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24)

아내의 외도 4. 어디론가 날아 갈 듯이 

    

    그래 어제 밤에도

    우리는 여전히 한 집에 살고 있었으나

    

    처음 아내는 내 방을, 

    그 다음 나는 아내의 방을 나섰다. 

    

    그러나 이런 대칭적인 표현, '나'와 '아내'를 섹스에서는 쓸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방을 나서는 사이 그 공간에선 두 차례의 섹스가 있었지

    만 이것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섹스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보기 좋게 

    손 장난만으로 끝낼 것을... 

    

    보기 좋게?

    

    

    4. 어디론가 날아 갈 듯이...

    

    

    힘이 든다.

    

    그가 나와 함께 뿌려놓은 흔적들과 함께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난 그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 오는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요리를 했고, 그의 아이를 달래고 입혀서 학교로 보낸다. 각종 공과금도 

    챙기며 이제는 그가 말하지 않고 내가 묻지 않는 그의 카드 대금도 납부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와의 사랑스럽던 추억을 

    기억하고, 조용히 쉴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내 죄책감의 상쇄

    를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이런 것들은 그저... 일이며 그 뿐이다.

    

    하지만 그의 섹스마저 마땅히 치뤄내야 하는 일로 받아드리기에는 아직

    은 힘이 든다. 집요하게 나를 추궁하듯 몰아세우는 그의 손놀림과 혀놀

    림 앞에서 서글프게 고개 드는 내 육신의 본능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이미 나는 그의 손과 혀에 길들여져 있고 그 칼 앞에 습관처럼 젖어들고 

    있으니...

    

    내 몸은 내 마음을 모르고 있다. '바보야 난 관심 없어'하고 비웃는 

    내 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이 이미 그에게서 떠났지만 내 몸은 

    그가 만들어 놓은 쾌락의 점들을 기억하고 있는 거다. 그나마 다행스러

    운 게 있다면 남편은 오래 전에 자신이 만든 쾌락의 점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몸은 더 갈망하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나의 친구가 이 점들을 없애주기 바랬다.

    

    

    친구를 만나고 포만감에 젖어 돌아 오는 길, 그 모퉁이에서 뿌연 공기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따뜻한 햇살의 파장을 감상하곤 했다. 따뜻한 

    햇살의 세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럴 때면 햇살의 휘장 속으로 

    서둘러 들어가며 기원했다. 

    

    '이제 다른 이의 손길과 생명의 씨앗을 받은 내 몸을 던지니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의 익숙한 자리들을 지워주세요.'

    

    기원은 늘 받아드려진듯 했으나 집으로 들어와 거실 높은 곳에 붙들려 

    있는 시계를 볼 때면 내 몸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소심해지고 조신스러워지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당당히 바로 서있을

    수 없게 만든다. 조바심에 이내 찌부둥해져 샤워를 마친 뒤에는 노곤해 

    침대 위에 쓰러진다.

    

    어느 날, 원인을 찾아냈다. 

    

    친구와 헤어진 뒤 누구의 손에도 닿기 전에 샤워를 했던 게 원인이었다. 

    구석구석 친구가 더듬었던 내 속살의 흔적과 그가 남긴 생명의 씨앗을 

    서둘러 지워버린 탓이라는 거. 

    

    그래서 그 날은 씻지않고 남편이 더듬기까지 기다렸다. 다른 이들처럼

    또한 내가 그 친구를 만나기 전처럼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애써 치장할 

    필요는 없다. 단지 찌푸린 표정만 보이지 않고 엷은 미소와 함께 두어 

    마디 가벼운 농담만 던지면 된다.

    

    그 날 밤 남편은, 예의 손가락을 내밀어 톡톡 촉수처럼 내 어깨와 무릎

    깨를 건드리며 다가왔고 물로 씻어버리지 않은 친구의 손길과 남편의 쾌

    락선이 공존한 내 몸은, 어느 속사정 모르는 문장처럼 저항하지 않음으

    로 격렬히 반항했다.

    

    그건 아니었던 거다. 

    

    두 사람의 쾌락선은, 목덜미와 이웃한 솜털만이 가득한 귓가와 오스트레

    일리아 어느 곳에 있다는 시간마다 색깔이 바뀌는 바위같은 나의 젖가슴

    을 붉게 만들었고, 잔뜩 물 먹은 진흙처럼 말랑한 언덕과 숲, 검붉은   

    잎 속에서 일체를 보았다. 

    

    그리고 가장 극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그가 남긴 마른 액체의 숲 

    속을 남편의 혀가 휘젓는 모습에서 마음 깊이 차오르는 흥분에 고개를 

    저어버렸던 것이다.

    

    

    오늘도 친구와 만났고 따뜻한 햇살의 커튼 속에서 같은 기원을 했으나

    샤워는 했다. 그래야 했다. 나는 단지 쾌락을 위해 친구를 만나고 있지 

    않으며 남편을 사랑하지 않지만 증오하지도 않기에 그를 상대로 장난치

    고 싶지 않다.

    

    또한 남편은 끊임없이 내 몸을 탐했다. 후후... 삶이란 게 이런 걸까?

    

    친구를 만나기 전 일주일에 두 번 잠자리를 하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친구를 만난 뒤 그리고 좀 지난 뒤 그가 그 어떤 낌새를 느낀 그때부터

    (맹세코 나 역시 그가 어떤 낌새를 느꼈다는 것을 동시에 알아차렸을 거

    다. 이는 전적으로 그동안 띄엄띄엄한 대화와 잠자리를 제공한 그의 덕

    이지) 그는 달라졌다.

    

    언제부터 날이 무뎌진 칼날을 앞세우고 끊임없이 그러나 비교적 조심스

    럽게 나를 탐색했다(가끔은 이런 그의 모습과 교묘히 피해나가는 나의

    모습이 아직 총알은 날리지 않은 게릴라전을 연상시킬 때가 있다). 어깨

    와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건드리고 젖가슴과 엉덩이를 무뎌진 칼로 비벼

    댄다. 은밀하게, 서서히...

    

    하지만 오늘은 그의 쪽에서 불꽃이 터졌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된 거다.

    거칠게 나를 뒤집었고 다리를 해집었고 무뎌진 칼을 깊숙히 찔러 넣었

    다. 그동안 내가 그에게 던진 반격이란... 단지 하지 말아달라는 것...

    

    이 말과 이후에도 변치않는 그의 거친 공격에서 나는 이 순간부터 우리

    는 영원히 이어질 평행선을 긋고 만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젠 설사 친구

    와의 만남을 조용히 마무리 짓고 다시 그에게 돌아간다고해도 그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모르는 척 해주기 바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스스로 무뎌진 칼날을 훑으며 힘 없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난 다시 숨 죽이며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이쯤이면... 그러나 

    그는 잠들지 않았고, 난 그의 앞에서 내 몸의 전부를 꺼리낌없이 드러낸 

    채 욕실로 향했다. 친구의 손길이 묻은 채 남편과 관계할 수는 있지만, 

    남편의 손길이 묻은 채 친구의 손길을 기다릴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평행선을 그었다.

    

    몸을 깨끗이 씻어낸 뒤 작은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비록 이제부터 

    당신과 나는 다른 삶이 시작되었음을 나체로 당당히 알렸지만 그런 채로

    다시 그와 자리를 함께 해 누울 용기는 없었다. 

    

    작은, 나만의 방에 문을 잠근 뒤 옷을 벗어 덮고는 누웠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부시럭부시럭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다가

    왔다. '아 이제 더이상은 싫어!' 그는 멈추지 않고 거칠게 공격했다.

    이미 그에게서 나란 존재는 없어 보였다. 의식한다면 적일 뿐이다. 

    거칠게 반항했으나 이번에도 내 몸은 나와 다른 포만감에 빠져 들었다.

    

    남편은 아까의 무기력하게 물러난 자신을 부정하듯 세차게 달려 들었고

    내 몸 이곳저곳을 할퀴고 물어 뜯었다. 아 그리고 엉덩이 밑의, 

    그 쪽마저... 친구를 떠올랐다. 꼭 창녀처럼, 소중한 친구에게 그 곳은

    '처음'이란 선물을 해주고 싶었으니까...

    

    다행이 남편은 머물다 물러 갔고 이윽고 칼을 휘둘렀다. 모처럼 만에 

    느낀 날이 빳빳한 칼이었다. 잠시 남편을 친구로 착각할 정도로... 

    남편의 뜨거운 물이 내 자궁을 때리는 것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눈물로 마른 눈을 비벼 뜨며 창문을 부비고 들어 오는 햇살을 바라봤다.

    

    따뜻이 내리는 햇살은 친구를 만나고 돌아 올 때 보았던 그 것, 

    그대로였다.

    

    어디론가 날아 가고 싶다.

    

    

    - 스타워즈님의 글을 보지 못하고 이었네요.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은 얕은 생각으로 

    한 구절과 숫자 하나만 급히 바꿨습니다.

    

    sosain님 등의 윗글마저 읽다가는 전송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에

    읽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올린 뒤 님들의 글을 하드로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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