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89 14.변태 아내 (89/109)

00089  14.변태 아내  =========================================================================

                                    

14.변태 아내(4)

“난. 남자들은 별로 예요. 우리끼리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요.”

김영혜는 얼굴에 번지고 있던 비웃음을 지워 버렸다. 금방 표정을 바꾸고 설탕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김현미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언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아요. 하지만 전 레즈비언은 아니에요. 단순히 남자보다 여자가 더 편하게 느껴질 뿐이죠.”

“남자보다 여자가 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게 그거 아닌가요? 혹시 그것 때문에…….”

김현미는 음모가 한 가닥도 없는 그녀의 꽃잎을 생각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물론 예전에는 그 곳이 어린애 같다는 것 때문에 남자들을 기피 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병적으로 기피를 했던 것은 아니에요. 사랑을 하면 이해를 해 줄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

“그럼? 

“여고 일 학년 때 강간을 당한 적이 있어요. 그 뒤부터 남자들은 모두 강간범처럼 보이더라구요. 그 뿐이지 특별하게 남자들을 싫어 한 적은 없어요.”

김영혜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한 말투로 말하고 나서 썬텐용 의자에 걸터앉았다. 비치웨어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끌어 올리고 담배와 금장 라이터를 꺼냈다.

“강간을 당했다니 충격이 컸겠군요.”

김현미는 놀랐다는 얼굴로 말하며 그녀의 몸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흠 잡을 데 없는 몸매였다. 얼굴에도 구름 한 점 없는 이십대 중반의 맑고 성숙한 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가슴속에 그런 아픔이 담겨 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후후후……걱정 해 주지 않아도 돼요. 오래 전 일이니까요?”

김영혜는 소리 내어 웃고 나서 담배 불을 붙였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김현미 앞으로 담배 갑을 내밀어 보였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고 일이라면 한참 감수성에 예민할 때잖아요.”

김현미는 담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주는 담배는 피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담뱃갑에서 한가치를 빼면서 동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후!”

김영혜는 짤막하게 웃고 나서 도약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현미도 더 이상 그 점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도약대를 바라보며 의자에 누웠다.

도약대에 올라간 남자 중의 하나가 갈매기처럼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는 가 했더니 부드럽게 유영을 하며 풀장으로 낙화를 했다. 그 뒤를 이어 금목걸이는 두 손을 모아서 물속에 있는 고기를 잡는 물오리처럼 뛰어 들었다. 왕관 모양의 짧은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그는 곧장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사다리를 향해 천천히 헤엄쳐 나가고 있는 동료의 앞으로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동료를 향해 한 팔을 들어 보이고 나서 물개처럼 빠르게 헤엄쳐 나갔다.

물 밖으로 나간 그 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김현미와 김영혜를 향해 돌아섰다. 무인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조난자들처럼 두 팔로 커다랗게 원을 그려 보이며 가벼운 몸짓으로 뒤 돌아섰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강간당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에요.”

남자들이 호텔 쪽을 가로막고 있는 동백나무 울타리 뒤로 사라진 다음이었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서 연기를 내 품고 난 김영혜가 입을 열었다.

“강간을 한 남자를 잘 알고 있나 보죠?”

잘 알고 있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배신감 때문에 충격이 더 컸을 거라고 지례 짐작을 한 김현미가 물었다.

“후후후. 물론 그 남자는 잘 알고 있어요. 외사촌 오빠였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오빠에 대한 배신감 때문도 아니고 내 자신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에요.”

“영혜 씨 자신에 대한 배신감이라니?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군요.”

바람은 서늘했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러나 바닷물을 정화한 풀장 옆이라 그런지 햇볕이 따갑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김현미는 의자에 엎드려 누우면서 김영혜를 바라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외사촌 오빠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하는 배신감과 충격 때문에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죠. 하지만 정작 내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은 것은 그게 아니었어요. 이성을 잃어 버린 오빠가 클라이맥스에 도달 할 순간이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나도 모르게 오빠의 목을 껴 않고 같이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어요. 후후후.”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죠? 그럼 그 이전에 남자 경험이 있었나요?”

“남자의 손목도 잡아 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부모님 모르게 포르노를 봤다거나, 도색 잡지를 본 적도 없었어요. 말 그대로 이슬을 머금고 있는 백합꽃처럼 순백색을 간직하고 있는 처녀였어요.”

“영혜 씨의 경험이니까 당연히 믿어야 되겠죠. 하지만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언니야말로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 말이 믿어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사실이었으니까. 그 후부터는 먼저 접근 해 오는 남자는 무조건 거부를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한마디로 내 본능 속에 잠재되어 있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죠.”

김영혜는 비치웨어를 벗었다. 엎드려 누우면서 브래지어를 풀었다. 얼굴을 옆으로 눕히며 잠깐 동안 쓸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지워 버렸다.

“그렇군요…….”

김현미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남자 친구에게 처음으로 몸을 맡겼을 때를 생각했다.

재수생 시절 학원의 화장실에서였다. 그 어떤 일로 다른 수강생 들 보다 늦게 학원 문을 나설 때였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서 다시 학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녀 공용의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숨을 멈추었다. 호기심 서린 표정으로 발소리를 죽이고 화장실 문 앞으로 갔다. 그 순간 소리가 뚝 멈추면서 문이 열렸다. 놀랍게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민규의 모습이 나왔다.

“너 들었구나.”

민규의 얼굴은 매운 고추를 먹었을 때처럼 새빨갛게 일그러져 있었다.

“뭘?”

“다 들었으면서 내숭 떨래.”

민규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충혈 된 눈을 번뜩거리며 단번에 허리를 껴안았다. 순간 그의 심벌이 막대기처럼 굳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서 민규가 화장실 안에서 흘려보내던 소리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자위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 버렸다. 더 이상 생각 할 여유도 없이 그가 다짜고짜 스커트를 끌어 올리며 벽으로 밀어붙였다.

“여……여기서는 안 돼.”

무엇이 안 되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단단하게 나무처럼 딱딱한 남자의 고추가 얇은 면 팬티를 비집고 들어오지 못해 몸부림치는 것을 느끼며 무조건 소리쳤다. 그의 손이 입을 틀어막는 것을 느끼며 가슴을 떠밀었다.

“자……잠깐 만!”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그가 갑자기 축 늘어지는 가 했더니 팬티 앞부분이 축축하게 젖어 오는 것을 느꼈다. 화장실 안에서 거의 폭발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이……이런 난 몰라.”

나도 모르게 팬티의 삼각주 부분을 문질러 보았다. 풀 같은 것이 축축하게 묻어 있었다. 언뜻 남자의 정액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혹스러움과 수치스러움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미……미안해 닦아줄게.”

그때서야 이성을 찾은 민규가 당황한 얼굴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팬티에 묻어서 흘러내리는 그것을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나……나 몰라!

처음에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느라 민규가 손수건으로 내 거기를 문지르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이었을까. 맨살로 다가오는 축축한 감촉이 번져 갈수록 알 수 없는 쾌감이 아스라하게 밀려왔다. 눈을 뜨고 보니 민규의 눈동자도 변해 가고 있었다.

“지……지금 뭐 하는 거야?”

손수건으로 내 앞 부분을 문지르고 있는 민규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 눈빛이 노려보고 있는 곳은 나의 가장 소중한 거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위로 치켜 올라가 있던 스커트를 아래로 내리며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벽에 닿아서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옆으로 비켜서면서 민규를 밀어냈다.   

“널 사랑해. 난 항상 네 생각만 해 왔어.”

민규는 또다시 이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벌떡 일어서더니 허리를 껴안았다. 그의 심벌도 거짓말처럼 굳어 있었다. 한 손으로는 허리를 껴않고, 다른 한 손으로는 축축해 진 팬티를 벗기려고 허둥거렸다.

“미……민규야. 이러면 안 돼. 그럼 우린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잖아. 응 제발 이러지 마.”

“그……그럼 한번 만 만지게 해 줘. 부탁이야. 안 그러면 나 밖에 나가서 차도로 뛰어 들 거야. 죽어 버리고 말겠어.”

“안돼!”

“너 같으면 살 수 있겠어. 난 죽어 버릴 거야.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 내려 버리고 말겠어.”

민규의 얼굴은 비장해 보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유서라도 쓴다면, 나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그럼 내가 만져 줄게. 내가 그냥 네 것을 만져만 보는 거야.”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고 민망해서 떨쳐 버리고 싶었지만 민규가 죽어 버린 다는 말이 너무 무서워서 더 이상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만져만 본다고?”

“약속해 줘. 내가 만지는 대로 가만히 있겠다고.”

“그래. 약속할게.”

민규는 약속을 지켰다. 그의 약속이 고마워서 그가 손을 잡아 이끄는 데로 그의 팬티 속에 들어 있는 고추를 슬그머니 잡았다. 

어머!

민규의 가랑이 사이에 달려 있는 남자의 그것은 아이들의 고추가 아니었다. 단단하게 굳어 있는 나무토막 같은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깔딱거리고 있어서 무서웠다.

“이……이렇게 해 줘.”

민규가 내 손을 잡고 심벌을 흔들게 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을 느끼며 민규가 시키는 가만히 있었다. 민규가 거친 숨을 내쉬며 내 젖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내가 허리를 비틀며 심벌을 흔들고 있던 손을 놓으려고 하자 민규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더 빨리 흔들어 달라고 속삭였다. 

“그……그만 됐어!”

민규의 심벌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는가 했더니 벌떡 일어섰다. 나는 엉겁결에 얼른 손을 뗐다. 민규는 또 다시 헐떡거리며 심벌을 움켜쥐고 화장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그 사이에  소리를 죽여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학원을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민규도 학원에 나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거리나, 골목에서 얼굴을 봐도 슬그머니 외면을 하는 날 들이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규가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혼자 앉아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방으로 안내를 해 줬다.

“그 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 제발 용서 해 줘. 그리고 난 학원에 안 나가도 좋으니까 넌 학원에 나 가.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야 하잖아.”

그렇게 눈물로 사과를 하던 민규는 이듬해 보기 좋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지방 대학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운에 휩싸였다. 단순히 그 날 민규가 사과만 하고 돌아갔다면 대학에 들어갔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운명은 그렇게 순탄하지만 않았다. 그의 눈물이 너무 처절해 보여서 달래 준다는 것이 포옹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젖가슴을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 졌기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알몸으로 페팅을 해도 삽입만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커다란 뭉게구름 한 점이 흘러가면서 잠깐 햇살을 차단 시켰다. 기억 속에서 벗어난 김현미는 김영헤를 바라본다. 김영혜는 엎드려서 브래지어를 풀어 버리고 썬텐을 하고 있다. 풀어진 브래지어에 짓눌려 있는 김영혜의 젖가슴을 바라본다. 푸른 실핏줄이 터져 버릴 것 같은 풍만함을 자랑하고 있는 젖가슴이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언니도 브래지어를 풀지 그래요. 등에 끈 자국이 남잖아요.”

“난 괜찮아요…….”

김영혜가 레즈비언 일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을 하고 있을 때는 같이 자위를 했었다. 그러나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피에도 레즈비언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옷을 벗기가 싫었다. 가볍게 미소를 지어 주며 바다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동백나무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짓 푸른 빛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멀리 어선 몇 척이 파도가 출렁거릴 때마다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근무를 안 할 때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김현미가 김영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영화를 보거나 나이트클럽에 가요. 가끔은 승마를 하기도 해요. 물론 본격적인 승마라고는 볼 수 없지만 친구 부모님이 관광 승마장을 경영하고 계신 분이 있거든요……그리고 바닷가에 자주 가는 편이에요. 

수영을 하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하죠. 밤에 수영하는 것도 아주 좋아해요. 그밖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요. 집에서 뒹굴거나 여자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 밖에…….”

“나이트에 가고 싶군요.”

“나이트라면 언니가 머물고 있는 호텔의 나이트도 괜찮아요. 점잖은 손님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에요.”

“이쪽 보다 제주시 쪽에 좋은 나이트가 많다고 들었는데?”

“후후후. 물론 젊음을 즐기기에는 점잖은 손님들이 모이는 곳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제주시 쪽의 나이트가 좋죠. 언제 한번 같이 갈까요?”

김영혜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몇 번 눈을 깜박거리고 나서 다시 쓰고 엎드려 누운 자세로 담뱃갑을 끌어 당겼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 품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좋아요. 난 앞으로 남편의 모임에 동반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요. 언제 한번 구경 시켜 주세요.”

“그러죠. 이번 승선이 끝나면 모레쯤 가기로 하죠……언니는 참 좋은 사람 같아요. 아름답기도 하구요. 여자 인 제가 볼 때도 너무 아름다워요…….”

김영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내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김영혜의 말이 칭찬으로 들리기 보다는 유혹으로 들려 와서 김현미는 뭐라고 대꾸를 해야 좋을 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난 지금까지 언니처럼 지적인 미와, 섹시한 미를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어요.”

김영혜는 미소를 지었다.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잘 봐주니 고마워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렇게 좋은 여자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김현미는 긴장이 조금 풀리고 있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언니 같은 아내를 둔 남편께서는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남편 분도 언니만큼 좋은 분이실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내가 좋은 아내라고 생각 해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 분은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왜 자꾸 언니는 자신을 스스로 나쁘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은데.”

“남편은 나를 의해 많은 것을 하고 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나를 의해 노력을 하죠. 하지만 난 남편을 위해 해 주는 것이 없어요.”

“하지만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잖아요.”

“물론 난 남편을 끔찍이 사랑해요. 만약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면 난 벌써 이혼을 했을 거예요.”

“그럼 된 거잖아요. 세상에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경제적인 이유만 해도 그래요. 남편 없이 혼자 독립해서 살아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이혼을 하지 못하면서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들을 만나는 여자들이 흔해 빠졌죠.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언니 부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잖아요.”

“난 그 점은 이해 할 수 없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면서 억제 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다른 남자들을 만난다는 건 이해가 안 돼요. 싫으면 당장 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영혜가 손을 뻗어서 자신의 어깨를 쓰다듬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김현미가 말했다.

“그런 여자들의 남편은 아내를 이해 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언니는 다른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남편께 말을 하나요?”

“후후후. 아뇨. 말하지 않아요. 그냥 상상에 맡기는 편이죠.”

김현미는 김영혜의 손길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일어나 앉았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이 멀어져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거나 변하지는 않아요. 난 단순히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했을 뿐이지. 정신적인 사랑을 원하고 남자를 찾지는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내 이야기만 했군요. 영혜 씨는 결혼 안 하나요?”

“난 결혼하지 않아요. 독신녀로 살아도 인생을 얼마든지 재미있고 멋있게 살 수 있는데 왜 결혼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김영혜도 일어나 앉았다. 호텔 쪽을 등지고 브래지어를 했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풀장을 향해 돌아앉으며 갈망하는 시선으로 김현미를 바라보았다.

“결혼이라는 것이 반드시 재미와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서로 믿고 의지하며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며 사는데도 의미가 있잖아요. 또 침대 생활도 빠트릴 수는 없겠죠.”

“물론 그래요. 하지만 난 지금의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한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만약 결혼을 한다면 나이가 든 다음에 생각 볼 예정이에요.”  

“어떤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지 물어 봐도 될까요?”

바람이 불면서 유리 같은 풀장이 작은 파장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던 김현미는 김영혜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영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얀 피부에 긴 속눈썹을 깜박거리고 있는 김현미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나서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이런 것 때문에 결혼 할 생각이…….”

김현미는 자신의 두 눈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김영혜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여자와 침대에서 땀을 흘려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일이 더럽거나 추악하다는 느낌 때문은 아니다. 굳이 여자를 찾지 않아도 남자들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혜의 키스를 받고 나니까 가슴이 울렁거려 오는 것을 느끼며 뒤쪽으로 조금 물러 나 앉았다. 그대로 있으면 또 그녀의 품에 안겨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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