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당신은 누구세요?1 (14/30)

     5.          당신은 누구세요?

     

     

     

                         1

      

     

     "하영씨 따라온 것 정말 잘했다!"

     박지현이 와인 잔을 들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강하영과 박지현이 동해안을 누빈지 오늘로 네 번째 밤을 

     맞는다.

     지금 두 사람은 밤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강릉의 한 관광 

     스카이 라운지에 연인처럼 나란히 앉아 있다.

     박지현 스스로가 강하영의 옆자리를 택하면서 두 사람은 

     오랜 연인처럼 나란히 앉는다.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는 마지막 밤이다.

     스카이 라운지에서는 언제나처럼 박지현은 그 호텔이 

     비치된 최고급 와인을 시킨다.

     강하영은 소녀 티를 벗어나지 못한 박지현이 와인에 밝은 

     데도 놀랐지만 그 와인 값이 백화점 매장에서도 30만원이 

     넘어서는 고가품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란다.

     강하영은 박지현과 함께 여행한 지난 사흘을 머리에 

     떠올린다.

     박지현은 자기 신상에 관한 얘기는 한번도 하지 않는 

     소녀다.

     남자와 여자가 사흘 동안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무심결에라도 자기 신상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여자라면 더욱 그렇고 소녀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자기가 신상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비취지 

     않는다.

     강하영은 지금 자기 옆에 앉아 있는 박지현이 몇 살인지도 

     모른다.

     느낌으로 짐작해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학교 얘기조차 

     한마디 없다.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지 형제가 몇인지 사는 집이 어딘지 

     조차 모른다.

     강하영이 아는 건 박지현이라는 이름과 영월과 태백 사이 

     국도 상에 버리듯 두고 온 스포츠 카의 번호밖에 없다.

     강하영은 회사로 돌아가 골드 스티커 발급 대장과 자동차 

     번호를 대조해 보면 박지현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하나 지난 사흘동안 같이 여행을 하면서 방을 따로 

     사용했다.

     방을 따로 사용한 정도가 아니다.

     손조차 잡아 본 일이 없다.

     강하영으로서는 좀처럼 없었던 일이다.

     여자가 남자를 따라 여행에 나서면 어느 정도의 각오는 

     하는 것이 오늘의 젊은 세대의 풍속도다.

     동해안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강하영은 박지현을 쉽게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하영은 박지현에게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품 같은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첫 숙지는 묵호였다. 

     묵호에 도착한 박지현은 자기 차 운전기사에게 지시하듯 

     특급 관광호텔로 가자고 했다.

     강하영이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약간 당황했지만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호텔로 들어선 박지현은 강하영의 의견도 묻지 않고 가장 

     비싼 객실 두 개를 요청했고 카드로 객실료를 지불해 

     버린다.

     첫날 식사대도 스카이 라운지 바나 나이트클럽에서 가서도 

     지불은 당연하다는 듯이 박지현이 일방적으로 카드로 

     처리한다.

     그후 두 사람이 여행하는 사이 소요된 모든 경비는 박지현 

     차지가 되었다.

     강하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박지현의 페이스에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영 씨는 정말 신사야!"

     박지현이 생기리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하영의 눈을 

     바라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요?"

     사흘이 지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는 

     어린 박지현이 반말을 하고 강하영이 경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강하영 자신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박지현 몸에서 풍기는 기품에 돌릴 

     수에 없다.

     "하영 씨는 밤중에 한번도 내 방을 노크한 일도 전화한 

     일도 없었잖아!"

     박지현이 강하영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한다.

     강하영의 눈을 바라보는 박지현의 눈이 웃고 있다.

     강하영의 박지현의 말뜻을 알고 있다.

     박지현의 말뜻은 알아듣고 있지만 이럴 때 자기가 무슨 

     말로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가만 있는다.

     여자를 다루는 솜씨에 관한 한 베트런이란 자부해 왔던 

     강하영으로는 박지현 앞에서만은 왜 자기가 위축되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영 씨는 내가 무서운 거지?"

     여전히 강하영의 눈을 똑 바로 바라보며 야간 장난스러운 

     눈으로 웃고 있다.

     강하영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아니면 내가 매력이 없는 여자라는 건가!"

     박지현이 반쯤은 혼자 말처럼 하며 와인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강하영은 박지현의 말을 생각해 본다.

     '지현이 말처럼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걸까?'

     자기는 에메랄드 사원이고 박지현이 초VIP급 고객이라는 

     두 사람의 위치 차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적인 위치 차이가 자기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유는 것만이 아닌 것 같다.

     박지현의 말처럼 여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건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

     박지현을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여자로 표현 할 수는 없다.

     성적인 매력보다는 잘 핀 수선화 같은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살아 숨쉬는 수선화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청순한 아름다움이다.

     꺾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다.

     꺾어 자기 것으로 만들기보다는 핀 그대로 오래오래 두고 

     보고 싶은 그런 여자가 박지현이다.

     박지현은 여전히 강하영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강하영의 눈도 박지현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눈과 눈 사이의 거리는 겨우 30센티정도다.

     강하영의 눈에 박지현이 입술을 뾰족이 내미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가 엄마에게 뽀뽀를 해 달라고 할 때의 입술 모양이다.

     강하영도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박지현을 따라 입술을 

     뾰족이 내민다.

     뾰족이 내민 두 개의 입술 끝이 가만히 마주 닿는다.

     두 사람은 입술 끝을 마주 댄 그대로 가만 있는다.

     강하영의 오른 팔이 박지현의 허리를 가만히 감는다.

     팔이 허리를 감으면서 박지현의 몸이 강하영 쪽으로 조금 

     쏠려 온다.

     "하영 씨."

     박지현이 속삭이듯 부른다.

     자기를 부르는 박지현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알고 있다.

     알면서도 행동에 옮겨지지가 않는다.

     그대로 가만 있는다.

     "하영 씨! 뭘 망설이는 거야?"

     박지현이 노래처럼 속삭인다.

     그래도 강하영은 가민 있다.

     "내가 하영 씨를 원하고 있어. 날 데려가 주어!"

     박지현의 허리를 감고 있는 강하영의 말에 힘이 들어간다.

     박지현이 강하영의 가슴으로 쏠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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