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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7 2.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기 (17/109)

00017  2.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기  =========================================================================

                                    

2.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기 4화 

 시장 안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떡볶이 재료를 산 후 부터는 발 걸을 빨리 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같은 골목에 사는 몇몇의 이웃들과 눈인사를 할 때마다 김현세를 생각하며 자위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귀밑이 빨갛게 물들며 심장이 멎는 듯한 긴장을 느꼈다. 

그녀들이 소곤거리며 지나갈 때는 꼭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빨리 했다. 추운 줄 모르고 종점 슈퍼 앞에 도착했을 때는 발 빠른 초등학생들의 얼굴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날씨가 많이 춥네요. 짜파케티 좀 주세요.”

 현숙은 슈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일부러 짜파케티는 시장 슈퍼에서 사지 않았다. 거기서 사면 개당 오십 원씩은 싼 가격에 살수 있으나, 골목 입구에 있는 종점 슈퍼에서도 조금은 팔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승혜 엄마 좋은 일 있나 벼 얼굴이 처녀처럼 뽀송뽀송하네. 몇 개나 줄까?”

 사십 대의 과부로 이남 일녀 중 막내 이름이 영이 이름을 붙여 영이네라고 부르는 그녀는 현숙의 옷차림새를 쳐다보며 실쭉 웃었다.  

 “조……좋은 일 이 있을 게 뭐가 있겠어요. 두 개만 주세요.”

 승혜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 속에 더듬거리며 돈을 꺼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자신이 김현세 집에 들어갔던 사실을 영이네 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눈은 못 속여. 근데 시방 어디 갔다 오능겨. 시장 같다 오는 옷차림은 아니고 말여.” 

 영이네는 거스름돈을 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현숙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시……시장에 같다 오는 길인데……”

 현숙은 그때서야 자신이 평소와 다르게 시장을 가면서 외출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가볍게 화장을 한 얼굴하며, 바바리코트를 입고, 늘 신고 다니는 랜드로바 대신 구두를 신은 모습은 자신이 생각해도 영락없이 외출하는 모습이었다. 

내……내가 미쳤나 봐.

괜스럽게 가슴이 떨려 오면서 김현세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의식중에 김현세를 생각하며 화장을 하고 바바리코트를 입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렇구먼. 근데 시장에선 뭘 그렇게 많이 사 온댜.”

 영이네의 시선이 이번에는 현숙이 들고 있는 비닐봉지 쪽으로 옮겨졌다.

 “마……많긴 뭐가 많아요. 갈치가 싸 길래 몇 마리 샀고. 두부 한 모하고 귤 몇 개 샀을 뿐인데. 우리 승혜 오는 거 안 봤죠.”

 “못 봤어. 쪼끔 있으면 오겠지 뭐! 어 승혜 아빠가 웬일여. 어디 아픈가?”

 “네?”

 현숙은 다시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영이네의 말대로 남편이 기운이 없는 얼굴로 힘없이 슈퍼 앞을 지나쳐 가는 게 보였다. 

 “자기 웬일이야, 어디 아파요?”

현숙은 이 시간에 남편이 퇴근을 할 리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에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남편인 기철 옆으로 가서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 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응.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기철은 바쁜 걸음으로 다가 오는 현숙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으응……시……시장에 이것 좀 사느라고. 근데 자긴 정말 왠일이대. 어디 아퍼? 꼭 아픈 사람 같네?”

 현숙은 과일 봉지를 들어 보이며 남편 기철의 팔짱을 꼭 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였다.  

 “이 여자가 갑자기 바람이 났나. 골목에서 왠 팔짱야.”

 기철이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몸을 움츠리면서도 오랜만에 아내가 팔짱을 끼니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피! 골목이 아니라 집 앞에서 팔짱을 끼면 어때?”

현숙은 그럴수록 기철의 팔짱을 꼭 끼며 의식적으로 경쾌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럴수록 남편에 대한 죄의식은 깊어만 갔다.

 “오늘 아침에는 해가 서쪽에서 떴나.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기철은 말은 그래도 과히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런 점이 또 현숙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생각해 보니까. 결혼 후에 이처럼 팔짱을 끼고 외출을 해 본적이 없었던 같았다.

 “자기, 얼굴이 많이 부은 것 같애. 병원에 가 봐야 되는 거 아냐?”

 현숙은 걸으면서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에 띄도록 얼굴이 부어 있었다. 몸살 기운이 역력했다. 남편은 가족을 위해 몸이 아픈 지도 모르고 회사에 출근 한 사이에 김현세에게 젖가슴을 허락했던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려고 했다. 남편이 눈치 첼까 봐 은근한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감기겠지 뭐! 그렇지 않아도 푸른 약국에서 감기약 지어 오는 길이니까. 약 먹고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기철은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겁고, 기운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에 조퇴를 한 것은 아랫배에 밀려오는 팽창감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가도 소변이 찔금찔금 나올 뿐 아랫배에 가득한 팽창감은 몸 전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감기 약 정도는 안될 것 같은데. 요즈음 감기는 약 갖고 안 된다구.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된대.”

 “점심 먹고 약 먹은 후에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 질 거야.”

 기철은 골목에 불어오는 바람에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아내의 얼굴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안돼. 점심 먹고 나하고 같이 병원에 같이 가 보자 응?”

 현숙은 마음속으로 울었다. 울면서 겉으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병원문 도 싫어하는 남편이 있다. 뭐가 부족하다고 김현세 같은 인간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는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기철은 일부러 명랑하게 대꾸하며 팔꿈치로 현숙의 젖가슴을 툭 쳤다. 모처럼 만에 결혼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면서 오늘 저녁에는 아내를 뜨겁게 사랑해 주어야 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이이가?”

 현숙은 기철이 일부러 젖가슴을 쳤다는 것을 알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김현세와 격렬하게 패팅한 것을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행이었다. 남편의 얼굴이 웃음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 보이는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포옥 내 쉬었다.

 “어어! 얼굴 빨개졌어?”

 “내……내가 언제 빨개졌다고 그래?”

 현숙은 기철의 농담 섞인 목소리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며  삼 층짜리 빌라 주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한 번 기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철이 빙긋이 웃어 보였다. 휴……하고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남편이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에는 남편의 건강이 아무래도 걱정스러웠다. 감기 몸살에 걸렸다고 해서 눈이 보일 정도로 얼굴이 부을 리는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

 “왜, 뽀뽀하고 싶냐?”

 기철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는 현숙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아프지 않게 찌르며 웃었다.

 “피. 해 달라고 할 때는 안 해주면서 생색내기는…… 과장님은 뭐래? 자기가 아파서 조퇴를 하겠다고 말하니까.”

 “빨리 퇴근해서 콩나물국 얼큰하게 끓여서 고춧가루 잔뜩 풀어서 먹은 다음에 땀 좀 빼라고 하더군.”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삼층에 이다. 현숙은 현관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슬쩍 쳐다보았다. 

휴……다행이네.

                        

 현숙은 금방이라도 김현세가 문을 열고 모습을 나타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지금까지와 는 다르게 잔뜩 굳은 얼굴로 가능한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자기 좋아하는 갈치 사 왔다.”

 현숙은 삼층까지 올라와서야 긴장에서 벗어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손지갑에서 키를 꺼내 열쇠 구멍에 집어넣고 지긋이 돌렸다. 딸깍 소리가 나면서 손잡이가 돌아갔다.

 “요즘 갈치 비싸잖아. 돈도 없을 텐데 뭐하러 샀어.”

 “나하고 승혜 때문에 자기가 너무 고생하는 거 같아서 큰 맘 먹고 샀지 뭐.”

 “난 괜찮으니까. 자기나 먹고 싶은 거 참지 말고 사 먹어.”

 현숙 뒤에 따라 들어가던 기철이 문을 잠그기 위해 등을 보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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