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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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경연 다음날, JYP에 가니 나조차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여있었다. 사장님은 물론 JYP소속 작곡가와 보컬트레이너, 댄스트레이너, 스타일리스트, 프로듀서 그리고 신인개발팀까지. 마치 우리를 곧 데뷔하는 신인으로 대하는 것 같았다.

“일단 아연이는 휘트니 휴스턴의 Saving All My Love For You를 하기로 했어. 그 노래 알지? 어떨 것 같아?”

사장님이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아연누나가 부를 노래에 대해 물어본다.

“하지만 아연이는 예전에 감정표현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왔었고, 이제야 한국적 감성이 나온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데 이런 곡에 도전해도 될까요? 차라리 다시 한 번 가요를 하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연이가 한국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가요에만 머무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무대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어.”

“하지만 가요랑 팝은 장르가 엄연히 다르고 거기에 붓는 감정도 달라요. 이번 경연은 어쩌면 리스크가 굉장히 클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계속해서 가요만 부르면 조금 질릴 수도 있어. 여느 가수처럼 앨범 내고 몇 달 있다가 컴백하는게 아니라 일주일마다 라이브(live)로 방송되잖아. 차라리 이번엔 팝 장르를 부르고 다음 주에 다시 가요를 부르는게 나을 것 같아.”

아연누나에 대한 회의. 누나가 노래를 불렀을 때의 감성, 그리고 그 동안 아연누나가 받았던 심사위원들의 평가, 관객들의 반응까지 모든걸 고려하고 있다.

“...그럼 아연이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이제 서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혹시 가지고 온 곡 있니?”

“대충 멜로디하고 구상정도만 해왔어요.”

“어디 한 번 멜로디를 들어보자.”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직원분께 건반을 가져오라고 하셨지만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기본적인 멜로디만 있는거라 허밍(humming)정도로만 해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음... 멜로디는 괜찮은 것 같은데? 여기서 살만 붙이면 괜찮을 것 같아. 그럼 가사 구상은 어떻게 해왔니?”

“우선 남자하고 여자가 헤어진 상황이에요. 그런데 둘이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거죠. 한 사람은 어색해서 말도 못 거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주는거죠. 그리고 서로 ‘다시 재결합을 할까?’라고 생각을 하는... 뭐 그런 내용이에요.”

“음... 가사 구성도 괜찮은 것 같아. 원래 작사는 남들이 안한 이야기를 하던가 아니면 흔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써야 하거든. 예를 들어서 별의 <12월 32일>처럼 흔한 이별이야기를 해도 그 해석 자체는 신선하게 풀어써야해. 네 곡은 이런 점에서 굉장히 잘했다고 볼 수 있어. 흔한 이별 소재이면서도 슬픔이 아닌 어색함을 주제로 했으니 말이야.”

그렇게 이번 경연에 부를 노래에 대한 회의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니 원더걸스 두 분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안, 안녕하세요?”

차분하게 인사를 한 나와는 달리 아연누나는 ‘어버버’거리더니 인사도 버벅거리면서 했다.

“안녕하세요. 원더걸스의 혜림과 유빈입니다. 서휘씨랑 백아연씨죠? 이번에 저희가 여러분들 밀착 멘토링을 하게 되어서요. 잘 부탁드려요.”

밀착 멘토링. 말 그대로 연습실에 있는 동안 원더걸스분들이 우리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는 종종 충고를 해 주시는 거다. 하지만 원더걸스 분들도 나이가 어린만큼 큰 충고는 못하고 다만 무대에는 많이 서 본만큼 그저 ‘무대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정도로만 한다고 한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혜림선배님, 유빈선배님.”

“헐. 혜림선배님, 유빈선배님이 뭐야? 그냥 누나라고 불러. 역시 서현이 동생 아니랄까봐 아주 서현이랑 똑같네.”

나름 정중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사가 원더걸스분들 한테는 굉장히 어색했나보다.

“아, 네... 알았어요, 누나.”

원더걸스 누나들하고 대충 인사를 나눈 뒤 사장님이 회의실에서 나온다.

“자 대충 인사는 나눴겠지? 일단 오늘은 이만하고 각자 곡 연습해서 내일 다시 보자. 그리고 혜림이랑 유빈이는 나 좀 따라오고.”

캐스팅 오디션의 부활 이후 숙소생활은 중단되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집에 와서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여보세요?]

[응. 누나, 나야. 스케줄이야?]

[아니, 스케줄 가는중. 도착할려면 아직 멀었어. 악 언니 이러지 마세요!]

휴대폰 넘어로 ‘누구야? 혹시 휘아?’, ‘빨리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등등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하, 누나 다치지 말고 그냥 해달라는대로 해줘. 무슨 비밀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안부 물어볼려고 전화한건데...]

[그래도 그렇지... 알았어, 잠시만.]

몇 초가 지나자 소녀시대 누나들의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들린다. ‘K팝스타 잘 보고 있다.’ ,‘나중에 꼭 다시 한 번 숙소에 찾아와라.’, ‘이번에는 SM에 캐스팅 돼서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제시카 누나의 ‘우리 수정이 만나봤지? 어때?’라고 묻는 소리도 들리고... 소녀시대 누나들과의 통화가 끝난 후 여느 때처럼 남들이 보기엔 낯부끄러운 우리 남매만의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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