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17화. 엄마친구의 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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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라는 나이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근육질의 몸.
단순히 규칙적인 운동을 해서 몸을 관리한 것이 아니라 마치 보디빌더마냥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몸을 가진 은경의 남편 김종국.
그는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꽤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시골 깡촌에서 자라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왔고, 가장 가난하던 시절 은경을 만나서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에도 딱히 처가의 도움을 받거나 사업 스타일의 변화를 준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운이 따랐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산 지역에 사둔 땅의 재개발이 풀리면서 벼락 부자가 됐다는 점이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변두리부터 도심지 중 공시지가가 싼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그는 매입한 땅마다 고급형 빌라를 짓는,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을 했는데 당시 연예인들 중 성공한 그룹들이 건물을 사들이는데 관심을 갖고, 집은 그와 다르게 변두리 지역이나 사람들의 눈에 덜 띄는 지역을 갖는데 주력했기에 그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새로운 사업파트너들이 보안 시스템에 조금 더 신경을 쓰라는 충고를 해주었고,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그들의 조언을 적시적소에 받아들인 종국은 사업에서 연이은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난 뒤 만난 비서 강유리.
갓 대학을 졸업한 여비서의 매력.
대부분의 성공한 남자들은 슬슬 주변의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한눈을 팔기 십상이다.
절대로 내 남편은 그럴 리 없을 거라고 믿었던 은경이었지만 종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서인 강유리와 불륜 관계를 시작한 그는 결국 은경을 내팽개쳤고, 곧바로 여비서와 동거에 들어갔다.
그렇게 별거를 하고 이혼을 하기까지···.
은경은 때때로 자존심을 굽힌 채 남편에게 이혼만은 안 된다며 사정을 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은경의 부모님까지 나섰지만 마찬가지였다.
서른 아홉의 이혼녀.
은경은 그렇게 다시금 혼자가 되고 말았다.
한참동안 용준의 가슴에 파묻혀 흐느끼던 은경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그 때였다.
자기가 지금 누구의 품에 안겨 울고있는가를 절실히 깨달은 시점.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간 전 남편과의 작별 후에 자기를 위로해주고 있는 사람은 바로 친구의 아들인 용준이었다.
그동안 용준을 보며 은경은 그가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야한 행동을 하거나 자극을 줘도 잔뜩 흥분해버리는 어린 사내.
속옷 사진을 보내준 것도 같은 목적이었다.
용준의 반응.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만든 자신의 몸을 섣불리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주긴 싫었다. 아니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그러던 중 은근히 자신의 몸매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 어린 용준의 관심이 은경은 싫지 않았다.
그런 관심은 결국 친구의 해외여행 기간동안 자신의 집에서 재수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는 호의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은근히 마음속으로 상상만 하던 기회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용준아,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못 볼 꼴을 보여준 거 같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근데 그 남잔 누구에요?”
“엑스 허즈밴드(ex-husband).”
전 남편이라는 말을 하기가 쑥쓰러워 영어를 썼지만 여전히 공부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빡대가리 용준이 그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는 무리였다.
“허즈밴드? 남편이란 뜻이죠? 아···. 전 남편···.”
머리를 번득하고 스치는 게 있었다.
거실에서 뒹구는 두 사람을 보며 용준은 처음에 실망을 했다.
은경이 왜 자기를 집으로 들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의 행위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름 머리를 써서 둘을 떼어놓는데 성공했었다.
“전 남편이랑··· 아직도 만나세요?”
“아니야. 흐흑. 갑자기 찾아온 거야. 불쑥하구···.”
“······.”
“너한테 정말 부끄럽다. 어쨌든 정말 위험했는데 도와줘서 고마워. 용준아, 네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거 같네···.”
“괜한 말씀 마시구 방에 들어가서 눈이라도 좀 붙이세요.”
“미안···.”
힘없는 몸짓으로 일어난 은경. 그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 갑자기 용준의 목을 잡아당긴 후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정말로 고마워···. 그리구 나중에, 아니 당장이라도 너한테 꼭 신세 갚을게. 용준아, 오늘 일··· 정말로 고맙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리 없는 용준을 놔두고 은경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은 후 침대로 몸을 뉘였다.
“흐흑. 흐흑흑흑···.”
눈물은 좀처럼 끊기지 않았고, 결국 침대 베갯잎을 완전히 적시고 나서야 울음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신히 잠이 들었다.
‘어쩌면 아줌마 말대로 정말 위험했는지도 몰라···.’
은경이 들어간 안방 문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용준은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은경을 덮친 사내.
최근 들어 헬스장을 다니면서 근육량 키우기에 돌입한 용준은 첫 눈에 그의 몸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뒤늦게 그가 바로 은경의 전 남편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리 크게 놀라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어쩌면 은경과 비슷할지도 모르는 나이.
언젠가 문자메시지로 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들었던 내용들이 그 사내의 외모와 많이 맞아떨어졌다.
몸이 좋고, 얼굴도 나쁘지 않은 사내. 그리고 전형적인 상남자.
시골 촌놈이라는 양념까지 뿌리면 은경에게 들은 전 남편의 외모와 비슷했다.
‘씨발새끼···. 아줌마를 감히···.’
하지만 잠시 후 자신과 은경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왜 자기가 화가 났는 지에 대한 이유조차 잊어먹는 용준이었다.
‘만약 아줌마를 덮친 전 남편이 나였다면···?’
그런 상상을 했다.
만약 자신이 은경에게 달려들어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하려 했다면 은경이 거부했을까?
어쩌면 어린 성추행범으로 몰렸을 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전 남편과 다르게 자신의 키스를 은경이 받아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씨발!”
마음이 답답해서인지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격한 운동을 할 때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욕이 왜 은경에 대한 생각으로 답답해질 때 튀어나오는지 용준은 스스로를 이해 못 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고, 방문 자물쇠 버튼을 눌러서 잠근 그는 조용히 휴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책상 앞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