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6)

회사에서 간간이 아내를 살펴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는 몸은 불편하지만 사람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일 하면서 보느라 소리는 듣지 못 했지만 그가 무슨 말만 하면 아내는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와 있는 내내 즐거워 보였다.

원래 2시간 정도만 돕는 걸로 약속 됐는데 점심 때가 되서도 아내는 집에 갈 생각을 안 했다.

나중에 노파가 들어와 뭐라고 말 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퇴근 후 집에 가니 아내가 평소처럼 반갑게 문을 연다.

“오늘 어땠어? 할 만 해?”

“어. 처음엔 걱정 많이 했는데. 괜한 걱정을 했나봐. 선생님도 잘 해 주시고 편하게 있다가 왔어.”

아내의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인다.

시인과 함께 있는 내내 즐거워하던 모습이 생각나자 괜히 샘이 난다.

“시는 많이 적었어?”

“오빠 간 뒤에 한 편 더 했으니까 오늘 한 거는 2 편이네.”

“뭐야? 꼴랑 2편 쓴 거야? ”

“꼴랑 2 편이라니.시가 뭐 쓰고 싶다고 막 나오나? 선생님이 그러는데 오늘처럼 하루에 두 편 쓰는 날은 굉장히 많이 한 거래. 잘 해야 한 편 정도고 한 편도 못 쓰는 날이 더 많데.”

“그럼 남는 시간엔 뭐 한 거야?”

“첫 날이니까. 이런저런 얘기 했지. 서로 궁금한 거 물어보기도 하고. 선생님이 말 상대가 그리우셨나봐. 계속 쉬지 않고 말하시는 데 말을 어찌나 재미있게 잘 하시는지. 꼭 여자들끼리 모여서 수다 떠는 기분이었어. 내가 하는 말도 잘 받아주셔서 오래간만에 목이 아플 때까지 수다떨었지 뭐야.”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수다 떨러 간 거구나?”

“오늘은 첫 날이라 그런거고 선생님이 내일부터는 시 쓰는 거 조금 씩 가르쳐 주신댔어. 그리고 수다 떠는 게 뭐 어때서? 오빠는 내가 얘기하면 잘 들어주지도 않잖아. 맨날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듣는 둥 마는 둥. 대답도 잘 안 해주고. 말을 하면 상대가 받아 줘야 재밌게 말을 하지. 오빠는 나랑 얘기 하는 거 안 좋아 하는 거 같아.”

나도

니가

나의 섹스 환타지를 받아줬으면 좋겠다.

“그거야 니가 맨날 쓸데 없는 소리만 하니까 그렇지. 친구의 친구 동생이 어쨌다더라. 옆 동네 누가 뭐 어쨌다더라. 들어보면 다 우리랑 상관 없는 얘기들이잖아. 안 그래도 회사일 하고 오느라 피곤한 데 남의 집 대소사까지 다 들어 줘야 돼?”

“좀 들어주면 안 돼? 나는 하루 종일 오빠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가 겨우 말 하는 건데.”

“그렇다고 내가 안 들어주는 건 아니잖아. 니가 말하면 다 듣고 있었어.”

“그게 듣는 거야? 듣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딴 짓만 했잖아. 몰라. 오빠랑 말 안해.”

대충 넘어 갈 걸 괜히 시작했다.

스스로 무덤을 파 버렸다.

결국 아내는 저녁 식사 내내 침묵 시위를 하더니 일찍 잠들어 버렸다.

오늘은 아내가 아침 강습이 있는 날이라 얼굴도 못 보고 출근 했다.

어제 일 때문에 계속 마음에 걸린다.

대충 넘어 갔어야 했는데 그 시인 앞에서 너무 즐겁게 웃던 아내가 얄미워 짜증을 낸게 화근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몇 시에 방문하기로 했는지도 못 물어 봤다.

아내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데 아침부터 찾아오는 업체 관계자들.

그들이 돌아 간 뒤 이어지는 업무 회의.

점심시간까지 쉴 틈이 없다.

점심 시간 마저 찾아 온 손님들과 식사를 해야 했다.

이 사람들 밥 먹었으면 빨리 갈 것이지 커피까지 달라고 한다.

여직원이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짬을 내어 우리집과 시인의 집 모두를 확인 해 봤지만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는 중인가? 아니면 벌써 나온 건가?

손님과 커피를 마시며 관심도 없는 얘기를 한다.

날씨 얘기, 정치 얘기, 어제 중계된 야구 얘기.

아내가 궁금해 다시 확인해 보고 싶지만 손님의 재미 없는 농담까지 박장대소를 하며 비위를 맞춘다.

이러는 내가 한심하고 아내에게 미안 해 진다.

아내는 자기 얘길 들어 주길 바랐는데, 그냥 웃으면서 조금 관심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

나라는 인간은 그러지 못 했다.

잘 해야지 다짐하면서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나란 놈이 참 싫다.

오늘 집에 가면 무조건 잘 못 했다고 사과하고 매일 1시간 이상 아내와 대화의 시간을 갖겠다.

내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것 만으로도 아내는 행복해 할 거다.

손님은 점심시간이 끝나고도 한 시간이나 더 삐대다가 돌아갔다.

저러고도 월급을 받는 게 대단하다.

드디어 내 시간.

오늘은 오전에 두 배로 일 했으니 오후에는 내 시간을 가져도 될 거 같다.

다시 우리 집과 시인의 집을 확인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해 볼까?

아니다.

괜히 전화로 어설프게 얘기 했다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집에 가서 얼굴을 보며 말 하는 게 좋겠다.

인터넷을 뒤져 아내에게 해 줄 재미난 이야기들을 찾아 본다.

오랜만에 아내를 웃겨주고 싶다.

내 얘기를 들으며 깔깔거리는 아내를 생각하니 벌써 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인의 집을 다시 확인 해 본다.

아내다.

아내가 그의 집에 있다.

그가 또 부탁을 했는지 아내는 어제처럼 문 앞에 서서 빙그르르 돌고 있다.

그런데 아내의 복장이 좀 놀랍다.

상의는 가슴 골이 훤히 들어날 정도로 깊이 파인 연보라색 나시 티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은 파인 정도가 심해서 일반 브래지어는 할 수가 없고 누브라라고 하는 젖꼭지에 부치는 패드와 함께 입는 옷이다.

하의는 엉덩이 바로 밑 까지 밖에 안 오는 흰색 데님 미니스커트였는데 아내의 긴 다리를 강조해 각선미를 살려주는 옷이다.

스타킹을 안 신어서 조금만 방심하면 팬티와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 될 거 같다.

두 옷 모두 내가 사준 것으로 불편하다면서 나와 외출할 때 딱 한 번 입었던 옷이다.

더구나 그 때는 스타킹을 신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맨 다리인 데다 높은 힐 까지 신어 더 아슬아슬해 보인다.

실내에서 힐이라니.

좀 의아했지만 아내는 그렇게 입고 그가 요구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궁금해 얼른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다시 가서 갈아 입고 오라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 옷은 마음에 드세요?”

뭐지?

그럼. 전에 왔었다가 옷 때문에 뺀찌 먹고 다시 온 건가?

“그래. 마음에 들어. 그 옷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야한 옷 인가?”

그가 아내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

어제 벌써 말을 튼 건가?

“그런 편이에요.”

“더 야한 것도 있나?”

“그렇긴 한데 다 비슷해요.”

“뒤로 돌아 봐. 내가 엉덩이를 볼 수 있게. 왜? 내가 엉덩이라고 하니까 부끄러워?”

“네. 좀. 그래요.”

“내가 저속해 보이나?”

“아...아니에요.”

“그런 거 같군. 나는 처음 시를 구상할 때 직설적으로 표현을 해. 처음부터 대상을 꾸미려 들면 생각의 흐름이 끊어져 버려. 수현이가 나를 저속한 놈이라고 생각해도 할 수 없어. 나는 남들이 나를 어떡게 생각하느냐 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한 사람이니까. 수현이도 내가 하는 방식을 배워두는 게 좋아. 해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포장하는 건 시를 망치는 지름길이야. 그러니까 내 요구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더라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시키는 대로 따라 줘. 지금처럼 머뭇거리면 내 흐름이 깨져버린다고.”

“죄송해요.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이해가 되는 거 같아요. 이렇게 돌면 되나요?”

“쉿. 지금부터 내가 묻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알았지?”

“네.”

“다시 나를 봐. 그래. 이제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 와. 조금 더. 내 얼굴 가까이 와 줘.”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다리가 상당히 길군. 힐을 신어서 인지 어제 보다 더 커 보여. 키가 몇이지?”

“167이요.”

“170이 넘는 줄 알았는데 비율이 좋군. 허벅지를 침대에 붙여 봐. 내가 자세히 볼 수 있게. 아~ 피부가 매끈한 게 정말 좋군. 만져보고 싶은 피부야. 난 솔직한 사람이니까 생각나는대로 말 할게. 내가 불구가 아니었다면 만지게 해 달라고 졸랐을 거야. 내가 부탁하면 만지게 해 줄 건가?”

아내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섭섭하군. 하지만 솔직해서 마음에 들어. 어차피 만지지도 못 할 놈인데 만지라고 해주자. 뭐 이랬다면 실망했을 거야. 너는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 거 같아. 이제 뒤로 돌아 봐. 엉덩이를 볼 수 있게. 오~ 신이 정말 원망스럽군. 이런 엉덩일 눈 앞에 두고도 만질 수 없다니. 신이시여 간절히 원합니다. 제게서 시각,미각,후각,청각을 모두 가져가시고 촉각 하나만 돌려주세요. 이 여인을 만질 수만 있다면 내 기꺼이 다 드리리다. 수현아 니 생각은 어때? 신의 입장에서 괜찮은 거래 아닌가? 나의 눈과 귀와 혀와 코를 가져가는 대신 손을 돌려 받는 거지. 내 손의 감각이 돌아 온다면 만지게 해 줄 수 있겠니?”

아내는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

“너무하는구나. 혹시나 하고 기대 했는데. 신에게 감사 해야 겠어. 내가 가진 4개의 감각을  하나와 바꾸더라도 사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역시 신은 현명했어. 내게 촉감을 주지 않은 건 잘 하신 일이야. 어차피 가지더라도 쓸 일이 없잖아. 그걸 미리 알고 가져가신 게 분명해. 수현아. 고마워. 니가 내게 깨달음을 줬구나. 이제야 나를 이렇게 만드신 신의 깊은 뜻을 알았어. 촉감을 가지고도 만지지 못한다면 내 자신을 원망했겠지만 신은 자신이 그것을 가져감으로써 내가 신, 당신을 원망하게 해 주신거야. 얼마나 배려 깊으신 분이니. 오~ 신이시여. 당신을 경배합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아내는 그의 비꼼에도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수현아.”

“네?”

“신이 주신 눈으로 널 보는 건 괜찮겠지?”

“네? 네.”

“고맙구나. 신이 내게 주신 눈마저 니가 거부 했다면 나는 정말 슬펐을 거야. 천천히 허리를 숙여 줄래?”

아내가 허리를 숙이다가 치마 속이 걱정되는지 양 손을 뒤로 해서 치마 밑을 가린다.

“잔인하구나. 너는 내가 가진 눈 마저 볼 수 없게 하는구나. 내가 널 보는 게 수치스럽니? “

“부...부끄러워서...”

“너는 너의 부끄러움만 보이고 나의 절망감은 못 보는구나. 아름다운 걸 앞에 두고 보지 못하는 심정을 아니? 나는 장님도 아닌데 말이야. 내가 니 몸을 본다고 해서 널 어떡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불쌍한 병신에게 적선한다는 마음으로 보여주면 안되니? 니가 부끄러움만 잊어 준다면 여기 있는 병신이 너로 인해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어. 그래도 안 되는 거니? 시는 자신의 속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의 지꺼기를 끄집어 내는 작업이야. 따지고 보면 육체를 드러내는 것 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작업이지. 자신의 속 마음을 드러내는 거니까. 육체는 죽으면 썩어 없어지지만 시는 영원히 남지. 그래서 더 위대한 거야. 썩어 없어질 육체의 부끄러움도 견디지 못 한다면 너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본능 들은 어떡게 시로 표현할래? 그리고 넌 지금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게 아니야. 내 입을 빌려 시를 쓰고 있는 거라고. 아무래도 너는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좋은 시인은 못 되겠구나. 그만 돌아가라.”

“아니에요. 할게요.”

아내가 설득 당했다.

아내의 손이 치워지자 그의 눈 앞에 아내의 치마 속이 드러난다.

각도 상 내 눈으로 치마 속을 볼 수는 없지만 마치 내가 보고 있는 것처럼 흥분된다.

“조금 더 숙여봐. 하얀 팬티를 입었군. 순결의 상징이지. 수현이는 순결한 여자인가? 남자들이 가만이 안 뒀을 거 같은데. 남편 말고 몇 명이나 상대를 했지?”

“네?”

“몇 명의 남자가 널 따먹었냐고 묻는 거야. 이번에도 표현이 좀 저속한가? 이제는 적응 했을 거라 믿어. 다시 말하지만 꾸밈없는 표현이 좋은 시를 만들거든. ”

“어...없어요. 그런 거.”

“믿을 수가 없군. 난 여자들의 거짓말을 수도 없이 들었거든.”

“정말이에요. 전 그렇고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아내가 일어 서서 그를 보며 말했다.

“여자면 다 같은 여자지. 그렇고 그런 여자는 또 뭐야. 한 남자랑만 관계하면 좋은 여자고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불결하다는 뜻인가? 수현이는 그런 눈으로 여자의 기준을 나누고 있었군.”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 저는 단지 제 남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내이고 싶어요.”

“어제 같이 온 남자 말이군. 그 말은 남편이 부끄럽게 생각 안 하면 다른 남자랑 잘 수도 있다는 건가? 사실은 다른 남자와 자고 싶은데 남편 때문에 못 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저는 다른 남자와 자고 싶지 않아요. 왜 제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불행한 일이야. 곳간에 굶주린 마을 사람 전부를 먹이고도 남는 곡식이 있는데 곳간 주인은 곡식을 나눠 줄 마음이 없다는군.”

“그런 비유가 어디있어요?”

“적절한 비유 같은데. 얘기를 마저 듣지 그래? 곳간 주인은 나눠 줄 생각도 없으면서 자기 집에 곡물이 많다고 자랑만 하고 다니는 거야. 굶주린 사람들이 ‘아~ 그렇구나.’ 하면서 가만히 있을까? 굶주려서 죽을 거 같은데도? 훔치려 들 거야. 처음엔 한 놈이 훔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이 놈 저 놈 다 훔치는 거지. 그런데 아무리 훔쳐가도 이 곳간의 곡식은 줄지를 않는 거야. 마법의 곳간이었던 거지. 곳간 주인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기 걸 가져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두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도 자신의 곳간은 그대로 있는 거야. 자신의 곳간이 마법의 곳간인 걸 그제야 알 게 된 거지. 곳간 주인은 곳간 문을 활짝 열고 마을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인심을 썼어.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은 주인에게 큰 절을 하며 찬양하기 시작했어. 곳간 주인도 좋고 마을 사람들도 좋고. 모두가 행복한 마을이 됐다는 얘기야.”

“제가 그 곳간이란 말인가요?”

“그런 거 같은데. 지금은 다른 남자와 자면 마치 큰 일 날 것처럼 하고 있지만 막상 한 번 경험하고 나면 결국은 모두가 행복해 지는 일이란 걸 알게 되지 않을까?”

“그만하세요. 더 이상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한 가지만 더. 궁금해서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줘. 남자들이 수현이 몸을 훔쳐 보는 건 어떡게 생각해?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수현이 같이 예쁜 여자를 보면 쳐다보게 돼 있잖아. 그것도 싫은가?”

“그냥 보는 것 까진 괜찮은데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 보는 건 싫어요.”

“지금의 나처럼 말인가?”

“네.”

“법으로 보장되어 있으니까 수현이의 몸을 누군가 강제로 뺏으려 한다면 나쁜 일이야 그렇지?”

“네.”

“그럼 말이야. 남자들이 수현이를 생각하면서 야릇한 상상을 한다거나 자위를 하는 건 나쁜 짓일까?”

“글쎄요. 제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도 아니고 그것까지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그 말은 육체적 접촉만 없다면 다른 남자들이 얼마든지 마음속으로 간음을 해도 괜찮다는 건가?”

“금방 말씀드렸지만 제가 어떡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저는 제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저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고 상상을 하든 제 스스로가 남편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 거 잖아요.”

“또 남편 얘기군. 남편이 수현이 너를 억압하나?”

“그렇지 않아요. 제 남편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좋아. 이 얘기는 그만 끝내도록 하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하지만 내가 수현이 너를 몰아붙인 건 너의 내면을 알아 보기 위해서였어. 밑바닥 까지 끌어 내진 못 했지만 너 스스로가 너를 알아야 좋은 시를 쓸 수 있거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알 것도 같고 잘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니 스스로 깨달을 때가 있을 거야. 그럼 다시 시작 해 볼까? 오전에 니가 왔을 때 얘기 했듯이 오늘 내가 쓰고 싶은 시는 여인의 육체적 매력에 관한 시야. 그래서 옷을 다시 입고 오라고 부탁한 거고. 알고 있지?”

“네.”

“조금 전 대화를 통해 너의 성향을 파악했고 니가 부끄러워 한다는 걸 잘 알지만 내 부탁을 들어 줬으면 해. 옷을 전부 벗어 줄 수 있겠니?”

“네?”

아내는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 난다.

“니 몸을 자세히 보면서 표현 해 보고 싶어.”

“하지만...사실 속 옷까지는 보여 드릴려고 했어요. 저도 그 정도는 각오 했구요. 그런데 그건 자신 없어요. ”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 니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니 누드를 보고 싶어한다고 얘기 해. 남편이 허락한다면 너도 받아드리고 그렇지 않다면 나도 강요 하지 않을 게. 니 마음속 깊은 곳엔 남편에 대한 신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그래서 쉽게 결정하지 못 하는 거야. 그러니까 니 남편에게 결정권을 넘겨 버려. 그럼 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 남편이 하라는 대로 그냥 하면 돼. 그리고 잊지마. 넌 지금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야. 알지?”

아내가 한참을 망설이며 고민하더니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내가 들을 수 있게 스피커 폰으로 연결해줘.”

갑자기 내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린다.

그리고 내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나를 압박하듯 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다면 나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 했을 거다.

“뭐 어때? 불쌍한 장애인한테 적선 하는 샘 치고 화끈하게 보여줘.”

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떡게 해야할지 고민된다.

장난스럽게 그러라고 하면 아내가 화 내지 않을까?

안 그래도 어제 다퉜는데 나를 인간 말종으로 보는 건 아닐까?

아내가 원하는 대답은 뭘까?

내가 강하게 안 된다고 해주길 바랄 거다.

내 앞에서도 부끄러워 알 몸은 안 보여주는데 그의 앞에서 벌거 벗고 있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부끄러움?

내 아내가 다른 남자 앞에서 벌거 벗고 있는다고?

그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내 대답은 결정되었다.

아내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 수현이구나. 잘 다녀 왔어?”

“오빠 바쁜데 전화 받은 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집이니?”

“아니. 오늘은 오후로 시간이 바껴서 지금 시 배우러 왔어.”

“그렇구나. 선생님이 잘 해주시지?”

“어. 근데 나 오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말 해봐.”

“선생님이 너무 어려운 부탁을 하셔서 오빠한테 물어 보려고.”

순간 내 목을 타고 침이 꼴깍 넘어간다.

“뭐? 뭔데?”

“오빠. 선생님이 다른 뜻으로 그러시는 거 아니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알았지?”

아내답다.

이 상황에서도 선생을 배려하고 있다.

“궁금하다. 뭔데 그래”

“선생님이 내 누드를 보고 싶어 하셔. 그런데 어떡게 해야 할지 고민되서 오빠에게 물어보는거야. 안 되겠지?”

“작업이랑 관련 있는 거야?”

“어.”

“어제 보니까 그 사람 성격이 좀 유별나긴 해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더라. 실력도 있는 거 같고. 너는 어때 할 수 있겠니?”

“모르겠어.”

“너만 괜찮다면 한 번 해 봐. 다른 남자라면 모르지만 그 사람은 너를 어떡게 할 수 있는 몸도 아니잖아. 오빠한테 미안해서 걱정된다면 그럴필요 없어. 작업 때문이라면서? 니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 그나저나 고맙네. 말 안하고 했어도 됐을텐데 이렇게 오빠한테 물어봐 줘서.”

“당연히 물어봐야지.”

“그래. 아무튼 난 괜찮으니까 한 번 해봐. 너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될 거야.”

“알았어. 자신 없지만 오빠가 해 보라니까 한 번 해 볼게.”

“그래. 나 나가봐야겠다. 나중에 집에 와서 얘기 해줘.”

전화를 끊고 간신히 전화기를 내려놨다.

수전증이라도 온 것처럼 손이 떨려서 혼났다.

너무 진지하게 전화를 받았나?

나 답지 않아서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모르겠다.

아무튼 아내는 그의 앞에서 누드가 될 것이고 그 모습을 볼 생각에 가슴이 뛴다.

“좋은 남편이군. 그럼 시작해 볼까?”

아내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크게 숨을 내 쉰 뒤 그의 침대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벽 쪽으로 간다.

“잠깐. 부끄러운거 잘 아는데. 어차피 하는 거 내 앞으로 와 줘.”

아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침대에서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 조심스럽게 나시티를 벗는다. 한쪽 팔로 누브라가 붙어 있는 가슴을 가린 채 벗은 옷을 어디에 둘지 망설인다.

“내 얼굴 앞에 놔 줘.”

“네?”

“냄새를 맡고 싶어.”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선생님. 그건.”

“또 이상한 생각을 하는군. 내 시가 단지 시각적인 내용만 담기길 바라는 거야?”

“네?”

“내가 느끼고 표햔할 수 있는 감각은 네 가지 뿐이야. 그 네 가지로 지금껏 시를 써 왔어. 그런데 지금은 두 가지 밖에 담질 못 했어. 내 눈에 보이는 니 모습과 목소리. 너를 꽃에 비유한다면 향기 없는 꽃이 돼 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니가 거부감을 느끼는 건 니 스스로 너와 나의 관계를 남자와 여자로 느끼기 때문이야. 상상력을 발휘해봐. 너는 지금부터 여자가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꽃이야.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닫혀진 꽃 잎을 여는 중이야. 너는 뭐라고?”

“꽃이요.”

“그래 맞았어. 나와의 작업을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지 마.”

“죄송해요.”

아내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 앞에 티를 놓았다.

“좋은 냄새가 나는군. 향수를 쓰나 보지?”

“네.”

“가슴을 덮고 있는 그것도 치워 줄래? 꼭지의 모양을 보고 싶어.”

아내는 부끄러운지 뒤로 돌아 서서 누브라를 떼었다. 그리고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돌린 뒤 꼭지를 가리고 있는 두 손을 천천히 내렸다.

“요가를 가르친다더니 운동을 해서 그런가? 브래지어를 안 했는데도 가슴이 봉긋하니 모양을 갖추고 있네. 정말 예쁜 가슴이야. 꼭지도 아주 마음에 들어. 신이 다시 원망스러워 지는군. 이제 치마 차롄가?”

아내는 이번에도 뒤로 돌아선 뒤 치마를 벗어 그의 얼굴 앞에 내려놨다.

그가 코를 킁킁 거리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아내를 본다.

“이제 하나 남았군. 처음인가? 남자 앞에서 이렇게 옷을 벗는 건? 물론 남편은 빼고 말이야.”

고삐리 녀석들이 생각났지만 그 때는 강제적이었고 아내 스스로 벗는 건 이 번이 처음이다.

아내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천천히 팬티를 벗는다.

이제 뒤로 돌기만 하면 나에게도 부끄러워하던 비밀스러운 곳이 처음으로 아내의 의지에 의해 보여지는 순간이다.

“역시 멋진 엉덩이야. 남자들의 손을 안타서 그런지 금방 빚어 나온 도자기 같아. 이제 중요한 순간이군. 수현이 니 스스로가 만들어 논 벽을 처음으로 깨 보는 거야. 벽이란 녀석은 왠지 있어야 할 거 같고 나를 보호 해 줄 거 같고 하지만 막상 그 녀석을 깨뜨려 버리고 나면 벽이란 자체가 아무 쓸모없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될 거야. 자. 이제 돌아 서서 니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껴봐.”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천천히 몸을 돌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굳게 마음을 먹은 듯 과감하게 손을 치워 버린다.

그의 앞에 드러난 검은 숲.

그의 목 울대가 울리는 동시에 내 목을 타고 침이 넘어간다.

마치 그와 내가 하나가 된 거 같다.

“좀 더 가까이 와 줄래?”

아내가 다가간다.

여전히 고개는 들지 못 한다.

“나를 똑바로 봐 줄래? 너는 부끄러울 게 없어. 이런 몸을 가졌다면 당당해야지. 넌 지금 보잘 것 없는 병신에게 자비를 배풀고 있는 거야. 내 눈을 봐 바.”

아내가 그의 눈을 바라 본다.

“그래 그렇게 날 봐. 너는 지금 굶주려있는 불쌍한 거지에게 곳간을 열어준 거야. 마음껏 베풀어도 그대로인 마법의 곳간 말이야. 나를 측은하게 바라봐줘. 너의 자비로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게. 좋아. 바로 그런 눈 빛이야. 너는 베푸는 입장이고 나는 받는 입장이야. 너는 더 당당해야 하고 내가 오히려 부끄러워야 돼. 그 팬티를 내 얼굴 가까이 놔 줄래? 미리 부탁하는데 내 흐름을 깨지 말아 줘.”

아내가 그의 얼굴 가까이 팬티를 놓자 그가 크게 냄새를 들이마신다.

이게 진짜 수현이의 냄새군. 고마워. 내 말을 잘 따라 줘서. 이제 같이 시를 만들어 볼까?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어 줘.”

“이제 입어도 될까요?”

“아직도 부끄러움이 남아 있군.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오늘은 그렇게 있어 줘.”

“어머니가 돌아 오시기라도 하면...”

“내가 부르기 전 까진 안 들어 올 거야. 그리고 우리가 지금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수현이를 위한 거라는 것만 알아 줬으면 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런 과정들이 고맙게 느껴질 거야. 시상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아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의자를 가져와 어제처럼 그의 머리 맡에 붙인 뒤 앉는다.

“내가 말 하는 걸 따라하면서 기록 해 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대여.”

아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재촉한다.

“따라 해 보라니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대여.”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대여.”

“그대의 눈으로 내 몸을 가져요.”

“그대의 눈으로 내 몸을 가져요.”

“그대의 눈은"

“그대의 눈은"

“내 몸을"

“내 몸을"

“간음 할 자격이 있습니다.”

“... 간음... 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대의 부드러운 눈으로"

“그대의 부드러운 눈으로"

“내 가슴을"

“내 가슴을"

“ 어루만지고.”

“...어루...만지고.”

“그대의 단단하게 발기 된 눈으로"

“그대의...다...단단하게... 발기...된 눈으로"

“나의 뜨거운 구멍을 채워주세요.”

“나의...뜨거운구멍을채워주세요.”

“나는 지금부터"

“나는 지금부터"

“당신의 여자입니다.”

“당신의...여자...입니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가 다시 입을 연다.

“이게 첫 번째 연이야. 두 번째 연은 수현이 니가 만들어 봐.”

“네?”

“어려울 거 없어. 비슷한 형식으로 내용을 추가 하면서 조금 더 진행 된 상황을 표현하면 돼. 대강 어떤 느낌인지 알겠지? 또 부끄러워 하는 건가? 부끄러움을 버리지 못 한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없어. 계속 그런다면 수현이는 남들이 어떡게 생각할까 두려워 하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말 거야.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 시의 대상을 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생각해 봐. 그럼 한결 편할 거야.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시작해.”

아내는 결심이 선 듯 노트북에 시를 써 내려 간다.

머리속에 이미 시상이 그려진 듯 멈춤 없이 자판을 두드려간다.

“다...썼어요.”

“그래? 그럼 한 번 낭독해 봐.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듯 읽어야 해. 알았지?”

아내가 그의 시를 어떡게 이어갔을까?

나 역시 빨리 듣고 싶다.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대여.

그대의 눈으로 나를 사랑해 줘요.

그대의 눈은 내 몸을... 더럽...힐 자격이 있습니다.

그대의 거친 눈으로 내 가슴을... 움켜 쥐고

그대의 뜨거운 눈물로 내 안을... 적셔주세요.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의 여자입니다.”

아내가 이런 시를 쓰다니 너무 놀랍다.

그는 어떡게 들었을까?

아내는 그의 반응이 궁금한지 그의 눈치를 살폈고 그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이 없다.

“어때요?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마음에 들어.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내용을 잘 이어갔어. 소질이 있는 거 같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걸?”

“정말이에요 선생님?”

아내는 자신이 저속한 표현을 썼다는 것도 잊은 채 그의 칭찬에 활짝 웃는다.

“잊었어? 나는 솔직한 사람이야. 마음에 없는 말 따윈 못 해.”

“고마워요 선생님. 선생님 덕분이에요.”

“이제 왜 내가 그런 모습으로 시를 쓰게 했는지 알겠나?”

“알 거 같아요. 선생님 말씀대로 부끄러움을 이겨내니까 평소에는 하지 못한 표현도 할 수 있었어요. 제 자신이 시의 화자인 음란한 여자가 되서 말하는 기분이었어요.”

“사람이 상상 만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 직접 사실과 가깝게 경험할 수록 표현은 한결 부드러워지지. 시 든 소설이든 마찬가지야. 수현이 너 오늘 큰 거 하나를 배워가는구나. 지금도 내 앞에서 옷 벗고 있는 게 부끄럽니?”

“지금은 좀 괜찮아 졌어요. 처음에는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애라 모르겠다~ 하고 다 드러 내 놓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럼 마법의 곳간이 열린건가?”

“뭐. 일단 선생님 눈에게 만은 그런 거 같네요.”

말이 많아진 걸 보니 아내의 긴장이 풀린 거 같다.

“그럼 이제 마지막 연을 추가해 마무리 지어 볼까? 마지막이니까 훨씬 강렬한 인상을 줘야겠지?”

“여기서 더 어떡게 강하게 하죠? 제 생각에는 지금도 충분히 강한 거 같은데요.”

“니가 말했 듯 이 시의 화자는 음란한 여자야. 너 자신이 그런 여자가 됐다고 생각해봐. 힌트를 주자면 마지막은 ‘그’라는 표현 대신 ‘그들’ 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면 좋을 거 같은데. 첫 줄을 내가 해 볼까?

내 육체 없이 살 수 없는 그대 들이여...”

그와 아내는 서로 내용을 번갈아가며 시를 지어 나갔고 아내의 약한 표현들은 그가 다시 고쳐주었다.

아내가 최종적으로 낭독한 내용은 이랬다.

“내 육체 없이 살 수 없는 그대 들이여

그대들의 눈으로 나를 윤간해줘요.

그대들의 눈은 내 속에 새 생명을 줄 자격이 있습니다.

그대들의 쾌락의 눈으로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그대들의 신선한 눈물로 내 안을 가득 채워 주세요.

내 속에 자라나는 새 생명은 당신들의 아이입니다.”

“드디어 우리의 첫 공동 작품이 완성 되었군. 어때 마음에 들어?”

“막상 쓸 때는 내용에만 신경 쓰며 정신없이 썼는데 다 써 놓고 보니 너무 야한 거 같아요.”

“시에 대한 해석은 읽는 사람들의 몫이야. 읽는 사람이 시의 화자를 음란한 여자로만 생각 한다면 음란한 시가 되는 거고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꽃으로 이해한다면 꽃씨를 받아 아름다운 꽃밭을 일구려는 꽃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거야.”

“이미 쓰여진 이상 시인의 의도는 의미가 없는 거군요.”

“내가 어떤 의미로 썼는지 설득할 필요 없어. 설득하려 들면 자기의 중심을 잃게 돼. 그들을 이해시키려는 순간 오히려 그들의 구미에 맞는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 정말 선생님한테 오기 잘 한 거 같아요. 앞으로는 선생님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의심하지 않을게요.”

“그 말은 앞으로 내가 하라는 대로 잘 따르겠다는 뜻인가?”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을 거 같은데요? 이미 부끄러운 곳까지 다 보여드렸는데 뭔 들 못 하겠어요? 말씀 잘 들을테니까 좋은 시인으로 만들어 주세요.”

아내는 이제 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긴장이 풀린 거 같다.

나는 아내의 목소리만 들어도 아내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아내는 자신이 나체라는 것도 잊은 채 그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힘을 많이 뺀 거 같은데 이제 공부는 그만하고 어제처럼 수다나 떨까?”

“그래요. 저도 선생님이랑 얘기하는 거 재미있어요. 어제처럼 재밌는 얘기 해 주세요. 근데 저 이제 옷 입어도 될까요?”

“왜? 아직도 내가 보는 게 불편해?”

“그런 게 아니라. 누가 들어 올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작업할 때는 집중하느라 괜찮았는데 창 밖으로 사람들 지나다니니까 자꾸 신경 쓰여서요.”

“특수 유리라 밖에서는 안 보이는 거 알잖아. 응큼한 남자라고 생각해도 할 수 없지만 나는 계속 수현이의 지금 모습을 눈에 담고 싶은데. 날 위해서 그냥 있어주면 안 될까?”

“알았어요. 선생님 말씀이니까 들어야죠. 대신 어제보다 더 재밌는 얘기 해주셔야 돼요. 알았죠?”

“그 전에 부탁이 하나 있는데.”

“어떤 부탁이요? 이젠 선생님이 부탁한다고 하면 겁 부터 나요.”

“수현이가 먼저 부끄러움을 이겨냈으니까 이번엔 내가 부끄러움을 이길 차례야.”

“설마. 선생님도 벗으시겠다는 건 아니죠? 안 그러셔도 돼요.”

“누드 비치에 가서 혼자만 안 벗고 있으면 예의가 아니지. 하하. 안 그래?”

“에이. 농담하신 거구나. 하마터면 속을 뻔 했어요.”

“내가 다 벗겠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것보다 더 부끄러운 부탁이야.”

“더 부끄러운 부탁이요?”

“사실은 나 아까부터 소변이 마려웠거든.”

“어머... 어떡해.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그래서 말인데 니가 도와주면 안 될까?”

“제가요?”

“수현이도 민망할 수 있지만 내가 더 부끄러운 일이...”

아내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답한다.

“할 게요. 어떡게 하면 되죠? 선생님 얼굴 지금 노랗게 변했어요.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어떡게 해야 되는지.”

“먼저 이불을 밑으로 내려 줘.”

“내렸어요. 이제 바지랑 속옷을 내리면... 서...선생님... 아...아니에요. 이제 뭘 하면 되죠?”

발기되어 힘차게 튕겨져 나오는 그의 물건을 보고 아내는 꽤나 놀란 표정이다.

“침대 밑에 보면 호수가 있어.  호수 끝에 밴드를 내 물건, 그러니까 귀두와 몸통이 만나는 부분에 연결해 줘.”

“이...이렇게요?”

“호수를 살짝 잡아 당겨서 밴드가 귀두에 밀착되게... 그래. 그렇게.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밴드 부분을 손으로 잡고 있어 줘.”

“잡았어요.”

“그렇게 말고 더 꽉 쥐어야 돼. 그래. 그대로 있어 줘.”

아내는 그의 팽창된 성기를  손에 쥔 채 고개를 돌렸고 그는 오래 참았는지 꽤 많은 양을 배설하고 마지막 한 방울을 내보낸 뒤 얼굴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사정을 한 순간처럼.

“다 됐어. 옆에 물티슈 보이지? 호수 뺄 때 튀기지 않게 조심하고 물티슈로 좀 닦아 줘.”

아내는 조심스럽게 호수를 빼 낸 뒤 그의 귀두를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 여전히 발기 해 있는 그의 물건에 옷을 입힌 뒤 이불로 덮어 주었다.

“처음이라 민망했을텐데. 고마워.”

“아니에요. 당연히 제가 도와야죠.”

“내 꼴이 참 한심하지? 불쌍한 장애인에게 봉사 했다고 생각해.”

“선생님이 왜 불쌍해요? 시도 멋지게 잘 쓰시고, 재밌는 이야기도 잘 하시고. 저 같이 예쁜 제자도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게 말 해주니 고맙네. 그리고 수현이 니 손 참 부드럽고 따뜻하더라.”

아내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게 느껴지세요?”

“불행인건지 다행인건지 얼굴 말고 유일하게 살아있는 감각이 성기 부분이야. 이불로 가려서 몰랐겠지만 너와 있는 내내 발기되 있었어.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오늘 아침엔 몽정까지 했어. 니 꿈을 꿨거든.”

아내의 얼굴이 더 붉어진다.

“저 때문에 선생님 힘드시겠다. 아무래도 옷 입어야겠어요.”

“잠깐. 그러지마. 너를 보며 발기되어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져. 그거 알아? 모든 감각이 죽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깨어날 때의 느낌. 그 때의 기쁨은 니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야. 그 기쁨을 내게서 뺏어가지 말아 줘.”

“하지만...”

“부탁이야. 내 성기가 살아있다고 해서 내가 너를 어떡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니 몸에 손가락 하나도 대지 못해.”

“선생님이 절 어떡게 할까봐 그러는게 아니라 선생님이 걱정되서 그러는 거에요. 지금도 힘드시잖아요.”

“내가 걱정된다면 차라리 조금만 더 만져 줘.”

“하지만...”

“제발. 조금 전에 느꼈던 니 손의 체온이 잊혀지지가 않아. 나에게는 그 따뜻한 체온마저 나눠줄 수 없는거니?”

“하지만 다시 제가 선생님을 만진다면 소변을 돕는 거랑은 달라요.”

“다르지 않아. 나를 돕는 건 마찬가지야.”

“정말 저를 힘들게 하시네요.”

“내 말 다 들어주겠다며. 조금 전에 니가 한 말이야. 잊었어?”

“우리 선생님을 어떡게 해야 할까. 휴~”

“알았어요. 그럼 조금만 더 만져 드릴게요. 이게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냥 니 손의 체온을 느끼게 해 주기만 하면 돼. 그거면 돼.”

아내는 다시 그의 바지와 팬티를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그의 물건이 발기 된 상태 그대로 힘차게 튕겨져 나온다.

아내는 신기한 듯 잠시 동안 멍하니 쳐다보더니 의자를 가져와 그의 물건 앞에 앉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그의 물건을 오른손으로 움켜 쥔다.

“제 손 느껴지세요?”

“느껴져. 따뜻하고 부드러워.”

“여기도 느낌이 오나요?”

아내가 그의 불알을 쓰다듬는다.

“거기도 느껴져.”

“그럼 여긴요?”

이번엔 아랫배를 건드려 본다.

“어디? 지금 어디를 만지고 있지?”

“아랫배 쪽이요.”

“아무 느낌이 없어.”

“지금은 허벅지 쪽이에요.”

“아무것도 안 느껴져.”

“참 희한하네요. 어떡게 여기만 느낌이 살아 있을 수 있죠?”

“나도 모르지. 신 만이 아실 거야.”

아내의 손이 다시 그의 물건을 움켜쥔다.

“제가 만지고 있으니까 좋으세요?”

“어. 너무 좋아. 너무 행복해. 수현이 넌 신이 내게 보내준 천사가 틀림없어. 이런 기쁨을 주시려고 그곳에 감각을 남겨주신 걸 거야.”

“운명이란 말씀인가요?”

“그렇지 운명이지.”

“여기 이 부분. 제가 돌아가면 다시 진정이 되나요?”

“아니. 안 그러던 걸. 아침에 몽정을 하고 나서 겨우 작아졌는데 니가 오고나서 또 이렇게 돼 버렸어.”

“그럼 하루 종일 이런 상태라구요?”

“어.”

“우리 선생님 어떡해. 힘드셨겠다. 그럼 오늘도 저 돌아가고 나서 힘드시겠네요.”

“어쩌겠어. 할 수 없지 뭐.”

“사정을 하면 괜찮아지긴 해요?”

“그런 거 같아. 왜? 해 줄려고?”

아내는 대답대신 그의 물건을 쥔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분 좋으세요?”

“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야.”

“아프진 않으세요?”

“괜찮으니까 계속 해줘.”

“제가 손으로는 처음하는 거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아내가 귀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손을 움직인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나자 그가 아내를 멈추게 한다.

“자...잠깐.”

“왜요? 나올 거 같아요?”

“그게 아니라. 조금 쓰라린 거 같아서.”

“어떡하죠? 그만 할까요?”

“아니야. 계속 해야지. 침을 좀 발라주면 괜찮을 거 같은데.”

“침을 요?”

아내가 귀두 위로 침을 뱉고는 손으로 문지른다.

“이렇게요?”

“조금 더 많아야 될 거 같은데. 그러지 말고 이왕이면 입으로 빨아주면 안 될까? 그러면 안 아플 거 같은데.”

아내가 그를 앙칼지게 흘겨본다.

“안 돼요. 하여간 남자들이란. 선생님도 여자가 입으로 해 주는 게 소원이에요?”

“그렇게만 해 준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지금 돌아가신다고 해도 못 해드려요. 생각만 해도 토할 거 같다구요.”

“그렇게 비위 상하는 일이야?”

“너무 섭섭해 하지 마세요. 우리 신랑도 못 해주는 거니까.”

“남편이 많이 섭섭하겠다.”

“어쩌겠어요. 그래도 전 죽어도 못 해요. 아 맞다. 잠시만요.”

아내는 가방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화장품 파우치에서 로션을 꺼내 가져온다.

로션을 그의 물건 주변으로 듬뿍 뿌린 뒤 다시 손을 움직인다.

“어때요. 이제 괜찮으시죠?”

“어. 기분도 훨씬 좋은데. 뭘 바른 거야?”

“로션이요. 얼굴에 바르는 거니까 선생님 피부에도 좋을 거에요.”

로션을 바르고 나니 아내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마치 실제 하는 것 같이 ‘뻑~뻑~’ 소리가 난다.

“기분이 이상해.”

“이상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느낌도 그렇고 소리도 그렇고 실제로 수현이 몸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야. 아래를 볼 수 없으니까 더 그런 느낌이 들어. 눈을 감고 수현이랑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어.”

“그러지 마세요.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저 까지 기분이 이상하잖아요.”

“내가 그런 상상하니까 기분 나빠?”

“그런 건 아니지만. 몰라요~ 자꾸 그러시면 저 그냥 갈 거에요.”

“알았어. 속으로만 생각할게.”

벌써 10분이 지났지만 그는 사정할 기미가 안 보인다.

아내는 힘이 드는지 손의 속도가 떨어졌고 결국에는 왼손으로 바꿔 쥐었다.

“와~ 이게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 아직 소식 없으세요?”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입으로 해주면 금방 사정 할 거 같은데.”

“안 된다고 했죠? 또 그러시면 저 진짜 집에 가요.”

“알았어. 알았다고. 가만 보면 수현이 너도 무서운 구석이 있어.”

“저 화나면 되게 무서워져요.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그...그래. 조금만 빠르게 해 줄래?”

“왜요? 나올 거 같아요? 휴지 준비할까요?”

“아...아니. 그대로 손 만 빠르게. 멈추지 마.”

“나올 때 꼭 말씀... 아~악. 엄마~ 어떡해.”

그의 정액이 마치 아내의 얼굴에 일부러 조준이라도 한 듯 힘껏 뿜어져 나왔다.

끈적이는 그의 씨앗들이 아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입술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는 만족스러운지 희열을 느끼며 천장을 바라봤고 아내는 정액으로 흥건한 오른손 대신 왼쪽 손등으로 입가에 매달린 씨앗들을 걷어 낸다.

그리고 말 없이 휴지를 빼서 자신의 얼굴과 손을 닦은 뒤 작아진 그의 물건도 깨끗하게 닦아 준다.

이어지는 침묵.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

둘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희열을 느끼는 그의 감정은 짐작할 수 있는데

아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궁금하다.

단지 불쌍한 장애인의 욕구를 해결해 줬다는, 잘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전부일까?

아니면 자신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본능이 깨어남을 느끼고 있을까?

그리고 아내는 오늘 일을 나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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