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3화. 이혼녀 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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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은경은 더 이상의 질문을 멈췄다. 그리고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여고동창생들처럼 다른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독사라고 불리던 교무주임의 이야기부터 고3때 담임 이야기 그리고 어느새 촌지를 받아먹던 국어선생이 현재 학교의 교감이 되었다는 소식을 이야기할 때 이르러서는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은경아.”
“응?”
“너 계속 그렇게 살 거야? 혼자인 채로···.”
“후후. 너무 많이 데여서 그래···. 당분간은 그냥 자유롭게 살래. 지금처럼.”
“그래···. 잠시만. 수다 떠느라구 커피 타오는 것도 잊어버렸다~. 너 온다고 해서 과일도 사놨는데~.”
호들갑을 떨던 정숙이 주방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며 은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편에 대한 추억들이었다. 아니 추억이라기 보단 이제 ‘추악한 기억’이 되어버린 과거의 악몽들이겠지만.
은경의 남편인 종국은 항상 자상한 남자였다. 다른 남편들은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을 집안 일들도 본인이 먼저 나서서 도와주곤 했고, 식사 후의 설거지나 분리수거 같은 잡일들은 항상 종국의 몫이었다.
“그 집 남편은 참 자상하기도 하지. 어떻게 그렇게 집사람한테 잘한대?”
주변 사람들은 좋은 남편을 두었다며 은경을 부러워했지만 비단 그들이 부러워해야할 것은 집안일만이 아니었다.
결혼 전 연애 경험이 많아서인지 종국은 침대 위에서 항상 최고의 테크닉으로 은경을 안달나게 하곤 했다.
항상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는 웬만한 남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우람한 체격을 자랑했고, 아랫도리에 달린 물건은 그보다 더 튼실했다.
가끔 밤새 실력을 뽐내며 달려드는 남편 때문에 은경은 잠자리에서 까무라칠만큼 몸을 푼 후 쓰러지곤 했고, 어떤 날에는 밤새 시달린 나머지 오후 늦게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정도였다.
남편이 도와주는 집안일을 부러워하는 이웃집 여자들의 질투 섞인 칭찬을 들으며 그녀는 밤새 있었던 남편과의 잠자리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었고, 신혼 시절의 짜릿한 밤들도 점점 두 사람의 사이에 사라지게 되었다.
종국은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생활을 시작한 촌놈이었다. 특히 은경과 처음으로 만나게 될 즈음에는 완전 촌뜨기나 다름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고지식하다며 비웃던 촌놈.
은경 역시 첫 만남에서 남편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다시 만나는 것을 꺼릴 정도로 남편은 은경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첫눈에 은경에게 반한 남편은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대쉬해왔고, 자신을 대하는 종국의 진심어린 태도와 오직 자기만을 사랑할 거라는 남편의, 수없이 반복되는 고백이 결국 굳은 믿음을 만들어주었고, 은경은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에 부모의 반대도 꽤 심각한 편이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촌놈에게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들의 반발.
하지만 은경이 고집을 부리며 종국과의 결혼을 고집하고, 수차례 집앞에 무릎을 꿇은 채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종국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부모들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런 연애 기간과 달리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꽤나 평탄한 편이었다.
종국이 반했던 은경의 매력적인 몸. 육체적인 매력이 넘치는 두 사람은 천생연분처럼 집안에서 뜨거운 시간을 가지곤 했다.
이제는 40대를 코앞에 둔 아줌마가 된 은경이었지만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원체 부지런한 편이라 남편처럼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인지 그녀의 뒷모습을 본 사람들은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보곤 했다. 물론 그런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자신의 몸매에 자신이 있는 은경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주변의 칭찬과 밤마다 절륜한 정력을 뽐내며 알몸이 되어 달려드는 남편 덕분에 은경은 즐거운 결혼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자기는 눈이 예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눈매를 가졌어.”
종국은 은경에게 적당히 까무잡잡한 피부와 선한 눈매가 매력 포인트라는 말을 했다.
날씬한 체형과 몸에 비해 긴 다리. 운동으로 다져진 군살 없는 몸매의 그녀를 보며 마치 흑진주 같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결국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됐지만···.
얇고 긴 입술. 조금 큰 입 크기를 가진 은경의 입술을 보면 항상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까만 피부이지만 청순하고 기품이 넘친다는 느낌을 주는 은경의 입술.
종국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마치 정해놓은 퇴근인사를 하는 것처럼 은경의 몸을 잡아당겨 입맞춤을 한 뒤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 침실로 향하곤 했다.
살짝 매부리코 느낌이 드는 은경의 콧대 역시 종국의 칭찬거리 중 하나였다. 앞으로 튀어나온 코가 오히려 얼굴의 중심을 잘 잡아줘서 그녀를 섹시하게 보인다는 말도 그가 자주하는 말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금슬 좋은 부부로 지내길 5년, 10년이 지나면서 둘 사이에 조금씩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자수성가해 사업을 시작한 종국.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부동산업에 가까웠다.
신혼 초기에 은행 대출 등으로 무리를 하면서까지 사놓았던 땅들이 정부의 재개발 시책과 더불어 금싸라기 땅으로 분류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건물 몇 채를 소유한 건물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형편이 나아질수록 두 사람 사이의 균열도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
종국은 더 이상 가난한 시골 출신의 무지렁이가 아니었고, 과거 수차례 무릎을 꿇어가면서까지 은경의 부모에게 그녀를 달라고 졸랐던 사람도 아니었다.
마치 그런 일들은 모두 잊어버렸다는 듯 은경을 홀로 남겨둔 채 밖으로 나돌았고, 결국 몇 년 후 사회 초년생인 여비서와 바람이 나면서 그녀는 버려지듯 합의 이혼을 하게 되었다. 아니 합의 이혼을 당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녀 역시 종국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진 않았다. 특히 남편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돌아섰다는 것을 알게되면서부터 은경의 마음 역시 싸늘하게 굳어져만 갔다.
이혼 후 1년의 세월.
은경은 그렇게 외로운 이혼녀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혼을 하면서 종국에게 받은 건물이었는데 건물 입대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결혼때보다 오히려 더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한강 이북의 땅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무실들이 밀집되어 있는 번화가 근처의 땅. 입주할 사람을 구하기도 쉬웠고, 어느 순간부터 관리를 해줄 부동산을 구하게 되면서 은경이 신경쓸 일도 줄어들었다. 그저 달마다 나오는 임대료를 받아서 생활해도 충분히 부유하게 된 그녀.
뒷바라지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입대업을 한다고 해서 빌딩에 하루종일 붙어있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부터 연락이 끊긴 예전 친구들.
그녀들과 만나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저 함께 앉아 커피 한 잔과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은경은 행복했다.
조금씩 스케일이 커져가면서 수차례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몸을 관리하는 운동 숫자도 늘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