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계산된 우연. 1 (21/30)

     7.                계산된 우연.

     

     

     

                          1

     

     

     스탠드에 앉아 있는 강하영의 귀에 

     "어마!"

     하고 낮게 놀라는 여자의 소리가 들려 온다.

     강하영은 소리가 들려 오는 곳이 자기 바로 옆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

     여자를 본 강하영의 표정에 의외라는 표정이 스치고 

     지나간다.

     여자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강하영을 바라보며

     "관리과 이 대리이시죠?"

     하고 먼저 아는 척한다.

     강하영은 여자 얼굴은 기억에 있지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이 여자의 이름을 

     모른다.

     강하영의 표정에서 상대가 자기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여자가 

     "오혜정예요!"

     하고 먼저 자기 소개를 한다.

     여자의 말을 듣고서야 '아! 이 여자 이름이 오혜정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룹 본사 비서실에 계시던가요?"

     강하영이 어정쩡한 말투로 묻는다.

     "네! 전무님 모시고 있어요"

     강하영은 그때야 오혜정이 지난해 과장발령을 받고 그룹 

     본사 전무실에 인사차 갔을 때 본 여비서라는 기억이 

     떠오른다.

     "누구 기다리세요?"

     오혜정이 선 그대로 묻는다.

     "아! 아닙니다. 혼자 들렀습니다!"

     "앉아도 되겠어요?"

     오혜정이 살짝 웃는다.

     "아! 네! 앉으세요!"

     강하영이 자기 옆자리를 권한다.

     "드시는 게 뭐예요?"  

     오혜정이 강하영 앞에 놓인 칵테일 잔에 시선을 보내며 

     묻는다.

     "바본 콕입니다!"

     "나도 같은 걸로 한 잔 주어요!"

     오혜정이 여자 바텐더에게 말한다.

     "미스 김! 나하고 같은 걸로!"

     강하영이 바텐더에게 주문한다.

     바텐더를 미스 김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은 오혜정이 

     "여기 단골인 모양이네요?"

     하고 묻는다.

     "네! 다른 일이 없을 때는 퇴근길에 들려 가볍게 한 잔하고 

     가는 집입니다"

     "혼자 술을 즐길 줄 아는 남자는 멋쟁이라고 하던데요!"

     오혜정이 필요 이상 애교를 담은 목소리로 말하며 강하영을 

     바라본다.

     강하영이 또 한번 어정쩡한 미소로 답한다.

     "미스 한은 댁이 이 부근이십니까?"

     강하영이 묻는다.

     댁이 이 부근이냐고 물은 건 오혜정이 이 집 단골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스탠드 바는 강하영이 3년째 단골로 다니는 집이다.

     지난 3년 사이 이 집에서 오혜정을 본 기억이 한번도 없다.

     "부근은 아니지만 멀지는 않아요!"

     부근은 아니지만 멀지는 않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제가 옆에 앉은 게 방해되나요?"

     오혜정이 미소에 넘치는 눈으로 강하영을 바라보며 묻는다.

     "아! 아닙니다!"

     "여자에게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무뚝뚝하게 대하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귀찮아서 그런 건가요?"

     오혜정이 여전히 미소 넘치는 눈을 하고 묻는다.

     오혜정의 말에 바텐더 미스 김이 재미있다는 눈으로 

     강하영을 바라본다.

     바텐더 미스 김이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평소의 강하영은 처음 대하는 상대라도 여자에게는 무척 

     상냥하고 친절히 대한다.

     때로는 친절과 상냥함이 지나쳐 추근거린다는 오해도 

     받는다.

     그런 강하영이 갑자기 무뚝뚝해진 게 이상하다.

     강하영의 태도가 갑자기 변한 건 지금 머리 속에서 복잡한 

     생각이 지나가고 있는 게 원인이다.

     처음 오혜정을 보았을 때 우연이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다 여자 혼자 우연히 들른 칵테일 바에서 같은 

     계열회사에 근무하는 사원을 만났을 때 인사 정도를 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오혜정의 지금 태도는 같은 계열회사 직장을 만났을 

     때 보이는 통상적인 인사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치 

     노골적으로 접근해 오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오혜정과 자기는 같은 기업 그룹에 속해 있지만 같은 회사 

     동료도 아니고 평소 자주 만나던 사이도 아니다.

     전무실에서 딱 한번 보았을 뿐 대화를 한 일도 없다.

     그런데도 오혜정은 평소에도 자주 만나던 사이처럼 필요 

     이상의 호감을 보인다.

     '오혜정은 여기가 내 단골이라는 걸 알고 우연을 가장한 

     접근일지도 모른다'

     강하영은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목적이 무얼까?

     그런 생각을 하던 강하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오혜정의 페이스대로 따라가 보자는 생각을 한다.

     일단 마음을 정하면 빨리 변신하는 것이 강하영의 장기다.

     "사실은!"

     하고 강하영이 말을 끊는다.

     "사실은 뭐예요?"

     오혜정이 애교가 흥미에 견딜 수 없다는 눈으로 하고 

     강하영을 바라본다.

     강하영은 오혜정의 그런 눈 속에서 강한 섹스 어필을 

     느낀다.

     그러나 겉으로는 순진을 가장하고  

     "사실은 여자하고 단둘이 술을 마셔 본 일이 별로 

     없어서요!"

     말을 해 놓고 강하영이 멋쩍게 웃는다.

     강하영의 말에 바텐더 미스 김이 마음속으로 픽 하고 

     가볍게 웃는다.

     강하영이 이 칵테일 바에 올 때는 혼자보다는 여자하고 

     동반일 때가 더 많다.

     혼자 왔다가 매력 있는 젊은 여자가 혼자 앉아 있는 걸 

     발견하면 말을 건너는 게 강하영의 특기다.

     말을 걸어 접근해 가는 매너도 결코 추하지 않고 강하영이 

     말을 걸면 여자들은 대개 저항감 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것도 강하영의 특기다.

     바텐더 미스 김이 강하영의 특기를 알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다.

     미스 김은 이 가게로 옮겨온 그날 강하영을 만났다.

     단골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후 거의 매일처럼 왔고 한 주일이 지나면서 미스 김은 

     어느 사이 강하영의 페이스에 끌려 들어가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놀란다.

     그런 어느 날 밤.

     미스 김은 강하영에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차를 탔다.

     미스 김을 차에 태운 강하영은 집 방향 조차 묻지 않고 

     일직선으로 호텔로 행했다.

     차가 호텔로 들어서고 있는 걸 보면서도 또 호텔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스 김은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사에 주문에 이끌린 사람처럼 

     호텔로 이끌려 들어갔다.

     호텔 방으로 들어간 그 날밤 미스 김은 강하영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한다.

     위력에 흠뻑 빠진 미스 김은 그날 이후 목동의 눈빛만 

     보아도 뜻을 알아듣고 따르는 순한 양처럼 강하영이 눈치만 

     하면 호텔로 따라간다.

     일단 호텔로 들어가면 새벽까지 미스 김 스스로가 보채며 

     밤을 세우다 싶이 한다.

     강하영의 그런 미스 김의 욕구를 한 점의 불만도 없이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만족시켜 준다.

     새벽이면 혼자 일어날 수 없을 만치 격렬한 밤을 치른 그 

     다음 날부터는 또 다시 강하영이 눈치를 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칵테일 바의 단골 아가씨 가운데서 미스 김처럼 오늘밤 

     나하고 호텔로 가 하는 사인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어려 

     사람 있다.

     미스 김의 눈치로는 이 칵테일 바의 경영자인 30대 후반의 

     김경민도 강하영의 사인을 기다리는 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경민은 강하영의 전화를 받기만 하면 초저녁이건 손님이 

     차 있건 미스 김에게 가게를 맡기고 달려간다.

     그런 다음 날이면 미스 김에게 전화를 해 몸이 불편하다는 

     구실로 가게에 나오지 않는다.

     미스 김은 김경민이 강하영의 전화를 받고 간 다음 날까지 

     가게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혼자 웃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강하영의 입에서 나온

     "사실은 여자하고 단둘이 술을 마셔 본 일이 별로 

     없어서요!"

     하는 말을 듣는 미스 김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고 

     있다.

     "이제 보니 거짓말도 잘 하시네요!"

     강하영의 말에 오혜정이 곱게 눈을 흘긴다.

     흘기는 눈빛 속에 남자를 유혹하는 선정적인 웃음기가 담겨 

     있다.

     "정말입니다"

     강하영이 정색을 하고 말한다.

     정색을 하고 말하는 강하영의 태도에 또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이 여자도 내일 아침이면 재대로 걷지 못하는 신세가 되게 

     되었군!'

     하는 생각을 하고 빙그레 웃는다.

     오혜정은 조금 전 여자와 단둘이 술을 마셔 본 경험이 

     없다던 강하영의 말이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혜정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며칠 전 이민우 전무와 

     호텔에 갔을 때 침대에서 들은 강하영의 사생활은 여자와 

     담을 쌓고 사는 수도승 같다는 말이 기억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상대라면 더욱 유혹하기 쉽고 한번 침대로 끌고 

     들어가기만 하면 육체의 무기로 사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강하영은 계속 순진을 가장하고 말없이 앉아 있다.

     "나 오늘 굉장히 우울해요. 그래서 취하고 싶어요. 어때요?. 

     오늘 술 친구 되어 주실래요?"

     오혜정이 정면으로 유혹하고 나선다. 

     "그러지요!"

     강하영은 덤덤한 목소리로 답한다

     "좋아요. 이것만 마시고 우리 자리 옮겨요!"

     오혜정이 뜨거운 눈으로 강하영을 바라본다.

     오혜정의 말에 강하영이 미스 김을 흘깃 본다.

     자기를 힐긋 보는 강하영을 향해 미스 김이 살짝 눈을 

     흘긴다.

     미스 김이 눈을 흘기는 이유는 오혜정이 들어오기 직전에 

     오늘 자기하고 가자는 강하영의 눈 사인을 받고 잔뜩 들떠 

     있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강하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또 한번 미스 김에게 눈길을 

     준다.

     눈길 속에는 우리 약속은 내일로 연기하자는 미스 김만 

     아는 사인이 담겨 있다.

     미스 김이 살작 미소 짓는다.

     그러면서 미스 김은

     '저 여자도 내일 아침 호텔 방에서 나올 때는 게걸음을 

     하고 걸을 거고 강하영에게 꼼짝 못하는 여자가 되어 

     있을걸!'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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