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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만요’를 외치고는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늑대소년은 인간의 손길이 전혀 안 닿은 듯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 만큼 지금 내 깔끔한 모습은 이 연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
뒤돌아서서 몇 일전 파마를 하고 오기 전 열심히 정리했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기 시작하자 박보영씨가 놀란 듯한 소리를 내뱉는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도 찢어서 나뭇가지에 헤쳐진 옷처럼 만든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서 연기를 시작한다.
“호오”
“흠...”
다리를 오므려 껴안고서 그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고 눈빛 속에 인간을 처음 보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야생의 느낌을 담고는 다시 얼굴을 들어 심사위원들을 쳐다보자 모두 탄성을 내지른다.
“기대 이상인데요?”
연기를 끝내고 다시 일어서자 감독님이 하시는 말에 나는 그저 멋쩍은 웃음만 터트린다.
“도대체 중기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저런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거지?”
“얘는 진짜 천재라니까요. 저도 가르치다가 깜짝 놀랐어요.”
프로듀서님이 말씀하시자 중기 형이 나를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보면서 대답한다.
“그럼 내일 결과를 통보해 줄 테니까 그만 나가봐.”
감독님의 말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나가서 매니저 형에게 전화를 건다.
[형. 나 끝났어.]
[그래? 차 대기시켜놀테니까 아까 차에서 내렸던 곳으로 와.]
매니저 형과의 통화를 끝내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대기자 분들이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뭘했길래 복장이 저런데?’라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대본 유출을 염려해서 나뿐만 아니라 다들 시나리오는 모르는 상태라 말끔하게 차려왔지만 오디션 장에 들어간다면 오히려 그 점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곧 깨달을 것이다.
“야. 너 옷이 왜 그래?”
“아... 뭐 심사위원분들게 내 열정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일단 차에 타고 얘기하자 형. 나 쪽팔려.”
그리고는 차에 타서 YG로 향하는 길에 매니저 형한테 내가 오디션 장에서 했던 일을 자세히 말해준다.
“뭐? 푸하하. 이거 잘하면 네가 주인공 먹겠는데? 확실히 그 정도로 보여주었으면 ‘늑대소년’이라는 제목에도 맞는 것 같고 네 눈빛연기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옷 찢는 거만 봐도 감독님들이 네가 물건이라는 것은 다들 아실 거다. 푸하하.”
매니저형의 칭찬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저 형도 2NE1 누나들과 빅뱅 형들을 관리했던 실력 있는 매니저이기 때문에 저 형의 감은 충분히 믿을만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상태로 회사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티셔츠 한 장은 새로 사서 입고가자. 조금만 기다려 형이 사다줄게. 네 연기에 감탄한 형이 특별히 사주마. 하하.”
매니저 형이 그렇게 말하고는 차문을 열고 나간다. 형이 나가고 나서 나도 내 모습이 궁금하기 때문에 스마트폰 거울 기능을 통해서 내 모습을 본다. 현재 평범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내 머리는 마치 자다 일어난 듯 하고, 옷에는 때가 묻어있지 않지만 갈기갈기 찢겨진 게 버려진 옷을 주서 입은 것 같다.
‘이런 특별한 모습을 그냥 남길 수는 없지...’
평소에 볼 수 없는 내 모습을 셀카로 남기고는 형을 기다린다. 형이 평범한 흰색 티셔츠를 사오자 그걸로 갈아입고는 다시 YG로 향한다.
YG에 도착해서는 사장님께 매니저 형한테 했던 얘기를 그대로 들려드리자 ‘잘했다’고 칭찬하시고는 ‘기대해도 될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음 날 기대했던 대로 나에게 오디션 합격 통지서가 왔다. 이 소식을 듣고는 YG패밀리 분들이 아직 전용 녹음실이 설치되지 않아서 쓰고 있는 내 임시 연습실로 찾아와서 축하를 해주는가 하면 현재 스케줄 나가있는 사람들은 다들 문자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물론 이 사실은 전체 함구령이 내려졌고...
“그런데 사장... 아니 삼촌, 그러면 저 연기자로 데뷔하는거에요?”
이렇게 배우로 데뷔하는 게 아닌가 싶어 사장님께 물어본다.
“응? 아니. 어차피 영화는 10월 말이나 11월 즈음에 개봉한다고 하니까 그 전에는 앨범 내고 가수로써 데뷔해야지. 하지만 지금 영화촬영이 송중기씨 사고 때문에 미뤄진 상태라 한 2주간은 철야촬영을 해야 한다네. 그러니까 2주 정도는 연기에 집중하면서 네 앨범 작업보다는 금방 할 수 있는 피처링 같은 걸 해보자. 너한테 온 제의만 해도 몇 개는 되지만 우리가 다 걸러내고 2개를 골랐놨으니까 한 번 봐봐.”
사장님이 건네주신 종이를 보니 그곳에는 ‘달.콤쏭 오디션’과 ‘FNC 엔터테이먼트 주니엘 <바보> 듀엣’이라고 적혀있었다.
“달.콤쏭 오디션? 이게 뭐에요?”
“‘달콤커피’라는 커피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인데 기획 단계에서부터 메인 보컬을 신세경으로 염두에 둔다고 하네. 거기 프로젝트 진행자가 너 랭킹 오디션 때 부른 ‘선인장’이라는 노래랑 캐스팅 오디션 쇼케이스 때 부른 ‘그대와 나, 설레임’이라는 노래를 듣고는 네 감성이 이 프로젝트랑 딱 이라고 하면서 너를 오디션보고 싶어 하셔.”
“또 오디션이에요?”
영화에 이어 노래까지 오디션을 봐야 한다니... 어쩌다 내 신세가 오디션을 봐야하는 입장이됬는지... 나는 YG랑 계약하면 모든 게 내 위주로 돌아갈 줄 알았지...
“그래도 이번에는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최종 결정만 남은 상태에서 네가 오디션을 보는 거라 승산이 많아. 그리고 설마 이제 막 계약한 신인이 자기 위주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을 한건 아니겠지?”
사장님의 말에 잠시 뜨끔했다.
“휴... 뭐 사실 네 위주로 돌아가도 딱히 할 말은 없어. 하지만 우리는 네가 아랫단계부터 차례차례 밟아갔으면 해. 너한테 광고제의가 수십 개 온 것을 보면 알겠지만 너는 벌써 스타야. 그런 만큼 이런 경험을 하기는 힘들거라 생각해. 어쩌면 이런 기회는 네가 막 신인인 지금 밖에 없을지도 모르고... 그런 만큼 우리는 네가 다양한 경험을 쌓아봤으면 한다.”
사장님의 말을 듣고는 왕의 자리는 전생에서 많이 겪어본 만큼 이번에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고 마음먹고는 사장님께 힘차게 ‘네. 알겠습니다. 삼촌.’이라고 말하고는 달.콤 오디션 제의를 수락한다.
“그러면 FNC엔터테이먼트 쪽의 제안은 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