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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스물일곱 살 이세은 (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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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스물일곱 살 이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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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은. 27세.

지난 번 윤진을 따라 클럽을 갔을 때 메이드됐던 글래머 타입의 섹시한 미인.

하지만 오늘 영화관에서 본 그녀는 그날의 짙은 화장을 거의 지운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용준은 화장을 지운 세은의 얼굴이 그날 봤던 섹시한 스타일과는 다르게 전혀 청순한 타입이라 느끼며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나 자취하는데···. 거기 안 갈래?]

아직도 이런 말을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농염한 눈빛을 보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세은 앞에서 용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대학 생활은 어때? 재밌니?”

“대학··· 생활. 글쎄요···.”

자기가 재수생이라는 걸 뻔히 아는 은경. 그녀 앞에서 거침없이 묻는 세은의 말이 용준은 부담스러웠다. 아니 죄책감을 느꼈다고 보는 편이 맞으려나···.

“누구셔? 어머님?”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은경에게 인사를 하는 세은. 

반면 은경의 얼굴은 눈에 띄지 않게 어두워져 있었다.

도대체 용준을 대학생으로 알고 있는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점부터 자기보다 훨씬 글래머러스한데다 여성적인 매력을 뿜뿜 쏟아내고 있는 세은의 등장에 은경은 분명 경계하고 있었다.

“집에 가는 중이니? 어머님이랑 영화는 잘 봤구?”

“네.”

“그럼 잘 됐네. 우리 언제 또 만나자. 응?”

“만나···자구요?”

“그럼. 우리 다음에 만나면 데이트하기로 했잖아? 기억 안 나?”

데이트 약속을 한 적은 없었다. 자취방으로 가자는 세은의 은근한 제안을 거절한 후 쌍욕을 먹은 기억은 나지만.

“용준아, 선배님이시니? 대학교?”

“아니에요. 그냥 알게 된 누나에요.”

“그럼 둘이 볼일 봐. 영화 다 봤으니까 엄마는 집에 갈게.”

“아, 그게 아니라···.”

“그래, 용준아 우리 잠깐 얘기 좀 하자. 응?”

은경이 곧장 등을 돌려 가버리고 그녀를 따라가려던 용준을 세은이 붙잡았다.

순간 손을 뿌리치려했지만 팔뚝에 뭉클하게 닿는 세은의 젖가슴을 느끼는 순간 용준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하게 젖가슴을 들이댄 탓이었다.

“누나···.”

“난 이미 다 눈치챘어. 저 사람, 너희 어머님은 아니지?”

“······.”

“잠깐 얘기 좀 해. 할 말 다 하면 보내줄게. 그럼 저 아줌마랑 놀든지 집에 가든지 너 알아서 하구.”

결국 세은을 따라 주차장까지 내려간 용준은 그녀의 차 조수석에 올라탈 수 밖에 없었다.

자취방에 가자면서 용준을 놀렸던 세은. ‘자취방’이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은 부잣집보다는 가난한 집의 이미지가 큰데 세은이 몰고 온 차는 외제차인데다 기종이 꽤 큰 차라서 성수동에선 나름 잘 사는 편인데다 주변에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용준임에도 처음 타보는 차량이었다.

“무슨 말 하시려구요···.”용준아, 너 나랑 사귀자. 응?“

“사귀자니요···.”

“지난 번에 너랑 만나고 생각해 봤어. 내가 너무 헤프게 살아온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너한테 원나잇 제의를 했을 때 다른 남자들이랑은 다르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걸 보면서 너한테 호감이란 게 생기더라···. 나도 내가··· 나보다 훨씬 어린 남자한테 이런 감정이 생길 줄은 몰랐어. 나, 사실은 널 좋아하는 거 같아.”

“누나, 갑자기 만나서 이게 무슨···.”

“그러게···. 나도 오늘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네 연락처도 모른 채 애만 태웠는데···. 모르겠다. 이럴 땐 하늘에 신이 정말 존재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언젠가 널 만나면 이 말을 해야되지 않을까 싶어서 속으로만 끙끙 앓아왔는데···.”

“누나···.”

정말 거짓말 같지만 세은의 말은 사실 같았다.

그녀의 복장 역시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집에서나 입을 법한 회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세은.

이미 클럽에서 그녀의 섹시한 복장과 화장법을 보았던 용준이었기에 평소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복장을 한 채 자신과 재회를 했다는 그녀의 말은 새삼 공감이 갔다.

이런 식의 프로포즈를 하려면 최대한 자기를 꾸미고 해야지 화장도 거의 안 한 맨얼굴에 펑퍼짐한 츄리닝 바지를 끌면서 사귀자는 말을 할 여자는 세상에 없을테니까.

“어때? 갑자기 만나서 이런 말을 하나까 고민되지? 미안···. 사실 나, 그동안 네 생각 많이 했어. 언젠가 다시 만나면 정말로 진지하게 만나볼까··· 그런 고민 말이야.”

“누나, 사실은 저 누나한테 거짓말 많이 했어요···.”

진지해 보이는 세은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자신이 재수생이라는 것과 미래가 어두운 인생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길 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저 사실은 서울대생도 아니구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알아. 이미 눈치챘어. 그날 밤···.”

살짝 얼굴을 떨구는 세은의 모습. 오히려 용준이 솔직한 이야기를 해줘서 기쁘다는 눈치였다.

‘이게 아닌데···.’

“그리구 저 재수생이에요. 체대 지망생이구요. 멍청해서 운동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운동···. 그래두 솔직하네. 체대면 어떻고 경영학과면 어떻니? 그리구 나두 별로 대단한 조건이 아닌데···.”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세은을 보며 나름 생각해서 꺼낸 말이었다. 희망없는 청춘이라는 컨셉트.

하지만 세은은 더 솔직했다. 어쩌면 용준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 건지 그녀는 용준이 가진 어떤 조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너··· 내가 그렇게 싫으니?”

“네? 아니요. 제가 왜···.”

“그런데 왜 너 자신한테 불리한 이야기만 계속 털어놓는 건데?”

“그게···.”

세은의 그 말을 끝으로 용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꺼내놔도 세은은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녀의 진심이 가슴으로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이 누나 정말로 날 진지하게 생각하는 구나.

“근데 누나.”

“응?”

“영화는 다 봤어요?”

“응. 난 쇼핑 좀 하려구 나왔어.”

“혼자서요?”

“그렇지 뭐···. 그리구 나서는 친구들 만나서 시내에서 저녁이나 먹으려구 했는데···. 용준이 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

“그러게요···.”

피식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세은. 그녀의 눈빛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더 이상 핑계를 대지 않고 자신과 대화를 하는 용준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용준과 재회를 한 것이 기뻐서 나오는 눈물일까?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멋쩍은 미소를 짓는 용준을 바라보며 세은은 또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지런하고 새하얀 치아들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고, 용준은 순간 세은에게 키스를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 지이이잉.

‘핸드폰?’

핸드폰 소리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온 용준. 전화는 세은에게 온 것이었다.

“여보세요? 어, 미라니? 응. 나 잠깐 시내에 나와있어. 정말? 호홋. 나도 오늘 엄청 반가운 사람 만났다? 누구냐구? 용준이. 응.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그래, 사실이라니까. 후후.”

‘미라라면 지난번에 봤던 친구?’

클럽에서 세은과 함께 부킹을 했던 미라.

그녀는 윤진의 파트너였다. 세은과 맞먹을만큼 글래머러스한 멋진 몸에 눈이 크고 콧날도 오똑한 전형적인 섹시미인. 윤진은 그날 밤 용준 때문에 처음으로 낚은 대어를 놓쳤다며 너스레를 떨어댔었다. 그녀의 전화라니.

“그래. 일단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아니야. 아니라니까. 그래, 정말이야. 오늘은 그냥···. 흠흠. 어쨌든 전화 끊는다. 내가 바로 전화할게.”

전화통화를 하는 내내 용준의 눈치를 보던 세은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용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내가 한 애기···. 다 진심이야. 무슨 애긴지 알지? 전화 꼭 해야 돼. 나한테.”

“······.”

귓가를 적시는 세은의 끈적한 목소리. 용준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말을 마친 세은이 다시 몸을 떼어 운전석 핸들을 잡으며 용준에게 말했다.

“안 내릴 거니?”

“네?”

“어머님 따라 가야지. 아직 건물을 벗어나진 못 하셨을 거 같은데?”

“아, 아 네···.”

문을 닫고 황급히 차에서 나온 용준.

주차장 비상구의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용준의 걸음걸이는 어색하면서 부끄럽기만 했다.

‘세은이 누나는 모든 걸 알고있는 눈치 같은데···. 나랑 아줌마의 관계도, 내가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정말 사실이란 것도···. 난 그냥 하루하루 생활이 지겹기만 한 재수생일 뿐인데···.’

다시금 건물 위로 올라가 은경을 찾아야 될 용준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

[똑. 똑. 똑.]

“들어와.”

노크 소리에 대답을 한 사람은 용만물산의 대표이사인 장상만, 용준의 아버지였다.

당분간 국내에 머물게 된 스케쥴을 받아든 그는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은 채 회사 일에 몰두했다. 사실 숙박을 하는 곳은 따로 있었지만.

대표이사의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은 놀랍게도 그의 비서실장이자 회사의 창업 공신 중 하나인 이승연 비서였다.

“어, 이 비서. 왠일이냐? 네가.”

회사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해오는 사이라서 그런지 승연을 보며 미소짓는 상만의 얼굴에는 솔직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만과 달리 승연은 방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사장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사장님!”

“허어. 목소리가 왜 이렇게 성이 나있어?”

“사장님, 저 아시죠? 웬만한 일에는 불만도 안 비치고,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는 거.”

“알지. 우리 승연씨가 성실한 거,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럼 제가 왜 여기 들어와서 언성을 높이고 있는지도 잘 아시겠네요?”

“휴우···.”

상만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벌써 다섯 번째 듣는 컴플레인. 놀라운 것은 다섯 번을 듣는 동안 불만을 쏟아놓는 직원들이 모두 달랐다는 점이다.

다섯 명의 여직원들에게 각각 악평을 듣고 있는 신입 여직원.

그녀를 직접 채용한 것이 다름 아닌 상만이었기에 속이 쓰릴만도 했다. 상만은 마음을 가다듬고 창업 공신인 승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 했다.

“어떻게 된 비서가 한 달이 지나도록 작업 물량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해요? 박정아씨 때문에 저희 업무가 마비된 게 벌써 세 번째라구요! 사장님, 정말 이러시기에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큰 눈동자의 여직원. 생사를 함께 해오다시피한 동료의 눈빛은 왜 그딴 여자를 직원으로 뽑아서 날 엿먹이냐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차라리 집에서나 데리고 놀 것이지 왜 하필 회사에 데리고 와서. 그것도 고졸에 상고도 나오지 않은 업무 문외한인 멍청이를!

“알았어. 알았어. 승연씨, 지금 무슨 말 할지 잘 알고 있다구···.”

“그래요? 휴우. 저도 웬만해서 이런 말씀 안 드릴려구 했는데···.”

“내가 미안하지 뭐. 조만간 해고시키고 새 직원 뽑도록 할게. 특히 승연씨 의견을 적극 반영해서.”

“죄송해요. 이런 말씀 드려서.”

“아니야. 내가 정말 미안하지. 어쨌든 나가면서 미스 박보고 이번 달 물량 확인서 가지고 오라고 해줘. 그리구 일찍 퇴근해도 좋아.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구.”

“네, 감사합니다.”

낮밤이 다른 해외 지사들과의 업무 협의 때문에 아직 다섯 시 반인 퇴근 시간이 낯설 법도 했지만 사장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진 이상 승연은 동료들과 금요일 밤을 즐길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간단하게 회식이나 하구 쏘맥이나 한 잔.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잠시 왁자지껄한 사무실 밖의 분위기. 그리고 얼마 후 정아가 파일을 들고 사장실로 들어섰다.

“사장님, 부르셨어요?”

“음···. 내 앞에선 괜찮다니깐. 그래, 다들 퇴근했어?”

“네, 아마도요.”

“그래.”

정아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살피는 상만. 

그에게 인사를 마친 정아가 몸을 돌리려 했을 때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낚아채는 무언가가 있었다. 당연히 상만의 손이었다.

“잠깐만. 잠깐만 거기서 대기해.”

“······.”

“정아야, 이리 와봐.”

“네. 사장님···.”

“어허. 사장님이라고 안 해도 된다니까.”

“하지만 회사에서···.”

“우리 둘 밖에 없잖아. 특히 내 사무실 안인데. 으흐흐.”

상만은 정아를 자기쪽으로 잡아당겨 의자 위에 앉히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노란색 스커트 아래로 뻗은 그녀의 다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헉, 사장님···.”

“다들 퇴근했잖아. 이리 와봐.”

“혹시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다들 퇴근했다면서? 근데 들어오긴 누가 들어와. 가만있어 봐.”

“아, 안돼요. 차라리 이러실 거면 나중에 집에 가서···.”

“허허. 어차피 나중에 하나 지금하나 똑같은 걸? 으헤헤.”

정아의 반항이 잦아질수록 상만의 손은 더욱 거침없이 그녀의 몸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허벅지에 이어 이제는 치마 안으로 손을 밀어넣어 탄력 넘치는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잡는 상만의 손. 당황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상만의 얼굴에는 음흉한 미소가 서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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