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사의 숨겨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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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에메랄드 백화점 관리과장 강하영이 지하 식품매장으로
들어선다.
오후 3시는 백화점이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다.
강하영이 한가한 시간을 택해 지하식품 매장으로 내려온 건
윤미숙에게 접근하기 위한 목적이다.
관리과장이 매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본 판매원들의
얼굴에 긴장이 돈다.
백화점 판매원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직책이 관리과장이다.
종업원의 대부분이 판매원인 백화점에는 인사과라는 것이
따로 없다.
백화점 종업원의 90%는 판매직이다.
백화점 판매직은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
작업이다.
상품 종류에 따라 약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면 터득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전문 지식이 필요 없는 단순 판매직은 인사 이동이라는
것이 없다.
계절 따라 상품의 성격 따라 판매원을 배치하면 된다.
그런 특성상 대부분의 백화점에는 인사 부서가 따로 없다.
에메랄드 백화점의 경우 판매원의 매장 배치는 관리과
소관이다.
굳이 따지자면 관리과장이 인과과장을 겸하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에메랄드 판매직 종업원들에게는 관리과장인
강하영은 절대적인 존재다.
관리과장인 강하영이 식품 매장으로 들어서면서 종업원들이
긴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장을 돌아보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발길을 식품매장
중앙 계산대로 향한다.
식품매장에는 계산대가 여러 곳에 있다.
여러 개에 설치된 금전출남기의 데이터는 중앙 계산대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다.
백화점 결제 방법이 다양하다.
현금과 수표가 있고 카드와 상품권이 있다.
상품권도 에메랄드 백화점이라면 어느 점포에서 건
현금처럼 사용하는 백화점 발행의 정액권이 있고 상품
이름이 지정된 상품권이 있다.
이런 종류의 상품권을 내무에서는 상품교환권이라 부른다.
카드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백화점 자체 카드에서 은행 카드 그리고 카드 전문회사가
발행한 것이 있다.
카드 전문 회사도 국내 기업과 외국기업이 있다.
카드와 외부 발행의 상품 교환권은 발행회사에 따라
백화점에 들어오는 수수료가 다르다.
고객이 여러 종류의 카드를 소지하고 있을 때 노련한
판매원은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수수료
마진이 많은 카드로 결재하도록 유도한다.
백화점에 따라서는 이것이 판매원의 유능과 무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결제 결과는 그때 그때 바로 중앙 계산대
컴퓨터에 입력된다.
고객이 10만원권 이상의 고액권 수표로 결재할 때 중앙
계산대에서 처리한다.
중앙계산대의 역할은 그만치 중요하고 중앙 계산대
책임자는 상당한 커리어를 가진 고참 급이다.
윤미숙이 지하 식품매장의 모든 경리를 총괄하는 중앙
계산대의 책임자다.
에메랄드에서는 그런 직책을 주임이라 부른다.
강하영이 중앙계산대로 다가오는 모습을 본 윤미숙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목례를 한다.
강하영이 윤미숙 앞에 선다.
윤미숙이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강하영을 바라본다.
관리과장이 식품 매장을 둘러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관리과장이 매장에 들어 올 때도 대개는 한바퀴 돌아보고
나간다.
그런 관리과장이 자기 앞에 우뚝 서면서 윤미숙의 얼굴에
의외라는 빛과 당황하는 빛이 동시에 스치고 지나간다.
두 사람이 한 발자국 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다.
강하영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윤미숙의 유니폼
앞가슴으로 향한다.
윤미숙의 가슴은 남자라면 눈이 제일 먼저 갈 만치
풍요롭다.
관리과장의 눈길이 자기 가슴에 와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윤미숙의 얼굴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붉어진다.
여자 스스로가 풍만한 자기 가슴을 의식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방응이다.
"일손이 모라지 않아요?"
강하영이 묻는다.
"네?"
윤미숙은 강하영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 낮은 소리로
반문한다.
그만치 긴장되어 있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계절적으로 식품 매장이 붐빌 때 아닙니까?"
강하영이 사무적으로 말한다
"아! 네!"
윤미숙이 겨우 강하영의 말뜻을 이해한다.
백화점은 계절 따라 요일 따라 시간 따라 매장을 찾는 고객
수가 다르다.
특히 식품매장은 계절 따라 매상에 큰 차이가 난다.
계절적으로는 가을에서 시작해 김장철을 지나면서
연말까지가 가장 붐빈다.
요일별로는 주말이 붐비고 시간대로는 오후 4시 이후에
고객이 집중적으로 몰린다.
지금은 여름 휴가 철이 지난 이른 가을이다.
식품매장에는 지금부터 연말까지가 고객이 몰리는
계절이다.
강하영이 윤미숙에게 '일손이 모자라지 않아요?'하고 묻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손이 모자라지 않아요?"
강하영이 꼭 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
"아직은.......!"
대답한 윤미숙이 약간 긴장된 눈으로 강하영의 눈치를
본다.
강하영도 자기 눈치를 보는 윤미숙의 표정에서 긴장을
느낀다.
순간 강하영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가을이 접어들면 식품 매장이 붐비기 시작하고
붐비기 시작하면서 인원을 보충한다.
인원을 보충하는 곳은 매장만이 아니다.
매장 별 계산대에도 중앙 계산대에도 인원이 보충된다.
아직은 조금 이르지만 매장 인원 보충 계획을 세워
요청해야 할 때다.
관리과장인 강하영이 식품 매장에 내려온 것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인원 보충 계획을 세우기 전에 매장실태를
점검하러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하식품 매장 중앙계산대 근무 경력 5년인 윤미숙도
인원을 보충할 때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강하영의 일손이 모자라기 않느냐는 질문은 의례적인
것이다.
관리과장의 그런 형식적인 질문에 윤미숙이 긴장하고 또
눈치를 본다.
눈치를 보는 눈빛 속에 어딘가 당황하는 듯한 냄새까지
풍긴다.
강하영이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때문이다.
'뭔가 있다?'
강하영의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다.
뭔가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윤미숙을 빠른 시간 안에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고 결심한다.
윤미숙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가슴을 떠나 아래로 내려간다.
에메랄드의 유니폼의 스커트는 타이트 미니다.
눈이 타이트 스커트에 졸려 윤곽이 훤히 드러나 있는
윤미숙의 아래 배로 간다.
그 속에 감추어져 일을 매끈한 헤어레스의 탑을 상상해
본다.
얼른 상상에 떠오르지 않는다.
강하영은 한번도 헤어레스의 여자를 만나 적이 없다.
한번도 본 경험이 없으니 상상해 보아도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대체적이 모양에는 상상이 간다.
머리 속으로 수풀이 없는 성인 여자의 미끈한 탑을
그려본다.
징그럽다는 생각보다 신비할 것이라는 기분이 앞선다.
타이트 스커트 위로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 있는 윤미숙의
아래 배를 바라보며 속에 숨겨져 있을 모습을 상상하는
사이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윤미숙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위를 하는 여자라는
김화진의 말이다.
윤미숙에게 심한 자위증세가 있다는 김화진의 말이
떠오르면서 강하영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떠오른다.
윤미숙은 강하영의 시선이 자기 아래 배에 와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다.
자기 아래 배에 시선을 둔 채 강하영이 야릇한 미소를 짓는
것도 본다.
윤미숙도 강하영의 야릇한 미소를 의식한다.
강하영의 미소를 보면서 윤미숙은 자기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을 의식한다.
강하영은 윤미숙이 자기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상대가 경계할 위험이 있다.
여자가 경계심을 가지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것을 알고 있는 강하영은 여기서 일단 물러서야 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별 일 없지요?"
하고 별 생각없이 말한다.
"네?"
윤미숙이 또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무엇인가 있다!'
강하영은 확신 같은 것을 가진다.
윤미숙을 빨리 자기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자연스럽게 접근할
구실이 필요하다.
"인원 보충 문제에 미스 윤의 의견을 듣고 있군요. 언제
기회 시간 좀 내어 주어요"
강하영이 얇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알겠습니다!"
윤미숙이 필요 이상 경직된 표정으로 답한다.
그때 구내 확성기에서
"관리과장님 외부 전화가 와 있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려 온다.
확성기의 그 말이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끊어
놓는다.
윤미숙이 다시 컴퓨터 앞으로가 일을 시작한다.
강하영이 계산대 컴퓨터 옆에 놓인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돌리라는 말을 한다.
"강하영입니다!"
강하영의 그 말에
"나야!"
하는 젊은 여자 소리가 들려 온다.
"아! 네!"
"호텔이야!. 스위트 룸!"
"아!"
강하영이 짧게 답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는
윤미숙의 불룩한 젖가슴을 내려다보고 있다.
"퇴근하고 와!"
여자의 말투는 명령조다.
"그러지요!"
"늦으면 싫어!"
"알겠습니다!"
"퇴근하면 바로 오는 거지?"
여자가 다짐한다.
"네!"
"거기 어디야?"
너무나 사무적인 강하영의 응답에 여자가 묻는다.
"매장 순시중입니다"
"그랬구나!"
여자가 웃는다.
"그럼!"
"너무 기다리는 것 싫어!"
여자가 또 다시 다짐한다.
"염려 마십시오!"
"그럼 끊는다!"
여자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강하영이 수화기를 놓으며 혼자 빙그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