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은사2
“선생님 시를 잘 쓰려면 어떡게 해야 할까요?”
아내는 정말 간절해 보였다.
“사실 시는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많이 틀리단다. 너는 시를 왜 쓰고 싶은거니?”
선생의 질문에 아내가 머뭇거린다.
“잘 모르겠니?”
“막연히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왜 냐고 물으시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봐. 뭔가 큰 의미를 찾으려고 하니까 대답할 수 없는 거야. 꾸미려고 하지 말고 니 마음이 말하는 대로 이야기 하면 돼.”
아내는 잠시 시간을 끌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선생님 때문인 거 같아요. 수업시간에 시를 읽어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나도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멋지게 시를 읽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시 낭송은 굳이 시를 짓지 않아도 할 수 있잖니. 좋은 시를 사람들 앞에서 읽기만 하면 되니까. 시인이 되기 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시를 읽으며 주목받고 싶었던건 아닐까?”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그런 거 같기도 해요. 아이들 앞에서 지적으로 보이고 싶었나봐요. 매일 무용 연습만 하느라 성적도 안 좋은데다 사람들이 늘 제 외적인 것만 가지고 얘기하는 게 싫었거든요. 시를 읽으면 선생님처럼 지적으로 보일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요. 그래서 시인이 되고 싶었나봐요. 지금 생각하니 참 한심했네요.”
“한심하긴. 그렇지 않아. 지금처럼 니 마음이 얘기하는 걸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너는 시를 쓸 자격이 있어. 무엇보다도 니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중요해. 형식이나 운율은 시를 많이 읽고 써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게 되 있어. 일종의 문법 같은 거지. 문법은 익히면 되지만 니가 뭘 표현하고 싶은지는 익혀서 되는 게 아니야. 니 스스로 찾아야 돼. 시로 니가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 말 할 수 있겠니?”
“아니요.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조급하게 생각할 거 없어. 시간이 지나다 보면 니가 표현하고 싶거나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거야.”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럼. 넌 조금 전에 니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를 찾아냈잖아. 그것도 허세 부리거나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니 그 순수한 마음이 좋은 시를 만들어 줄 거야.”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힘이 나는 거 같아요. 그럼. 좀 전에 형식, 운율 이런거 말씀해 주셨는데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책 좀 추천 해 주세요.”
“그건 좋은 방법 같지 않구나. 시를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어렵고 지루해서 금방 포기하고 말 거야. 책은 정말 니가 궁금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 될 때 찾아봐도 늦지 않아.”
“그럼 어떡게 해야 하죠?”
“내가 추천 해 주고 싶은 방법은 좋은 시들을 소리 내서 많이 읽어 보고, 따라서 써 보고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시인들의 좋은 기운과 습관이 네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날 거야.”
“무용 배우는 거랑 비슷하네요. 무용 배울 때도 처음에는 무조건 따라하거든요.”
“뭐가 되었든 이 세상에서 배우는 방식은 비슷하단다. 내가 기타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코드 세 개만 가르쳐 주셨거든? 그 코드 세 개만 익히면 노래 한 곡을 칠 수 있었어. 처음에는 그 코드가 왜 그렇게 안 되던지. 맨날 똑같은 코드만 치게 하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어. 그런데 희한한게 그 코드를 완벽하게 치게 되니까 다른 코드들은 너무 쉽게 배워지는 거야.”
“맞아요. 정말 그런 거 같아요. 그럼 집에서 읽게 시집 좀 추천 해 주세요.”
“시집은 내가 좋은 걸로 몇 권 줄 게. 그리고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나는 아내가 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화가 난다.
도대체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내는 어차피 내가 출근 해 있는 시간이라 나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힘든 일이 아니라고 말 하지만 사람을 돌 본다는 게 만만한 게 아니다.
더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게 너무 싫다.
그 뿐인가. 집에 있는 아내를 관찰하는 나의 달콤한 휴식시간도 뺏기는 게 아닌가.
그 선생이란 작자는 좋게 볼래야 볼 수가 없다.
정말 정이 안가는 인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아내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다.
아내는 나에게 첫 날이라 어색하니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이 알려 준 그의 집은 우리 집에서 전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는데 시내와 반대 방향이라 출근 시간인데도 차로 5분 밖에 안 걸렸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아내는 마치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처럼 안절부절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내 앞에서는 의기양양하지만 혼자 있을 땐 숫기 없고 내성적인 아내가 잘 해 낼지 걱정된다.
시인의 집은 한적한 단독주택 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의 집은 조그만 마당이 있는 단층짜리 주택이었는데 길가로 난 벽면이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다.
벨을 누르자 인터폰에서 나이가 좀 있는 듯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오셨나요?”
“안 선생님 소개로 왔습니다.”
“여자 분을 소개 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목소리에서 짜증이 느껴진다.
자원봉사 온 사람을 문 밖에 세워 놓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따지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아. 저는 같이 온 사람이구요. 안 선생님이 소개한 분은 제 옆에 있습니다.”
문이 열리고 6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노파가 얼굴을 내민다.
목소리가 고음에다 짜증까지 섞여 있어 말랐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남자같이 체격이 좋았다.
하지만 얼굴은 인터폰 목소리와 같이 짜증으로 가득했다.
노파는 내 얼굴은 잠깐 본 뒤 내 뒤에 서 있는 아내를 위 아래로 꼼꼼이 살피며 말 했다.
“들어와요.”
노파는 우리를 거실 쇼파로 안내 했고 피곤한 얼굴로 차를 내 왔다.
“안 선생 한테 얘기는 들어 아시겠지만 우리 애가 몸이 많이 불편해요. 매일 누워 있다 보니 짜증도 많이 내고 감정 기복이 심해서 쉽지는 않을 거에요. 하루도 못 버티고 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우.”
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 버텼다면 아내도 못 버티고 그만 두겠다고 할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말도 잘 못하고 내성적인 아내이니 금방 포기할 것이다.
“수현아. 너 괜찮겠어? 하다가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오빠한테 말해. 내가 선생님 한테 잘 말 해 줄 테니까.”
“알았어.”
“내가 너무 겁을 준 거 같은데. 그렇게 겁 먹을 필요 없어요. 내가 볼일을 보러 나가는 2-3시간 정도만 봐주면 되니까요. 시장도 봐야 되고 내 나름대로 할 일이 많거든요. 나가기 전에 왠만한 것들은 다 해 놓고 나가니까 아가씨는 우리 애 일 하는 거만 도와주면 돼요. 아가씨는 잘 할 거야. 그런데 두 분은 어떤 사이?”
“제가 남편입니다.”
“아. 결혼 하셨구나. 아가씨가 어려 보여서 미혼인 줄 알았는데. 색시가 예뻐서 좋겠어요. 장가 잘 가셨네.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굴도 이쁘고, 몸매도 이쁘고, 거기다가 우리 애까지 돌봐 준다고 하니 마음도 이쁘고. 결혼만 안 했어도 내가 며느리 삼고 싶네. 아니고 내 정신 좀 봐. 우리 애 기다리겠네. 안 선생이 아주 예쁜 분이 오신다고 했더니 우리 애가 아주 신나 있어요. 새벽부터 단장 시켜달라고 성화를 부려서 내가 목욕 싹 시키고 옷도 이쁜 놈으로 새로 입혀 놨다우. 내 아들이니까 하지 안 그러면 못 해. 다 큰 아들놈 수발하려니까 너무 힘들다우. 남편분은 바쁘실텐데 어서 가 봐요.”
“네? 저는 괜찮습니다. 회사에 말 해 놔서 좀 더 있어도 돼요.”
“우리 애가 낯을 많이 가리고 특히 남자를 싫어 해요. 무서워 한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죠.”
“인사는 뭐하러 해? 또 볼 일도 없는데.”
“그게 아니라. 솔직히 말씀드리면 집사람이 어떤 분을 돕는 건지는 알아야 할 거 같아서요.”
“우리 애가 색시를 어떡게 할까 봐 걱정 되나 본데. 전혀 그럴 필요 없다우. 우리 애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 못해요. 누가 먹여 주지 않으면 밥도 못 먹는 애가 뭘 하겠수?”
이러다 방에 들어 가 보지도 못하고 쫒겨 날 거 같다.
방에는 들어가야 하는데.
그 때 방 안에서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들어 오시라 그래.”
“아이구. 제가 왠 일이래. 들어 오라니깐 그럼 인사나 하고 가요.”
그의 방에 들어 서는 순간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눈이 부셨다.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벽의 한 쪽은 길과 연결되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차를 댄 쪽이었는데 밖에서는 내부가 안 보였지만 특수유리를 사용했는지 안에서는 밖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는데 이불은 하체 부분 만 덮고 있었고 새로 산 듯 깨끗한 파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이 천장을 향하고 있어서 정확히 판단하긴 어렵지만 나이는 40대 초중반 정도 되는 거 같다. 남자를 무서워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문 앞에서만 볼 뿐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엄마. 내 고개 좀 돌려 줘.”
노파가 다가가 그의 얼굴을 우리 쪽으로 돌리자 그가 아내를 보더니 환하게 웃는다. 노파의 말 때문에 걱정했는데 그는 인상도 좋고 밝아 보였다.
“와~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미인이신데요?”
그의 칭찬에 아내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아...아니에요.”
“아니긴요. 제가 지금까지 45년 정도를 살았는데 제가 본 여자들 중에 제일 미인이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한데. 천천히 한 번 돌아봐 주실래요?”
“네?”
아내는 그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한 듯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가 원하는대로 해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천천히 도는 동안 그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인다. 아내는 못 봤지만 아내의 엉덩이가 그를 향하는 순간 그의 목을 타고 침이 넘어가는게 보였다.
“역시 제 생각대로네요. 정말 멋진 엉덩이를 가지고 있어요.”
뭐지?
아내를 팔러 나온 거 같은 이 기분.
그는 마치 아내를 사기 전에 검수를 하는 것 같다.
그의 몸이 정상 이었다면 아내의 가슴과 엉덩이도 만져보자고 했을 지 모르겠다.
나와 아내는 그의 몸이 불구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화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 번에는 그냥 옆으로 서 봐 줄래요?”
아내는 이번에도 무안한 듯 나를 보더니 그가 시키는 대로 옆으로 돌아 섰다.
“봉긋한 가슴으로부터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이 너무 아름다워요. 가슴을 더 내밀고 엉덩이를 뒤로 빼 볼래요?”
아내가 또 나를 본다. 나를 보는 눈빛이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대신 말 좀 해 달라는 듯.
“저기요.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면에 실례 아닌가요?”
나의 말은 상관 없다는 듯 그는 아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요구만 반복한다.
“쉿! 방해하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가슴을 더 내밀고 엉덩이를 뒤로 최대한 빼 봐요.”
나를 무시하다니.
장애인만 아니었어도 벌써 주먹을 날렸을 거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자 내 성격을 잘 아는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오빠. 그냥 할 게. 이것까지만.”
몸도 못 가누는 사람 앞에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아내 스스로 이것까지만 한다고 하니 일단 참아보기로 한다.
아내는 그의 주문대로 가슴과 엉덩이를 내밀었다.
“아름답구나. 아름답구나. 정말 아름답구나. 그거 알아요? 당신은 내 눈 앞에 서는 순간부터 영감을 주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온갖 시상들로 가득해 졌어요. 이게 무슨 말인 줄 알아요? 당신이 내 머릿속에 시를 쓰고 있다는 뜻이에요. 당신은 시인이고 나는 그걸 받아 적는 종이일 뿐이죠.”
저 인간 컨셉인가?
미친 놈 같다.
“내가 이상하게 보일 지 모르지만 시인은 말이죠. 좋은 시상이 떠오르면 참으면 안 돼요. 기억해 두었다 나중에 써야지 이런 건 말도 안 돼요. 아름다운 당신을 본 지금의 감정이 1시간 뒤의 감정과 같을까요? 전혀 같지 않아요. 물론 1시간 후에도 당신은 아름다울 거에요. 하지만 당신을 처음 본 바로 그 순간의 느낌은 아니죠. 시를 써야겠어요. 지금 이 느낌을 남겨야 돼요. 통성명은 나중에 하고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이리로 와요. 내 곁으로.”
아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노파가 그의 머리 맡에 밀어다 준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의자에는 작은 테이블이 붙어 있었는데 그 위에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노트북을 열자 바로 글을 쓸 수 있게 워드 프로그램이 실행 돼 있었고 그는 아내에게 준비 됐냐는 말도 없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싯구를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말하고 아내는 그것을 기록하고.
이것이 아내와 그가 함께 할 일이었다.
선생은 이 작업이 아내가 시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했다. 뛰어난 시인이 어떻게 영감을 얻고 작업하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이다.
나는 공돌이라 시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싯구 들은 모르는 내가 들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의 시를 듣는 것 만으로도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이 마음 속으로 그려져 설레이게 만들었다.
선생의 말대로 그는 정말 천재적인 시인이었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거 같지만 그렇기에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아내 역시 그의 시에 매료되어 황홀경에 빠져있었다.
아내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대상이 자신이기에 내가 느끼는 것보다 몇 배는 감동한 거 같다.
도대체 어떤 시길래 그렇게 감동하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알려줄 수는 없다.
시가 아직 출간 전이고 출간되더라도 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공개는 어렵다.
아무래도 아내는 나와 같이 돌아가지 않을 거 같다.
그에게 매료되어 일을 계속하겠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준비를 해야 한다.
나만의 휴식을 위한 준비를.
그는 아내에게 자신이 만든 시를 읽어달라고 했다.
들어 보고 다듬을 곳을 찾을 거라고 했다.
아내는 그의 앞에서 시를 읽는 게 부끄러운지 처음에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읽었다.
“아니. 너무 작아요. 당신 목소리는 매력적이에요.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더 크고 자신 있게 낭독 해 봐요. 당신이 만든 시를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들은 아내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조금 더 힘을 내 차분하게 읽어나갔다.
그는 아내가 읽는 걸 들으며 수정할 부분이 나오면 고쳐줄 것을 요청했고 둘은 그렇게 한참을 작업에 열중했다.
그 사이 나는 방 안을 스캔한다.
노트북에 선이 연결 되지 않은 걸로 보아 무선 공유기가 있을 것이다.
한 쪽 벽면은 커다란 티비만 걸려 있는 거 같고
그의 침대 쪽에도 보이지 않고...
찾았다.
내가 서 있는 책장 한 귀퉁이에 공유기가 보인다.
메이커와 모델을 보니 인터넷 전화회사에서 번들로 끼워주는 거다.
두 사람이 작업하는 동안 내 옆으로 와 있던 노파에게 화장실이 어디인지 물었다.
노파는 내게 화장실을 알려 준 뒤 외출을 하겠다며 집을 나섰다.
화장실에 간 뒤 스마트 폰으로 와이파이 신호를 검색해 해당 통신사의 공유기를 찾았다. 관리자 아이디와 암호가 디폴트 값으로 되어 있어 관리자모드에 쉽게 들어갔다. 내가 준비한 IP카메라의 맥 어드레스를 무선 접속 허용 목록에 추가 한 뒤, 외부에서 접속 할 수 있게 DDNS 서버 등록을 하려는데 이미 등록이 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침대에 있는 시인이나 노파가 했을리는 없다.
그럼 누구지?
일단 등록되어 있는 DDNS 서버 주소를 메모한 뒤 포트가 열려 있나 확인 해 보니 역시 열려 있다.
포트 번호도 메모한다.
누군가 이 집에서 정보를 빼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도대체 누가 왜?
이 집에 빼갈 중요한 자료라도 있단 말인가?
로그인 기록을 확인하니 지금도 누군가 외부에서 접속 중이다.
접속 중인 아이피 주소를 메모한 뒤 어디에 접속 중인지 확인 해야겠다.
외부에서 열람하고 있는 내부 아이피 주소를 확인 한 뒤 나 역시 그 주소로 접속을 시도해 본다.
내 접속 방법이 틀렸는지 잘 되지 않는다.
왠지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는 아닌 거 같다.
그렇다면 혹시?
맥 어드레스를 확인해 보니 왠지 친숙한 조합이다.
카메라다.
그것도 우리 회사에서 생산한 IP카메라.
카메라 어플로 접속 해 보니 암호가 걸려 있다.
하지만 문제 없다.
내가 만든 카메라고 내가 만든 시스템이다.
슈퍼바이저 모드로 접속을 하니 화면이 나온다.
화면속에는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시인의 방이 나오고 있다.
카메라의 각도를 보니 천장에 설치된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다른 아이피도 확인 해 보니 카메라가 두 개나 더 있다.
하나는 그 방의 측면에서 찍고 있는 또 다른 화면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여기.
내 모습을 비추고 있다.
급하게 로그인 기록을 다시 확인 해 본다.
다행이 이곳으로는 접속을 안 한 상태다.
나는 얼른 화장실을 벗어나 거실로 나간다.
혼란스럽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거 같다.
도대체 누가 왜?
혹시 아내를 보기 위해?
로그인 기록을 봤을 때 감시는 훨씬 예전 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단순히 아내를 훔쳐보기 위한 것 만은 아니다.
그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가져온 카메라를 설치해야겠다.
방에는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으니 거실이 좋을 거 같다.
거실을 둘러보니 노파의 손이 닿지 않는 좋은 위치가 보인다.
저기라면 쇼파에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카메라를 안 보이게 잘 숨긴 뒤 방으로 들어가니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아내가 깔깔 거리며 웃고 있다.
아까 긴장해 있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너무 편안 해 보인다.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나의 물음에 아내는 아직도 웃음이 나는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한다.
“선생님이 너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셔서. 오빠도 들어보면 안 웃고 못 배길 걸?”
젠장.
여기도 선생님이다.
뭔 놈의 선생이 이렇게 많은 건지.
여기가 무슨 선생의 왕국이야?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나는 아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너 어떡할 거야? 이 일 할 거야?”
“어. 그럴려구.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 해 보니까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을 거 같아. 저 분도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계속 얘기 해 보니까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해 주시고 좋은 분 인거 같아.”
아내에게 카메라 얘기를 해 줄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내가 더 조사를 해 봐야 할 거 같고 아내 마음이 정해진 이상 쓸 데 없는 일로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누워있는 저 시인이란 작자도 그리 나쁜 사람 같지 않고 작업 하는 걸 직접 보니 선생의 말대로 아내가 시를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다.
“그럼 난 가 볼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응. 이따 집에 가서 뭐 했는지 얘기 해 줄게. 그렇게 늦지는 않을 거야. 서방님 밥은 챙겨드려야죠.”
아내를 방으로 들여 보내고 돌아서려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누워있는 그의 바지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얘기 하는 동안 아내의 엉덩이가 그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그렇다면 성기능은 살아있단 말인가?
고개만 돌려진 채 아내를 보고 있는 그의 눈 빛이 내 몸을 전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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