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8 15.남편의 친구를 탐하는 아내 =========================================================================
15.남편 친구를 탐하는 아내(4)
“세미나는 끝났습니다. 이왕 온 김에 제주의 풍습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머물고 있는 중이죠. 여길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지루하지 않습니까?”
“지루한 건 없어요. 지금 생각 같아서는 휴가 기간 내내 여기서 머문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김현미는 말을 끝내고 나서 김영혜의 얼굴을 떠 올렸다. 만약 그녀가 없다면 제주의 하루하루는 권태와 외로움에 짓눌려지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방갈로의 사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모습은 낮에 보지 못했다. 밤에 만났다가 밤에 헤어진 그였기 때문에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 있었다.
“하하하. 내가 알지 못하는 추억 꺼리를 만들고 있는 중인가 보군. 하지만 괜찮아. 나도 좋은 추억 꺼리를 만들고 있는 중이니까.”
남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 땄다. 담배 연기를 멋지게 내 품고 나서 김현미에게 의미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어느 때는 확실하게 이해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혼란 속에 빠질 때가 있어. 지금이 바로 그래. 부부가 휴가를 같이 왔으면 시간도 같이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데 가만히 보면 따로따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문요섭은 남편을 향해 입을 열었다가 말이 끝나고 나서는 김현미를 바라보았다.
김현미는 옆자리의 사내들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 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금방 얼굴이 빨개지면서 얼른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숨죽여 웃다가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 특별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때는 자유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거야. 결혼을 했고, 같이 휴가를 왔다고 해서 스물 네 시간 붙어 다니기에는 제주는 너무 좁아. 그리고 그래야 한다는 법칙은 없는 법이잖아. 안 그래. 여보?”
“후후후. 맞아요. 제가 한 마디 덧붙여 말하고 싶다면, 우리는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항상 같이 있다는 거죠. 전 지금까지 그런 기분을 버려 본 적은 없어요. 당신도 그렇죠?”
김현미가 햇볕이 부딪쳐 반짝이는 하얀 치아를 활짝 드러내며 물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육체가 같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난 두 분이 이 시대를 추월한 자유주의자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란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이를테면 말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사랑을 하고 있다지만 육체가 분리되어 있을 수 있다면…….”
문요섭은 입안에서 뱅뱅 돌고 있는 말을 결국하지 못했다. 그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래. 난 자네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지. 정신적으로는 사랑하고 있다지만 육체의 욕망에 휩싸이게 되면……그 뭐라고 말할까?……다른 사람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사람의 아름다움은 나 혼자 독차지 할 수 없는 거야. 자네 것이 될 수도 있고 내 것이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러나 그 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사람의 아름다움은 오직, 이 사람만 소유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럼.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도 김현미 씨한테 있다는 말이로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위험하다고 생각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난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조금 전 말에 덧붙여 말한다면 난 이 사람의 아름다움과, 성적인 매력을 독차지하려고 결혼 한 것이 아냐. 그런 모습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 한 것이지.”
“점점 미궁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군. 자네의 말뜻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듣기에는 김현미 씨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도 좋다는 말로 들리는군.”
문요섭은 씁쓰름한 미소를 지으면서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는 마실 때는 모르겠는데, 뒷맛은 좋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파전을 집어먹고 나서 빈 잔을 남편에게 돌렸다.
“바람을 피운다는 따위의 관념적인 말은 우리 부부 사이에 어울리지 않아. 인생은 길고 젊음은 짧아. 즉 좀 더 자유스러운 체험을 한 것뿐이니까. 자! 자네도 한 잔 들지.”
“자네 말은 내가 김현미 씨와 내가 관계를 맺는다 해도, 김현미 씨가 정신적으로 자네만 사랑하고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문요섭은 남편이 따라 주는 술을 받으면서 기가 막힌다는 목소리로 내 뱉았다. 이어서 이내 내 말이 너무 심했다면 이해 해 달라는 표정으로 김현미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건 나한테 묻지 말고 이 사람에게 묻는 것이 현명할 거야.”
남편은 문요섭의 말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큰 소리로 웃어 재꼈다.
김현미는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말을 인정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런 김현미의 얼굴을 바라보던 문요섭의 눈빛이 묘하게 비틀려 가고 있었다.
옥수수 막걸리는 마신 그들은 장터의 끝자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 곳에는 작은 포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사이 사에는 비치파라솔을 펴놓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 밑에는 하나 같이 밥상이나, 밥상 크기의 상자를 흰 천으로 덮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점쟁이들이 있었다.
“여보! 우리 심심풀이로 점 한 번 쳐 보실래요?”
김현미가 남편의 팔을 잡아당기며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저만큼 앞에 가고 있는 문요섭은 점쟁이들의 표정을 찍으려고 렌즈를 맞추고 있었다.
“좋지.”
남편은 김현미가 이끄는 대로 칠십 대 노파가 앉아 있는 포장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할머니 우리 점 좀 봐 주실래요?”
햇볕에 그을려 흑갈색을 뛰고 있는 노파의 이마에는 구리선을 붙여 놓은 것 같은 주름살이 지어 있었다. 반갑다는 얼굴로 웃는 노파의 입가에 있는 주름살이 부챗살처럼 펴지는 것을 바라보며 김현미가 말했다.
“복채는 만 원이요. 먼저 복채부터 내 놓으슈…….”
노파가 밥 상위에 흩어져 있던 쌀알을 한 곳으로 모으며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어요.”
김현미는 두 말 하지 않고 만 원짜리 한 장을 밥 상위에 올려놓았다. 옆자리의 포장 밑에 앉아 있는 노파가, 관심 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무시하고 노파를 바라보았다.
“두 분이 결혼 한 사이요?
“네. 제 남편입니다.”
노파는 짤막하게 묻고 나서 옻칠이 드문드문 벗겨진 밥상에 쌀 한줌을 던졌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집게손가락으로 쌀알을 한 개 씩 자신 앞으로 끌어 당겼다.
“신랑은 역마살이 끼었네…….”
노파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김현미는 어깨를 으쓱 거렸다. 이어서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며, 기가 막히게 찍어낸다고 속삭였다.
“속궁합은 좋아. 너무 좋아…….”
노파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남편이 코를 문지르면서 관심 이 간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너무 좋아도 탈이지. 좋은 것일수록 쉽게 싫증이 나는 법이거든…….”
김현미는 드디어 노파의 점이 틀려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긴장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애는 언제 생길 것 같습니까?”
남편이 그만 일어설 때가 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애는 지금도 없어. 앞으로도 없을 테고…….”
“그럼 뭐가 너무 좋아서 탈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노파의 점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김현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은 것일수록 아껴 써야 하는데. 좋다고 좋은 것만 찾게 되면 언젠가 싫증이 나는 법이지…….”
“그만 일어서지.”
김현미와 다르게 노파의 점을 단순히 흥미 삼아 듣고 있던 남편은 일어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해 줄 수 없나요. 복채는 더 드리겠어요.”
김현미는 만 원짜리 한 장을 밥상 위에 더 올려놓았다. 남편이 일어서서 문요섭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노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별 수가 나오는 군.”
노파는 금방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문요섭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잠깐 지켜 보다 가, 작은 목소리로 단정 짓듯 말했다.
“이별 수라니요? 후후후. 저 이와 내가 나이 차가 많이 나는걸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양인데, 우린 절대로 헤어 지지 않아요.”
“난 몰라. 용왕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가까운 시일 내에 이별 수가 있다고 말여.
“아! 맞어요. 우린 곧 헤어져야 해요.”
노파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김현미는 슬그머니 웃음을 감추었다. 그러다 휴가가 끝나면 남편이 프랑스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서야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 거렸다.
“내 말은 부부의 연이 끊어진다는 말여.”
“부부의 연이 끊어진다면 우리가 이혼이라도 한 단 말이에요?”
“부부의 연이 끊어지는 점괘는 그 것 밖에 없겠지.”
“후후후. 할머니의 용왕님은 그렇게 말씀하실지 몰라도. 제가 모시는 하느님은 그 반대로 말씀하고 계시네요.”
김현미는 더 이상 노파의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괜히 복채를 만원씩이나 더 줬다고 생각하며 노파에게 비웃음을 던지며 일어섰다. 그러나 노파는 담담한 얼굴로 쌀알을 하나하나 문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마른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 몇 올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홱 돌아서고 말았다.
호텔로 돌아 왔을 때는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남편은 침대에서 쉬고 있는 김현미의 손을 끌어당겨 일으켜 세웠다. 허브향기가 풍기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올렸다. 작고 아담한 귀가 투명하게 빛났다. 그녀의 턱을 가만히 들어 올려서 키스를 했다.
“베란다 끝까지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바다를 보자구.”
김현미가 양손으로 목을 휘감아 올 때였다. 슬립을 입은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슬쩍 움켜쥐고 난 남편이 말했다.
“벌써 어두워 졌어요. 보세요? 어선에 켜져 있는 집어등 밖에 보이지 않잖아요.”
김현미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편의 손을 잡아 당겼다. 자신의 허리를 감게 한 다음에. 그의 아랫배를 자신의 배로 지그시 눌렀다. 남편의 남편이 꿈틀거리는 감촉이 얇은 슬립 겉으로 금방 전해져 왔다. 손을 슬며시 내려서 꿈틀거리는 남편을 가만히 만졌다.
“시간은 많아.”
“그래요. 우리의 사랑이 존재하는 한 시간은 많아요.”
남편과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 왔던 김현미는 말을 해 놓고 나서 이내 후회를 했다. 슬쩍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바다를 보고 싶어서 안달 인 것 같았다. 그때서야 그의 허리를 감고 찰싹 안겨 든 몸짓으로 베란다로 쪽으로 갔다.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봇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김현미는 날리는 머리카락을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베란다난간에 기대어 섰다.
“파리에서는 이 시간에 뭘 했나요?”
호텔 앞의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파도가 꿈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김현미가 물었다.
“혼자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봤어. 가끔은 직원들과 카페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지.”
남편은 김현미의 허리를 감고 있는 손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슬슬 문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객실에서 빠져 나오는 불빛을 등으로 받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가끔 여자들과 데이트도 했겠죠?”
김현미가 보는 남편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였다. 사회적으로도 출세를 했고. 침대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성욕을 내 품는 남자였다. 그런가 하면 섹스 그 자체는 단순한 즐거움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섹스 그 자체보다는 정신적인 사랑을 중요시하는 관념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개방적이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느냐고 물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생활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의 여자들은 분위기가 없어.”
“그래도 침대에서는 적극적이잖아요. 그리고 당신은 침대에서 적극적인 여자를 좋아하잖아요.”
“물론 난 침대에서 내숭을 떠는 여자들은 싫어. 침대에서는 오직 두 가지 일밖에 할 일이 없어. 잠을 자거나…….”
“섹스를 하는 것. 그 두 가지겠죠?”
남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얼른 뒷말을 이은 김현미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남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쓰다듬어 주길 원했다. 그러나 남편은 옆구리 부분의 아랫배만 쓰다듬을 뿐 그 밑으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맞는 말이야. 침대에서 고상한 척 하는 여자는 정말 닭살이지.”
남편은 브라운색의 얇은 슬립 밑으로 김현미의 몸이 조금씩 뜨거워 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밑으로 손을 조금 내렸다. 비키니 팬티의 선이 있는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프랑스 여자들과 침대에 오른 적이 있었겠죠?”
김현미는 남편이 프랑스에서 삼 년 동안 혼자 지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남편은 젊었고, 젊은 만큼 성욕이 강했다. 당연히 많은 여자들과 섹스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갈아 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몇 몇의 여자들과 관계를 했어. 하지만 그녀들은 한 결같이 근육질이야. 당신처럼 여자다운 섬세함이 없어. 그리고 동양의 여자들처럼 남자가 해 주길 기다리고 있지 않아. 몸이 뜨거워지면 먼저 달려들어서 섹스를 하자고 보채곤 하지. 한마디로 늘 동등한 걸 원하는 여자들이야.”
“당신은 그렇게 해 주길 좋아하잖아요?”
김현미는 남편의 손을 밑으로 끌어내려서 가랑이 사이를 문지르게 했다. 그의 손이 팬티 라인 근처를 스쳐 가는 순간 엄청난 크기의 전율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단단해 보이는 턱하며 적당한 크기의 입술, 그리고 선이 곧은 콧날 은 역시 언제 보아도 미남형이었다.
“가끔은 그렇지만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지.”
“우리 그만 방으로 들어가요.”
남편의 손가락이 슬립 자락을 뒤집어쓴 채 팬티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을 느낀 김현미가 말했다.
“날 애무 해 주세요.”
침대에 누운 김현미는 반듯하게 누워서 그가 애무해 주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그녀의 슬립을 위로 걷어 올리고 곧장 젖가슴을 애무했다. 이어서 그녀가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바다처럼 꿈틀거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발가락부터 천천히 더듬어 올라가서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올 때서야 그녀를 일으켜 앉혔다. 김현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슬립과 팬티를 벗고 열광적으로 남편에게 안겨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극히 짧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가 하면. 영원히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시간이 급류처럼 흘러서 벌써 새벽이 저만큼 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은 프랑스에서 만난 여자들에게도 저 한태 애무를 하듯이 해 주었겠죠?”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편을 향해 몸을 옆으로 세우며 김현미가 물었다.
“당신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아직 본 적이 없어.”
“프랑스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잖아요?”
“하지만 그 여자들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잖아.”
“나는 당신을 이해해요. 그리고 당신이 프랑스에서 많은 여자들을 사랑 해 주었다고 해서
질투를 하지 않아요. 당신은 지금 제 곁에 있고.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부담감 갖지 말고 프랑스 여자들한테 어떻게 애무를 했는가 들려줄래요?”
김현미는 남편의 가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앞가슴에 수북하게 나 있는 털의 까칠까칠한 감촉이 기분 좋게 전해 져 오는 것을 느끼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별 수가 있다는 오일장의 노파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지워 버리고 남편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당신은 내가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변한 것 같군. 서울에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잖아.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 거지. 내가 침대에서 여자를 어떻게 애무해 주고, 어떠한 방법으로 만족 시켜 주는 지는 말을 안 해도 당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도 자꾸 묻는 것을 보니 이상하군. 설마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다른 남자를 열정 적으로 사랑 한 것은 아니겠지?”
김현미는 정열적이면서도 위험을 벗어 날 수 있는 여자다. 남편은 자신이 프랑스에 출장 가 있는 동안 그녀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자신도 프랑스에서 많은 여자들, 프랑스 여자는 물론이고 미국 여자를 비롯해서, 영국 여자, 그리고 일본 여자나 베트남 여자. 심지어는 아프리카에서 유학을 온 여자와도 한 동안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 뿐만 아니다. 한 동안은 서울에서 유학을 온 화가의 집에서 동거 아닌 동거도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현미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다. 김현미 역시 다른 남자와 섹스를 했다 해서 자신에 대한 사랑에 금이 갔을 거라고는 생각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번과 다르게 자꾸 여자관계를 묻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김현미의 사랑을 의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정색을 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상상에 맡기겠어요.”
김현미는 눈을 감았다. 카훼리호에서 만난 백일섭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실에서 했을 때보다는 화장실에서 했던 때가 훨씬 좋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간 남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갈로의 남자는 틀렸다. 그의 고독한 모습하며, 온 몸을 불태워 주는 테크닉은 신비롭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당신도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섹스가 남자의 전용물이라고 생각 해 본적은 없어. 남자가
섹스를 할 때 즐거워하듯이, 여자도 똑 같은 기쁨을 알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리도 당신은 진정으로 섹스의 즐거움과, 기쁨을 알고 있는 여자야. 내가 알고 있는 여자들, 그리고 내가 경험 해 본 여자들 중에 당신만큼 섹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여자가 없어. 그런데도 아직 부족한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