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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점령기 2부! #.11.마지막... (24/25)

아이돌 점령기 2부! #.11.마지막...

 오늘은 진욱이 세번째 악마에게 몸을 뺐기는 딱 3일째 되는 날.

휴가인 그간 여러번 자살시도를 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하곤 했다.

커터칼을 들고 손목을 그을까 말까 4시간여를 고민해보고 인터넷에 아프지 않게 죽는 법,쉽게 죽는 법등을 찾아보곤 했다.

그 의견 몇까지를 꼽아 실행에 옮겨 보기도 여러번..다음과 같다.

1.연탄가스 마시고 죽어라.

물론 그 상태로 자면 죽어 있겠지만 진욱의 신체가 많이 훼손된다.그래서 접었다.

2.문을 모두 밀폐하고 선풍기 틀어라.그럼 죽는다.

이틀 간을 행해보지만 죽기는 커녕 감기조차도 들지 않는다.(따라하지마요.진짜 죽어요.)

살기위해 죽는다라..

역시 마음에도 없는 자살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이틀 전에 모두의 힘이 작용했던 생일파티로 인해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이미 머릿속에 크게 자리잡아 고정된 상태였다.

그래서 마지막 3번째 자살방법을 택한 것이다.

죽기직전에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목매달기.

진욱은 지금 막 죽을 결심을 하곤 의자위에 서있는 중이다.

화장실 천장에 달린 고리에는 묶어 논 밧줄이 길게 내려와있고 그 끝에는 머리크기의 구멍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 그 구멍에 머리만 넣고 의자를 발로 차기만 하면 됐다.

밧줄의 원을 그리는 부분을 두손으로 잡고 턱을 대보았다.

오싹!!!

죽음과 가까워지는 기분에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하다.

"으아아아!"

그 공포감을 견디지 못하고 촐싹맞게 의자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숨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의자에 오른다.

그리고 턱을 밧줄에 건다.

오싹!!!

"으아아아!"

그리고 다시 발광하며 내려온다.

이 짓만 벌써 47번째 반복하는 중이었다.

사실 목매달아 죽는 방법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대동맥이 막히고 그러면서 혈류도 막히고 산소공급도 끊기고 사실 굉장히 고통스러운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목매다 죽은 시신의 모습은 곱지도 못했다.

죽고나서도 눈도 채 감지못하고 입이 벌려진 채 혀가 밖으로 밀려나오고..

그것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질식으로 인해 대변과 소변등이 죽은 후에 좌륵 쏟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매단 사람은 귀신도 데려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무당들이 말하기에 가장 냄새나는 귀신이 목매달고 죽은 액귀라고도 하고 말이다.

제대로 된 지식을 얻지 못한 진욱이 이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한다면 살아난 후에 몸상태는 최악이 될 것이다.

'진짜..이번에 못죽으면 나는 조폭들보다 못한 개병신이다..'

그러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오른다.

덜덜덜덜!

휴대폰 진동하는 것처럼 떨리는 다리.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두손으로 밧줄을 잡고 턱을 대본다.

"후아-!후아-!"

심호흡을 한번 할때마다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고 눈에 가는 핏발들이 선다.

진욱은 밧줄속으로 머리를 더욱 구겨넣었다.

'으아앗!!!'

타악!!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의자를 발로 찼다!

패앵-!!

밧줄이 팽팽히 당겨진다.

"케헥!!"

목을 아주 끊어버릴 것처럼 거세게 조여오는 밧줄.

진욱은 온몸을 버둥거리며 고통에 헛기침만 쏟아낸다.

"케..!케에!!"

본능적으로 살고싶다는 생각에 두손은 밧줄을 잡고 있다.

의식이 바다에 빠진 돌처럼 천천히 가라앉아 간다...

덜컥.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린다.

'아...잠구는 걸....잊었어...!!'

진욱을 올려다보는 지연의 눈이 점점 커진다.

"오빠아!!!!"

'나 죽어야 되!오지마 이년아!!'

지연은 진욱의 두발을 안고 있는 힘을 다해 올린다.

때문에 진욱의 목을 조이는 밧줄이 느슨해진다.

얼굴에 다시 피가 모였고 혈색이 다시 사람의 것처럼 밝아지기 시작한다.

"오빠!!엉엉엉!!왜그래!!엉엉!!"

'하지마아아!!!'

 유능한 사업가이자 길순파의 두목인 조길순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개인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다.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조폭의 정장차림을 한 두 남자가 한 남자를 양쪽에서 잡은 채로 들어와 고개를 숙인다.

"형님.잡아왔습니다."

"오냐.잘했다."

잡아왔다는 대상자는 다름아닌 저번에 진욱을 생매장하려던 남자.

얼마나 맞은 건지 얼굴엔 시퍼런 멍이 더덕 더덕 붙어있었다.

진욱을 죽였다는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그가 다시 살아나 도망쳤다니?

명백한 거짓말로 판명이 났고 며칠간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씹고 잠수를 타기도 했다.

길순은 그게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아 반죽음의 상태로 잡아오라 명령한 것이었다.

덜덜덜덜덜덜덜!!

남자는 무릎 꿇은 채로 도살장에 끌려온 개마냥 온몸을 불쌍하리만치 떨어댄다.

"혀,혀,혀,혀,형님."

그는 길순의 잔인함을 아주 잘 알기에 더욱 기어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년전 동료의 배때기에 칼을 찌르는 것도 봤었다.

몇달전에는 여자를 강간하고 매장까지...

저벅 저벅.

남자에게 다가온 길순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다.

똑같았다.

1년전 친구를 죽였던 칼과.

길순은 남자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아 칼에게 시선을 놓지 않은 채로 입을 연다.

"우리 지욱이가 많이 컸어~형님 전화도 씹을 줄 알고."

"죄,죄,죄송합니다!!!"

"아녀.아녀.사과하지마."

"아,아닙니다!"

"사과하지말라고..어차피 그을 건데."

"!!?!?!"

길순이 옆의 두 남자에게 눈짓을 주자 고개를 끄덕이고 상의를 강제로 벗겨 버린다.

"어?!으아아!제발!잘못했습니다!형님!한번만..한번만 살려 주십쇼!"

길순은 고개를 끄덕여가며 칼의 평평한 면으로 손바닥을 친다.

옷을 찢어내듯 벗겨버린 두 남자는 이제 남자의 두팔을 양옆에서 잡아 봉쇄했다.

"으아아아아!!!"

남자는 거의 미친사람처럼 비명을 지른다.

"시끄러워."

찌르륵....

칼이 남자의 가슴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른다.

"으아아아아아!!"

칼에 베인다는 고통은 어떻게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치륵..

빼낸 칼의 면에는 시뻐건 피가 흐르고 있고 남자의 가슴에선 대량의 피가 흘러내려 배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길순은 멈추지 않고 이번엔 위에서 아래로 그어 내린다.

"끄어..!!끄어어어어!!제바알!!!"

찌르-르윽-

살려달라고 침까지 흘리며 발악하는 남자의 모습이 웃겨 미친듯이 광소한다.

가슴에 크고도 깊게 열십(十)의 상처가 남은 남자의 팔을 놓자 허무하게 앞으로 쓰러진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정신을 놔버린 것이리라.

그의 눈은 이미 뒤집힌지 오래였고 입에선 부글부글하는 거품 끓는 소리만 났다.

"끌고나가라." 

"예!형님!"

"예!형님!"

지켜보던 두 남자도 그의 잔인함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 목소리에 군기가 바짝 들어있다.

질질질질-

남자의 몸은 쓰레기봉투 끌고가 듯 끌려갔고 길수은 바닥에 남은 긴 핏자국을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린다.

그 웃음은 길순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을 때만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 개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할까..."

이마에 핏발이 서있는지도 모르고 끝까지 여유있는 척을 부린다.

"오늘...진짜 마지막이다..어디 한번 끝을 보자고."

길순의 진욱에 대한 분노감은 절대 식어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한편 sm엔터테인먼트의 사장실.

수만은 참담한 표정으로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

오늘이 진욱의 앞으로의 활동여부가 결정되는 날이기도 한데 그의 표정을 보며 결과를 예측 할 수 있을 것 같다.

6만8천여장.

진욱의 1집 앨범이 팔린 갯수였다.

가수로서 이 정도는 결코 적게 팔린 숫자는 아니었다.

그것도 신인이 6만8천장이면 소속사에겐 오히려 큰 쾌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회의를 통해 결정한 기대치였던 8만장을 팔지 못한 건 어쩔 수 없기에 진욱의 활동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았다.

그 공백 기간은 예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1년이 될 수도,5년이 될 수도...아니면 평생 다시 데뷔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덜컥!

"사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이,이러시면 안돼요!"

"기호냐?"

지호의 옆으로 두여직원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매니저인 기호가 사장실의 문을 이렇게나 세개 박차고 들어올 만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진욱이가 더이상 활동을 못한다니요!!"

"..소녀시대의 매니저인 네가 왜 아무런 상관없는 진욱이 일로 화를 내고 그러는 거지?"

"정들어버렸습니다!!"

"!"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쏟아낸 말에 창밖만 주시하던 수만의 얼굴이 그를 향해 돌아간다.

"그 녀석..!얼마나 힘들게 일한 줄 아십니까?다른 가수들!!...싸가지 없게 팬들 지나쳐도 진욱은 안그랬습니다..팬들이 조금이라도 상처받지 않게 한명 한명 바라봐주고 웃어준게 바로 진욱인데..!"

벅찬 감정에 말끝이 흐려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

잠시 흔들렸던 수만의 동공이 다시 전처럼 자리를 잡는다.

"늦었네..나도 진욱이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았어."

"대체..대체 진욱이를 두고 무슨일이 있었던 겁니까?!"

수만은 잠시 갈등하는 듯 하더니 여직원들을 밖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곤 조용히 말을 꺼냈다.

"꽤 지났지..그때 회의를 가진지.."

그렇게 시작한 수만의 말을 들을 수록 기호는 놀라움과 그보다 더 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진욱의 행동 방향을 정하기 위해 회의를 연 일.

이건 당연했다.

당시 자살미수사건으로 큰 언론이 된 진욱이니 당연히 가져야할 회의 였다.

하지만 진욱을 가지고 내기를 한 건 절대 참을 수 없었다.

그깟 앨범을 판 수와 수입으로 진욱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이건 돈만 밝히는 더러운 늙은이들이 진욱의 꿈을 가지고 논 내기나 다름없었다.

"내가 할 말을 여기까..큭!?"

덥썩!!

기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수만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진욱이..그깟 걸로 망쳐 놓지말고 없었던 일로 하십쇼..!!"

"어쩔 수 없다고 말했잖은가!"

수만도 더이상은 참아 줄 수가 없었다.

"그럼 전 오늘부로 사표를 내겠습니다."

"....."

실력파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유능한 매니저로도 손꼽혔던 기호를 잃는다면 소녀시대의 스케줄이나 여러 면에서 불이익이었다.

실제로 기호는 매니저 3명 몫을 가뿐히 해결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빠져나가는 금전적인 이유에서도 불이익이었다.

하지만 수만의 개의치 않았다.

그깟 돈은 지금 주머니속 지갑에도 넘쳐 났으니까.

"그래.잘 받아주지."

수만은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던 기호는 욕설을 내뱉으며 그의 멱살을 세게 놓고 몸을 돌렸다.

"이딴 일..다신 안 합니다!"

마지막말을 뒤로하고 문쪽으로 몇발자국 발걸음을 옮겼을때 다시한번 문이 세게 열렸다.

"사장님!!!"

그리고 등장한 여덟명의 소녀.

언제나처럼 문밖에서 엿듣고 있던게 틀림없다.

하긴 그 착한 기호가 전화통화 하나로 도로에서 유턴을 하면서 욕을 하는데 대체 뭤대문에 그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만이 하는 말을 듣고나서야 기호의 심정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었다.

"너,너희들..!"

갑자기 등장한 소녀시대에 이번엔 수만도 크게 놀란 눈치였다.

여덟명 사이에서 티파니가 나섰다.

"사실이에요!?진욱이가 더이상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게!"

"어,어쩔 수 없다고 들었지 않.."

"상관없어요!진욱이가 더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면 저도 관둘래요!"

"뭐,뭐?!!"

기호가 눈을 크게뜨고 티파니를 말렸다.

자신만 잘리면 됐지 티파니까지 끼어들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 말이다.

한순간에 위약금에 이미지 추락에..인생을 일부러 망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그만큼 티파니가 한말은 사장앞에서 입에 함부로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모두가 놀란 상황에 이번엔 태연이 한발짝 앞으로 나섰다.

"저,저두 그만둘래요!"

"너까지!!"

"..가수로서 노래부르는거..아직까지도 좋고 계속하고 싶은데요.진욱이가 없다면....차라리 안할래요."

이게 지금 현실인가 구별하지 못한 수만이 할 수 있는건 멍한 상태로 입만 뻐끔뻐끔 거리는 것이었다.

"삼촌!!나두 안해요!!"

"수,순규야!!너 왜이래!"

"진욱이 없음 안돼애!!"

조카인 순규마저 주저앉아 땡깡을 부린다.

"에잇-안해!안해!위약금 물면되지!"

수영은 위약금의 금액이 얼마인지 조차 모르고 내뱉은 말이다.

물론 그 금액을 알고나서도 진욱이 돌아올 수 없다면 역시나 그만둘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차례로 서현,유리,윤아-그리고 얼떨결에 효연까지.

마지막 제시카만 그만 둔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티파니가 수만의 곧 쓰러질 듯한 얼굴을 노려보며 입을 연다.

"제시카!너도 그만 둘거지?"

묵묵부답.

그 후로도 몇초간 대답이 없자 모두들 제시카가 서있는 자리를 본다.

"...제시카?"

없었다.

제시카가 서있어야할 자리엔 그 누구도 서있지 않았다.

분명 차에서 내리고 문앞에서 까지는 봤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그 후론 본 기억이 없다.

"우읍!!욱!"

"시끄러 이년아!"

앞좌석엔 두명의 남자가 차를 운전하고 있고 바로 뒷좌석엔 밧줄로 온몸을 꽁꽁 묶인 채로 누워있는 제시카가 보인다.

입엔 손수건이 말려 물려있어 말을 하기엔 불가능하다.

갑자기 스케줄로 향하던 차를 회사로 돌린 기호를 따라 차에서 내려 sm 건물안에 마지막으로 들어가려 할때 뒤에서 누군가 입을 막고 끌고 간 것이었다.

검은 정장에 흉악한 외모.

조폭이 틀림없었다.

왜 조폭이 자신을 납치 한 것일까?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끌려간다면 안좋은 일을 당할거란 사실은 분명하기에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네 형님.잡아들였습니다...네,이제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진욱의 전화번호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네,먼저가서 기다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형님!"

누군가와의 통화인지 또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대화와 함께 차는 그렇게 도로를 주행했다.

 "콜록..!!콜록!"

"오빠아!엉엉!대체 왜그러는거야!"

화장실의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찔끔흘리며 따가운 목을 매만지는 진욱과 그 옆에서 아이마냥 펑펑 우는 지연의 모습이 보인다.

사람은 위기감을 느끼면 잠재적인 힘이 나온다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지연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밧줄에서 진욱의 목을 빼내었고 덕분에 지금 진욱이 이렇게 숨을 쉬고 있을 수가 있었다.

그것보다 지연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이제 진욱을 더이상 살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볼 텐데 이젠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진욱은 기침이 멎은 상태였지만 일부러 더욱 크게 기침을 하며 이 상황을 모면할 묘책을 찾고 있었다.

"흑흑..오빠..흑!일단 여기서..나가자."

지연은 진욱을 어떻게든 일으켜 부축을 하고선 화장실 밖을 나섰다.

그리곤 힘이 풀린 진욱을 소파에 앉힌다.

"흐윽!..밧줄은 또 어디서 구한거야!"

"..."

"왜그런거야..!또 심장이 안좋아졌어?"

"..."

며칠전만해도 즐겁게 노래를 불러가며 생일파티까지 보냈던 사람이 갑자기 목을 매달려한다니...

"조용히해...할머니 깨시겠다."

"며칠전 그렇게 웃은 건 그게 마지막 생일파티라 생각해서 그런...거야?"

"말 막하지말어!"

누구보다도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 진욱인데 그런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열이 뻗쳐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자신에게 처음 화를 내는 낮선 진욱의 모습에 지연은 많이 놀란 표정이다.

"너,너무해...멋대로 죽으려 했던 주제에...!나 이렇게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

'아..'

뒤늦게서야 자신이 화를 낼 처지가 아니란 걸 깨달은 진욱은 어찌해야 할지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연을 다독였다.

"미,미안..나도 모르게 순간 화가나서.."

"흐윽!흑..!"

[말없이 내 손을 잡던 그 날...새하얀 벗꽃이 날리던 날..]

그 상황 속에서 휴대폰을 화장실에 떨어뜨리고 온건지 벨소리가 열려진 화장실에서부터 매아리 쳐 들려온다.

"아,전화왔다.받고올게."

이 불편하고 복잡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진욱은 잘됐다하며 화장실로 달려갔고 지연은 혹시나 문을 잠궈버리고 목을 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겁하며 따라갔다.

낮선 번호였지만 일단 받고 본다.

"여,여보세요."

-흠..오랜만에 들어보네.

걸걸하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 목소리.

하지만 왠지 피해야 할 것 같은 반갑지 않은 그런 목소리다.

"...누구시죠?"

신원을 묻는 진욱의 조심스런 목소리에 남자는 호탕하게 웃는다.

-크하하하!나를 기억 못한다고?!하하하!

몰라서 묻는건데 심하리만치 비웃는 남자 때문에 진욱은 기분이 나빠져감을 느꼈다.

"오빠,누구야?"

지연이 묻자 진욱은 손을 살짝 들어 잠시 조용해달란 제스쳐로 답했다.

-나야 나.예전에 조폭 두목.

"!!!"

진욱은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곧이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전화를 건 이유는 또 무엇인지하는 불안한 생각들이 뇌속을 파고든다.

진욱은 일단 연락을 끊고 기호에게 알릴 생각이다.

진욱이 대답이 없자 길순은 전화를 끊을 거라는 걸 예상하고 먼저 선수를 친다.

-제시카....라고 하던가-?

"...뭐,뭐?"

제시카의 이름이 길순의 입에서 나오자 불안감은 최대치를 향해 달린다.

-지금 내 부하들이 잡아놨단다.

"이 개..!!"

-애새끼야.내가 이 나이 먹고서도 니한테 욕을 먹어야 쓰겠냐?나도 지금 그년 얼굴 보러간다.

전화기를 잡은 분노로 떨리는 손에 핏줄이 크게 튀어 나온다.

"거기 어디야..!누나 있는데가 어디냐고!"

-킥킥.안그래도 말하려했지.거-동원고라고 알지?

동원고등학교라하면 저번에 진욱이 유틴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펼침으로 인해 한원이네 학교가 쓸어먹을 수 있었던 학교를 말하는 것이었다.

"알어!거기냐!?"

-새끼..성급하네.거기 근처에 폐공장이있다.어떻게든 알아서 와.그럼 이따 보자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자세히 설명해줘야지!"

-니가 알아서 와..그리고 인맥은 있냐?죽고싶음 혼자오고.아무튼 나보다 늦지 않길 바란다.심심해서 여자를 먼저 꿀꺽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그리곤 길순은 광소와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다.

"야!야!"

휴대폰을 노려보며 욕을 내뱉는 진욱이 이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급하게 나선다.

"오빠 어디가!"

"큰일났어..!지금 시간이 없으니까 이따가 말해줄게!"

그리고 날렵하게 현관까지 달려나가 신발은 신던 진욱이 급히 뒤돌아봐 지연에게 묻는다.

"너 혹시 동원고 근처에 폐공장알아?"

"아,아니 모르겠는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신발을 구겨신고 나가려던 진욱이 다시 지연을 바라본다.

"살려줘서 고마워."

환하게 웃음 낀 그 말에 지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다.

'정말 고맙다!지금 죽었으면 큰일 날 뻔 했잖아.'

 일단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은 옳지않다고 판단한 진욱은 되는대로 한원에게 연락했다.

-하하~왠일로 먼저 전화를 거세요?

스피커를 통해선 오랜만에 들어보는 촐싹거리는 한원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반가웠다.

"너,동원고 근처에 있는 폐공장 아냐?"

-당연히 알죠.거기 예전에 저희가 쳐들어간 동원고 아지트 였잖아요.근데 왜요?

"너 지금 당장 동원고 앞으로 와라."

-네?갑자기 왜..

"내가 조폭이랑 좀 안좋게 엮였거든?애들 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모아서 와줘.그럴 수 있지?"

-....

아무말도 없다.

"야..야?나 지금 진짜 급하다!설마 안되는거냐?"

-..가,가..가..

한글 처음 배운 아이처럼 '가'만 반복한다.

장난치는 듯한 한원의 태도에 윽박지르려는 그때 스피커에서 터질 듯한 외침이 들려온다.

-가,감격이에요!!그거 싸우는 거 맞죠?!그쵸?!이야!형과 함께 싸울 수 있다니!그때 그 전설을 다시 볼 수 있는 건가요!

"시끄럽고!!되도록 빨리 와라!"

한원은 짧고 굵게 '네'를 외치고는 곧장 달려간다는 말과 함께 연락을 끊었다.

"여기 택시!"

상원고의 김한원.

진욱 앞에선 빌빌 기어서 그렇지 사실 서울의 전체 고등학교 일진들 사이에선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얼마나 유명했는지 한번은 다른 조직폭력배에서 그 명성을 듣고 몇번 스카웃 제의까지 해온 적도 있었다.

물론 모두 거절 했지만 말이다.

그런 한원이 오랜만에 휴대폰을 들었다.

"어.진수냐?"

이진수.

5명의 진욱 추종자 중 한명인 상원고 일진.

"크크크.놀라지 말아라.지금 진욱이 형이 조직폭력배랑 패싸움 할 지도 모른다더라."

한원이 말이 끝나자마자 스피커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이 울린다.

"새끼..시끄럽게..아무튼!"

한원이 전율에 몸을 부르르 떤다.

씩.

"소집해."

"후웁..왜,왜이러는거예요!"

입에 물져있던 손수건이 빠지자마자 제시카는 눈가에 눈물을 흘렸다.

몸은 밧줄로 칭칭 감긴 상태로 조금도 꼼짝할 수 없었다.

정장의 남자는 옆으로 누워있는 흐릿한 제시카의 신형을 보며 이상한 미소를 지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아..진짜 장난아니다.저거 진짜 제시카지?"

"응."

"실물이 더 예쁜데?..먼저 해버리면 안되냐?"

"쓰읍..그림에 떡이다.닥치고 줄이나 잘 서.형님이 어찌하면 넘겨 줄지도.."

제시카를 앞에 두고 듣기 거북한 음담패설을 나누는 그들.

수치스런 감정들이 제시카를 옭아맨다.

폐공장 안은 지독히도 어두웠다.

장시간 관리를 하지않아 퀘퀘한 먼지들만 대량으로 허공에 떠다녀 숨을 조금만 쉬어도 목이 칼칼해졌다.

키이-잉!

녹슨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동시에 흰빛들이 넓은 폐공장안을 매꾸었다.

눈부신 빛에 의해 자동적으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으..으아.."

제시카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빛 사이로 대량의 검은 정장무리가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어두워서 몰랐지만 폐공장 안에있던 무리도 꽤나 많았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깍듯하게 'ㄱ'자로 몸을 숙이는 검은 무리.

그리고 그 무리의 중심에는 무표정의 배나온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제시카는 그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길순은 혀로 두툼한 입술을 한번 쓸더니 이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제시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왜..왜그러시는 거예요..저한테."

심히 겁에 질린 눈망울.

길순은 적극적인 대시를 하는 여자보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여자를 강제로 강간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이구~목소리 이쁜 것 좀봐.."

그리고 뻗치는 손을 제시카가 기겁하며 피했다.

때문에 많이 무안해진 손을 거둔 길순은 다시 말을 이었다.

"궁금하지?니가 왜 여기에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제시카는 절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손을 피했다는 것에 약간은 화가 난 상태라는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진욱이라고알지?"

"지,진욱이요?"

뜻밖의 이름이 조폭의 입에서 나오자 제시카는 크게 의아하곤 저도 모르게 뱉은 말이었다.

"알지?"

다시 묻는 그에 순간 많은 생각들이 제시카를 괴롭혔다.

"아,아니요.몰라요."

단순히 진욱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란 제시카의 대답이었다.

길순은 헛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래?그럼..진욱이 그렇게 착한녀석인가?"

"?"

"네 이야기를 꺼내니까 곧바로 달려온다더군."

제시카는 진욱이 자신을 위해 달려오고 있다는 말에 이 순간에도 감동을 느꼈다.

'진욱아 차라리 오지마!'

그리곤 그는 심히 졸라매 보기만해도 힘들어 보이는 허리띠를 푼다.

"일단 그 새끼는 늦을 거 같고..먼저 맛 좀 볼까?"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제시카가 아니다.

제시카는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몸을 움직여 어떻게든 피할 길을 찾는다.

길순에겐 그게 오히려 자신의 성욕을 자극하는 흥분감으로 연결되고 곧장 바지를 내린다.

"꺄아악!!!"

제시카의 비명과 동시에 폐공장에 가득 울린 목소리.

"오케이,거기까지."

"!!"

길순은 놀라 뒤를 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었다.

혼자 폐공장 안으로 서슴없이 발을 들이고 있는 진욱과.

"왔구나?"

길순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바지를 다시 올린다.

하지만 제시카를 탐하는 건 잠시 늦춰지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추잡스럽게도 여자를 미끼로 삼냐?"

진욱이 심히 비꼬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고 길순의 명령을 기다리는 검은 무리를 대신해 부두목이 대신 입을 열었다.

"형님 어쩔까요?"

"천~천~히 반죽여라.지 혼자 뭐 해보겠다고."

"진욱아 도망쳐!!우읍!"

제시카가 소리치자 길순이 시끄럽다 생각하며 땅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다시 입에 넣어버린다.

"새끼 뭔 배짱으로 혼자왔냐?"

"씨발 괜히 쫄았잖아~고작 이 새끼 조질라구 이 정도를 부른거야?"

"좁밥같아서 다구리치기도 그렇고..걍 1대1 다이다이나 깔까?"

발밑에 기어가는 개미보는 양 진욱에게서 전혀 위협감을 느끼지 못한 조폭들이 허탈함에 각자 말을 내뱉는다.

진욱은 피식웃으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서 있지만 속마음은 그와 정반대인 초긴장 상태였다.

'운좋게 공장 찾아서 왔더니 곧 뒤지게 생겼네!..이 새끼들은 언제 와!'

"야,형님이 방심하지 말랬다.저래보여도 싸움 좀 한다고.그냥 다구리치자."

"아~쪽팔리게.알았다!"

그리곤 열명의 남자들이 진욱의 주위로 슬금슬금 움직여 원을 만든다.

진욱의 지나치게 태연한 모습에 왠지모를 긴장감이 흐르는 이 침묵을 깨고 달려드려던 그때였다.

투다다다다다!

부르르르르르~!!

"휘이익~!!"

"조폭이랑 뜨는거다~이 기시키들아~!!하하하하하!"

폐공장 밖에서부터 기똥찬 엔진소리들과 시끄러운 환호성들이 울려온 건.

'왔다!!'

진욱은 이 순간 이것을 신의 타이밍이라 여기며 예수님이 존재한다면 나중에 죽고난 뒤 대면할때 키스를 열번은 이어서 해주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게 생각했다.

'지옥에 갈테니 만날 일은 없겠지만.뭐.'

곧이어 라이트를 발하며 들어선 수십대의 오토바이엔 교복을 입은 일진들이 두명씩 자리잡고 있었고 걸어서 오는 인원들도 꽤 많이 보였다.

확실한 건 조폭의 수보다는야 진욱쪽의 수가 훨씬 많다라는 거다.

실력적인 것으로는 꽤나 떨어지겠지만.

"뭐,뭐야!저것들은!!"

"저 새끼 수작이였어!"

"어쩐지 쫄지를 않더라니!!"

부다다다다!

오토바이들은 조폭들의 주위에 큰 원을 만들어 강강술래 하 듯 돌며 조폭들을 도발한다.

조폭들까지 합쳐 적어도 이백명은 될 듯한 인원에도 폐공장안은 반도 채 채워지지 않은 모습이다.

"어떠세요?제 힘이!"

한원과 추종자 네명이 어느새 진욱의 옆에 서 있다.

진욱과 눈이 마주치자 몸을 땅에 박을 것처럼 숙이는 추종자 넷.

아까 조폭들이 길순에게 보였던 인사보다 더욱 깟듯하고 각진 모습이었다.

진욱은 대강 손만 흔들어 주고 한원에게 말했다.

"저거 다 몇 명이냐?"

"한...140명 쯤?"

눈으로 빠르게 세니 조폭들은 100여명 쯤으로 보인다.

확실히 수로선 유리한 상황이다.

"너 주먹 좀 쓰는가보다?"

"조금요."

검지와 엄지사이를 좁히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나중에 나랑 맞장 한번 뜨자."

그 말에 한원이 등에 식은땀이 줄줄줄 흐르는 것을 느끼곤 못들은 척 크게 외친다.

"스,슬슬 모여라!애들아!!"

"오케바리!"

"아!왜!재밌는데!"

차례대로 진욱과 한원패거리 뒤로 일렬횡대로 여느 조폭 못지 않은 완벽한 자리배치를 해보인다.

촤아악!

오토바이들이 멋지게 옆으로 미끌어지다가 반듯하게 선다.

"켈룩!켈룩..!씨바 먼지날리잖어!"

한원이 코를 막고 투정을 부렸고 이내 주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남몰래 코를 막은 손을 땐다.

그리고 그것을 무마하려 조폭들을 가르키고 크게 외친다.

"조지자!!"

"...."

"...."

보통때라면 우와아아아~하는 환호성과 함께 패싸움 시작되어야 하지만 뒤에선 아무런 움직임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처구니가 없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오토바이에서 내린 무리들이 한원이 아닌 그 옆에 진욱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진욱 추종자 중 한명인 상현이 한원을 비웃으며 말한다.

"푸하하!지금 우리가 네말을 듣겠냐?니 옆에 너보다도 더한 분이 계신데?"

"아!진짜!나도 멋진 거 해보고 싶다고!"

패거리들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끼곤 땅을 마구 밟으며 발악하는 한원을 조폭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디서 앙탈이야?

진욱이 이런 상황에서도 웃기기는 한지 어깨를 들썩이고 애써 그 웃음을 참아본다.

"크큭..큽...흠흠!.."

진욱이 조폭들을 한번 훑어본다.

그의 입에서 단 한마디만 나오면 처절한 살육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굳게 다문 진욱의 입이 다시 열린다.

"가자."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조폭들 역시 사인이 떨어졌고 두무리는 서로로를 향해 죽일 듯한 안광을 뿌리며 달려든다.

곧이어 검은 무리와 형형색색(?)의 무리가 만나는 그 순간부터 구타 소리는 폐공장 안을 매꾸었다.

퍽!퍼억!

"개시퀴들!"

퍼억!

"으악!"

말 그대로 아수라장의 모습.

한원과 추종자 넷도 전장에 투입된 상황.

진욱은 어딘가로 길게 문자를 보내는 듯 핸드폰을 잠시간 놓지 않았다.

"이 새끼 이 상황에 폰을 만지냐!" 

그 모습을 발견한 조폭 한명이 진욱에게 곧장 다리를 날렸지만 진욱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몸을 뒤로 살짝 빼는 것으로 그 발길질을 피해버렸다.

그리고 곧장 몸을 다시 앞으로 세게 뺀 뒤 그 반동을 동반한 주먹을 조폭의 면상에 선사한다.

뻐억!

"컯!"

요상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대로 스르르 무너진다.

마치 팔에 앉은 모기를 대충 쳐죽인 것 같은 모습이다.

탁-

"끝."

진욱은 이내 폰을 닫더니 전장으로 발걸음을 빨리한다.

"꾸엑!"

아,그때 쓰러진 조폭의 허리를 밟고 지나갔다는 것까지 설명해야 하나?

 한편 갑작스레 들이닥친 고삐리들 덕분에 길순은 의외라는 상황에 놀란 눈치였다.

이 많은 인원을 움직일 수 있는 진욱의 능력에 그를 다시보게 됐다.

뭐,악감정적인 쪽으로 다시보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딱봐도 수적으로 딸리는 모습에 길순은 여유롭게 전화를 든다.

".....어.주태냐?야 한-백오십명만 땡겨줘라...여기가 어디냐면-저번에 여자 따먹고 매장 시킨 곳."

그리고 재밌는 대답을 들은건지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몇번 웃더니 이내 끊는다.

그리고 난장판인 전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제시카를 향해 말한다.

"지금 저 새끼가 구하러 와줘서 살 수 있을 것 같지?"

"...."

"아니지...조폭하고 저딴 족보도 없는 고삐리놈들하고 비등할 것 같아?"

사실 저 수로만으로도 고삐리들은 별 무리없이 제압할 수 있었지만 그 차이가 어엿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인원을 더욱 모은 것이다.

남몰래 매장 시키려했던 일이 이렇게나 커지자 오히려 이게 더 즐거웠다.

그 상대가 고삐리라는게 맘음에 들진 않았지만..

한편 묶인 채 누워있는 제시카는 느슨해져가는 손목의 밧줄을 풀기위해 남몰래 땀을 빼고 있었다.

조폭이 제시카를 얕보고 느슨하게 묶었던 것이 문제.

'조금만...조금만..'

스특..

손목에 바람이 통하는 느낌과 함께 밧줄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시카는 떨어진 밧줄을 잡아 대충 손목에 감고 묶인 연기를 하였다.

이제 지금처럼 몸의 밧줄만 풀면 되는 것이었다.

퍼억!

"크흑!"

"꺄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제시카의 옆으로 쓰러졌다.

머리에는 피가 흐르는 모습.

그 고등학생을 도우려 다른 일진이 달려들지만 조폭에겐 한방 먹이기도 역부족인 모습이다.

결국 아까의 그 남학생처럼 나가 떨어진다.

조폭 한명당 두명씩만 맡아도 진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제시카는 부디 진욱이 어디 한군데 다친 곳 없이 무시하기만을 바랬다.

한편 제시카가 걱정하는 그 주인공 진욱은...

날아다닌다.

장난아니고 날아다닌다.

마치 홍길동 처럼 이리저리 빠르게 몸을 움직여가며 조폭들을 눞혀간다.

게다가 전혀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중음에서의 초인적인힘이 실샐활에서 약간은 적용이 되는 모양이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다.

퍽!퍼걱!

정면에서 달려오는 조폭의 무릎을 차 중심을 잃게하고 곧이어 하이킥으로 기절을 시켜버렸다.

이것 역시 무척 빠른 시간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주먹의 힘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진욱의 손에 걸릴때면 원펀치 원킬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퍼억'이 아닌 '뻐억'하는 업그레이드(?)된 효과음이 퍼져 나온다.

퍼억!

"크흐!!?"

조폭의 뒷무릎을 차 무릎을 꿇게 만든다.

진욱은 그렇게 수치스런 모습으로 굻어앉아 있는 그를 한껏 비웃는 표정으로 내려다 본다.

그리고 쪼개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이익!!이 새끼!"

뻐걱!

"커......"

털썩!

다시 일어서려 할때쯤이면 사커킥으로 고히 잠들게 해준다.

무척이나 힘들어보이는 한원이나 다른 패거리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과는 적이 아닌 것에 대한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진욱의 기세로 힘입어 조폭들을 더욱 밀어붙히던 그때.

"여어~!!!!!"

다른 조폭들이 등장했다!

"뭐...뭐이리 많어!?"

어수선해진 분위기.

웃음짓는 조폭들과 절망어린 표정의 일진들의 표정이 극과 극의 모습을 보인다.

그 검은 무리와 같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무려 백오십명이다.

얼마나 인원이 많은 지 똑같은 정장을 대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제작하는 지가 심히 궁금해진다.

빠각!

"크학!"

조폭이 든 각목 하나가 학생의 머리를 세게 쳤을 때 그 소리를 총성으로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의 난입으로 진욱쪽은 살충제 맞은 모기처럼 빠르게 무너져 간다.

진욱에게서도 아까의 여유롭던 표정은 보이질 않았다.

빠득!

위태롭던 진욱의 등에 결국 각목 하나가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

진욱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지만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비릿한 웃음과 함께 각목을 크게 휘두르는 조폭.

'제길..!!벌써 골로 가면 안되는데!'

눈을 질끈 감는다.

퍼어어억!!!!

거창한 구타음은 들렸지만 정작 고통은 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너무 아파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건가라고도 생각해보지만 그건 아닌 듯 싶어 슬그머니 눈을 떴다.

"토..톰!"

"친훅!!!여기서 뭐하는 커야!"

미친 듯이 달려온건지 이마엔 땀이 송글 송글하다.

아까 문자를 보낸 사람 중엔 톰도 포함되어있었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뻑!

"김치맨 퍽큐!"

"으악!깜씨다!"

흑인 한명이 조폭의 얼굴에 니킥을 선사한다.

동료인 흑인 근로자들까지 수십명 끌고 와선..

진욱을 잡아 일으킨 톰이 주위를 훑어 보며 묻는다.

"커믄색 옷 입은 사람 쓰러트리면 퇴는 거지?"

"으..응."

문득 톰의 팔 근육을 보자 삼두를 비롯한 잔근육들이 꿈틀이며 요동친다.

진욱은 걱정했다.

톰이 혹여나 살인을 하지 않을까.

톰은 진욱도 어찌 해보지 못하는 유일한 괴물이었다.

그런 톰과 진욱이 뭉친다면?

....말 안해도 답을 알리라.

한편 한원은 멋지게!

밟히는 중이었다.

한명만 잡고 무자비한 구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폭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더니 전세역전으로 한원이 다구리 당하는 상황이 되버린 것이었다.

퍼억!퍽!

"크흑!으윽!"

가끔 머리를 맞을 때는 기절할 것 처럼 멍해졌다.

아까 각목 모서리에 머리를 맞아서 인지 찢어진 듯한 상처 사이로 자꾸만 피가 흘러내려 눈 앞을 흐리게 했다.

화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뚜껑이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태였지만 그 분을 풀지 못한다는데에 더욱 화가 난다.

"개샠!죽어봐..걻덟헑!"

"켏홂!"

그때 발길질을 하던 조폭들이 한순간에 옆으로 사라졌....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톰과 진욱이 조폭들의 머리만을 골라 때리는 중이었다.

진욱에게 걸린 놈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톰에게 걸린 조폭은 두개골에 금이 가 있을지도 모른다.

"멍하니 뭐하냐!일어나!"

"아..네,네!"

벌떡 일어선 한원은 무릎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움직임에 무리는 없었기에 마구 주먹을 날렸다.

그토록 존경하던 동경해오던 진욱이 자신을 믿고 등을 맡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함과 함께 없던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빠악!

경쾌한 타격음에 한원이 멋지게 웃어보인다.

한편 폐공장의 밖.

공장안의 어두운 환경과는 상반되는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그곳으로 검은 차들 수십대가 먼저 주차되어있는 차들 사이로 길게 들어선다.

덜컥.

검은 정장의 남자가 운전석에서 황급히 내려 문을 열어준다.

고급스런 차인 만큼 문열리는 소리도 고급스럽다.

열린 문 사이로 긴 기럭지를 뽐내며 내린 사람은 하얀 정장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남자.

그리고 뒷문이 열리더니 거기선 유틴이 내렸다.

"싸움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네 동생 말이 사실인갑다."

"삼촌.다 죽여버리자고."

강지환.

37살로 유틴의 삼촌이었다.

환형파의 두목으로 서울 조폭 1위인 길순파에게 5년째 그 자리를 뺏지 못한다는 것에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그는 오늘 패싸움을 벌인다는 소식에 유틴과 함께 이곳을 찾은 것이다.

처음엔 믿지 않아 반신반의로 온 것.

사실로 판명나자 들뜬 흥분감을 감출 수가 없다.

유틴 역시 진욱의 문자를 처음 받았을 땐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진욱이 이런 장난을 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제시카도 굉장히 위험해지기에 아는 동생을 시켜 폐공장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 조폭들이 길순파라는 것을 눈치채곤 삼촌에게 사실을 말한 것이다.

"고삐리들이랑 싸운다고?킥!쪽팔린 줄 알아라."

지환은 주머니 깊숙히 손을 찔러넣고 어느새 내려서 명령을 기다리는 이백의 환형파 일원들을 향해 나즈막히 뱉는다.

"가자~끝장보러."

 싸우는 도중 또 등장한 조폭 무리.

이제 더이상 승산이 없음을 예감한 일진 무리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기를 다반사.

길순 역시 의아함에 다가서려다가 갑자기 자신쪽의 일원의 머리를 발로 냅다 꼿는 것으로 상황이 안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무리의 가운데에 흰색 정장을 입은 남자를 보고 아차했다.

그는 길순파의 천적인 환형파의 두목 강지환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그들이 나선다면 승리는 더욱 힘들어지리라.

"니..니미럴!"

서둘러 휴대폰을 펼칠 때 어느새 일어선 제시카가 그 손을 쳐버렸다.

탁-타닥!

고급 휴대폰이 시멘트 바닥에 미끄러져가고 길순은 제시카를 바라보고는 굵은 손바닥으로 뺨을 때려버렸다.

"미친년!진짜 죽고 싶냐?!"

"우큭..."

그리곤 휴대폰을 주으러 달려가는 길순보다 제시카는 먼저 휴대폰을 주워 두손으로 움켜잡았다.

"부,부수면 죽여버린다!씨발!"

"진욱이..진욱이만 안다친다면..!"

빠직!

폴더 휴대폰은 허무하게 두동강이 났다.

"이 씨바알!!!"

'지..진욱아..!!'

퍼억!!

다시 한번 그 자그만 얼굴을 때리려 할때 길순의 옆구리를 발차기로 가차없이 날려버린 사람.

"이 쓰바 새끼가 누굴 건드려!"

"유..유틴..!"

"괘,괜찮냐?"

자신을 올려다보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미안하지만 사랑스러워 보였다.

"우씨!괜찮아!!흑!"

아까 맞아서 부어오른 뺨으로 괜찮다며 먼지를 툭툭 털고서 일어나는 제시카.

유틴은 마이 안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제시카에게 건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저번에 그 총이었다.

"이거 가지고 옥상위에 숨어있어.만약에..진짜 위험한 순간에 쓰고.알았지?"

"이,이거 진짜 총이야?"

"그렇다니까!그리고 절대 몸은 쏘지말고 다리를 쏴야 된다?살인자 되기 싫으면."

제시카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고 반짝이는 총을 받아들었다.

유틴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는 몸을 돌려 길순에게 향했다.

"유틴!"

제시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몸이 반가워 자기도 모르게 돌아본다.

"어...아,응?"

유틴은 모르고 있다.

자신의 입이 기분좋다고 환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을.

"너..사실 착한 녀석이구나?고마워."

그리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 버린다.

유틴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가 사라진 계단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제시카..."

드디어...드디어 정말 사랑하던 여자와의 오해가 풀렸다.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아져간다.

유틴은 웃는 그 표정 그대로 길순을 바라보았다.

"넌 기분 좋게 죽여줄게."

"히익..!!"

"제시카 건드렸으면 너 진짜 머리에 구멍났을지도 몰랐어."

그 말로 인해 길순은 유틴이 제시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장 쉴 새 없이 싸우는 부하 몇을 부른다.

"야 이새끼들아!!저년 계단 타고 올라갔다!!잡아와!!"

"허억...헉..형님!!괜찮으세요?!"

"그래!!괜찮으니까 빨리 올라가봐!!"

"예!!!"

그러더니 그 남자는 그 싸움터에서 남자 넷을 모아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너..!!"

"하하..날 때릴 시간이나 있을까?이러고 있을 시간에 여자는 잡혀서 먹힐 지도 모르지."

"씨발!"

유틴은 욕설을 뱉으며 계단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내딛으려던 발을 멈췄다.

그 계단으로는 진욱이 온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놀란 유틴의 눈이 서서히 여유로움으로 바뀐다.

'제시카 좀 꼭 좀 구해줘라.'

"어쩌냐?싸움 잘하는 내동생이 먼저 구하러 가버렸는데?"

"이..이이..!"

"넌 이제 죽었어."

길순의 표정은 절망감으로 물들어 간다.

 유틴이 당연히 제시카에게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안 진욱이 한층 여유로워진 몸으로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렇게 쉴 수 있었던 이유는 갑자기 유틴과 함께 난입한 조폭무리 덕분이었다.

이 많은 조폭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보니 세삼 그에게 잘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제시카가 올라간 계단쪽으로 향하는 조폭 다섯명이 보였다.

"저...저런!"

진욱은 쌍욕을 뱉어가며 지체없이 계단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덤벼드는 몇 무리는 아직까지 살아있던 진욱 추종자들과 톰과 한원이 맡아주었기 때문에 쉽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하아...하.."

익숙치 않은 빛에 눈을 찌푸려 본다.

진욱이 옥상을 처음보고 느낀 점은 난간이 없어 꽤나 위험해 보였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넓어 떨어질 위험도 없어 보였지만..

"오,오지마!"

멀리서 제시카의 당황기어린 표정과 몸짓이 리얼하게 보였고 진욱은 조금 더 힘을 내 그 쪽으로 달려갔다. 

"참나...쏘시게?"

"나..나 진짜 쏠거야!"

"쏴 봐!쏴 봐!"

쏴 보라며 가슴을 내미는 조폭.

그의 말대로 제시카가 총을 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절망감에 총을 잡은 손이 내려가려던 그때 멀리서 달려오는 진욱이가 보였다.

"지..진욱아?"

두다다다다!

진욱의 모습이 점차 클로즈업 되고 오싹한 한기를 느낀 조폭 다섯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뻐버버버버벅!

그리고 머릿속에 별이 새겨지는 것과 동시에 정신을 잃어 버렸다.

털썩-털썩-터..

왼손은 왼쪽 얼굴 옆에 오른손은 쭉 내뻗은 완벽한 자세의 진욱이 다섯 모두가 쓰러지는 걸 확인한 후에야 이내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제시카를 바라보았다.

"하아...걱정했잖아."

"진욱아.."

"어디 다친대는 없지?저 변태들이 건들지도 않았고?"

"진욱아.."

진욱이만 부르는 제시카의 눈에서 이따금 눈물이 다시 흐른다.

"또 우는거야?"

"흐윽..흑..내가 전에도 울었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자국이 다 나있는데 바보누나."

제시카의 손을 잡아 일으킨 진욱이 몸을 돌리자 머리가 띵해져옴을 느낀다.

비틀!

"진욱아?"

제시카가 위태로워 보이는 진욱을 빠르게 부축한다.

이 어지러움은 그간 자주일어났던 느낌.

'아...한국이가 다시 나를 부르는구나..'

한국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다.

'아가야..지금은..곤란한데..'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언제나 그렇 듯 한국이의 셰계는 너무나 하얗다.

소녀시대의 숙소의 벽보다도 훨씬 더 하얀 순백의 세상.

한국이의 순수함을 색으로써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한국아.잘 있었니!"

진욱이 장난스럽게 한국의 겨드랑이에 손을 껴 안아들었다.

"꺄르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에 좋은지 아기 특유의 맑은 웃음소리를 낸다.

요 며칠간 한국이와 보낸 시간은 진욱에겐 너무 행복했었다.

한국이는 기분이 좋을때면 두손을 앞으로 뻗어 자신을 부른다는 것도 알았고 또 목마를 태워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 다는 것도 알았다.

그만큼 많은 커뮤니티를 나누고 친해진 둘.

오늘이 그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진욱은 한국이 몰래 쓴웃음을 짓는다.

"응?"

진욱의 표정이 점점 당혹감으로 물든다.

들고있던 한국의 몸이 조금씩 투명해져갔기 때문이다.

"뭐..뭐야!설마 이제 몸을 뺏기는 거야?!"

"우..우...우아아앙~"

한국이도 낮선 기분 때문인지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렇게 투명해져가는 한국이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투명해져가고 손에 느껴지는 한국이의 몸의 감촉마저 무뎌져 간다.

"하,한국아?!"

사라졌다.

허무하게 사라졌다.

"하..하하?"

이제 홀로 남은 것인가 싶은 순간,진욱은 다시 한번 일어나는 어지러움에 이게 대체 무슨일인지 그 답을 찾기위해 나름 머리를 굴려본다.

다시 배경은 제시카와 있던 옥상.

안구에 들어오는 파란 하늘이 평온해 보인다.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급히 몸을 일으킨 진욱은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제시카를 찾았다.

"하..누나 거기에 있었어?"

주저앉아 권총을 만지작 거리던 제시카는 진욱의 목소리에 시선을 권총에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방긋 웃는다.

"헤헤.."

"누나?"

마치 아기 같은 표정을 하고선 헤실헤실 웃어보이는데..

제시카는 두손을 진욱을 향해 뻗는다.

'아...!'

저 행동은 한국이 진욱을 발견하면 항상 해보이던 제스쳐 였다.

'뭐야?..한국이가 누나의 몸에 빙의라도 했다는거야?'

생각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분명했다.

"크으...두번째가 말하지 못한 능력이 바로 이거였어?"

진욱은 자신에게 팔을 뻗고 있는 한국이 빙의된 제시카를 바라보며 가슴을 졸인다.

현제 제시카의 손엔 권총이 들려 있는 상태로 방아쇠 위에 손가락이 올려져있는 상태였다.

불안하게도 총구도 진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한국아?"

"꺄아?"

"일단 그,그 손 좀 내릴래?"

그 말을 두살짜리 아기가 이해할리 만무했고 평소와 다른 진욱의 행동에 한국은 의아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내려가는 팔.

"휴우.."

진욱이 한시름 덜며 다시 이전의 아빠 미소로 한국이에게 걸어갔다.

"꺄르~"

진욱이 여느때와 다름없는 미소로 다가오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두팔이 다시 진욱을 향해 뻗어나갔고 순간 권총을 든 오른손의 손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으아?!"

타앙!!!

푸직!!!

총알이 몸안을 파고 들자 그 힘이 너무나도 강대해 진욱의 몸이 뒤로 밀려나갔다.

터더덕!

진욱은 몇번이나 굴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굴러 바닥에 축 늘어졌다.

한국이도 총성에 많이 놀랐는지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으..으...으아..으아아앙~!!"

"커...크허..쿨럭!!"

복부에서부터 찢어질 듯한 고통이 머리 끝까지 올라오지만 비명을 지를 힘조차도 나지 않는다.

죽을 힘을 다해 눈을 밑으로 내려보니 배에 크게 난 구멍에서부터 피가 꿀렁이며 올라오고 있다.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구멍이 뚫린 몸이 정말 자신의 몸인지를.

총에 맞았다는 충격과 고통에 눈물이 셈솟는다.

"으아아앙~!!"

"허억...헉..!꿀꺽.."

점점 호흡을 하는데 무리가 오고 초점이 서리 낀 창문처럼 서서히 흐려진다.

첫번째 악마를 만나고부터 아주 익숙했던 죽는다는 느낌이다.

'우리 아기 낳으면 어디부터 갈까?'

'음~~바다!'

앞은 어두었다.

그 어두운 세상에서 굵은 남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죽어서 들리는 환청일까?

하지만 환청이라고 느끼기엔 두사람의 목소리에선 너무나도 행복한 음색이 귓속을 파고들고있다.

'바다?'

'응.나 어렸을때 엄마랑 한번가보고 지금까지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그래서 이번에 하울이 낳으면 꼭 갈거야.'

'음....좋다!바다로 가자.'

'정말?와-'

그 후 울리는 두사람의 웃음소리는 페이드아웃이 되는 것처럼 작아져갔다.

얼마나 화목한지 저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는 가정.

이번엔 눈앞에 거대한 사각틀의 화면같은 것이 하나 생겼다.

'흐흑!여보..!여보!'

똑같은 그녀의 목소리.

아까의 행복했던 목소리가 아닌 절망어린 목소리.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서양인이라는 것.

화면에는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의 모습이 잡혔고 진욱은 그게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리라고 짐작했다.

배에 칼을 맞은 듯 피를 철철 흘려가며 멍하니 눈을 뜬 외국 남자와 그 남자의 얼굴을 감싸안고는 통곡하는 배가 불룩한 임산부.

그리고 사건의 범인인 칼을 든 강도.

'Blow...this shit!(씨발 안해 때려 칠래!)'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에 강도도 많이 당황한 표정이다.

그리고 뒷걸음 치며 나가려는 때 그녀의 눈이 자신의 맨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남자는 정체를 들킨 것에 자책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고 바닥에 떨어져있는 긴팔 옷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남자는 그 옷을 주워 여자의 뒤로가 목에 감아버린다.

'Kill yourself!!(죽어버려!!)'

'케...케헥!!케!'

남자의 얼굴을 팔로 치기도 하며 발을 버둘거려보기도 하지만 남자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여자의 움직임은 더욱 둔해지더니 이내 인형 마냥 축 쳐진다.

'하아..하아..Fucking...Fucking hell...'

툭..툭..

여자의 배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산소공급이 되지않아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의 발악적인 움직임!

남자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눈초리로 다급히 그 집에서 빠져 나온다.

"...흑..흐윽.."

진욱은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어느새 배경은 언제나 한국이와 마주하던 새하얀 공간.

진욱은 무릎을 꿇고 그것을 향해 기어간다..

그것과 가까워질 수록 입에서 터져나오는 울음,그리고 슬픈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간다..

손에 잡히는 자그맣고 마른 두다리.

채 만들어지지도 않은 손톱..

두번째 악마가 세번째 악마가 죽은 동기를 유추한 목록에서 지워버렸다던 낙태.

그게 비록 낙태가 아닌 원치 않는 유산이었지만 두번째의 추리는 빗나간 것이었다.

진욱이 지금까지 봐온 한국은 본체인 한국이 바라던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진욱은 그렇게 비쩍 말라있는 한국이를 안은 채로 통곡했다.

"흐윽..!흑..!"

아까 전 ..만약 목을 매단 그때.. 죽었다면 과연 한국이를 죽일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을 리가..없잖아..흑!"

..사실 거의 자포자기 상태인 마음이었다.

그냥 죽으러간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목을 맸었었다.

이 어린아이를 어떻게 죽일까.

첫번째 악마보다도 두번째 악마보다도 아무런 힘이 없는 이 불쌍한 악마가 최대의 적이었다.

'울지마요..'

아주 앳된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만들어져간다.

아마도 한국이의 영혼의 감정이 진욱에게 언어로서가 아닌 마음으로서 전달되는 것이었다.

"한국아..?"

'저는 참 행복했어요.엄마를 만난것도..또 이렇게 되고나서 형을 만난것도..'

슬픔은 전혀없는 오직 순수함만 담겨있는 마음의 목소리.

'바다라는 곳....참 가고 싶었어요..엄마와 아빠가 이야기를 나눌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흑..큽..가고 싶다면 가야지.."

'헤헤.아니요.이제 전 못가요.여기서 저는 이만 안녕 할 거 거든요.'

"아니..가지 않아도 되..!외롭잖아!내가 여기서 평생 있어줄게 응?"

비쩍 마른 아이의 얼굴이 미약하게 고개를 젓는다.

'저는 형이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건 무리였다.

여기서 한국이 자기 자신을 소멸해 진욱이 몸을 찾는다해도 얼마안가 다시 눈을 감게 될 게 분명했다.

총을 맞아서 사는 일이 영화에서 처럼 흔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제가 멋도 모르고 형을 또 위험에 빠뜨렸네요..'

스르르..

이전의 두번째 악마가 소멸될 때 처럼 가루가 되어가는 한국.

"하..한국아?..아니지?지금 너 죽는거 아니지?"

'형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아프지 않도록..저도 기도할게요.'

발끝에서부터 한국의 배까지 ..몸은 빠른속도로 모래처럼 무너져간다.

"흐윽..!흑!.."

'소원이 있다면~음..잊지 말아달라는 거?'

"내가 널 어떻게 잊겠어..!"

'헤헤헤-그렇죠..착한 형이 절 잊을리 없죠.하아..바다..꼭 가보고 싶었는데...'

진욱의 통곡 소리는 더욱 짙어진다.

'꼭 바다에 가보ㄱ....'

모든 것이 재가 되어버렸다.

"흐으으!..쿨럭...!크흑!.."

진욱의 몸이 현실로 돌아가려는 듯 투명해지기 시작했고 진욱은 놀라며 황급히 한국이 남긴 가루를 최대한 쓸어 담았다.

할알도 남김 없이 옷에 붙은 것까지도.

스으으...

"미안 한ㄱ....ㅇ.."

진욱의 모습이 사라져가며 그렇게 한국의 세상은 떨어뜨린 거울처럼 조각나 으스러져갔다.

 유틴은 큰 길로 빠져나와 다급히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든다.

그의 등에 엎혀있는 사람은 진욱.

대량의 출혈로 인해 옷 전체는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배에선 아직도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제시카는 그 옆에서 진욱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는 큰 길.

택시들은 멈춰서려다 피를 흘리는 진욱을 보곤 하나같이 기겁하며 그대로 지나친다.

"젠장!!"

"흐윽!!진욱아!눈떠봐 진욱아!"

하지만 차가워져 가는 진욱은 말을 할리가 없다.

유틴은 제시카를 똑바로 쳐다보며 낮게 말했다.

"제시카...!이거...이거 네가 그런거 아니다..씨발..진욱이한테 총 쏜거..!이제부터 너가 한게 아니라 내가 한거다..?알았지?"

"무슨소리야..!!흑!"

"닥치고 내말들어!"

끼이이이!!

그때 둘의 앞에 자가용 한대가 바퀴 마찰음을 내며 멈춰선다.

유리창 문이 내려가더니 승연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놀란 표정의 지연.

혹시나 진욱이 무슨일을 저지른 건 아닐까 걱정한 지연이 승연이를 불러 동원고 폐공장 근처까지 오던 차에 진욱을 발견한 것이다.

"빨리 태워!"

제시카가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었고 유틴이 진욱을 앉히고 제시카를 들여보내고 이내 자신도 올라탔다.

타앙-

부르르르-!

닫히는 문소리에서도 다급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진욱을 실은 차는 빠르게 이동해갔다.

'한국아~'

'꺄하핫?'

해변의 모래사장..

그 누구도 없고 파도소리만 치는 이 해변엔 진욱과 한국이만이 노닥거리고 있다.

한국은 이전의 예쁜 모습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그 앞에 진욱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국의 볼을 잡아당겨본다.

'너 진~~짜 살인병기다.'

'웅?'

갸웃.

'크~~넌 그 저주받은 능력이 없어도 얼굴 하나로 여자 백명은 죽이겠다고.'

'웅?'

여전히 갸웃.

'아니~그러니까~~~......아,아니다.'

아이한테 설명하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내 무안한 기침을 내뱉는다.

'무튼..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웅!'

이 말은 확실히 알아들었나보다.

'어?알아들은거야?!오올~~넌 조기교육 철저히 받으면 천재가 되겠는데~'

한국에게 감탄할 때 어렴풋이 익숙한 미성의 목소리가 진욱의 이름을 찾는다.

"지...ㅇ....ㅇ..!"

"진..우..아!"

"진욱아!!"

스륵..

진욱의 눈이 미약하게나마 떠졌다.

얼굴 곳곳에 묻은 피가 죽는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게 만들지만 진욱이 눈을 뜬 것만으로도 그녀들은 감사했다.

하얀 천장이 빠르게 지나간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보이는 걸 보니 이곳은 병원인 듯 싶다.

"흐윽!진욱아!괜찮아?!"

"오빠..!!오빠!"

눈에 눈물을 그렁히 맺혀 논 지연과 제시카..그리고 승연이까지..

진욱은 꿈에서 한국이와 있을때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기분을 지금까지도 유지할 수 있었다.

"누나...들...지..연아.."

"응!응!말해봐!"

"바보야!말하지마!"

"하..하..쿨럭!..말을..하라는..거야..마라는 거야..."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자 쳐본 개그지만 그녀들의 눈초리는 슬픔에 잠긴 상태다.

"부탁..이..하나 있는데.."

"응!오빠..!흑..제발 유언 같은 거는 하지 마아!!"

"쿡....만..약에..내가...내가..."

"하지말라고!!"

"다시 살 수...있다면..."

"!"

가까워지는 응급실이라고 적힌 문.

간호가사 입을 연다.

"이제 응급실로 들어가야 합니다!더이상 들어오실 수 없으니 밖에서 대기해 주세요."

진욱은 목에서만 맴돌아 나올 생각을 않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쥐어짜냈다.

"꼭..바다에....가자...?"

승연과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인다.

"흑...응..!꼭 바다에 가자.."

지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진욱을 비롯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안으로 사라진다.

"흐으윽!!"

승연과 지연,제시카는 주저앉아버리곤 지금까지 참아왔던 울음을 모두 한꺼번에 터트린다.

어쩌면 아까의 그 약속이 진욱이와 하는 마지막 약속이 될 수도 있음에.

그런 그녀들을 유틴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지친 몸을 벽에 기대니 축축한 진욱의 피가 한껏 느껴진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담배 한개비를 문다.

"죽으면...진짜 디질 줄 알아.."

그렇게 진욱의 수술은 하루가 지나도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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