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77 76. 한정수의 봉사활동 : 줌으로써 얻을 수 있고, 우리끼리 영감을 공유한다. (77/116)

00077  76. 한정수의 봉사활동 : 줌으로써 얻을 수 있고, 우리끼리 영감을 공유한다.  =========================================================================

뮤직쇼 <따뜻한 12월> 이 완전히 막을 내렸다. 지금 현직 대통령이 당선되던 지난번 선거에서 문제가 있었는데 그 중 몇 가지가 수면 위로 떠오른 모양이다. 이것이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관광부에서 막대한 자금을 풀어서 각 방송사들로 하여금 이 뮤직쇼를 한달 내내 진행하게 한 것이라는 뒷소문이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뮤직쇼는 12월 한달 내내 이 나라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그 바람에 정수와 윤희도 몇 번 무대에 서게 되고, 그들은 이제 제법 알려진 가수가 된 느낌이다.  마지막 뮤직쇼가 막을 내린 후에 정수는 윤희와 함께 윤현도의 사무실에서 맥주를 마신다. 

"윤희 너는 솔로가 훨씬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댄스그룹에 들어갔던 것 자체가 실수였어. 내가 걔네들한테 맞춰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었는지."

"내 생각에도 그래. 이제 네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까 자유스럽게 노래도 하고, 반응도 훨씬 좋은 것 같아."

"속하지 않은 것은 아니죠. 나는 이제 작곡가 선생님께 속한 기분인걸. 하하" 

"안그러면 또 민요를 불러서 찬밥 신세가 될 뻔 했다는 사실."

"누가 뭐래? 난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거든요."

"너는 중저음 뿐 아니라 고음도 잘 처리해내는 것 같아. 당분간은 뭐할래?" 

"연습해야죠. 내 노래라는 것이 이제 겨우 열 곡 정도밖에 없잖아? 너는 연말에도 계속 뮤지칼 하지?"

그 자리에서 정수는 윤희에게 봉사활동에 참여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LBS 는 봉사활동 팀을 꾸려서 일년에 몇 번 봉사활동을 나간다. 주로 많이 가는 곳은 고아원이나 양로원이다. 팀원들은 자원봉사자들로서 의사, 간호사, 영양사, 조리사, 헤어 디자이너, 네일아트, 목욕관리사 등등 다양하다. 이들은 출발하기 전에 역할분담을 하고 또 분야별로 교육을 받는다. 또 봉사활동 하는 것을 녹화해 두었다가 다음 교육에 쓴다. 이들은 지난 봉사활동한 내용들을 재생시켜서 보면서 주의해야 할 일들을 배우기도 했다.

정수가 이  LBS 봉사활동에 같이 참여하자고 윤희에게 제안했고, 윤희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이번에 갈 곳은 서울 근교에 있는 고아원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원생들을 모아놓고 노래 부르는 시간을 맡았다. 

정수는 자기도 고아라고 생각한다. 고아원에 있는 원생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정수에게는 보살펴주는 외가가 있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가까이에서 자기를 이끌어준 경애누나가 있었다는 점이다. 외가나 경애누나가 없었더라면 자기도 고아원에 들어와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막상 정수가  봉사활동에 나와서 보니까 자기는 노래 말고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이 없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실에 갔는데, 그도 돕고 싶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는 조리사를 보조하는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그는 설거지를 하고, 감자와 양파를 깠다. 나중에는 자원해서 배식도 했다. 

오후에는 원생들의 머리를 손봐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도 나갔다. 거기서도 자원해서 머리 감겨주는 일을 맡아서 했다. 또 나중에는 원생들을 팀으로 나누어서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정수는 거기에서 응원하는 일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모여서 노래하고 노는 시간에는 정수와 윤희와 같이 맡아서 한 시간 동안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윤희는 정수가 이상해 보인다.  역할분담에서 자기가 하겠다고 맡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일을 더 시켜달라고 하고, 또 그런 일들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다음 날 저녁에 안명수가 이 사실을 알고 이들을 옐로우로 불렀다. 안명수는 이들이 한 일을 칭찬하고 저녁을 쏘겠다고 했지만, 이들은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았다. 안명수의 기분이나 어조가 화가 나있는 것 같다. 

"둘 중에서 누가 이 아이디어를 냈지?"

"누나, 네가 냈습니다."

"정수, 너는 이런 일에 나가려면 사전에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안하는구나?"

"이것은 음악활동이 아닌데도 누나한테 미리 말씀 드려야 하나요?"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지, 네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나한테 알려야 해요."

"죄송해요. 다음부터 누나가 하라는 대로 미리 말씀 드릴께요."

"이번에 갔다 온 느낌은 어때?"

"언니,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는 정수가 무슨 생각을 갖고 이런 일을 하는지 궁금해요. 봉사활동이 좋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저도 알지만, 과연 좋은 일을 하자는 생각인지." 

"궁금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정수 부모님이 안 계셔서 이러는 것 같지는 않고."

"정수 부모님이 모두 안 계셔요?"

"너는 네 작곡가 선생님을 그렇게도 모르니? 지난 번에 TV 방송에도 나갔었는데."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런데 정수가 자기 일정이 그렇게 바쁜데도 이러는 것이나, 거기 가서도 자기가 맡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계속해서 뭔가를 하는 바람에 나를 무안하게 만들지를 않나 .."

"정수가 입을 열어야겠네.  우리 윤희가 이렇게 궁금해하는데..."

"영감이나 공감 때문인데요."

"봉사활동에 가서 영감을 받아?"

"봉사활동에 가기 전에 교육을 받을 때 보니까 자원봉사자들이 엄청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더라구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순수할 때에 공감할 수 있는 음악. 그것을 제가 하고 싶고, 그런 곡을 제가 만들고 싶어요." 

"순수한 마음에서 소통하고 싶다?"

"고아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는 역시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나도 그랬는데."

"저는 제 작업실에서 곡을 만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곡을 쓰는 거죠. 그런데 그 작업실은 바깥 세상과는 격리되어있는 곳이거든요. 그것이 참 답답했어요. 거기서 쓰는 좋은 곡은 나한테 좋은 것은 맞는데, 그것이 과연 바깥 세상에서 살고 있는 저 사람들도 좋다고 볼 수 있는 곡인지에 대해서는 여엉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같이 일하고, 같이 달리고 또 같이 노래하니까 저도 그 사람들처럼 마음이 순수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곡을 쓰면, 누구나 순수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곡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반응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어머머.. 그렇게 심오했나?"

"윤희야, 그럼 너도 이제 영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언니, 저는 노래를 잘 부르려면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윤희 생각이 틀리기만 한 것은 아니지. 피나는 연습 없이 되는 일이 뭐 있겠어? 그럼 정수는 봉사활동이 연습을 방해한다는 윤희 말은 어떻게 생각해?"

"윤희나 누님 말씀이 옳아요. 그런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습을 하느냐가 문제 아니겠어요? 오로지 1등을 해야 한다고 어금니를 깨물고 하는 연습이 과연 좋을까요? 이번에 보니까,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는 마음 가짐이 새로워지던데요. 그 자원봉사자분들처럼, 나도 뭔가를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또 내가 주는 순간, 분명 나도 그들에게서 얻는 것이 있어요. 이것은 제가 처음 나갔던 봉사활동에서 제가  경험한 일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거나 비슷하게 하고 노래 연습을 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하게 되고, 또 내 즐거운 마음이 담긴 노래가 듣는 사람에게 전해지면 공감이 쉽게 일어날 것 같은데요."

"으음 ..  정수가 하는 이런 생각에 만일 윤희도 동의한다면, 윤희가 분발하는 수 밖에 없겠네?"

"누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윤희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겠지. 나 스스로  선택하고 또 분발할 일 .. 맞아."

안명수의 눈에 정수가 제법 커 보인다. 저 연하남이 아마도 해가 바뀌면서 한 살 더 먹을 생각을 하고 있나보다. 자기가 하는 음악을 자기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과 매칭시키려는 것 같다.

해가 바뀌면서 안명수는 LBS 에서 토요일 밤에 뮤직방송 <토요 카페>를 맡아서 제작과 진행을 하게 된다.  그녀는 MC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다른 PD 들의 의견은 아직 적당한 후보자가 없으므로 그냥 더 진행을 하다가 나중에 누군가가 발견되면 자연스럽게 넘겨주자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두시간 짜리인데, 가수를 초대하여 무대에 세워서 노래를 시키고, 또 그들이 음악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또 팬클럽은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는지를 깊이 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2월의 뮤직쇼 <따뜻한 12월> 에서 두번을 이미 안명수가 진행하면서 새로운 뮤직방송이 나올 것을 예고했고, 또 정초부터는 30초짜리 예고편을 계속 내보냈었다. 그래서 첫 방송은 1월 둘째주 토요일이었다. 오후에 녹화를 하고 편집한 후에 저녁에 방송하도록 되어있다.

이번 첫 방송에는 정수나 윤희를 세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방송의 마지막에 윤현도와 BY 가 출연했다. 거기서 정수는 자연스럽게 BY 의 키보드를 맡았다. 또 윤현도는 세달 간의 일정으로 순회공연을 하러 다음 주에 미국으로 출발할 것이라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뒤에 있는 정수를 앞으로 불러내서 자기와 같이 노래하기도 했다. 

윤현도는 예고했던 대로 다음 주에 출국했다. 그런데 정수는 뮤지컬 때문에 같이 출국할 수 없었다. 그의 연습실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윤희가 맡아서 관리하기로 했다.

TV, 라디오 방송, 그리고 신문들은 연예코너에서 안명수라는 여인과 그녀의 뮤직쇼 <토요카페> 를 보도했고, 또 윤현도의 해외 순회 공연과 잠시 동안이지만 작별 인사를 겸한 무대도 보도했다. 그 보도의 내용에는 한정수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한정수 개인에 대한 보도도 몇 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한정수는 아직 연예기사의 포커스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수는 안명수에게 색다른 제안을 했다.

"봉사활동을 일년에 두세번만 할 것이 아니라 계속 하고 싶은데요."

"너랑 윤희랑 둘이 한다는 것은 말이 안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구하지? 또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려고?"

"LBS 내에서 사용하는 메신저로 일일이 메시지를 보내서 자원봉사자들을 모으면 안돼요?"

"너는 LBS 직원이 아니니까 그 일을 날더러 하란 말인데. 너는 내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 알고 하는 소리야?"

"누나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저에게 주시면 제가 해도 되지 않을까요?"

"얘는 별걸 다 달라고 하네. 그걸 어떻게 널 주냐? 큰일 날 소리야."

"아무도 모르게 조심할께요."

그는 안명수에게서 그녀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얻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팀을 꾸린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답장이 너무 적었다. 그런데 안명수는 정수와 함께 그들을 만나서 열심히 취지를 설명했다.

"우리가 정치인도 아닌데, 봉사 활동을 일년에 두세번만 한다는 것은 너무 형식적인 것 같아서요..."

이들은 정수의 진심을 알아주고 그들의 인맥을 동원해주었다. 또 자원봉사자로는 LBS 직원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조항을 덧붙였다. 

정수는 여러 분야에서 자원봉사자들을 끌어모아서 팀을 꾸렸다. 여기에는 윤희도 같이 참여했다. 그래서 1월 말에 처음으로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다음 달 2월에는 구정연휴가 있었다. 그들은 이 연휴의 마지막 날 하루를 고아원에서 보냈다. 또 앞으로는 한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봉사활동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안명수가 보낸  PD 도 한명 있었다. 그는 이 활동들을 녹화해두었다.

정수는  <토요 카페> 에 2월 말에 출연했다. 그 날 정수는 노래도 불렀지만, 팬클럽이 없었으므로 그 대신 정수의 부모님 두분 모두 타계한 사실 그리고 그가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방송했다. 그 방송에서 안명수는 정수에게 그가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정수는 대답했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거든요. 또 이렇게 주고받는 우리끼리 공유할 수 있는 영감도 저에게는 엄청 중요해요. 저는 이런 영감들을 제 노래에 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방송 후에 언론의 연예기사들은 안명수의 음악 방송을 보도하면서 한정수와 그가 시작한  봉사뢀동, 그리고 그가 안명수의 질문에 대답한 말을 실었다. 이 기사의 내용은 과거보다는 길었다. 

이 보도가 나간 후에 한정수는 다른 TV 방송사들의 프로그램에 자주 초대를 받는다. 안명수는 프로그램들을 검토해서 가끔씩은 정수가 나가는 것을 허용해주었다. 

정수는 뮤지컬에 나가서 공연하고, 윤희의 음악을 지원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또 세탁소에 나가면서 추운 1월과 2월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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