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4화. 가터벨트 입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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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은경에게 고백을 해버린 꼴이 되어버린 용준은 그저 속이 답답했다.
제대로 된 고백도 아니고, 그렇다고 야한 섹드립도 아닌 그저 멍청하고 어설퍼 보이는 제안이 되어버린 첫 번째 고백.
은경이 전화를 꺼버린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용준은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인생 최악의 기억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말 아침부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누워있는 용준의 핸드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용준아, 자니?]
[아니요!]
은경의 문자메시지. 용준은 창피한 기억도 잊은 채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히려 은경의 다음 메시지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나 옷 사려고 하는데 이 거 어때?]
몸을 가린 부분보다 맨살이 드러난 부분이 많은 검은색 브래지어와 가터벨트.
용준은 종아리와 허벅지까지 연결된 스타킹과 끝부분의 벨트가 팬티 아랫부분에 닿는 속옷을 입은 모델을 보자 속으로 터져나오는 숨을 참아내며 다시 문자를 보냈다.
[사진 잘못 보낸 거 아니에요?]
[맞는데?ㅎㅎ 어제 인터넷 쇼핑몰 뒤지다가 찾아낸 건데 한 벌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당연하죠!]
문자를 보내고 곧바로 후회했다.
빠른 답장을 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문자메시지 속 사진에 보이는 모델의 몸을 순간 은경의 보기좋은 섹시한 몸매와 착각했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이 옷을 입은 모습을 꼭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리고 그 옷을 자기 손으로 벗겨줄 수 있다면···?
순진한 스무살 재수생의 상상은 끝이 없었다.
다음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는 잠시 뜸을 들였다.
분명히 자신에게 원하는 대답이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해야 은경이 아줌마가 만족할까? 그리고 조금 더 능숙하게 보일까? 스무 살은 아니더라도 스물다섯 살쯤 되어보이는 성숙함 말이다.
[직접 착용한 걸 보내주셔야죠. 옷만 봐서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입은 모습을 말하는 거니? 너 응큼하다. 대놓고 그런 말을ㅎㅎㅎ]
[사진 보내주세요~ 네? 은경씨~]
[ㅎㅎㅎㅎ]
조심스럽게 호칭을 바꿔보기로 했다. 은경이 아줌마보다는 ‘은경씨’가 더 듣기 좋겠지.
[그럼 다른 거 봐줄래? 티셔츠도 한 벌 골랐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보내주세용~]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찍은 은경의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을 확대해서 본 용준은 또 한 번 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자기가 침을 삼켰는지 침을 흘렸는지 은경이 절대 모름에도 불구하고.
통이 넓은 라운드형 티셔츠. 하지만 불룩 튀어나온 은경의 가슴은 충분히 확인되었고, 허리 부분도 펑퍼짐하지만 충분히 몸매의 윤곽을 알아챌 수 있는 옷이었다.
최고의 성형수술은 다이어트라는 말을 떠올렸다. 평소에 운동을 하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몸.
특히나 자기 엄마와 동갑인 은경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용준 또래의 여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용준의 손. 이번엔 거침없이 자기 마음을 표현했다.
[아···. 정말 대박이다! 은경씨 몸매 진짜 대박이에요!]
[정말? 티셔츠 예뻐?]
[원래는 섹시하신데 노란색 티셔츠를 입으시니까 병아리 같아요. 사랑스럽고 귀여운 병아리. 앞으로 은경 병아리라고 불러도 돼요? 너무 귀여워요.]
[너~ 아줌마 놀라면 혼난다. 담에 만나면 꿀밤줄거야. 꽁~ 하고.]
[ㅎㅎ 사실인 걸요 뭐. 때리시면 얼마든지 맞아드릴게요. 대신 티셔츠 꼭 입고 오셔야 돼요?]
대화가 이어질수록 은경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델이 입은 가터벨트 사진을 보냈던 은경이었지만 끈질기면서도 순진한 티가 나는 용준의 설득과 요구가 즐거웠는지 결국 은경은 또 다른 옷을 입은 사진을 보냈다.
[이 옷도 대박이네요. 옷걸이가 예술이니까 옷도 예뻐보이나 봐요^^]
이번에 은경이 보낸 사진은 스키니 진.
젊은 여성들 중에서도 각선미나 엉덩이 라인이 뛰어나야 옷태가 나는 바지.
키에 비해 길게 뻗은 은경의 다리 라인과 살짝 드러난 발목. 그 밑에 신은 스니커즈까지, 얼핏 보면 용준보다 네다섯 살이 많은 누나로 보이는 멋진 몸매였다. 용준은 또 한 번 속으로 감탄을 하면서 칭찬을 이어갔다.
[대박! 대박! 대박이에요! 은경씨, 사진 더 보내주세요~]
[잠시만.]
핸드폰이 울렸다. 은경의 전화였다.
“용준아, 지금 바쁘니?”
“아니요. 방금 전까지 은경씨랑 문자하고 있었잖아요? 시간 많아요.”
“근데···. 용준아.”
“네.”
“너 지금 공부해야 되는 시기잖아. 휴일이라고 막 놀면 안 돼. 아줌마가 하는 말 기분 나쁘게 듣지말구.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그리구 너···.”
“······.”
“왜 계속 아줌마를 은경씨라고 부르니?”
“네? 그건···.”
“아무리 그래두 난 네 엄마 친구잖아. 아줌말 그렇게 부르면 되겠어?”
“뭐가 어때서요? 지금 우린 엄마랑 상관없는 얘길 하고 있잖아요. 그리구 은경씨라고 부르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그건 아니지만···.”
용준의 대답이 적절해서인지 은경쪽에서 오히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미안해. 아줌마가 너 공부하는데 괜히 전화를 해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오히려 아줌마랑 전화통화를 하니까 머릿속도 상쾌해지고, 공부 열심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정말이니?”
시무룩해졌던 은경의 목소리가 잠시 활기를 되찾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다시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은경은 용준에게 또래 여학생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고, 용준의 대답은 이전과 같았다. 그리고 다시 솔직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용준인 공부하느라 이성관계 같은 거 생각 안 하겠구나? 아줌만 너 볼 때마다 참 착실하고 성실하다는 생각 들던데.”
“과찬이세요. 저 사실은 공부, 그렇게 열심히 안 해요. 지금도 아줌마랑 전화하면서 놀고있잖아요.”
착실하고 성실한 재수생? 그딴 건 세상에 없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금 은경의 문자메시지를 살펴보았다.
검은색 브래지어 그리고 가터벨트.
아무런 무늬가 없는 속옷들이라서 오히려 심플하고 세련돼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속옷 사진의 다음 사진으로 보낸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은경의 사진을 본 순간, 용준은 잠시 가터벨트를 찬 채로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은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채 순진한 표정을 짓고있는 은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브래지어와 가터벨트를 한 섹시한 모습이 되어 자신을 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빨리 달려와서 자기를 안아달라고 하는 듯한 은경의 모습 말이다.
“아줌마···.”
용준은 그 때까지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한 구석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
어느 순간부터 은경을 생각하면 항상 집어들던 자유의 산물.
손에 발기된 자신의 심볼을 움켜쥐고 흔들기를 반복하는 시간.
그 순간만큼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에 대한 간절함이 분출되어 극도의 쾌감을 주곤 했다.
‘빨리 한 번 치고 학원이나 가야겠다.’
서둘러 책상 앞에 앉으려는 용준. 그리고 잡옷으로 입은 반바지를 풀러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정숙이 들어왔다.
‘헉!’
용준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고쳤다. 혹시 엄마가 자위하려는 내 모습을 본 건 아닐까?
당연히 민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급히 방안에 들어온 정숙이 웃는 얼굴로 용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용준아, 엄마 여행권 당첨됐어!”
“여행권···?”
“응, 후쿠오카 여행권이야. 너 에스마트 알지? 요 앞에 생긴 엄청 큰 대형할인매장. 거기서 개업 이벤트로 경품 걸었는데 동네 아줌마 둘이랑 같이 당첨됐지 뭐야. 6박 7일 여행권! 대박이지?”
‘여행권? 6박 7일?’
정숙의 활기찬 표정을 서서히 흝어보며 용준은 이유도 모른 채 그 소식이 너무도 반갑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