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화. 아버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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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만이 향한 곳은 강남의 유명 술집, 버블바라는 곳이었다.
90년대 경제 활황기 때 처음 발을 들였던 술집.
보통은 텐프로 혹은 점오라고 불리는 접대형 룸들로 이루어진 회원제 형식의 업소였다.
몇 명의 사장들을 거쳐 현재 이 곳의 대표마담인 송마담은 나름 전성기 시절 서울 전역을 휘어잡을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이후 잠시 70대의 재벌가 회장의 애첩을 거치며 업계를 은퇴했다가 회장이 죽은 후 자식들의 미움과 견제를 받아 결국 얼마간의 위자료를 가지고 버블바를 인수했다.
과거 그녀의 전력 때문인지 이 업계에선 꽤나 유명한 장소였고, 과거 그녀의 미모를 흠모했던 돈많은 한량들이 주로 이곳을 찾았다.
상만이 만나러 온 정아는 한 때 버블바의 에이스들 중 하나였다.
미모 하나만으론 송마담의 대를 이어 서울 시내 최고라고 불리던 박정아.
재벌 3세 망나니들을 비롯해서 땅부자, 주식부자라는 사내들이 그녀를 거쳐갔지만 결국에는 20대 후반이 되면서 그녀는 이전보다 우월한 경쟁자들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그것도 자신이 일하는 버블바에서.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과거 자신이 누렸던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하고 신선한 매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그녀들은 약간의 성형을 통해 더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물론 걔 중에는 성형에 실패해서 정아보다 먼저 쇠락기에 접어들어버린 실패자들도 있었지만.
상만은 정아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였다.
흔히 말하는 스폰서.
1년에 대략 3, 4회 정도 만남을 갖고 그가 원하는 것을 살짝 들어주기만 해도 웬만한 회사 부장에 준하는 댓가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 그녀가 살고있는 오피스텔 역시 상만이 제공해준 장소였기에 스스로 전성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정아에게는 그가 일종의 보험 같은 존재였다.
“오셨어요?”
상만은 정아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일인 것처럼 행세를 하며 집을 나왔다.
아내와는 전혀 다른 청춘의 싱싱함을 소유하고 있는 정아의 얼굴을 보자 당장이라도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했어? 오늘.”
“그냥···.”
“손님 많았어?”
이런 질문을 할 때는 답변에 조심해야 했다. 손님이 많았다고 하면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내는 상만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은경은 조심스레 답했다.
“별로···.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나저나 오늘은 집에서 쉬신다고 했잖아요? 웬일이세요···?”
“웬일은 너 보러 왔지.”
“네···.”
갑자기 자신을 호출해 술잔을 기울이다가 오피스텔로 옮겨 밤을 보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귀국을 한 뒤 집에 들어가면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조차 없는 상만이었다.
그런 그가 집에서 저녁을 먹을 시간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 정아는 조금 당황스러웠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일은 무슨. 술이나 좀 가져와봐. 기분 좆같으니까.”
툭명스럽게 욜설을 내뱉는 상만. 이런 날의 그가 어떤 행동을 할 지는 잘 알고 있는 정아였기에 재빨리 기분을 맞추려고 그의 옷을 받아들었다.
업소에서 가장 좋은 룸의 옷걸이에 상만이 입고 온 자켓이 걸렸고, 정아는 재빨리 자리로 돌아와 상만의 옆자리에 앉았다.
“씨팔! 짜증난다! 짜증나! 너 오늘 일 쉬어라. 집에나 가자.”
“지금 출근했는데···.”
“그래서? 못 가겠다는 거야?”
“아니에요.”
눈치를 주는 웨이터 조장의 찡그린 얼굴을 뒤로한 채 정아는 상만과 함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그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정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서 얼른 샤워나 하고 와. 어서.”
“네, 알았어요···.”
욕실로 향하는 정아는 살짝 이는 두려움과 함께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가 오늘밤 무슨 짓을 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더.
“괜찮은데 정말···.”
이 말을 도대체 몇 번째 하는 것인지.
자신이 연락을 끊었던 용준과 한 차에 타고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지 조수석에 앉은 은경은 연신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은경의 고급 승용차 안.
처음으로 그녀의 차를 타본 용준은 내부 장식이 화려하고 넓다는 데 놀랐다.
아버지의 자가용보다 더 좋은 외제 승용차를 은경이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서 생활하던 때에는 누구보다 더 알뜰하고 검소한 은경의 모습만 봐왔으니까.
출발을 했지만 은경은 말이 없었고, 용준 역시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의 차 키를 받아들던 용준. 그리고 계속해서 괜찮다는 자신의 말에 대답조차 없는 용준의 모습을 보며 은경은 그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불과 얼마 전보다 훨씬 성숙해져 보이는 용준의 모습에 속으로 놀랐다.
‘남자란 역시 경험이 중요한 건가?’
자신과 처음 잠자리를 가질 때 일찍 사정을 해버리고 난감한 표정을 짓던 용준의 귀여운 얼굴이 생각났다. 자신이 첫키스 상대라는 고백을 하면서 잔득 흥분해있던 용준의 성난 얼굴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차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야릇한 상상.
용준이 말이 없을수록 그 야릇함은 더 해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이상하리만치 말이 없는 용준에게 말이다.
“잠깐 바람 좀 쐬고 가실래요? 속도 편찮으신 거 같은데.”
차에 탄 뒤 한참동안 말이 없던 용준. 그 말에서는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울만큼 무게가 느껴졌다. 은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용준이 차를 세운 곳은 공교롭게도 성수동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있는 용준의 집 근처 분지. 가끔씩 사람들이 운동을 하러 왔다가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차에서 내린 용준이 이번에도 말없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가 담배를 피우는 지 몰랐던 은경은 그 모습 역시 신기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얘가 완전히 순진한 건 아니었구나.
“용준아, 미안해···. 공부하느라 많이 피곤할텐데···.”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용준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저 멀찌감치 떨어진 어딘가를 응시하며 담배 연기만 뿜어낼 뿐이었다.
“잠시 걸을까?”
다시금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산길 산책.
은근히 용준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용준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렇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해놓고 이제와서 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걸까?’
무반응의 용준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은경이었다.
조용히 길을 걷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용준. 어느덧 다시 차에 돌아왔다.
“이젠 술 깼으니까 내가 운전할게.”
용준의 대답도 듣지 않고 운전석에 앉는 은경. 하지만 그녀가 핸들에 손을 얹었을 때 갑작스레 커다란 손이 은경의 손을 덮쳐왔다. 조수석에 들어서자마자 손을 뻗은 용준이었다.
“요, 용준아. 갑자기 왜 이래?”
자신의 손을 잡아버린 용준의 갑작스런 행동. 어쩌면 그런 상황을 예상했을 은경은 놀라는 척 몸을 움직여 그에게서 달아나려 했지만 뒤 이은 용준의 고백이 그녀의 몸을 한순간에 굳어버리도록 만들었다.
“아줌마, 아니 은경씨, 사랑해요···.”
사랑고백.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 얼마만에 들어보는 걸까?
마지막으로 들은 상대방이 전 남편인 종국이었으니 꽤나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었다.
어쩌면 용준의 나이만큼 오랜 시간이었는지도 모를 설레이는 고백.
하지만 다시금 그녀의 앞을 막아선 건 죄책감이었다.
자신을 배웅하던 정숙의 환히 웃는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숙이 지은 미소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아흑! 끄흐···. 사, 사장님. 너무 쎄요···.”
“으흐흐. 조금만 참아봐. 더 뻑가게 만들어줄테니까. 후우···. 후우···.”
“사, 사장님. 흐윽! 흑!”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연신 움직여대는 상만.
그의 마른 장작같이 기다랗고 볼품 없는 근육은 170cm의, 여자치고 큰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정아의 몸 위에서 쉴 새 없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몸과 거의 맞먹을 가냘픈 중년 사내의 몸짓을 버텨내며 신음성을 참아내던 정아는 결국 그의 얇디얇은 팔뚝을 부여잡은 채 연속해서 하체에 밀려드는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다.
볼품없는 체격에 비해 튼실한 그의 물건은 선천적으로 탄력 넘치고 부드러운 몸을 가진 정아의 몸을 마치 부숴버릴 것마냥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 아야···. 아, 아파요. 그렇게 하면···.”
발목이 가느다랗고 긴 정아의 다리가 걸쳐진 상만의 어깨.
엉덩이가 들린 상태로 자신의 계속되는 공격을 받아내던 정아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자 상만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마치 선심을 쓰는 것마냥 그녀의 다리를 어깨에서 내려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상만이 아니었다. 다리가 내려가는 동시에 곧바로 몸이 돌려지며 자연스럽게 엎드린 자세가 되어버린 정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얀 침대 시트 위에서 엉덩이를 위로 한없이 치켜든 민망한 자세. 그런 그녀의 환상적인 몸을 뒤에서 감상하던 상만은 천천히 자신의 심볼을 한 손에 움켜쥔 채로 정아의 하얗고 탐스러운 엉덩이 사이로 다가섰다.
“으흑···.”
굵직하고 딱딱한 무언가가 자신의 민감한 속살을 밀치며 안으로 밀려들자 정아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힐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나서 한참이 지나도록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상만. 아마도 긴장한 채로 떨고있는 정아의 반응을 즐기는 득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찰싹하고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상만의 아랫배가 자신의 치골을 밀어대기 시작하자 은경은 침대 위로 쓰러진 채 이마를 베개에 묻고 그의 공격을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 팡! 팡팡! 팡팡!
빠르게 허리를 움직이며 튕겨대는 상만의 공격에 정아는 그저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신음성만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간신히 허리를 들어 몸을 들었을 때 상만의 움직임에 맞춰 출렁이는 자신의 젖가슴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갈색으로 변해버린 유두와 요즘 들어 살짝 나오고 있는 뱃살.
아프지만 짜릿한 상만의 공격을 받아내며 정아는 순간 자신의 신세가 너무도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 있는 남자.
거의 자기 또래의 아들이 있는 다른 여자의 남자가 자신의 몸을 마음껏 유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의 육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오늘따라 측은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도 비참하기만 했다.
인터넷이 처음 나오고 소위 ‘인터넷 얼짱’이 사이버 세상을 강타했을 때,
정아는 그 물결의 가장 끝자락에 올라탄 고등학교 1학년의 소녀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예쁘다고 떠받들어주고, 심심치않게 또래 소년들의 사랑고백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수줍음이 많거나 자신을 질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의 불행이 정아를 들이닥쳤다.
사채를 쓴 아버지의 몰락 그리고 가정의 파탄.
아버지는 자살을 선택했었고, 어머니 역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직 부모의 사랑을 한창 받아야될 나이에 세상에 던져져버린 정아.
어린 정아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자신의 미모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친척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간간히 인터넷 쇼핑몰의 피팅모델이나 드라마 촬영의 보조출연 등을 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가 선택한 길은 더 이상 합법적인 직업들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나이 많은 남자들과 어울리며 용돈을 받아썼다. 꽤 짭짤했다. 게다가 그들은 정아 또래의 남학생들보다 젠틀하기까지 했다.
강제로 그녀를 끌고가선 고백을 하는 스무 살의 풋내기들보다 세련되고 능숙하게 자신을 배려해주고 도움을 주곤 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곳은 텐프로라 불리는 고급 술집이었다.
술을 따라주고 손님과 어울리되 2차 출장은 가지 않아도 되는 일.
하지만 욕심이 많아지고 나이가 늘수록 그녀는 더 이상 그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
더 많은 매상을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님의 팔짱을 끼고 호텔을 들락거리는 일이 늘어만 갔고, 그녀의 가치 역시 점점 떨어져만 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장상만 사장.
해외를 돌아다니며 사업을 하는 그가 현재 정아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가장 든든한 스폰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