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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2라운드 무대에 오른지 몇 일이 지난 지금, 난 요즘 약간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원인은 바로 누나. 본선 2라운드 무대에 오른 날부터 누나의 문자 메시지가 급격히 늘더니 이제는 아예 통화까지 한다.
[그때 막 어떤 남성 팬이 나한테 뭐라 그랬거든? 그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원래 누나가 나를 아끼기는 했지만 데뷔 이후로는 통화나 문자는 잘 안하는 편이였다. 누나가 바빠서 그런 줄 알았더니 요즘 내게 전화하는 것을 보면 꼭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래? 다행이네... 근데 누나, 나 이제 연습 해야하는데...]
[벌써? 조금만 있다하면 안돼? 너랑 나눌 얘기가 아직도 많은데... 알았어. 누나가 돼서 동생을 방해하면 안 되지.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통화하는거다? 사랑해 휘아야.]
[응. 알았어.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나에 대한 누나의 감정표현이 조금 극성스런 면이 있긴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누구랑 전화통화해?”
“아... 그냥 누나랑...”
“누나랑 사이가 좋은가 보네요?”
본선 3라운드를 시작하기 전. 쇼케이스를 하는데,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해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야 한다. 나는 남에게 ‘저랑 팀 하실래요?’라는 멘트를 아무렇지도 날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지라 그냥 평소에 알고지내는 하이한테 같이 팀을 이루자고 제안했다. 물론 하이도 이에 거절 없이 바로 동의했고.
“우리 무슨 노래 부르게요? 가요? 아님 팝?”
“음... 부탁이 있는데 이번에 내 자작곡 부르면 안될까? 내가 작곡한 노래 중에 듀엣곡이 몇 개 있거든...”
“이거 24시간 안에 준비해야 되는 거잖아요... 할 수 있을까요?”
“걱정마. 노래 자체도 되게 쉽울 뿐더러, 듀엣곡이라 각자 외울 가사도 좀 적은 편이야.”
내 설명을 듣고 노래를 들려달라는 하이의 부탁에 ‘잠깐만... 기타 좀 가져올게.’ 라고 말한 뒤 기타와 가방에서 내 작곡 노트를 가져온다.
“어라? 오빠 그게 혹시 작곡노트야? 조금만 보여주면 안돼?”
“어... 그래 조금만 봐. 하하 너한테 보여주려니까 왠지 쑥스럽네. 근데 난 독학으로 공부한 거라서 다른데서 쓰이는 기호랑 조금은 다를텐데...”
나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저 내 작곡 노트를 바라보는 하이. ‘도대체 이게 다 몇 개야?’ 라고 감탄을 내뱉기도 하고, ‘뭐라는 거야? 이건...’이라면서 불평도 늘여놓기도 한다. 그렇게 내 작곡노트를 대충 훑어보던 하이가 갑자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내 눈을 마주본다.
“오빠, 나중에 내가 곡 달라고 하면 꼭 주는거다? 알았지?”
남의 곡을 강탈해가는 모습이 강도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귀여운 하이의 모습에 ‘그래 그래’라고 대답한 뒤 듀엣곡 연습을 준비한다.
“음... 이 곡을 설명하자면 서로를 좋아하는데 고백을 못해. 완전 소심한 남녀 둘이 있는거지. 이 소심남녀들이 고백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부끄러워서 잘 하지 못하는 곡이야. 너랑 내 나이를 생각했을 때 아마 이런 곡이 더 잘 먹힐거야. 우리가 사랑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그렇지?”
“그런데 내 목소리가 좀 낮은 편인데 괜찮겠어? 듀엣에서는 보통 남자가 아래 키 잡고 여자가 높은 키 잡는거 아냐?”
하이가 듀엣곡 하는 것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지만 나는 남의 노래를 그대로 따라부르기는 죽어도 싫었기 때문에 조금 더 하이를 설득해 본다.
“야. 그런 법이 어딨냐? 네 목소리가 낮으면 내가 올리면 되지.”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듀엣곡 연습. 하이가 걱정했던 만큼 하이의 목소리는 낮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우승후보감이라 그런지 노래도 굉장히 안정적이고 느낌있게 부른다.
“처음에는 애드리브로 시작하자. 어쨌든 우리는 각자의 기량을 뽐내야 하니까 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음... 거기서는 음을 조금만 높여봐. 응. 그렇게.”
“이제 여기가 화음 부분이자 하이라이트 부분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표정연기야. 마치 사랑스럽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는거지. 보기 좋은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노래에 표정연기를 더하면 감정을 전달하는데 효과를 볼 수 있거든. 한 번 해볼래?”
“음... 이정도면 우리가 진짜 짱 먹을 것 같네. 하하. 잘했어 하이야.”
내 리드 속에서 진행된 듀엣곡 연습. 중간중간 하이의 실수를 지적해주면서 은글슬쩍 실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내 음악 지식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하이와 나의 콜라보(collabo). 내일 무대가 생각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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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케이스 당일. 무대 객석에 들어가기 전, 참가자들이 로비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중 특히 돋보이는 팀은 수펄스(秀 Pearls). 우승후보인 이미쉘씨와 박지민양 외에 2명이 보인 4인조 여성 보컬 그룹이다. 연습하는 노래가 우리 누나 노래인 The Boys... 정말 잘 편곡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와... 저팀 되게 잘한다...”
하이가 수펄스 팀의 연습을 보고는 순수하게 감탄한다.
“우리도 저 정도 감동은 줄 수 있을거니까 걱정하지마.”
그렇게 다른 팀의 연습을 보고 감탄도 하면서 기다린지 1시간. 드디어 쇼케이스 시작 시간이 되었다. 쇼케이스는 심사위원 뿐만 아니라 우리도 착석해서 다른 팀의 공연을 볼 수 있는 무대이다.
다른 팀의 무대를 보다보니 몇몇 팀이 눈에 띈다. 박제형 & 윤형상 팀은 천재들의 팀으로 이미 소문이 났었고, 예상 외로 최반석 & 이유진 & 박남경 팀의 무대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최래성과 박정은의 춤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고.
어느새 다른 팀들이 다 공연을 하고 우리 팀과 수펄스만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 팀이 먼저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