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38 37. 또 한 명 불쌍한 영혼이 컨셉없는 방황을 하는군. (38/116)

00038  37. 또 한 명 불쌍한 영혼이 컨셉없는 방황을 하는군.  =========================================================================

다음 날도 정수는 세탁소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박철호PD의 부르심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에 정수가 세영을 설득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일이었다. 세영은 출근하면서 경애와 정수에게 한마디 던졌다.

"정수는 이제부터 가게 일은 그렇게 많이 신경쓰지 말고,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해. 경애도 옆에서 정수 잘 챙겨. 때 맞춰서 잘 먹이고."

정수는 경애와 함께 지난 번 처럼 학교 녹음실로 갔다. 그런데 녹음실은 사용하기로 예약한 팀들이 두개가 있었는데 모두 캔슬시켰다고 했다. 정수는 또 하루 종일 녹음에 매달려서 몸부림을 친 결과, 다섯곡을 겨우 녹음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작업이 끝나갈 무렵에 안명수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경애가 정수를 녹음실 밖으로 불러냈다. 

'잘 돼가고 있겠지?'

'거의 다 끝났어요.'

'그럼 방송국으로 빨리 와.  지금 PD 님 기다리셔.'

'다섯시라고 안했어요?'

'바보.  지금 다섯시 반이거든.'

'앗!! 지금 날아갑니다.'

그는 경애와 함께 서둘러서 LBS 방송국으로 향했다. 경애는 운전을 했고, 정수는 경애 옆에서 조마조마해진 가슴을 쓸고 있다. 이러는 그를 곁에서 보는 경애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토요일 오후라서 도로는 제법 한산했다. 속도는 제법 낼 수 있지만 신호등은 어쩔 수 없었다. 조급해진 정수는 안절부절 한다.

"미안해. 내가 시간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네. 이런 엄청난 실수를 하다니." 

"아니야. 누나가 아니라 내가 내 시간 관리를 제대로 못했지."

"너무 늦지 마."

"누나, 오늘은 내 마음대로 되는 날이 아니야."

"그렇네."

방송국 정문에서 정수는 차에서 내렸다. 경애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그에게 남기고 돌아갔다. 정수는 안명수에게 전화를 해서 도착했다고 알렸다. 안명수가 그를 데리러 그에게로 내려왔다. 정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명수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곡 가져왔겠지?"

"예."

"어머. .. 너 지금 너무 긴장한 것 같다.  긴장하면 실수하기 쉬워. 긴장 풀어."

"지금 내가 어떻게 긴장을 안할 수가 있어요?"

"하긴." 

안명수는 그를 데리고 작업실로 데리고 갔다. 박 PD 에게는 정수가 왔다고 전화로 알리고, 정수에게서 USB 를 받아서, 그가 녹음해온 음악을 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헤드셋을 쓰지 않아서 음악이 그냥 스피커로 나오게 했다. 그런데 정수도 바쁘게 녹음만 했지, 아직 스피커를 통해서 들어보지는 못했다. 정수는 자기 곡을 처음 듣는 것이다.

그 때 박 PD가 들어왔다. 정수는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굽혀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박PD는 그를 힐끗 보기만 하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만 있다. 그가 두 눈을 감고있다. 

정수는 또다시 긴장한다. 박PD가 자기를 본척만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정수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데 안명수가 정수에게 윙크를 한다. 저 윙크는 지금 무슨 뜻일까? 정수는 더 긴장한다. 안명수는 긴장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듯 손짓을 한다. 그러나 딱한 정수는 그녀가 하는 손짓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방금 나오던 그 곡이 끝났다. 박 PD 는 안명수에게 음악을 꺼달라고 말했다. 작업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박 PD 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눈을 감고있다.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한정수의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정수는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기분이다. 그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는다. 

박 PD 는 벌떡 일어서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안명수가 정수에게 말했다.

"PD 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아. 그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랑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틀려. 방금도 네 음악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밖으로 나갔거든요. 오늘 또 분명 무슨 사고를 쳐도 칠꺼야."

"나는 죽는 줄 알았어요."

"내가 그러는 너를 이해는 하는데, 할 수 없다. 네가 적응하는 수 밖에 없어."

"알겠는데. .. 너무 긴장돼서요."

"방송국에는 가수하겠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이 와서 자기들 CD 를 놓고가거든. 다들 잘 부탁한다고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해요. 일주일만 지나면 그들이 두고 간 CD 들이 산처럼 쌓여. 그런데 PD 는 고사하고 누구도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아. 결국 주말에는 미화원들이 그 CD 들을 전부 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버려야 해. 그 사람들이 왜그러는 줄 알아? 어떻게 해서든지 PD 랑 줄을 대서 방송을 타보려고 그러는거야. 지금 너는 거꾸로 PD 가 너를 부른것이잖아? 이것은 너한테 완전 대박이야. 알기나 해?"

"알죠. 제가 누나한테 얼마나 고마워하는 줄 아세요?"

"그래? .. 근데 난 별로 모르겠는데? ... 하하하"

"누나!"

박PD 가 안명수에게 전화를 했다. 명수는 그가 자기 방으로 부른다며 정수를 데리고 그에게로 갔다. 그런데 그의 방에는 작곡가 박창선이 앉아있다. 정수와 안명수는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박PD 가 말했다.

"다음 주에 있을 촬영 때문에 박창선이 왔는데, 마침 지금 한정수가 왔으니까 ..." 

"PD님,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내가 들어보니까 얘가 만든 곡이 제법이던데, 창선이 네가 한번 들어봐줘라."

"그럴까요?"

"대충 듣고 넘기지 말고 잘 좀 해.  안기자, 창선이한테 사본 줘라."

안명수는 정수가 가져온 USB 두개를 모두 사본을 만들어서 박창선에게 넘겨주었다. 박PD가 말했다.

"창선아, 나는 오늘 아직 점심도 못먹었어. 밖에 나가서 배좀 채우고 올테니까 그 때까지 들어볼 수 있지? 그런데 너 오늘 시간이 되기는 한거냐?"

"PD님이 하라고 하시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해야죠."

"그래. 창선이 너는 그게 참 마음에 들어.  하하하" 

"그럼 우리 동네 애들은 어쩌시려고요?"

"야. 난 말야. 누구네 동네 애들이든지간에 곡만 좋으면 돼. 몸뚱이를 흔드는 건 좋은데, 일단 곡이 좋고 나서 얘기란 말야. 그런데 너네 애들은 비쥬얼은 되는 것 같은데, 곡의 색깔이 불분명한 것 같더라. 그 곡 도대체 누가 만든거냐?"

"알았어요. 어서 식사나 하고 오세요."

안명수는 박PD와 정수를 자기 차에 태우고 출발하면서 박PD에게 물었다.

"박선생님 때문에 금방 들어오셔야 하나요? 그럼 요기 가까운데로 가고."

"강남 <엘로우>로 가자. 기왕에 안기자가 쏘는 것이라면, 좀 거나하게 쏴도 되잖아?"

"알겠습니다. 강남 <엘로우>로 모십니다."

정수가 안명수의 제스추어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안명수는 박PD 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안에서 박창선이 기다리므로 늦어도 한시간 정도 후에는 돌아와야 할텐데 그는 강남으로 가자고 한다. 왕복에 식사까지 두시간으로도 모자라는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안명수는 룸미러를 통해서 뒷자리에 앉아있는 정수를 보고 또 윙크를 했다. 그런데 정수는 또 이해를 못한다. 그렇지만 정수는 <긴장을 풀으라는 뜻이겠지> 라고 혼자 생각한다. 정수도 <옐로우>라는 곳을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으나, 아직 가본 적은 없다. 그 곳은 연예인들이 주로 가는 식당이라는 것 정도 밖에는 모른다. 정수가 또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들이 <엘로우> 안으로 들어서자, 정수에게 낯익은 연예인들이 곳곳에서 박PD 에게 인사를 하면서 안명수와 정수를 힐끗거린다. 박PD 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안명수는 정수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식사 중에 박 PD는 정수에게 물었다.

"자네는 앞으로 노래를 어느 방향으로 부를 생각이야?"

"예?"

"지금 보니까 주로 발라드가 많던데, 그건 수명이 너무 짧지 않을까?"

"아직 거기 까지는 생각을 .."

"이런.  또 한 명의 불쌍한 영혼이 컨셉없는 방황을 하는군."

"오디션 통과를 일차 목표로 삼고있기 때문에.."

"그게 내 불만이야. 대한민국에서 M7 오디션 없이는 가수 생활 못하나? 왜 거기에만 목을 매는거냐? 자네는 지금 자기가 갈 길을 알기나 하고 가는거야?"

"저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 쪽으로 잘 몰라서요."

"안기자한테 많이 배워."

"예, 알겠습니다."

"요새 가수들 평균 수명이 2년 정도야. 수명이 긴 가수들은 몇명 안돼요. 내가 자네라면 이런 가수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겠다. 누가 왜 길고, 또 누구는 왜 짧은가 말이다. 물론 옛날 분들은 말고. 지피지기가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줄 알아?"

"예.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안기자도, 마약을 키워볼 생각이라면 현실적인 것을 가르쳐줬어야지."

"선배님,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잘 아는 것은 아니라서 ..."

"그럼, 방송국 기자라는 소리를 하지를 말든가. 서당 개 삼년이면 라면도 끓인대잖아? 하긴, 이제는 방송국 기자가 아니라, 방송 작가라는 소리를 하나? 하하하"

"시나리오는 겨우 하나만 썼는데요?"

"그것 하나를 쓰면서 나를 달달 볶았잖아. 더 쓰겠다면 난 내 명대로 못살 것 같다. 하하하"

"앞으로 갈수록 좋아집니다. 두고 보세요."

"마약, 자네는 존경하는 가수가 누구야?  자네의 롤모델이랄까 뭐 이런 사람들 .."

"아직은 제가 그런 생각도 못했습니다."

"진짜 한심하네. 도대체 하루 24 시간을 뭐하고 사냐? 세탁소에서 일한다면서 자네가 직접 빨래를 하냐?  최소한 자기가 갈 목적지에 대한 생각 정도는 하고 살아야지."

"선배님, 얘가 이 분야에 아직은 경험 부족이라서 .."

"발라드는 처음 스타트 하는 입장에서는 불러도 돼. 뭐... 발성연습 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금방 식상해지기 쉬워. 솔로는 더 심각해. 혹시 윤현도씨 아나?"

"예. 압니다."

"윤현도는 발라드를 불러도 록발라드 쪽에서 하니까, 그 사람 발라드는 지겹지 않거든. 이렇게 머리를 쓰란 말이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공부를 더 하겠습니다."

"선배들의 업적에 사로잡혀서도 안되지만, 쥐뿔도 아닌 것들이 자기 개성을 살린답시고, 지나온 선배들의 과거를 전부 부정해서는 안되네. 알았나?"

"명심하겠습니다."

"안기자!"

"예?"

"윤현도 팀에 키보드 자리 하나가 빈다는 말이 있던데 모르냐?"

"금시초문인데요."

"당장 전화해봐. 내가 마약을 넣으면 어떻겠냐고 강추한다고 해. 저거 무대 경험이 필요해."

"선배님, 방금 그 말씀 정말이세요?"

"박창선이는 워낙 안되는 애들을 들이미는 바람에, ... 마약이 만든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나하라고 내가 일부러 시킨거니까, 나중에 시간 되면 전화해서 다음 주에 보자고 해. 그럼 나는 먼저 간다."

그가 일어서자 안명수와 한정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명수가 정수에게 배웅하라는 뜻으로 눈짓을 했으나 그는 또 알아듣지 못한다. 할 수 없이 안명수가 정수의 팔을 잡고 그를 뒤따랐다.

그런데 그는 계산대에 가서 자기 카드를 들이밀면서 계산을 하는 것이다. 안명수가 화들짝 놀란다.

"선배님, 오늘은 제가 사기로 .."

"안기자. 내가 벼룩이 간이나 빼먹을 순악질로 보였어? 자네들은 오늘 여기 왔으니까, 맛있게 먹고, 또 더 먹을 거 있으면, 내 이름 앞으로 외상하라고 해. 너 만일 오늘 여기서 네 돈 썼다는 말이 나오면, 다음부터 내 얼굴 못볼 줄 알아. 알았지? 마약도 앞으로는 여기에 자주 들락거려. 이 바닥에 너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깃발로 꽂으란 말이다. 알겠냐?"

"선배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먹어. 나도 지금 바빠."

그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명수와 정수는 그들이 식사하던 자리로 돌아왔다. 안명수는 신기하다는 듯이 정수를 바라본다.

"마약아. 너 도대체 누구니?"

"왜요?"

"우리 PD 님 너한테 완전 뻑 간 것 모르겠니?"

"그래요?"

"윤현도 그룹에 키보드로 들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줄 모르겠어?"

"이거 원. .. 살떨려서 먹지도 못하겠네요."

"가만.  일단 PD 님이 시키신 전화좀 하자."

안명수는 핸드백을 열고 전화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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