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부부의 침실 (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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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부부의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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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갑작스런 귀국.

한 달여의 시간동안 용준은 은경의 연락을 기다렸다. 아니 먼저 연락을 하고 답장을 기다렸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토록 많은 사진을 주고받았던 메시지 톡에서도 자신의 채팅 메시지 앞에 ‘1’자만이 적혀있을 뿐,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면 용준은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곤 했다.

“이번 주에 아빠 돌아오신덴다. 용준아, 오랜만에 부자상봉이네? 후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아버지의 귀국 소식.

용준의 아버지인 49세의 장상만씨는 개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로 무역과 관련된 사업을 했다.

1년 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내는 그는 이따금씩 귀국을 해서 1달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집에서 머물다가 다시 출국을 하곤 했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용준은 그런 아버지가 점점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학업과 진로 그리고 가까운 부자지간에는 스스럼 없이 나눌 수 있는 이성 문제 등 용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은 엄마인 정숙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친구를 좋아하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남편의 귀국 소식을 들은 정숙은 뒤뚱거리는 몸을 흔들면서 가구를 고치기도 하고, 안방 침실의 벽지를 새 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용준은 더더욱 소외감을 느꼈다. 결국 엄마의 관심도 아버지에게 향해있었으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학원에 있는 5수생 윤진이 형 밖엔.

“야, 장용준. 요즘 무슨 고민있냐? 이 새끼, 잠깐 혈색이 좋아지다가 바로 흙빛이 돼버리네? 여친 생겼다가 차였지? 그치?”

용준의 변화를 먼저 눈치챈 것도 윤진이었다.

수강반이 다른 윤진이었지만 용준이 걱정됐는지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을 찾아오던 그는 얼마 후 일부러 반을 바꾸면서까지 용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뭔데 그래? 설마 정말로 여자한테 차인 거냐? 꽐라들 앞에서도 돌부처가 따로 없던 새끼가? 정말 뭔 일이 있나 보군.”

“사실은요···.”

결국 용준은 은경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엄청난 연상의 여인이라는 것과 엄마의 친구라는 사실은 빼놓은 채로.

서른다섯으로 줄인 은경의 나이를 들은 윤진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용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하지만 점점 더 깊은 이야기로 빠져들자 그의 얼굴 역시 심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좀 어려운 문제네···.”

처음에는 젊은 돌싱녀를 낚았다면서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던 윤진이었지만 그녀와 며칠동안 동거를 한 부분부터 하룻밤 세 번의 사랑을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쯤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래서, 너 그 여자랑 결혼할 거냐?”

“네? 결혼이요? 아직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요···.”

“지극히 정상이네. 다행이다. 네 대가리가 아직 이성을 잃지 않아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좀 쉽게 설명해주세요.”

“난 네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줄 알았다구 인마. 당연히 잠깐 즐기는 사이인 거지 왜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데? 그쪽에서도 그날 밤만 떡치고 잊자고 했다면서? 근데 왜 그렇게 심각하냐구.”

“하지만···. 저 정말로 그 누나가 좋거든요. 엄마보다 더요.”

“미친 새끼. 엄마보다 예쁜 여자는 없어.”

“네?”

“농담이야 새꺄.”

윤진은 다섯 살이나 많은 형답게 용준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위로해주었다. 심각하기만 했던 용준의 마음도 점점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냥 잊어. 아니면···.”

“아니면요?”

순간 용준의 표정이 다급하게 변하자 윤진은 슬쩍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자식 정말로 심각하구나.

“어차피 제대로 된 관계는 아니잖아? 서른다섯이면 너랑 띠동갑 이상으로 많은 나이인데.”

“······.”

“형 말은, 그냥 즐기기만 하라구. 서로가 감정 상하지 않는 선에서. 솔직히 너, 그 아줌마랑 떡치는 걸 바랬던 거잖아? 혹시 손잡고 데이트하고 밥 먹고 그런 것들이 떡치는 것보다 더 좋았던 거야?”

“그건···.”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나중에라도 만나면 그렇게 간을 보라구. 너 섹파라고 알지?”

“섹스··· 파트너?”

“그래! 바로 그거야. 그 정도 선에서 관계를 정리하라구.”

“그래두 그건···.”

“장용준, 너 정말 답답이구나? 대학 안 갈 거야? 당장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해도 대학은 한번 가봐야 되는 거 아니냐? 부모님은 땅 파서 돈이 생겼어? 미쳤다고 공부도 안 하고 아줌마랑 사랑에 빠진 아들한테 재수하라고 돈 대주는 거냐? 정신차려. 당장 너한테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하라구.”

윤진은 평소와 답지 않게 장시간동안 용준을 설득했다.

대화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용준은 그의 말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수업이 끝난 뒤 윤진이 사주는 소주를 마시고 헤어지면서 결심을 굳혔다.

‘그래! 이런 생각하는 것도 복에 겨워서 하는 짓거리지. 일단 대학은 가고 보자구. 그 때 가서는 아줌마도 그날 일은 잊을테니까.’

대학에 가면 팔도에서 올라온 여자들이 넘쳐난다느니 1년 재수를 하고 들어온 ‘오빠’라서 여자들이 더 매력을 느낄 거라느니···. 윤진의 허풍섞인 말들은 술기운이 올라온 용준에게 진리처럼 느껴졌다. 

“엄마, 저 왔어요···.”

“어머? 용준이 왔네?”

밤 12시. 불이 꺼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실은 환하게 빛나며 용준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특별한 사람과 함께.

“아버지?”

“호오. 용준아. 오랜만이다. 그동안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냐? 허허허.”

“아버지 어떻게···.”

“엄마랑 네가 보고싶어서 예정보다 일찍 귀국했지. 그래, 이번 모의고사 성적이 엄청 올랐다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도 들어갈 수 있다고 엄마가 엄청 자랑하더라. 수고했다. 수고했어.”

“뭘요···.”

키는 큰 편이지만 비쩍 마른 몸 그리고 반백의 중년이 된 아버지가 용준을 반기며 등을 두들겨줬다.

지난번 봤을 때는 검은 머리가 더 많았었는데···.

부쩍 늙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용준은 그동안의 생활을 후회했다. 마음을 잡지 못 하고 이성 문제에만 빠져있던 자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넣어둬. 요즘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주는 거야. 저녁에 학원에서 배고프면 맛있는 거 사먹구.”

활짝 웃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숙인 용준의 아버지 장상만씨가 그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술은 작작 마시구. 인마. 흐흐.”

“네···.”

내일 용준이 학원에 가야 한다며 팔을 잡아끄는 엄마. 

아버지는 그런 엄마의 손에 끌려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살짝 윙크를 날려주었다.

항상 자신에게는 따뜻한 아버지였다.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폭주족 시절에도 별다른 타박을 하지 않던 유일한 사람이 아버지 장상만이었다.

가끔씩 간섭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가 아쉽기도 했지만 폭주를 뛰다가 파출소에 잡힌 자신을 찾아온 엄마가 오열을 하며 유난을 떨었을 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던 아버지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헉?!”

아버지가 쥐어준 봉투 안을 확인한 용준의 입에서는 절로 헉소리가 나왔다.

노란색 5만원 지폐들과 하얀 수표들로 채워진 봉투 안.

대충 봐도 몇 백만원은 되어보이는 큰 돈이었다.

‘하여튼 씀씀이는 크시다니까···.’

어릴적 친척집을 돌며 모은 세뱃돈과 아버지의 용돈을 꼼꼼히 모아서 첫 바이크를 장만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여전히 술이 깨지 않은 표정으로 방안으로 들어가는 용준의 표정은 미소를 지었지만 한구석에는 쓸쓸함이 묻어있었다.

“으음···.”

이른 새벽. 용준은 잠에서 깨어났다.

술에 취해 잠든 밤이면 항상 목이 말라서 깼고, 물을 마신 후에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 습관이었다.

혹시나 안방에서 부모님이 깰까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향하던 용준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정말···. 당신 정말 이러기에요?”

“허허. 미안.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봐. 당신 보려구 달려오다 보니 힘이 다 빠졌나 보네. 후후후.”

“얼마만에 하는 건데···.”

“미안하다니까. 우리 내일 하자구.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래.”

허허거리는 아버지의 웃음소리. 하지만 허탈함이 묻어있었다.

반면 엄마인 정숙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서운함이 잔뜩 섞여있었다.

예전 같으면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 했겠지만 약간은 끈적한 엄마의 콧소리와 힘없는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방금 전 안방 안에 일어난 상황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엄마를 달래는데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허허···. 계속 그렇게 삐쳐있을 거야? 얼른 자자구···.”

“몰라요. 얼마나 오늘을 기다렸는데. 당신 정말 실망이에요.”

“뭐? 실망? 이 여편네가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말을 막하는 구만!”

“여편네? 당신 그게 할 소리에요? 나한테 어떻게 이래요?”

“뭐? 내가 뭘 어쨌는데? 피곤한 남편한테 밤늦게 달려들어서 잠도 못 자게 하는 게 여편네가 할 짓이야? 내가 내일 해준다고 했지? 왜 짜증을 내고 난린데 이 사람아!”

“뭐라구요? 해··· 준다구? 당신 정말···.”

“왜? 내가 못 할말을 했어? 피곤하다는 사람한테 달라붙어서 칭얼대는 게 살림하는 마누라가 할 짓이냐는 게 그렇게 잘못된 질문이야? 당신 정말 왜 그러나?!”

“흐. 흐흑···. 흑흑흑.”

엄마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순식간에 달라진 방안의 분위기. 용준은 조심스럽게 안방 앞으로 다가가 살짝 열려진 문틈 사이로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안의 모습은 용준의 예상 그대로였다. 약간 더 야한 장면이 펼쳐져있을 뿐.

브래지어만 입은 채로 침대 위에 주저앉아있는 엄마의 모습. 그 옆에는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가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찰칵거리며 몇 번이나 라이터를 켜고 나서야 담배에 불을 붙인 아버지는 천장을 보며 깊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흑흑. 흑흑흑흑.”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울고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너무도 쓸쓸해 보였다.

살집이 많은 엄마의 속살. 평소 약간은 수다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 많은 엄마가 입을 꾹 다문 채로 울음을 참고있는 모습이 용준의 가슴 한 켠을 아프게 했다.

“젠장!”

이불을 끌어당겨 옆으로 누워버린 아버지는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었고, 그 덕분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엄마의 맨살과 엉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민망해진 용준은 방문 앞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화장실로 향했다.

‘엄마가 많이 서운했나 보네···. 매일 수다만 떨고 시끄러워서 저런 거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새삼 엄마도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엄마의 열망을 거절한 아버지가 조금은 쌀쌀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가 너무 심했어. 오랜만에 본 엄마한테 저러다니···.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야릇한 상상이 머릿속을 멤돌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지난번 은경과 욕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신의 성기를 열성적으로 마사지 해줬던 은경. 그리고 용준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은경의 입에서 자지러질 듯한 괴성이 새어나올 정도로 더욱 열정적인 펠라치오를 선사했었다.

그날 밤 느꼈던 은경의 반응. 그것은 분명 여자의 본능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직한 소리였다.

‘그렇게라도 해줄 것이지···.’

하지만 너무 오래 부부생활을 하면 그런 마음도 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용준은 다시 방으로 향했다. 술에 너무 취해서인지 다시 베개에 머리를 묻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오랜만에 아주 깊은 잠에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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