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33 3.그 여자들의 Y담 (33/109)

00033  3.그 여자들의 Y담  =========================================================================

                                    

3.그 여자들의 수다 2회 

“하하하, 전 유리 아빱니다. 저번에 학교에서 학부형 들 모임 때 커피 잘 얻어 마셨습니다.”

 “어머머, 그럼?”

 그때서야 그 잘생긴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와 박히더군. 하늘이 때문에 학교에 갔었던 적이 있었거든. 훗……그래 그때는 학부형이었지. 근데 하늘이하고 짝인 유리라는 여자 애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유리 아빠지 뭐니. 그때는 양복에 넥타이를 멘 정장 차림이어서 잘 몰라봤지 뭐니.

 커피를 사준 적이 있냐구? 후후 그게 아니고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자판기 커피 한잔 빼 준 적이 있는데 그걸 말하는 거였어.

 “바쁘지 않다면 그 때 마신 커피 대신 커피 한잔 대접 싶군요.”

 “커피를 요?”

 그 남자가 마치 친구 남편처럼 부드럽게 말하길래, 슬그머니 호감이 가는 거 있지. 그래서 하늘이 친구 아빤데 커피 한 잔 얻어 마셔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에 근처 커피숍으로 갔어.

 “하늘이 엄마는 바쁘신가 보죠. 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시는 걸 보면……”

 잘 모르는 남자하고 커피숍에서 할 이야기가 뭐 있겠니. 더구나 남편 때문에 기분도 과히 좋지 않은 형편에……자연스럽게 하늘이하고 유리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슬그머니 물었지.

 “하늘이는 엄마가 없습니다. 작년에 교통사고로 그만……”

 그 남자가 잠깐 창문을 보는가 했더니 쓸쓸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더라. 그러니 내가 얼마나 당황하고 미안했었겠니. 얼굴을 붉히면서 괜한 말을 꺼냈다고 사과를 했지.

 “하하하, 그렇다고 얼굴까지 붉히며 사과를 한다면 오히려 제가 몸들 바를 모르게 되잖아요. 모두 운명 아닙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슬퍼하고 있는 편은 아닙니다.”

 “그럼, 하늘이를 생각해서 재혼을 하지 그러셨어요.”

 그 남자? 뭐 이름이 뭐냐고……으……응. 재민씨야. 그래  다음부터는 그 남자를 재민 씨라고 불렀지. 좋아……너도 그게 좋을 거 같다면 지금부터도 재민 씨라고 부를게. 좌우지간 재민 씨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다시 그렇게 물었지.

 “하하, 물론 그 생각도 해 봤습니다만. 하늘이가 좀 더 철이 들 때까지 혼자 살기로 했습니다.”

 “어머머, 딸을 위해서……”

 난 그 말에 뽕 간 거 있지. 정말 요즘 남자들 치고 드문 남자 아니겠니. 요즘 남편들은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소리 죽여 웃는다고 하잖아. 새 장가 들게 됐다고 말야. 그래……그러니 너도 실속 차려. 괜히 요섭이 아빠만 믿고 살지 말고. 알았어 지방 방송 끄고……계속할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재민씨의 솔직하면서도 딸을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에 호감이 간 끝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점심때가 지났어. 

 “저, 지금 집에 가 봐야 하는데 한 시간 후며 하늘이가 집에 올 시간이거든요. 어머, 그러고 보니까 유리도 집에 올 시간이군요. 후후. 그러고 보니까 우린 공통적인 점이 있네요.”

 “저……이 근처에 칼국수 잘 하는 집이 있는데,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졌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한번 감동했지. 너도 알다시피 남자라는 동물이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칼국수 집 운운하겠니. 레스토랑이니, 카페니 하면서 어떡하면 분위기 있는 집으로 계집을 끌고 가서 한번 해 볼까 하고, 그 궁리만 하잖니.

 그래. 너 잘났다. 조금 전에만 해도 요섭이 아빠가 바람을 피우는 거 같다라고 오만상을 찌푸린 투정을 하더니. 뭐? 요섭이 아빠는 라면집으로 데리고 간다고?

 하여튼 재민씨의 솔직한 매력에 이끌려서 칼국수 집에를 갔어. 그리고 칼국수를 먹었지. 어디냐고?  너도 잘 알 꺼야. 로터리에 있는 에덴미용실 옆에 있는 명동 손칼국수라고, 그 집인데 칼국수보다는 싱싱한 배추 김치맛이 끝내 주더라.

 칼국수를 맛있게 먹은 다음이었어. 하늘이 아빠는 뭐 하시는 분이냐고 슬쩍 묻대, 그래서 재벌 회사의 홍보과장이라고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지 뭐. 솔직히 그때까지 같이 살고 있기는 했지만 감정 정리는 안되어 있는 편이잖아.

 “좋은 직장이군요. 전 인테리어를 하고 있습니다. 실내 쪽이 아니고 정원 쪽이죠. 네…… 조경을 말하는 거죠.”

 재민씨가 슬쩍 자기 직업을 말하고 나서, 다음 번에 다시 만날 수 있냐고 물었어. 순간 왜요?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하더군. 그 날이야 우연의 일치로 칼국수까지 먹게 되었지만, 다음에 굳이 약속 시간을 정해 두고 재민씨하고 만날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그때는 상황이 그렇게 흘렀어. 한마디로 뿌리 내리지 못하는 갈대 였지 뭐니. 무엇 보다 이중적인 성격을 소유한 남편에 비해,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는 점 때문인지도 몰라.

 “다른 뜻은 없습니다. 왠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음에는 정식으로 점심을 초대하고 싶군요.”

 어머머, 일맥상통이라는 말이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니. 나도 솔직히 재민씨하고 있는 시간 내내 남편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었잖니. 그래서 못 이기는 체 하고 허락을 했지 뭐니.

 이틀 후 였어.

 나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지. 재민씨를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즐거워지는 거 있지. 남편이 갑자기 표정이 변한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더군. 그래서 그냥 괜히 기분이 좋다고 말했지. 

 “그럼 자기 지난 일 다 잊어버리기로 했구나?”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내가 활짝 웃는 얼굴로 아침상을 차려 내는 것을 보고 그 인간이 그렇게 말하대. 그래서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지 뭐.

 자! 옷은 뭘 입고 나가지?

 나는 마치 첫 데이트를 앞둔 소녀처럼 설레는 기분으로 정성껏 화장을 했어. 그리고 옷장 문을 열어 놓고 재민씨의 스포티한 패션을 염두에 두고 청바지를 입고 가기로 했지.

 후후, 속 옷 말이니?

 란제리는 걸치지 않았어. 그냥 브래지어에다 미니로 된 얇은 면 팬티를 입었어. 그게 착용감이 좋잖니. 더구나 청바지 였으니까. 

 그렇게 입고 거울 앞에 서니까. 갑자기 내가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거 있지. 더구나 난 그때만 해도 생 머리였잖니. 뭐? 이십대 아가씨들이 다 죽었다고? 그래 네 멋대로 상상해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내 아니 서른 한 살이지만 아직 팽팽하다 뭐.

 그럼 젖가슴도 그때나 지금이나 탄력 있긴 마찬가지 야. 물론 젖꼭지는 그때처럼 앵두 빛이 감돌지는 않고, 약간 색이 바래긴 했지만 중요한 건 크기하고 탄력 아니겠니……뭐 공주병 이라고?

 후후후, 너 질투하는구나. 하지만 걱정하지마 아무리 잘 나가는 이혼녀라지만 요섭이 아빠 뺏지는 않을 테니까.

 만나기로 한 장소는 신촌에 있는 ‘궁전’ 이란 레스토랑이었어. 난 가 보지는 않았지만, 옥상에 집채만한 양주병이 서 있는 건물 지하니까 금방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군. 

 약속 시간이 열두 시 였으니까. 오분 전에 도착할 것을 염두에 두고 버스를 탔지. 그리고 궁전 앞에서 재민씨를 만난 거야. 그러니 얼마나 기쁘겠니. 더구나 그 사람도 오분 전에 도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집에서 출발했다는 거라니……

 우리는 마치 연인이나 된 것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궁전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그가 원하는 데로 밀실……밀실이라니까 좀 이상하다 애. 그냥 룸으로 된 테이블로 들어갔지 뭐니.

 사방이 막힌 룸 안에 단 둘이 앉아 있으니까, 괜히 가슴이 뛰면서 기분이 이상해지는 거 있지. 꼭 재민씨가 금방이라도 손목을 잡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은밀한 말을 속삭여 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구.

 스테이크하고 맥주를 시켰어. 근데 니가 알다시피 난 술 하고 거리가 멀잖니. 근데 그 날은 분위기가 쌈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재민씨가 권하는 데로 한 병이나 비웠다는 거 아니냐?

 후후후. 그래……응, 너도 그랬다고? 후후후. 그런 걸 보면 여자들이란 그저 분위기만 좋으면 이성을 잃어버리게 돼나 봐. 그치?

 “행복해 보이는군요.”

 하늘이와, 유리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이었어. 재민씨가 목소리를 내려 깔고 울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게 아니겠니.

 “그렇지도 않아요. 그렇게 보인다면 다행이구요.”

 나도 모르게 그의 목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쓸쓸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지. 그러면서 재민 씨 살던 유리 엄마는 짧은 생이었지만 행복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 

 “제가 괜한 말을 했군요. 전 수미씨 하고 같이 살고 있는 하늘이 아빠를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수미씨가 그렇게 대답하다니……정말 미안하게 됐군요.”

 “어머!”

 난 깜짝 놀랐어. 벌써 세 번째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응……그래, 너도 한번 생각해 봐. 만난 지 두 번 째 인데 세 번씩 아니 같은 생각에 젖어들 수 있다는 거 그건 굉장한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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