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6)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선생님 너무 하세요. 말도 없이 갑자기 그러시면 어떡해요.”

“미안. 나도 그렇게 갑자기 나올 줄 몰랐어.”

“일부러 말 안 하신 거 아니에요?”

“아...아니야. 좋은 기분을 깨기 싫어서 참아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 여자가 나를 그렇게 해 준 게 처음이었거든.”

“정말요? 그럼 지금까지는 어떡게 하셨어요? 그냥 참으신 거에요?”

“몽정만 했지. 니가 내 첫 여자야.”

“어~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상하잖아요. 첫 여자라뇨?”

“사실인 걸. 니가 처음으로 내 순결을 가져갔어. 비록 손이었지만. 남자의 순결을 빼앗은 기분이 어때? ”

“그만 하세요. 전 그냥 선생님 힘드실까봐 도와드린건데. 자꾸 그런식으로 말씀하시니까 기분이 이상하잖아요.”

“기분이 어떤데? 정복감 같은 게 느껴지나? 또 다른 남자를 정복해보고 싶지는 않아?”

“괜히 해 드렸나봐요. 자꾸 저만 이상한 여자 만드시구.”

“미안해. 대신 내가 감사의 의미로 선물 하나 할 게.”

“선물이요? 아니에요. 그런 거 바라고 한 것도 아닌데요.”

“그러지 말고 받아 줘. 안 받겠다고 하면 정말로 동정 받은 기분이 들어 버린다구. 내 마음을 좀 편하게 해 주면 안돼?”

“알았어요. 그럼 받을게요.”

“특별히 가지고 싶은 거 있어?”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선생님이 주고 싶은 걸로 주세요.”

“알았어. 안 그래도 수현이에게 사 주고 싶은 게 있었어.”

“뭔데요? 궁금해요.”

“티비~”

“네? 티비요?”

그가 티비라고 말하자 벽에 걸린 대형 티비의 전원이 켜진다.

“어머. 말로 하니까 켜지네요.”

“수현아. 이쪽으로 와서 내 침대 밑에 USB선을 노트북에 연결 해 주겠니?”

아내가 의자를 그의 머리 맡으로 옮긴 뒤 선을 찾아 노트북에 연결한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대로 조작을 하자 노트북의 화면이 티비로 보였다.

“인터넷 좀 열어 봐. 그리고 즐겨찾기에 보면 말이지...”

아내는 그의 손이 되어 노트북을 조작했고 그가 말한 사이트가 화면에 열렸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알고 있는 유명 성인용품 사이트였다.

“서...선생님. 여긴...”

“왜? 나는 이런 데 방문하면 안 되는 거야? 아이디랑 비번 불러줄테니 입력 해 줘.”

아내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로그인을 한다.

“저기 맨 위에 여성용 자위기구 클릭 해 봐.”

“네? 설마. 사주신다는 게.”

아내가 놀라서 그의 얼굴을 본다.

“왜? 갖고 싶어? 갖고 싶으면 사주고.”

“아...아니요.”

“빨리 클릭 해 봐.”

아내는 무안했는지 고개를 다시 티비로 향한 뒤 여성용 자위 기구를 클릭한다.

그러자 수 많은 딜도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어떤 건지 말 해줘.”

“서...선생님. 저는 이런 거 필요 없어요.”

“아직도 오해를 하고 있군. 수현이에게 사 주려는 게 아니야. 일 때문에 수현이의 의견이 필요해서 그래.”

“일이요?”

“사실 내가 부업을 좀 하고 있거든. 잡지에서 칼럼을 의뢰 받았는데  그게 결혼한 여자의 성에 관한 거야.”

“그런 것도 하세요?”

“왜? 난 그런 거 하면 안 돼?”

“아니요. 좀 의외라서요.”

“내가 쓰는 시들이 좀 관능적이거든. 그래서 그런 쪽으로 종종 의뢰가 들어와. 게네들은 내가 병신인 거 모르거든.”

실제 그가 불구라는 사실은 시인협회 내에서도 몇몇 사람들만 아는 내용이었다. 선생이 아내에게 이 일을 맡기면서 강조한 내용이 절대 비밀을 지켜달라는 거 였다. 시인은 실제 이름이 아닌 필명으로 활동 중이었고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아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고 했다. 선생은 시인이 3번 이나 죽으려는 시도를 했다고도 말 했는데 어떤 식으로 시도 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저 몸으로 어떡게 자살을 시도했을까?

혀라도 깨물었나?

말도 멀쩡히 잘 하는 걸로 봐서

그건 아닌 거 같다.

“그렇다고 그걸 하시겠다고 한 거에요?”

“어. 나도 남자야. 그런 쪽에 관심이 많다고. 시인이라고 뭐 고상하게 시만 쓰는 줄 알았어?”

“그런 건 아니지만...”

“미성년자도 아니고 알 거 다 아는 성인들끼리 사설은 그만 하고 일이나 하자고. 수현이 너 내 일 도와주러 온 거 맞지?”

“네.”

“그럼 어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봐.”

“저. 이런 거 잘 몰라요. 뭘 알아야 고르죠. 무슨 기준이 있나요?”

“내 정신 좀 보게. 상황 설명도 안 해주고 고르라고 했네. 내 말 잘 들어 봐. 지금의 너의 상황과 다를 거 없어. 너는 평범한 가정 주부인데 요즘 들어 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야. 그래서 처음 성인용품 사이트에 구경을 온 거지. 여성용 자위기구라고 쓰인 항목을 보고 클릭을 했어. 그래서 지금 보는 거 처럼 많은 물건들을 보게 돼. 왠지 하나를 사 보고 싶은데 이 중에서 고른다면 어떤 게 좋을까? 그리고 고른다면 고르게 된 이유를 내게 말 해 줘봐. 시간은 충분하니까 잘 모르겠으면 하나 씩 클릭해서 설명을 읽어 보고 골라도 돼.”

“그래도 밑에 페이지 수를 보니까 너무 많은 걸요.”

“그럼 다 볼 필요 없고 맨 위에 있는 베스트 상품들만 읽어보고 골라 봐. 그럼 어렵지 않겠지?”

아내는 마지못해 상품들을 하나 씩 클릭 해 가며 설명을 읽었다.

몇 몇 상품은 동영상으로 된 설명도 있었는데 꼼꼼하게 확인하라는 그의 성화에 보고 있기 민망한 영상들을 끝까지 다 봐야 했다. 뿐만 아니라 상품 후기까지도 읽어야 했는데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상품평 들 때문에 곤혹스러워 했다.

“어때? 뭐가 마음에 들어?”

“봐도 잘 모르겠어요. 저 한테는 다 혐오스러워 보이는 걸요. 저런 걸 어떡게 몸 속에 집어 넣어요.”

“후기 읽어 봤잖아. 써 본 사람들은 다 좋다고 하는 거 못 봤어? 너도 막상 써 보면 좋아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전 사양할래요.”

“그렇다면 방향을 좀 바꿔 보자. 니가 쓰려는 게 아니고 친구가 추천해달라고 한 거야. 너라면 어떤 걸 추천하겠니?”

“처음 사용하는 거라면 크고 무섭게 생긴 거 보다 기능은 적더라도 작은 걸 고를 거 같아요.”

“그럼 맨 마지막에 본 거?”

“네.”

“이유는?”

“말씀 드렸듯이 작으니까 덜 부담스러울 거 같아요.  모양도 귀엽게 생겼고.”

“저 정도 크기면 너어 봐도 괜찮겠다?”

“네?”

“너 말고 일반적인 여성의 시각으로 말이야.”

“네.”

“그럼 그걸 장바구니에 담아 줘.”

“사시려구요?”

“잡지사에서 요청 한 거야. 실제 구입해서 보여달라고.”

“네.”

“왜? 너 사주는 건 줄 알았는데 실망했어? 갖고 싶으면 말 해. 니 것도 하나 추가하면 되지 뭐.”

“아...아니에요. 저 진짜 필요 없어요.”

“알았어. 장바구니에 담았으면 왼쪽 메뉴에서 섹시 속옷을 클릭 해 봐. 그래. 잘 했어. 거기 맨 위에 보면 결혼하는 여성을 위한 란제리 세트 보이지? 그걸 클릭 해 봐.”

그가 말한 란제리 세트는 면사포를 쓴 외국 글래머 여성이 순백색의 코르셋과 티팬티 그리고 가터벨트와 스타킹을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여기서 이런 것도 파나 봐요.”

“어때? 마음에 들어?”

“예쁘긴 하네요. 신혼 여행 갈 때 가져가려고 사는 건 가 봐요?”

“내가 수현이에게 주려는 게 이거야.”

“네?”

“왜? 예쁘다며?”

“예쁘긴 한 데 저는 저런 팬티는 못 입어요. 예전에 호기심에 한 번 사서 입어 봤는데 너무 불편하더라구요. 한 5분인가 입고 있다가 바로 벗었어요.”

“걱정 마. 일반형이랑 티 형이랑 세트로 같이 오니까. 그럼 이것도 장바구니에 담아.”

“괜찮아요 선생님. 저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가격도 비싼걸요.”

“또 말 안 듣는다.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서 입으면 안 돼?”

“알았어요. 그럼 잘 입을게요. 저 보다 우리 신랑이 더 좋아하겠네요.”

사실이다.

사진 속의 모습으로 서 있는 아내를 생각하자 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그 모습 내가 먼저 보고 싶은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네? 네. 그러죠 뭐. 선생님 앞에서 이러고도 있는데요 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선생님은 이런 데 어떡게 아세요? 회원가입까지 돼 있으시던데 저 없을 때 다른 분이 해 주신 거에요?”

“나 혼자서도 인터넷 정도는 할 수 있어.”

“어떡게요? 아~ 아까처럼 음성인식 같은 걸로 하는구나.”

“그걸로는 한계가 있지. 마우스 역할 하는 장치를 입에 물고 하는 방법이 있는데 모습이 너무 추해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 혼자 있을 때만 하지.”

“그러셨구나. 그럼 다 사신건가요?”

“그래.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아내는 그가 불러주는 대로 결재를 한 뒤 그 사이트를 빠져 나왔고 거기까지가 오늘 내가 본 내용이다.

또 지랄 같은 손님이 찾아와서 응대를 하고 돌아오니 아내는 돌아가고 노파가 그의 곁에 있었다.

집에 돌아가 벨을 누르니 아내가 문을 열어 준다. 평소 같으면 반갑게 웃으며 맞이할 아내의 표정이 오늘은 왠지 어색해 보인다.

“어제는 내가 미안했어. 정말 반성 많이 했고 진심으로 사과할 게.”

“아니야. 오빠가 하루 이틀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대충 넘어가면 되는 건데 화 내서 미안 해.”

“아무튼 우리 이제 그런 일로 싸우지 말자. 알았지?”

“응.”

나는 일부러 오늘 일을 묻지 않았고 아내도 저녁 식사가 끝날 때 까지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묻지 않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아내가 슬며시 먼저 말을 꺼낸다.

“오빠. 오늘 일 안 궁금해?”

“궁금해.”

“근데 왜 안 물어 봐?”

“니가 무안해 할까 봐. 그리고 니가 어련히 알아서 잘 했을라구. 오빤 너 믿어.”

아내에게 있어서 믿는다는 말은 뭘 의미했던 걸까?

사실 난 별 의미 없이 내 뱉은 말이었는데

아내는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울먹거리기 시작하더니

끝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흑흑흑. 미안해. 오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미쳤었나봐.”

“무슨 일인데 그래? 오빤 다 이해하니까 얘기해봐. 너 한테 해 되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아.”

아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오늘 내가 본 내용들을 빠짐없이 다 털어 놓았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너무 불쌍했다고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해 버렸다고

자신을 자책했다.

그의 앞에서는 별일 아닌 듯 대범한 척 행동했지만

밀려오는 죄책감에 너무 힘들었다고

내 생각이 자꾸 나 괴로웠다고

그렇게 말 했다.

사실 내가 아내에게 묻지 못 하고 있었던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내가 날 속일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런데 아내는 역시 내가 알던 그 여자 그대로였다.

이렇게 여린 여자인데

나를 기다리는 내내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나는 아내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다독거렸다.

“난 또 뭐라고.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우리 수현이 오빠 때문에 걱정 많이 했구나. 괜찮아. 불쌍한 사람이잖아. 그냥 모른 채 했다면 오히려 오빠가 실망했을 거야.”

“미안해. 오빠에게 먼저 물어 봤어야 했는데. 흑흑.”

“그 상황에서 물어 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그 사람이 얼마나 무안하겠어. 넌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한거야.”

“정말 내가 잘 한 걸까?”

“그렇다니까. 난 니가 그 사람이랑 섹스를 했더라도 이해했을 거야. 너만 괜찮다면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말도 안 돼.”

“난 그 사람이 측은해 보여. 그 나이 먹도록 얼마나 힘들었겠니? 혹시 다음에 그 사람이 너랑 자고 싶고 말 하면 그렇게 해 줘. 전화해서 미리 물어 볼 필요도 없어. 단, 지금처럼 솔직하게 얘기만 해줘.”

“오빠. 왜 그래? 그럴 일 없다니까.”

“내 말 잘 들어 봐. 니가 전에 내게 그랬지? 여자는 남자와 달라서 사랑 없이 섹스만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내가 그런 여자들도 많다고 했더니 그런 여자도 있을 순 있겠지만 너는 아니라고 했어.”

“맞아.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어.”

“그런데 오늘 일을 봐. 그 사람이 불쌍해서 해 주고 싶었다면서. 너 그 사람 사랑하니?”

“말도 안 돼.”

“불쌍해서 돕고 싶었지?”

“응.”

“이건 마치 전쟁 중에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대신 젖을 물리는 거와 같아. 다른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고 니 아이에게 미안할 필요 없는 거라고. 넌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한 것 뿐이야.”

“하지만...”

나는 아내를 꼭 끌어 안았다.

“내 말은 니가 그 사람과 자더라도 이해할 수 있단 얘기야. 나에게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지금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마. 충분히 생각한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아.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알아. 오빠. 나도 오빠 사랑한단 말이야. 그리고 고마워. 날 이해해 줘서.”

“자. 그럼. 우리 아가씨 그만 울고 오빠랑 과일 좀 먹을까?”

“응. 조그만 기다려. 세수만 하고 금방 가져올게.”

아내는 눈물 때문에 촉촉히 젖은 눈으로 애써 웃어 보이며 욕실로 들어 갔다.

내가 이 여자를 어떡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내가 과일을 준비하는 동안 쇼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그런데 볼 게 없다.

“요즘 티비는 볼 게 없어. 맨날 그렇고 그런 드라마만 해 주고 말이야.”

“아. 맞다. 오빠. 나랑 영화 볼래?”

“무슨 영화?”

“오늘 선생님이 시간 날 때 보라면서 영화 한 편 주셨거든. 기다려 봐.”

아내는 과일을 테이블에 내려 논 뒤 방으로 가더니 USB메모리를 들고 나온다.

“제목이 뭔데? 재밌는 거야?”

“나도 몰라. 그냥 복사해 가라고 하셔서 가져왔는데 선생님이 추천 해 주신 거니까 시와 관련된 게 아닐까?”

나는 아내에게서 USB를 건내 받은 뒤 티비에 연결했다. 파일명을 보니 제목이 “The sessions “라고 돼있다.

“오빠. 세션이 무슨 뜻이야?”

“글쎄. 여러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어떤 걸 뜻하는지 모르겠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보기 시작했고 보는 내내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내가 티비를 끈 뒤에도 어색한 분위기는 계속 되었다.

아내는 당황한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난감했지만 아내의 민망함을 덜어주고자 먼저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야. 나는 저 장애인도 불쌍하지만 신부있잖아. 그 신부가 제일 불쌍한 거 같아. 자기도 여자랑 못 자는건 마찬가지인데 장애인은 허구헌 날 찾아 와서 고민을 털어 놓잖아. 자기가 여자랑 자는 얘기도 막 하고 말이야. 신부 입장에서 얼마나 애가 탔겠냐? 안 그래?”

“미안해. 오빠. 나 정말 이런 내용인 줄 몰랐어.”

“뭐가 미안해. 니가 미안할 게 뭐 있다고.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봤네. 이 영화 주인공 참 딱하지 않냐? 얼마나 여자랑 하고 싶었으면 저런 방법까지 동원했겠냐? 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너나 나는 정상적으로 태어났으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얼마든지 잘 수 있잖아. 그런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괴롭고 슬프겠니? 영화 속의 신부님이야 종교적인 의지로 자신이 선택한 거지만 장애인은 선택권이 없는 거잖아. 그나마 섹스 테라피스트라는 좋은 제도가 있어서 소원을 이루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선생님이 이런 영화를 보라고 할 줄은 몰랐어.”

“얼마나 간절했으면 너에게 이런 영화까지 추천 해 줬겠니. 뻔히 속 보이는 줄 알면서 말이야. 우리나라엔 영화에서 처럼 섹스 테라피스트 같은 것도 없잖아. 그 사람은 니가 그 역할을 해 주길 바라는 걸 거야.”

“오빠. 나는 영화에서 나온 그 여자가 아니야. 섹스 테라피스트는 더더욱 아니고.”

아내가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나까지 해 주라는 식으로 말하니까 더 머리 속이 복잡한 거 같다.

“너무 걱정하지마. 그냥 니가 해 줄 수 있는 선에서 도와주면 돼. 영화 속 섹스 테라피스트도 그 남자를 사랑해서 관계한 게 아니잖아. 일종의 도움의 방법일 뿐이야.”

“그래도...웁”

나는 아내의 입술을 덮쳤다.

“그 얘기는 그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 어때?”

나는 그의 몸 위에 올라가 엉덩이를 들썩이는 아내의 모습이 그려져 이미 물건이 팽창한 상태였고 소모적인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어차피 내 의견은 전달했고 결정은 아내가 하면 되는 것이다.

“오빠. 갑자기 그러면. 웁.”

“고민을 없에는 데는 몸을 바쁘게 하는 게 최고야. 그리고 나도 니 몸 보고싶어.”

가볍게 몸부림 치던 아내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아내는 내가 옷을 벗기기 편하게 몸을 움직여 줬고 팬티를 벗긴 뒤에도 불을 꺼 달라거나 다리를 꽈서 가리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은 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관찰할 수 있었고

우리는 뜨겁게 몸을 섞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기 전까지 나는 일부러 시인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얘기를 꺼냈다면 아내는 아마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했을 거다. 이를테면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던가 자기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던가 뭐 그런 반응 들 말이다.

그 대신 어제 밤 섹스가 너무 좋았다는 걸 많이 강조 했다.

“니 몸을 보면서 하니까 황홀했어" 라든가 “니 몸매에 빠져 눈을 뗄 수 없었어.” 같은 조금은 속 보이는 표현들.

다행인 건 그런 뻔한 칭찬을 아내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의 아부 때문인지 아내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였고 어제의 불안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아내의 모습을 체크한다.

아내는 오후에 그를 방문하기로 했는지 오전에는 청소와 빨래를 하고 선생이 빌려 준 시집을 읽었다.

마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낭송을 하듯 읽는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발음이 꼬이거나 어색할 때 마다 자신의 머리에 꿀밤을 주기도 하고 거울을 보며 서 있는 자세, 팔의 각도까지 체크해 나갔다.

아내 다운 모습이었다. 아내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집착하는 버릇이 있어서 늘 준비를 철저히 한다. 좋은 습관이긴 하지만 나는 그렇게 애 쓰는 아내를 볼 때 마다 측은하게 느껴진다.

시 낭송 놀이가 끝나고 간식을 준비한 뒤 아내가 티비를 켠다.

마땅히 볼 게 없는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한다.

몇 바퀴를 그렇게 돌리던 아내가 영화를 보려는지 멀티미디어 메뉴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제 나와 같이 봤던 “The sessions”를 재생시킨다.

아내는 어제 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섹스 테라피스트가 나오는 장면을 반복해서 시청했다.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아내가 그를 위해 준비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스포츠 경기의 빅 매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빨리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다. 긴장이 되서인지 점심도 잘 먹히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선수들이 입장하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훌리건처럼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봤다.

아내가 거울 앞에서 여러 옷들을 대보며 고민하고 있다.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옷을 고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해진다.

사실 평상시의 외출하기 전 모습과 다르지 않지만 오늘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내가 선택한 옷은 가슴 앞 쪽에 장식이 많이 달린 짙은 보라색 블라우스와 검정색 H라인 스커트였다.

오늘은 야하게 입고 오라고 하지 않았나?

조금 의외였다.

물론 H라인 스커트는 아내가 입으면 엉덩이 부분이 강조 되어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지만 길이가 무릎까지 내려와서 노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블라우스는 더 평범했다. 타이트하지 않고 앞쪽에 장식도 많아 아내의 매력적인 가슴 라인이 묻혀버렸다.

혹시 아내가 시인의 요구를 거부하기로 한 건가?

그 작자의 행태로 봐선 진도를 더 나가면 나갔지 이대로 멈출 사람이 아닌데.

그러는 사이 아내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입고 있던 옷을 벗는다.

그런데 속옷마저 벗어버린다.

속 옷까지 신경 써서 갈아입으려는 건가?

아니면 혹시?

아내는 아무것도 안 입은 채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다가 골라 논 옷을 입기 시작한다.

왜 어두운 색의 옷을 골랐는지 가슴 쪽을 왜 그렇게 가리려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속옷을 입지 않은 채 나가려는 것이다.

아내는 거울을 보며 몇 번을 확인 한 뒤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내의 뒤를 쫒고 싶다.

스타를 쫒는 사생팬처럼 아내의 사소한 모습도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난 티비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에 불과하고 지금은 광고 시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간식을 준비하는게 전부다.

오늘 따라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르고 내 속은 타 들어 간다.

그런데 도착할 시간이 한 참을 지나도록 아내가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벌써 예상 도착시간 보다 1시간이나 더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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