 된다. 둘 다 목표로 삼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매형이 되면 지가 혼자 먹을 수 있겠어?’
띠디디...띠디디..
“네..박명수 검사입니다.”
“나에요. 점심 같이 할까요?”
“으응...어쩌지? 약속이 있는데...”
“그래요? 할 수 없죠..알았어요. 다음에 봐요..”
점점 밝히는 수경에게 질려가던 참이었다. 일도 틀어졌고, 새로운 계획을 위해서는 여기서 정리를 해야 했다.
--------------
12월이다. 시험도 끝났고 고등학교 배정과 졸업장만 받으면 끝이다. 민중고는 나대신 다른 애가 시험을 보러 갔는데 결과는 듣지 못했다.
“으응...싫어...”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나 놀리는 거지?”
오피스텔 안에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계단도 있다. 또 누나 집도 내 방도 가까웠다. 그런데도 계단 한쪽에서 슬기 누나 팬티를 벗겨 내고 한쪽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앉아 홍건하게 젖은 아랫입을 핥았다.
“누가요?”
“너..누가요 하고 묻는 사악한 악마...변태...색마...”
변태라는 말까지는 가끔 듣는 소리였지만 악마에 색마는 너무했다. 점점 발달하기 시작하는 클리토리스를 입술로 물고 최대한 강하게 물었다. 입술도 클리토리스도 이기지 못하고 서로 비벼졌다.
“으윽....너무..강해...너의 집으로 가..응?”
“오늘이 마지막인데..그냥 해요...”
“아아...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응...”
마지막 오늘을 두 달째 맞고 있었다. 이제는 참고 그냥 하기로 정했는지 소리를 참으려고 한다. 올려다보니 손가락을 이빨로 물고 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핥아 먹으면서 손가락을 넣어 쑤셨다. 그동안 많이 해서 굳은살이라도 생긴 듯 손가락을 두 개나 받고도 아파하지 않는다.
“으읍...읍...살...음..살...”
얼마 만지지도 않아 슬기누나는 가볍게 떨면서 무너졌다. 거칠어진 숨을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치마를 올리고 뒤에서 넣으려는데 똘똘이를 꽉 움켜잡더니 치맛자락을 다리 사이에 모아 끼고는 쪼그려 앉았다. 이어서 똘똘이를 핥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에 색기가 어렸다. 입술은 심술 맞게 삐죽거린다. ‘너도 당해봐’ 라고 텔레파시가 들렸다.
“음....”
“쭙...쭙...”
슬기누나는 가르치는 맛이 있었다. 첫날 오르가즘을 느꼈던 걸로 봐도 성감이 풍부했는데 또 수줍음은 많았고 처음부터 섹스는 더러운 거라는 인식이 있어서 뭐든지 거부감 없이 했다. 또 내가 항문을 빨면 자기도 반드시 했고, 발가락을 핥으면 또 따라했다. 어울리지 않는 그런 성향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새롭고 예쁘다.
“앗...너무 쌔요..”
“쭙..쭙...”
덜컹~
“이것들이...술 사오라고 보냈더니..이럴 줄 알았어...”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서 상미누나가 들어왔다.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용하게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는 1층 편의점 가는 길이었다. 저녁을 먹고 예전처럼 콜라에 양주를 타 먹을 작정이었다.
“술은?”
“....아직.....”
“그게 그렇게 좋니?”
“좋긴...뭐가....재석이가 하도 달려드니까..어쩔 수 없이 받아 줄 뿐이지...”
“그러니까..내가 간다고 했잖아..”
“야! 네가 가면 오늘 들어오지도 않을걸?”
“흐흠...그럼...다 같이 갈까요?”
“잠깐...하던 건 마저 하고...”
예전의 슬기누나가 아니었다. 상미누나가 있거나 말거나 똘똘이를 먹었다. 한번은 싸야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상미누나는 계단에 앉아 기다리다가 심심하다며 조심스럽게 오더니 슬기누나가 어루만지고 있는 주머니를 핥았다. 계단의 벽에 기대서 두 명의 아가씨가 해 주는 서비스를 받았다.
“으음....누나..”
“응...”
“아...”
“읍....”
누가 가르쳤는지 몰라도 잘 가르쳤다. 동작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었다. 우선 똘똘이를 깊이 받아 잘 흔들어 주면서도 나오는 미친소를 바로 먹어치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음미하면서 천천히 넘기고 이어서 나오는 잔여 미친소를 깨끗이 치웠다.
“맛있니?”
“아니.”
“진짜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먹으라던데?”
“누가?”
“얘가...”
배우기는 잘 배우는데. 입이 너무 가볍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상미누나의 시선을 피해 바지를 추스르고 내려갔다.
“변태...”
“알고 있습니다...”
“호호.”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상미누나와 슬기누나를 한 번씩 안고 잠드는 누나들 깨지 않게 조용히 나와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어제 사 두었던 참살 떡과 휴지. 포크가 함께 포장된 봉투를 들고 작은누나가 시험 보는 고사장으로 갔다.
“선배님들..시험 잘 보세요. 파이팅!!”
후배들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경찰들. 장사꾼들로 교문 앞이 북적거렸다. 어떤 어머니는 큰 엿을 교문에 붙이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그저 안타까운 얼굴로 안으로 들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분도 있다.
“연주누나...”
“어..............”
“이거...시험 잘 봐...”
“...............”
아직도 누나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나를 보고 기분 상하고 그 때문에 시험을 망칠까봐 불안했다. 그렇지만 시험 잘 보라고 전화만 하기는 싫었다. 이 세상에 두 명 있는 내 누이. 부디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하고 싶다.
“그럼..갈게...나..신경 쓰지 말고...편하게 시험 봐..”
“.......재석아...”
“응?”
“커피...한잔 마시고 가...”
“응...”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교문 앞에서 파는 커피를 들고 구석으로 갔다. 매년 입시 날이 가장 춥다고 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추웠다. 잠바 안에는 상미누나가 사준 주머니 난로가 있었는데 나보다는 누나에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 누나 손에 쥐어 줬다.
“와줘서..고마워...생각도 못했어..”
“...누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미안해...”
“....나도 심했어...미안...”
누나가 나를 용서해 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딱딱하게 얼었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피어났다. 누나 역시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웃었다. 친구나 애인은 크게 싸우면 해어질 수도 있지만 가족만은 절대로 해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 그 때문에 연주누나에게 상처를 줬지만 이렇게 찾아올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오길 잘했다.
“후...너를 보니까..더 떨린다..아까만 해도 하나도 안 떨렸는데...”
“음...어떡해..”
“뭘 어떡해..망치면 너 때문이니까..책임지면 돼지..”
순간 누나 얼굴이 불어졌다. 뭔가 다른 것이 생각난 얼굴이었다. 차가운 공기에 오래 시달린 얼굴 피부가 딱딱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따듯하다. 조금이라도 따듯해지기를 바란 행동이었는데 내 손이 더 차가울까봐 걱정이었다.
“.......걱정 마..잘 볼 거야..”
“응...걱정 안 해..”
“들어가 봐야지?”
“응...”
교문 앞이 한산해지고 있다. 어머니들도 하나둘 발걸음을 돌렸다. 멀리서 뛰어오는 애들에게 길을 피해 주면서 박수를 쳐 준다. 응원의 소리도 들렸다. 시간이 다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들어가서 옆에서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냥 가?”
“응?”
“뭐...행운의 키스 같은 건 없어?”
“...그럼..행운을 빌어..”
“........”
그래도 후배들이나 떠나지 못한 어머니들. 장사치들이 제법 있는 부산한 교문 앞이다. 동생으로서 할 짓은 아니지만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과 함께 누나가 원한다면 이라는 변명을 했다. 또 우리 사이에 키스는 인사나 다름없었다. 가볍게 대기만 하려고 했는데 누나 팔이 목을 감는다. 나에게서 배운. 나만큼 잘하는 혀가 거침없이 들어왔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그 혀를 빨았다.
“전화할게..”
“응.”
한 마리 나비처럼 날아갔다. 누나가 완전히 사라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새벽까지 다른 누나들을 괴롭혔는데도 불구하고 탐욕의 불길이 일어났다. 내 누의의 따듯한 가슴과 마음을 훔치고 싶었다. 나쁜 남자. 사악한 동생이 되고 싶었다.
딩동~
[1교시 잘 봤다. 난로 따듯하네. 고마워.]
딩동~
[어떻게..2교시 망친 거 같아..훌쩍..훌쩍..]
딩동~
[점심 먹어. 넌 뭐해? 밥은 먹었어?]
딩동~
[나 천재면 어떡하지? 만점 맞은 거 같아. 아는 문제만 나오더라..히히..브이]
딩동~
[나 지금 끝났어. 홀가분하다. 넌 어디?]
“누나~ 여기야~”
“어? 지금까지 기다렸어?”
“아니. 서점에 가서 구경하다가 좀 전에 왔어..”
“으응...춥지? 어서 가자..”
집으로 가다가 누나 메시지를 받고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 왔다. 메시지와 함께 ‘예감’도 받았다. 누나에게 돌아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예감대로 누나는 나를 보자마다 기쁘게 웃으며 다정히 팔짱을 꼈다.
“뭐할까?”
“어? 피곤하지 않아? 집에 가서 좀 쉬어..”
“싫어..오늘부터 자유인데...우리 영화 보러 가자..”
“그래 그럼..큰누나에게는 전화 했어?”
“으응...해야지..”
조금 떨어져서 통화를 하던 누나가 전화를 끊고 나에게 왔다. 나도 매일 통화하기는 하지만 바꿔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밀었던 손이 무안했다.
“온데..지금..”
“어디로?”
“근처까지 왔다네..”
오던 길을 돌아서 고사장 앞까지 갔다. 얼마 안 있어 현주누나 차가 와서 멈추고는 오라고 손짓을 한다.
“재석이도 있었네? 그런 말 없더니...”
“으응...얘도 금방 왔어..”
“그래? 나 기다리길 잘했지? 호호. 그러니까 언니 말 잘 들어..고집부리지 말고..”
“...응....”
현주누나는 우리를 태우고 63빌딩으로 갔다. 웃기는 것은 들어간 식당은 지하였다. 63빌딩까지 왔으면 스카이라운지로 갈 줄 알았다.
“참..언니 연애한다.”
“진짜?”
“어머! 아냐..그런 거..”
“뭐가 아냐? 꽃다발도 보내고 매일 전화오던데..”
“그냥...야! 나 좋다는 남자가 한둘이니?”
가슴이 꽉 막혔다. 누나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길 바랐던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걸 알았다. 필사적으로 표정을 감춰 보려 해도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누나가 만나는 사람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나까지도 만족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언니에게 축하 안 해줘?”
“.....으응...축하해...”
“...아니라니까..”
“호호. 검사래..”
“검사?”
“응. 언니. 그 남자 놓치지 말고 꼭 시집가. 알았지?”
“....밥이나 먹어..”
요즘 검사들에게 시달려봐서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외형적인 비교는 중3. 이제 고1이 되는 나 같은 애송이 월등했다. 누나를 포기하는 마음보다는 질투와 시기로 가득해서 1인분에 6만원이라는 음식이 맛이 없어졌다.
“이제 연주도 대학에 갔고..다시 모여 살았으면 하는데..너희들 생각은 어때?”
“도둑 못 잡았는데 괜찮겠어?”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수는 없잖아..열쇠도 튼튼한 걸로 바꾸고..우선 도배랑 장판부터 하고..가구들이나 가전제품들 같이 알아보자..”
“난 좋아..재석이 너도 찬성이지?”
“으응...나야 뭐..”
“그럼 그렇게 알고 주말에 집에서 만나는 거다?”
“응...”
보일러와 전등들까지 없는 집에 다시 살림을 채우는 것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보일러 60만원. 도배. 장판 400만원. 전등 40만원. 싱크대가 600만원.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기타 등등의 가전제품 1000만원. 침대와 옷장. 서랍장. 책상. 책장. 등의 가구들이 또 1000만원. 그릇. 커튼. 인테리어 소품들이 또 수백만 원이다.
현주누나와 연주누나는 틈만 나면 싸웠다. 이유도 가지각색이면서 유치했다. 커튼 색 하나. 텔레비전 크기. 싱크데 위치. 나 없는 동안 둘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누나들 다툼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어떤 때는 서로 즐기는 분위기. 싸움을 즐긴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화기애애한 것도 같았다.
“경비는 내가 낸다니까..”
“왜 네가 내는데?”
“그거야 언니는 얼마 살지도 않고 시집갈 테니까..언니는 언니 혼수나 준비해..”
“누가 시집간다고 그래? 넌 나 시집 못 보내서 안날이 났구나?”
“당연하지. 언니 나이가 몇인데..”
“그래서 다 네 마음대로 결정하려는 거니?”
“어차피 내가 쓸 거니까..당연한 거 아냐?”
싸움을 즐긴다는 것도 착각이다. 대립적으로 치달릴 때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토요일. 일요일 합쳐서 도배지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그게 우리의 실상이었다.
“여긴 너의 집도 되지만 내 집이기도 해.”
“흥. 누가 뭐래?”
“그러지 말고..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응?”
“좋아..”
사람이 배가 고프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배가 부르면 반대로 긴장이 이완되는 법이다. 또 고기를 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누나들을 데리고 근처에 새로 생긴 고기 집으로 갔다. 소주도 시켰다. 확실히 입에 음식이 들어가니 조용해졌다.
“그럼 이렇게 하자. 각자 방은 자기가 원하는 데로 하고. 경비도 자기가 해결하고. 거실과 욕실. 주방은...사다리 타자..”
“사다리?”
“응. 걸리는 사람이 경비를 제공할 의무와 자기 취향대로 꾸밀 권리를 갖는 거야..어때?”
“좋아..”
띠리디디띠리. 띠리디디 띠디.
“주방은 현주누나. 거실은 연주누나. 욕실은 나. 더 이상 불만 없지?”
“응...”
“휴...”
이제 싸울 일이 없겠다 생각하고 다음 주에 만났을 때 새로운 시비가 생겼다. 그녀들은 샘처럼 끊임없이 사건을 만들었다. 현주누나는 클래식하고 엔틱한 디자인을 선호하는데 연주누나는 심플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을 좋아했다. 각자의 방을 꾸미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현주누나가 내 책상을 사 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럼. 난 책장을 사줄게..”
“침대는 이걸로 해..누나가 사줄게..”
“어머~ 촌스러워. 이게 좋아. 이걸로 해..”
“뭐야? 어디가 촌스럽다는 거야? 너야 말로..그게 뭐니?”
아주 예쁜 여배우들의 눈. 코. 입. 귀를 따로 모아 합성하면 뜻밖에 추녀가 나오곤 하는데. 그 이유는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누나 둘이 만들어 놓은 내 방이 딱 그랬다. 점점 누나들과 같이 사는 것이 자신이 없어졌다.
-----------
재판이 끝난 것은 아닌데 담당 검사도 박명수 검사도 패배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내가 제시한 증거는 내가 봐도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카메라를 찾아냈다. 바로 내 책상 바로 뒤에 설치되 있었다. 무선이면서 현존하는 최고 화질의 신제품이다. 수신기는 아내의 방에서 찾았다.
‘알고 있었구나...’
이미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더 분명해졌을 뿐이다. 습관처럼 아내가 남겨놓은 영상을 재생했다. 처음 봤을 때는 화가 났고, 다시 보면서 자극을 줬던 그것은 지금 보니 메시지였다. 그리고 경고였다.
‘그런데..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12개나 설치하느라고 아내처럼 최고의 제품을 사용할 수 없어 화질이 떨어졌다. 주의하고 보지 않으면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또 이걸 볼 때마다 이성적이지 못했다. 아내의 불륜을 보면서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걸 변명이라고..’
이제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다. 간통으로 처벌하는 것도 어렵게 됐다. 돈도 날아갔다. 빛 때문에 소주 한잔 할 여유도 없었다. 빛이라도 청산하고 빨리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이혼만이 길이었다. 아내는 빛도 없고 월급도 많아 재산이 묶였다고 해도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 급한 것은 자신뿐이었다.
띠~
“..........”
“나야..”
핸드폰에 저장된 1번 단추에 따라 아내가 받는다. 아내의 핸드폰에는 내 이름이 나오면서 내가 걸었다는 것을 알려줬을 것이다. 수화기 건너의 아내는 말이 없었다.
“만났으면 하는데..”
“왜요?”
“이혼 문제로..할 이야기가 있어..”
“변호사랑 상의하세요..”
“그러지 말고..그래도 우리..부부였잖아..잠깐만 만나..”
“...좋아요...그럼...CC에서 봐요..”
“응..지금 바로 출발할게..”
왜 사람은 놓친 다음에야 그것의 가치를 알게 될까? 아니면 단지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일 뿐일까? 처녀 적 아내를 보는 것 같았다. 아름답고, 당당했다. 20대의 싱그러움 대신 완전히 익은 과일 향이 난다. 그녀를 안는 것보다 남의 부인을 품는 것이 더 좋았던 때가 있었다. 마음대로 안을 수 있었을 때는 못 느꼈던 그녀의 매력이 보였다.
“오랜만이야...잘 지냈어?”
“할 말이 뭐에요?”
“차갑네...뭐 좋아. 그게 당신 매력이지..”
“...........”
“이혼해..줄게..”
“하고 있잖아요?”
“합의 이혼...하자는 말이야..”
“좋아요..그럼 내일 법원 앞에서 봐요..”
“그래...”
커피숍의 넓은 유리를 통해 걸어가는 아내가 보였다. 문 앞 가로수 앞에 그 애가 서 있었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애와 함께 온 것이다. 아내와 그 애도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한번 보고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
내 전화를 받았을 때 함께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라면 혼자 왔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아내에게 나는 그런 배려도 하기 싫을 정도의 남자인가. 아니면 내가 험한 짓을 할까봐 그랬던 걸까?
‘이유가 뭐든 이건 아니지..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이혼은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보다 쉽고 간단했다. 서류 작성해서 내고 법원에서 정해준 기일에 같이 참석에 묻는 말에 대답하고 확인서 받아 구청에 내면 끝이었다.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소장을 취하하고 아파트를 팔아 합의대로 반반씩 나눴다. 회사근처에 원룸하나 얻어 이사까지 마치고 나자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으음...”
한 칸 공간에 혼자 누워 뒤척거렸다.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났다. 겨울 날씨에 땀까지 흘리면서 추웠다. 무엇보다 허기가 졌다.
“으....”
안 움직이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편의점에 가서 1000원짜리 참치 죽과 담배. 소주 한 병을 들고 왔다. 참치 죽을 전자 렌지에 데워 뱃속을 채우고 물 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물처럼 넘어간다. 속에서 열기가 퍼져가면서 아픔이 줄었다. 이어서 담배에 불도 붙였다.
“후...”
나를 위해 뭐든지 하던 아내와 맞벌이로 생긴 여유.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것은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들 말로는 애 하나 키우는데 집 한 채 값이 든다고 해서 천천히 가질 생각이었다.
그런 여유들이 문제였다. 차라리 아이도 한 두어 명 낳고 아등바등 살았다면 정신없이 지냈을 텐데 여유가 있다 보니 삶이 싫증났던 것이다. 남은 술을 마저 따라 한 번에 마셨다. 빈속에 마신 술이 속을 깎아내리면서 울렁거렸다. 취기가 퍼지면서 머리가 울렸다.
“씨발년..지 서방은 아파 죽으려고 하는데..”
외우고 있는 동영상이 머리 안에서 재생된다. 보이지 않았던 아내의 표정이 상상과 더해지면서 선명하게 지나갔다. 희열에 들떠 다른 사내에게 안겨 몸부림치면서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린다.
와장창!
내 손에 잡히는 대로 문을 향해 던졌다. 빈 술병과 유리잔. 플라스틱 죽 그릇들이 차례로 날아가고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그러나 내 마음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는다.
“걸레 같은 년이 지금도 좆나게 십질하고 있겠지..”
항문까지 뚫려 침을 질질 흘리던 아내였다. 언제나 붙어 다니는 듯했던 그들이었다. 지금도 개처럼 붙어서 뜨거운 물이라도 끼얹지 않으면 떨어질 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잘리지는 않았지만 눈치가 간당간당 파리 목숨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혼문제와 곧 생길 거라 믿었던 돈 때문에 회사에 등한시 했고 신용을 많이 잃었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매달려야 하는데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또 지금은 몸도 아파 결근을 했다. 누구 하나 시중들어 주는 이는 없고 몸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만 당해야 해?”
“웃기고 있어..내가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냐..씨발년아..”
컴퓨터를 키고 공유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렸다.
‘제목은...H상사 신상품 계발과 김보라 과장과 S대 영문과 이상미의 영계사냥.’
“크크크...”
“음....”
머리가 빠개지는 것처럼 아파 일어났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었다. 시계는 7시를 가리켰다. 시계로도 알 수 없다. 만약 아침이라면 오늘은 출근을 해야 한다. 다행히 몸이 한결 가벼웠다.
“응?”
컴퓨터가 켜져 있고, 업로드가 완료 했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희미하게 기억이 났다. 현실감은 없었다. 컴퓨터를 통해 확인하자 ‘H상사 신상품 계발과 김보라 과장과 S대 영문과 이상미의 영계사냥.’라는 제목이 보였다.
“음...”
서둘러 삭제시켰다. 다운받은 사람 카운트가 200명 정도였다. 이정도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위하고 후회스러운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서둘러 출근을 했다.
며칠을 보내고 점점 안정을 찾아가면서 뭐 재밌는 거 없나 인터넷을 뒤져보는데 ‘H상사 신상품 계발과 김보라 과장과 S대 영문과 이상미의 영계사냥.’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수십 명이 올려놓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인천공항.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소음과 그 사연만큼이나 내 마음도 복잡했다.
한국을 떠난다. 상미는 원래 계획이었던 유학을 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애도 나도 도피였다. 동영상 때문이다. 그 동영상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내가 연출한 거나 마찬가지니 모를 리가 없다. 내가 몰랐던 것은 남자와 남자들의 세계였다. 남편이 그것을 유통시킬 거란 생각을 못했고, 또 그런 것들이 그렇게 쉽게 퍼져 나갈지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 행위를 한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고 이해하는 마음도 있다. 그의 행동이 나를 변화시켰다. 그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나의 행동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상미와 재석이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 스와핑을 권했던 것부터 모두 내 탓이었다.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행동의 대가는 가혹했다. 모든 사람이 그 동영상을 본 것도 아니고, 나를 알아보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그것을 일부러 구해서 보는지 전부 알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가족들. 친척들까지 알게 되었다. 상미와 나는 가문의 수치가 되었다. 그리고 고립되었다.
“티케팅부터 하자..”
직장생활 5년에 과장까지 올라갔다면 남자라도 이루기 어려운 고속승진이다. 그러니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직장생활을 하는, 했던 사람들은 알아줘야 한다. 최소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나의 노력을 인정해 줬어야 했다. 그러나 동영상이 돌아다니면서 상사에게 몸 바쳐 충성한 대가로 출세했다는 소리를 들으라는 듯이 떠들었다. 심지어는 은근슬쩍 몸을 만지려는 부하직원까지 생겼다. 그의 실례를 지적하면 능글맞게 웃으며 마치 영웅적인 행동이라도 한 것처럼 주위사람들에게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도망간다.
그렇게 일자리를 잃었다.
짐 가방 안에는 사업계획서가 들어 있다. 언젠가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모건 프리먼은 팀 로빈슨이 굴을 판 것은 탈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20년 투옥생활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 영화를 보고 사업계획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에게 직장이라는 감옥에서 탈출을 꿈꾸는 출구가 되었다.
‘나도 실제로 쓰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가족과 직장을 잃고 급격히 위축되었다.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나가기 무서웠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들이 손가락질 하는 환상에 시달렸다. 그 때 찾아온 사람이 재석이다. 처음에는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조금은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누구든 원망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원망해야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여기서 그를 계속 만나면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두꺼운 철문 하나를 두고 대치하듯 서 있었다. 그의 마음이 두꺼운 철문을 뚫고 들어온다. 그러니 그보다 얇은 내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당연했다. 애초에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었음에야 그를 어떻게 내칠 수 있을까..
또 다시 하루. 이틀...
현실을 잊기 위해 새롭게 생긴 도피처 품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따듯하고 아늑해서 구원받았다. 그런데 너무 구원받았다. 이성이 돌아와 버렸다. 나는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고 좋았다.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애는. 그 애의 인생은...
다시 원점이다. 그 애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나와 있어준다면 그것은 다시 나에게 불행이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내가 바로 서 있어야 그 애 앞에서도 당당한 여자가 된다. 그러니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은 강물처럼 흘러 어제 일로 이어졌다. 마지막 밤이었다.
“이거..”
“뭔데?”
“돈이에요..물가에 애들 내놓는 거 같아서..어디서 굶을까봐..”
“............”
[$10,000]×20
친절하게도 여행자 수표로 준비했다. 20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얼마쯤일까? 얘는 왜 우리에게 돈을 주는 걸까?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는 액수를 훨씬 초과했는데 어떻게 구했을까? 얘는 이 돈이 어디서 낳을까? 뇌 용량을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입은 하나. 가장 궁금한 것만을 겨우 물었다.
“왜?”
“..........”
“네가 뭔데 우리에게 돈을 줘?”
“...걱정이 되니까요..뭐라도..해주고 싶으니까요...”
“...............”
‘다음 질문이 필요할까? 아니 물을 여유가 있을까? 이렇게 가슴이 복받치는데, 입을 열면 울음이 나올 거 같은데..’
“....................”
점점 촉촉해지는 눈 가로 허연 그림자가 지나갔다. 상미였다. 상미가 재석이를 덥석 안았다. 처음으로 상미를 재석이와 다시 연결시켜 준 것을 후회했다. 떠나기로 결정한 것도 후회했다. 상미만 보낼걸 잘못했다. 마지막 밤 상미와 같이 만난 것도 후회했다. 상미보다 한발 늦게 움직인 것도 후회했다.
“어....”
재석이가 상미의 몸에 눌려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재석이의 하체를 잡았다. 평소에 가장 좋았던 부분은 하체의 중앙. 자칭 똘똘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똘똘이보다 얼굴을 보고 싶었다. 키스를 하고 싶었고, 눈동자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음...”
“쭙....”
그런데 한발 늦어 그곳에는 상미가 점령했다. 후발주자의 설움으로 똘똘이를 잡을 수밖에 없다. 똘똘이를 통해 마음을 나누는 것이 차선이었다. 상미의 품에 갇혀 바르작거리면서도 내 손에 허리를 들어 준다. 언제나 건강한 똘똘이가 중세시대 공성무기인 트레뷰셋 투석기처럼 벌떡 튕겨 나왔다.
“풋..”
그런데 끝에 달려있는 돌덩이는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다. 투석기를 쐈는데 돌이 날아가지 않고 있는 것을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망가진 투석기는 앞, 뒤로 크게 흔들렸다.
“음...”
손으로 잡으니 육중한 중량감이 가득했다. 눈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 감촉은 과거의, 아니 어제 받았던 기억을 불러왔다. 내 중심에서 전기가 짜릿하게 흐르고 그와 함께 안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액을 느꼈다.
더 자세히 보고 싶다. 어쩌면 오늘이, 지금이 마지막일지 몰랐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똘똘이는 딱딱했고, 뜨겁다. 손 안에서 제법 반항이 심했다. 그럴 때는 살살 달래야 한다. 그렇게 달래며 어루만지다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음....”
냄새.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는 냄새다. 언제나 표현할 방법을 찾아보지만 적당한 것이 없었다. 그저 음란한 냄새. 나를 음란하게 만드는 냄새였다. 방금 전보다 더 많은 액이 솟아났다.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처럼 똘똘이 머리, 날아가지 않는 돌덩어리를 매달고 있는 첨탑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나왔다. 혀를 넓게 펴서 그 물을 핥았다. 너무 적은 양이라 맛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밑으로 내려 트레뷰셋 공성기의 에너지원. 추를 주물렀다. 추가 2개다.
“쭙..음....”
“왜? 어머~ 언니. 치사하게...”
“그럼 바꿀까?”
“..............”
상미와 자리를 바꾸고 싶은 마음도 바꾸기 싫은 마음도 있다. 상미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래서 둘 다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전부를 갖고 싶은 것은 여자의, 인간의 본능. 어떻게 한 부분으로 선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처지가 그랬다.
“..........”
상미는 애써 시선을 돌려 재석을 내려다본다. 그 애의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재석의 얼굴을 가리는 것을 보고 나도 시선을 걷어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면 상처만 받는다.
“쫍..”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똘똘이 머리를 입에 품었다. 솔직히 가지고 놀기는 남편, 이제는 전 남편 것이 좋다. 크기가 적당했다. 똘똘이는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또 조금은 힘들었다.
‘나도 색녀 다 됐네..’
오랄은 어디까지나 서비스였다. 지금처럼 가랑이 사이가 간지러워지면 바로 밑의 구멍으로 품었는데 오늘은 혀에 닿는 똘똘이의 느낌이 좋았다. 뱉어내면 허전할거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몸은 더욱 달아올라 간지러움이 전신으로 번져갔다. 우선 손 하나를 보내 달래본다.
‘아...’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애액이 한 가득이다. 그만큼 체온이 빠져나가서 남자들처럼 몸이 떨렸다. 내 손이 치워진 자리에 타인의 손이 점령하는 것이 보였다. 두말할 것 없이 상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상미의 하체는 벌거숭이가 되고 큼지막한 엉덩이로 재석이를 깔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영역을 압박해오려 한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치사해..”
“흥!”
바로 똘똘이를 깔고 앉았다. 머리 안에서 칼집으로 돌아오는 칼과 그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만큼 딱 맞다. 완전한 일치감을 느끼기 무섭게 몸 안의 몸이 오그라들었다. 똘똘이가 더욱 커진 기분, 그 딱딱함이 생생하다.
“아...”
“음....”
상미는 나의 그곳과 똘똘이를 보고 있다. 그것도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상미의 시선이 오히려 반갑다. 상미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내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자기 멋대로 가슴을 풀어 젖히고는 살덩어리를 덥석 물어버린다.
‘이것이..’
또 시작이다. 나를 보내고 자기가 올라타려는 수작이었다. 이제는, 어쩌면, 전 남편보다 내 몸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미의 공격에 수직으로 감각이 상승했다.
씨익~
나의 반응에 사악한 미소를 보내는 상미, 익숙해져 버린 몸은 그런 상미의 손길과 입술을 거부하지 못했다. 대신 손을 뒤로 넘겨 똘똘이 밑에 부속으로 달린 덩어리와 또 그 밑의 생리적인 구멍을 자극한다. 내가 빨리 오르는 만큼 재석이를 자극해 동시에 도달하면 최소한 본전이다.
“으음....”
“아아...”
“아앗..”
상미는 나를 알고, 나는 재석이를 알고, 재석이는 상미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로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재석이를 공격하자 그는 바로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상미를 공격한다. 상미의 반응을 보건데 아마도 앞, 뒤 구멍이 동시에 후벼지고 있는 모양이다. 상미의 침이 내 가슴을 더럽혔다.
재석이와 둘이 있을 때는 애정의 행위다. 그때는 서로의 상태를 봐가며 같이 올라가던가 최소한 내가 먼저 느끼더라도 똘똘이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결국은 내 안에 다 쏟아내게 만들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세 명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애정이 아닌 승부가 된다. 재석이가 먼저 싸면 내 승리, 내가 먼저 싸버리면 상미 승리, 나와 상미 둘 다 느끼면 무승부라고 느끼지만 말로는 재석이 승리라고 해 주자.
“으음..천천히..”
머리가 하얗게 비어가며 패배를 떠올릴 때 상미의 허덕거림이 들렸다. 필사적으로 참기위해 온몸의 구멍을 전부 닿았다. 입술을 꽉 물고 콧구멍까지 닿았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이 들어가며 발가락이 자기 멋대로 오그라들었다. 그만큼 똘똘이가 커졌다. 연약한 안쪽 살들을 그 돌덩이로 마구 긁고 지나갔다.
“으윽...”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천천히 움직이고 싶은데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면 중력의 영향일수도 있다. 엉덩이를 들어올리기는 힘겨운데 똘똘이를 받아 들일 때는 자궁이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힘이 들어간다.
‘지금!’
똘똘이가 커진 듯 했다. 폭발 전의 상태에서는 항상 부풀어 오르는 똘똘이다. 재석의 허벅지를 눌러 탄력을 측정했다. 힘을 주고 있다. 참고 있는 것이다. 몸 안에서 점점 커지는 쾌락의 덩어리가 언제 터질지 몰라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다.
‘20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얼마지?’
1달러를 천원으로 계산하면 2억이다. 아버님. 재석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준 돈이 2억인가 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 아버님이라니..’
무의식적으로 재석이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나서 너무 부끄러워 피가 얼굴로 몰려와 데모하기 시작했다. 애써 따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현기증이 날 정도로 피가 몰리면서 폭발할 뻔 했다.
“으으응....”
“언니..아직 멀었어?”
“...........”
‘화대..’
남자가 여자랑 자고 주는 돈이 화대라고 들었다. 그러니 화대를 받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화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빠야 할까?
‘...............’
화대라고 해도 그 액수가 2억이 되고 보니 불쾌하지 않았다. 아닌 말로 누가 2억을 받을 수 있을까? 당대 최고의 연예인 쯤 되면 2억을 받을까?
숫자로 2억을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 1000억의 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2억이란 돈도 20만원의 가치일 수 있다. 100억 쯤 있는 남자라면 한번쯤 미친척하고 그런 짓을 해볼 수도 있다.
‘그럼 재석이는?’
아버님에게 받은 돈이 2억이라면, 지금 재석이 나이를 생각하면 전 재산이다. 그러니 재석이는 자신의 전 재산으로 나를 산 것이 된다. 이쯤 되니 화대라고 해도 기뻐진다. 순간 안에서부터 폭죽이 터지면서 척추를 타고 올라온 불꽃이 머리를 때렸다. 한 일만 볼트쯤 되는 전기에 감전된 감각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안 돼....”
누군가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천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느낌은 분명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재석이가 팔을 세워 고개를 받쳐 들고 옆자리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깨웠어요?”
“........지금 몇 시?.......”
“음...1시쯤?”
“그래?”
어제, 아니 몇 시간 전의 일이 기억나면서 벌떡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상미의 허연 나신이 보였다. 아직까지도 반들반들 땀에 절어있다. 그리고 반쯤 미소 지으면서 잠들어 있었다. 안 봐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뻔했다.
손을 뻗어 똘똘이를 잡았다. 느낌이 좀 가벼워진 듯 했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상미가 얼마나 빨아먹었는지 그 건강하던 똘똘이가 흐물흐물 다 죽었다.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잠이나 자지 왜 깨웠어?”
“화났어요?”
“...내가 왜 화를 내?”
“화난 거 같은데요?”
“어서 자. 피곤해 보인다..”
그리고 돌아누웠다. 눈치 없는 것이 흐물거리는 똘똘이를 엉덩이에 닿도록 바짝 달라붙는다. 그런 재석이를 어깨로 떨쳐내고 더 안쪽으로 갔다. 또다시 달라붙는다.
“왜?”
“그냥요..”
“갑갑해. 저리가..”
“갑갑하면 이거 벗어요..”
그러면서 반쯤 걸쳐져 있는 옷들을 벗기려고 한다. 안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벗겨서 뭐하는지 두고 보자는 심보로 반항하지도 협조하지도 않았다. 살며시 안기에 그것도 그대로 두었다.
‘따듯하기는 하네..’
생각보다 아늑해서 그냥 이렇게 잘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은은하게 나는 비누 냄새가 좋았다. 상미의 흠뻑 젖은 몸이 생각난다. 그래도 나에게 오기 전에 샤워라도 한 듯해서 조금은 기특해졌다.
‘잠이나 잘 것이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싫은 소리 안하고 그대로 잠들려고 했는데 그놈의 손이 자꾸 찝쩍거렸다. 그래도 한번 만족했던 터라 딱히 더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오랫동안 그를 느끼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자꾸 지분거리는 손이 얄밉다.
“왜? 어쩌라고....요..”
거칠게 똘똘이를 움켜잡았다. 그런데 딱딱했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괜찮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요’가 붙어 나왔다. 다행히 그는 그것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하기 싫어요? 그럼..그냥 넣고만 있을게요..”
“...알았어..넣고만 있어..”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었다. 마지막 파정을 하고 결합된 체로 잠들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까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이미 발기하고 있기 때문에 눈뜨자마자 시작하곤 했다.
“으음...”
나도 몰랐는데 지분거리는 동안 안에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모양이다. 비교적 큰 저항 없이 뒤에서부터 커다란 알이 들어왔다. 엉덩이를 움직여 편한 위치를 잡고 살살 조여 본다. 뿌듯했다.
“잘 자요..”
“....응...”
팔로 허리를 감싸 안고 나를 깊이 안은 상태로 있었다. 귓가로 그의 숨결이 지나갔다. 정말로 잠들려고 한다.
‘............’
잠들었다. 그런데 나는 정신이 말짱했다. 이대로 잠들 기분이 아니었다. 재석이가 잠들지 똘똘이도 잠들려고 한다. 엉덩이를 휘돌려 간신히 세웠다. 재석이는 계속 잠들어 있다.
‘미쳐...’
마지막으로 한번 확인이나 해보고 퉁명스럽게 굴 걸 잘못했다. 이제는 도저히 재석이를 깨울 염치가 없었다. 가능하면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되지를 않는다. 정신은 더욱 말짱해져서 시게 초침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리고, 무엇보다 똘똘이가 보내는 맥박이 선명하다. 나도 모르게 허리가 흔들렸다.
“음...”
그 큰 덩어리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조금씩 움직이려는 감질나서 죽을 지경이다. 허리를 감았던 손을 가슴위로 옮기고 조금씩 크게 움직였다. 재석이 손 위에 내 손을 얹어 놓고 주물렀다. 가슴이 빳빳하게 일어난다.
“아아음...”
‘이것도 괜찮네..’
한동안 움직이다가 오르가즘을 느끼려고 하면 멈췄다가 좀 진정되면 다시 움직였다. 잔잔한 파도가 끊임없이 왔다가 갔다. 나른한 쾌감이 포근한 이불처럼 전신을 감싸 안았다.
“으음....”
‘위험했다..’
가끔씩 한계를 넘어서 절정에 도달하려는 몸을 간신히 멈춰 세웠다. 그때마다 사정하려는 것을 참으려고 온 몸이 비틀린다. 한번은 반쯤 애액을 쏟아 내고나서야 겨우 참았다.
‘차라리 한번 하고..좀 있다 다시 할까?’
마지막 순간에 멈춘다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리고 멈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가능한 천천히 움직이던 태도를 버리고 조금이라도 더 큰 만족을 얻기 위해 크게, 빠르게 엉덩이를 휘둘렀다. 똘똘이 머리가 지금까지 참았던 욕망을 전부 긁어냈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짐승의 소리를 이불로 간신히 막았다.
“으으으....”
쾌락의 안개를 빠져나와 제일 먼저 똘똘이가 터졌는지 확인했다. 아직 건강하다. 안심했다. 그 순간 가슴에 있던 재석의 손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줬다. 너무 창피해 죽은척했다.
“변태~”
“.................”
너무 많이 싸서 홍건해진 이불이 접혀 밀려나고 재석의 허리가 부드럽게 율동하기 시작했다. 계속 죽은척해야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간다. 무엇보다 재석이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항문으로 해볼까요?”
“.....마음대로 해...”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얼굴이 따가와 고개를 들었다. 상미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
“....침이나 닦아..”
“씁~”
“시간 됐어. 가자..”
“응..”
공항까지 온다는 재석이를 못 오게 했었다. 얼굴을 보면 웃으면서 헤어지기 힘들까봐 그랬다. 그런데 막상 탑승구로 들어가려고 하니 후회가 된다. 어제부터, 아니 그 전 스와핑을 했을 때부터 계속 후회만 한다. 상미 역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혹시나 하는 모양이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도 혹시나 하는 상미나 나도 미련 덩어리다. 만약에 그런 구박을 받고도 왔다면 아마도 ‘천제적인 바람둥이’일 것이다.
“아...”
상미의 시선을 따라 가니 재석이가 있다. 급히 다른 사람 트레이 뒤로 숨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트레이가 지나가는 거였다. 어색하게 일어서서 다가온다.
“지나는 길에...”
‘바보..’
사람 욕심이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봤으면 했는데 보고 있자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사실 이럴 거 같아서 오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썼었다.
‘이제 정말 가야 해..’
재석이를 품에 안았다. 그의 냄새가 좋았다.
“이제...안녕..”
기다란 게이트를 따라 비행기에 올라타고, 또 자리에 앉고, 약간의 진동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조그마한 창문으로 하얀 구름이 융단처럼 깔려 있고 청명한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재석이를 생각하며 그에게 말했다.
‘꼭 돌아올 거야..네가 산 것은 내 마음이야..’
“사랑해서 좋았어..사랑하길 잘했어..”
옆자리 상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돌아오기 전에 기필코 상미를 시집보내야겠다. 만약. 만약에 그때까지도 상미가 붙어 있다면, 그때는...
‘상미는 덤이야..’
[p.m. 12:33]
“유현주씨~”
“또 왔네?”
매일 같은 시간에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꽃집 점원도 이제는 알아서 갖다 주고는 확인 도장도 안 받고 간다. 처음 몇 번은 꽃바구니가 올 때마다 요란한 휘파람을 불던 동료들도 이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언니. 차라리 신상으로 사달라고 그래~”
“얘는..그렇게 신상품 좋아하다가 카드 빵구나고도 정신 못 차리네..”
“아이~ 언니는~ 꽃 선물보다야 신상이 낫지 뭘 그래?”
좌. 우에 앉은 선배와 후배가 토닥거리는 소리에 귀가 따갑다. ‘여자는 꽃 선물을 좋아한다’고 어딘가에 논문이라도 나온 걸까?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린 바구니 안의 메모카드를 열어본다. 멋진 글씨체로 인쇄된 한 줄의 문구와 ‘69’라는 숫자가 전부다. 아마도 이번이 69번째 꽃바구니인 듯하다.
“그래도 돈이 아깝기는 하다..그지?”
“...........”
선배는 유부녀라 그런지 현실적인 가치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 이 바구니 하나가 5만원이라고 알려준 것도 선배였다. 그 소리를 받아 10번째부터 갖고 싶은 명품 가방 노래를 부르던 것이 또한 옆의 후배다.
“검사가 능력이 있긴 있는 직업인가 보다..”
“아~ 나의 백마 탄 왕자님은 어디서 뭘 하는 거야..이번 한정품 꼭 갖고 싶은데..”
박명수 검사. 인연인가 하고 생각했던 때도 분명 있었다. 늘 다니던 대로에서 불량배들을 만나 떨고 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 사리며 피해 가는데 용감하게 도와줬던 사람이다. 그리고 알고 보니 검사였다.
그때는 아빠의 죽음과 두려움을 주는 도둑 사건, 동생에 대한 애정과 죄의식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박명수 검사가 호감을 표시했을 때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재석이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기 시작한 꽃바구니, 처음에는 기뻤다. 흐뭇한 마음이었다.
일단은 예의로, 다음은 진심으로 꽃은 그만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도 계속 온다. 손에 들린 카드의 ‘69’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100’이라는 숫자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이라는 숫자를 만들어서 어쩌려고?’
일방적으로 자기가 나를 위해 500만원을 썼다는 자기만족 이상은 없다. 100이라는 숫자를 채우고 프러포즈라도 할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내 대답은 ‘No'다.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 고집만 있는 사람은 딱 질색이었다.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네..’
모순적이지만 그런 사람은 싫어하는데 사랑하고 있을 때는 그런 태도도 맞춰줄 수 있다. 아이러니다. 그의 애정표현이 그에게 애정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니 말이다.
[p.m. 7:28]
퇴근하면서 꽃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검사 사무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나는 개인 사무실이 아니다. 책상 하나가 내 공간의 전부였다. 그 위에 꽃바구니를 놓을 자리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처음 하나는 구석에 두었지만 그것이 2개 3개가 되면서 눈치도 보였고 공간도 없었다. 그러니 가지고 나와야 했다.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 겨우겨우 주차를 하고도 의자에 깊이 몸을 묻고 내리지 못했다. 보조석에 놓인 꽃바구니가 부담스러웠다. 엄밀히 말하면 그 바구니를 보는 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정을 했을 때는 이모에게 불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석이를 동생으로 대할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연주처럼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불륜이니 간통이니 하는 것들을 보면서 나 역시 화가 났었다. 그리고 불같이 뜨거웠던 애정이 꽁꽁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박명수씨. 조건만 생각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일등 신랑감이다. 더욱이 멋진 만남이었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준다. 나 역시 그에게 호감이 있었다. 재석이로 인해 상처받았던 마음의 틈으로 그가 들어오려고 했고 나도 애써 그것을 막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하늘에 계신 엄마. 아빠의 뜻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석을 동생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자신 있었다. 연주 역시 재석이를 벌래보듯 했고 그것을 야단쳤지만 안심이 되기도 했다.
[p.m. 8:52]
재석이는 어려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였다. 항상 누군가의 정에 굶주려 있었고, 그래서 엄마와의 ‘그 일’도 생겼다. 그런데 그렇게 겨우 얻은 애정의 결말이 좋지 못했다. 그런 과정들을 다 알고 있다 보니 재석이의 행동이 화가 나면서도 이해되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용서되기도 했다.
박명수씨. 검사라는 직업이 주는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는데 어쩐지 차갑다. 나도 벌써 27살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시집 못가 환장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사랑을 꿈꾼다. 매일 꽃을 보내는 것까지는 여자를 잘 몰라서 그런다고 쳐도 메모에 숫자만 딸랑 써서 보내는 것은 어이없었다. 만약 나를 얼마나 사랑해요 하고 물으면 그는 90% 사랑합니다 하고 말할 거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로서 끌리는 것이 없었다. 준영씨와 사귈 때와 비슷했다.
연주. 샘이 많은 아이다. 그래서 재석이에 대한 감정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시샘과 소유욕이라고 생각했다. 순간의 감정에 실수만 하지 않으면 차차 제 정신을 차리리라 생각했고, 재석의 불륜사건으로 감정 정리가 되었다고 여겼다. 오히려 남매의 정까지 버렸을까봐 걱정했었다.
같이 살기로 했을 때 반대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때때로 재석이에게 애정을 과시하며 나를 자극하려는 행동을 하지만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장단을 맞춰줬다. 그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점점 심해진다. 다시 생각하니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내 반응을 보는 거였다.
대학생이 되면서 시간이 많아진 연주는 아침이면 재석이 도시락을 싸주고 교복을 입혀주고 넥타이를 매 준다. 밤이면 공부를 봐 준다고 하며 둘이 같은 방에서 토닥거렸다. 무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소리가 신경을 갈아먹었다.
[p.m. 9:41]
이런 감정들의 원인은 인정하기 싫지만, 아니 인정하기 무섭지만 하나뿐이다. 아직도 나는 재석이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 지금 그 여자, 동영상의 주인들은 한국에 없다. 그들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알고 있었다.
준영과는 지금처럼 미련이 남자는 않았다. 아마도 연인으로 해볼 거 다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참을 것이 아니라 그냥 다 타버리도록 두는 것은 어떨까?
‘계속 마음에 두고 사는 것보다 다 태우고 나서 누나 동생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사랑하면 결혼한다는 환상에 젖어 있는 나이도 아니고, 어차피 처녀도 아니다. 한명이랑 사귀고 결혼하나 두 명과 연애를 하나 티도 안 난다. 무엇보다 이미 처녀가 아니니 미래의 남편이 한명 사귀었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결혼하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사고치는 것보다는 낫잖아?’
어느 순간부터 합리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 마음은 재석에게 기운 것이다. 그걸 분명하게 느꼈다.
you've got mail~
[누나 오늘도 늦어?]
띠디디디띠디띠띠디
[거의 다 왔어. 금방 들어갈게..]
send.
얼마 전 핸드폰을 바꿨다. 보상기기로 싸게 장만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그 때 이후 이상한 메일들이 온다. 스팸메일로 번호를 차단해도 계속해서 왔다. 짜증이 나는 중에도 아빠와 아빠 애인, 그리고 재석이가 생각난다. 미술관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차 안에서 주변을 살펴보고는 치마 밑으로 팬티를 내렸다. 핸드폰의 카메라로 치마 안쪽을 찍어 봤다. 플래시가 터져 깜짝 놀랐다. 어찌나 놀랐던지 오줌이 찔끔 나온 거 같다. 핸드폰 화면에 가득 잡힌 것은 나의 그곳이지만 알아보기 힘들었다.
치마를 더 걷어 올리고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찍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플래시의 섬광에 놀라지 않았다. 대신 긴장감으로 손을 너무 떨어서 화면이 심하게 흔들렸다. 역시나 알아보기 힘들다.
20여개의 사진을 찍는 동안 계속 두근거렸다. 이 사진 중 하나를 재석이에게 보낼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카메라가 아니라 재석이가 보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생각만으로 아랫입이 근질거리면서 물이 조금씩 스며 나온다.
“음...”
야릇해져가는 몸과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다리 사이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눌렀다. 스펀지처럼 살집이 늘어가면서 맑은 물이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머리가 현기증을 일으키며 핑 하고 돌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먹은 그곳을 찍었다. 섬광과 함께 그곳이 손가락을 씹는다.
“아....”
점점 몸이 밑으로 꺼지는 것을 느끼며 다리를 들어 핸들 양 옆에 올렸다. 검은 하이힐이 앞 유리창을 찍듯이 누르자 그만큼 치마가 위로 말려 올라가고 다리가 벌어졌다. 또 손가락 하나가 완전히 파 묻혔다.
찰칵. 찰칵.
손가락이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셔터가 터졌다. 손가락을 빨라지고 있다. 셔터 소리와는 다른 물기 젖은 소리도 들렸다. 저절로 감긴 눈 안쪽에는 재석이가 있다. 그 녀석이 음란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애에게 보여주고 있다. 보여 주고 싶었다. 항상. 언제나. 그러고 싶었다.
“앗..아아..좋아..재석아..”
한동안 끊었던 자위행위인데 한번 시작하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그리고 한 손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자연스럽게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클리토리스와 그 밑의 계곡을 비볐다. 한참을 들고 있던 핸드폰은 뜨겁고 딱딱했다. 점차로 손가락을 밀어내고 대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으응...아앙...”
너무 짧아 자꾸 놓치게 되었다. 그리고 미끈거렸다. 내 몸이 핸드폰을 빨아들이려고 했다. 한 번씩 놓칠 때마다 안으로 들어간다. 늪 안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아..재석아....”
핸드폰 줄을 잡아 끄집어냈다. 두툼한 덩어리가 아무런 저항감 없이 뱉어졌다. 장소도 그렇고 핸드폰도 그것을 하기는 불편해서 도중에 그만 두었다. 더 이상 좋은 기분으로 상승하지 않았다. 차 안에 놓인 티슈로 핸드폰을 닦아내고 사진을 찾아 봤다. 완전히 번들거리는 그곳의 모습이 생생하게 잡혀 있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찍은 것보다 아무 생각 없이 찍힌 것이 더 잘 찍혔다.
‘진짜 보내볼까?’
재석이가 내 그곳을 볼 생각을 하니 짜릿했다. 어쩌면 재석이는 이 사진을 보면서 자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자 더욱 보내고 싶다.
‘......부끄러워...’
내가 보낸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몰랐으면 하는 심정도 있다. 이 사진이 나라는 것을 알면 재석이는 어떻게 나올까? 진짜를 보여 달라고 달려들지는 않을까? 그러면 누나니까 한번만 보여준다고 하고, 그렇게 보다 보면 눈이 맞아서..
‘으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