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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정말로 날 좋아하는 거 아닐까?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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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정말로 날 좋아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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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표정은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다 안다는 얼굴이었다. 

네가 저녁에 방문을 잠궈놓고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고있다는 표정.

요즘들어 예전보다 훨씬 더 두루마리 휴지를 자주 갈아대는 이유가 뭔지 안다는 표정.

앙큼하게 내 친구를 상상하면서 자위를 해? 엄마가 모를 줄 알아?

용준을 바라보는 정숙의 표정은 그런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용준은 속으로 당황했지만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면서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는 애교까지 떨어대면서.

“에이~ 그래도 울 엄마가 더 예쁘지~.”

“어머? 거짓말까지 하네?”

“아직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할 나이에요. 그러니까 장난 그만 쳐.”

“치이. 너무 속 보였나? 어쨌든 은경이 아줌마랑 친하게 지내. 엄마 고등학생 때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니까.”

“그래? 근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한 거야?”

“오랜만에? 그치···. 참 오랜만이지. 은경이랑 이렇게 본 것도. 이야기를 한 것도.”

“아줌마 그동안 외국 가 있었어?”

“그런 건 아니구···. 잠시 사정이 있었어.”

“오랫동안 연락 못 할 사정?”

정숙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듯 했지만 용준은 그저 방금 전까지 자기를 몰아세우던 엄마의 목소리가 잦아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더 몰아붙였으면 은경에게 ‘관심이 있다’ 정도는 털어놓을 뻔 했을 정도로 용준은 아직 순진한 재수생이었다.

“은경이가 남편이랑 이혼했거든. 혼자서 살다 보니까 외로워서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거야. 우연찮게 엄마랑 만나서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알아? 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 솔로다 보니까 그런 거야. 아들, 네가 이해 좀 해주라. 알겠지?”

“알았어요···.”

대화를 마친 용준은 몇 번 더 장난을 치는 엄마를 떼어놓고 방으로 돌아왔다. 정숙은 재미를 붙였는지 TV에 나오는 예쁜 여자 탤런트와 자기 중 어느 쪽이 더 예쁘냐면서 장난을 쳤는데 그런 엄마를 뗴어놓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샤워를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용준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흠뻑 젖어있는 은경의 팬티를 집어들었을 때 손끝으로 느껴지던 감촉.

그것은 축축하게 젖어있다는 끈적함보단 촉촉하고 생기 넘치는 매끈함 같은, 더 기분 좋은 느낌이 컸다. 

가끔씩 은경과 집에서 마주칠 때가 있긴 했다. 그리고 그 날 밤이면 방문을 잠근 용준은 어김없이 은경을 생각하며 자위를 했었다. 그런 기억이 다시 떠오르지 어느새 용준은 책상 앞에 앉아서 두루마리 휴지에 손을 뻗고 있었다.

다음 날. 그 날따라 학원 선생이 휴강을 한데다 체육 입시학원의 수업도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용준은 집으로 빨리 돌아왔다. 그런 용준를 엄마인 정숙 대신 반겨준 사람이 있었다.

“아··· 아줌마···. 우리 집에 어떻게···.”

“어머? 지난번에 말했잖아? 나도 너희집 비밀번호 알고있는 거. 근데 아침에 엄마가 말 안 했니? 오늘 나 집에 오는 거.”

“아니요···.”

“그래. 어쨌든 오늘도 잘 부탁해.”

하늘색의 나시 티셔츠. 목부분이 깊게 파이지 않아서 그녀의 도드라지는 가슴 크기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스커트는 꽤나 짧은 편이었다. 

무릎 위로도 몇십 센티는 족히 올라올만한 감색 빨간 스커트를 입은 은경의 허벅지와 종아리는 용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길게 뻗은 다리를 접으며 소파에 앉은 후 다시 꼬을 때면 용준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허벅지에 눈이 갔다.

운동으로 다져진 군살 하나 없는 허벅지. 매끈하면서 알통도 보이지 않는 종아리는 더더욱 보기 좋았다. 

얇은 발목 때문에 조금 두꺼워 보이긴 했지만 키에 비해 길게 뻗은 종아리와 허벅지의 곡선은 계속해서 남자의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용준아, 여자친구 있니?”

“아니요. 근데···. 지난번에 물어보셨어요.”

“그래? 후후. 그 사이 여친이 생겼을지도 모르잖아? 너처럼 잘생기고 키도 큰 애한텐.”

“······.”

‘잘생기고 키도 큰’이라는 말을 할 때 용준은 은경의 눈빛이 번쩍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은경의 옆자리에 앉고 말았다.

“재수생활 힘들지?”

“네···. 하지만 제가 선택한 건데요 뭐.”

“그래? 용준이가 생각보다 많이 성숙하구나? 세상에 어느 재수생이 이런 식으로 말하겠어.”

“네? 아니에요. 그런 거···.”

“어머, 겸손하기까지 하네? 근데 요줌 여자애들 참 멍청하다. 우리 용준이 같이 말끔한 애를 놔두고.”

칭찬이 계속되자 용준의 얼굴은 빨개졌지만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아줌마, 정말로 날 좋아하는 거 아닐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잠시 후 엄마의 전화가 왔고, 밤늦게 온다면서 용준의 밥을 차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은경은 그 소식을 전하며 은근슬쩍 제안을 했다.

“치킨 어때? 맥주도 한 캔 하구.”

“치맥이요? 좋죠.”

술을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역시 치킨에는 콜라보단 맥주였다.

얼마 후 양념후라이드 반반 치킨이 페트병에 든 생맥주와 함께 도착했고, 두 사람은 여전히 거실에 앉은 채로 치킨을 뜯었다.

“학원 얘기 좀 해줘봐.”

치킨을 사준 댓가라고 생각하며 용준은 학원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수업 내용 같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던 용준이었지만 학원의 커플 얘기를 물어보는 은경 때문에 시작한 이야기들은 배달 온 생맥주를 모두 비운 후 주방 창고에 있는 캔맥주를 몇 캔 비운 후에 이르러서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로 발전해갔다.

“어머? 정말? 임신을 하긴 했구나?”

학원의 소문난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이르러서 관심을 가졌는지 은경의 눈이 반짝거렸다.

용준이 들어오기 몇 달 전부터 다니던 커플.

학기 초부터 함께 학원을 다녔던 두 사람은 처음엔 친구로 지내다가 커플로 발전했다. 그리고 뒤늦게 불붙은 두 사람의 애정행각은 다른 재수생들의 눈총을 받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수업시간 내내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뒤켠에 자리를 잡고 가끔씩 쪽쪽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입맞춤을 해대던 커플들.

그리고 지난 달에 이르러서 두 사람은 사고를 쳤다.

평소에도 수업이 끝난 후 근처 모텔에 들어간다든지 자취를 한다고 알려진 여학생의 집에 가는 건 학원생들 눈에도 많이 띄었지만 정말로 임신을 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여학생은 아이를 낳기로 하고 학원을 관뒀고, 남학생은 얼마 후 학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다. 

얼마 전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결말도 결코 깔끔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어머머. 세상에···.” 

자기 이야기에 ‘어머’ 소리를 내면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릴 듯 물기에 젖기도 하는 은경의 반응. 

용준은 그런 은경의 반응에 은근히 신이 나서 다른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대부분 은경이 관심을 갖는 학원커플들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때쯤 용준이 고개를 은경쪽으로 돌렸을 때 자신의 얼굴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은경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용준아.”

“네?”

“네 이상형은 어떤 여자야?”

용준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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