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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들어가자 나는 준비된 의자에 앉아서 ‘dal.komm coffee’라고 쓰여 있는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무심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이 커피 달콤한데?’라는 느낌이 들게 얼굴을 살짝 갸웃거린다.
“컷! 서휘씨 그 애드리브 굉장히 좋은데요? 다시 한 번만 촬영 들어가죠.”
내가 갸웃거리는 듯한 동작은 원래 대본에 없던 행동이다. 그러나 이 애드리브를 통해서 이 프로젝트의 주체자인 ‘달콤 커피’를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님이 좋았다고 하신 것 같다.
아까의 연기가 반복되고 이번엔 누나와 함께 찍는 파트이다.
“누나 잘 부탁해요.”
“나야 말로 잘 부탁해. 너 연기 굉장히 잘 하던데? 이대로만 가면 일찍 끝날 수도 있겠다.”
촬영이 다시 시작되고 커피를 맛보고 고개를 아주 살짝 갸웃거리는 내게 누나가 다가와 내 어깨를 살포시 잡는다. 이에 반응하여 내가 고개를 누나쪽 완전히 돌리지 않고 아주 조금만 돌리자 누나는 내 귀에 ‘넌 달콤했어.’라고 속삭인다.
다시 한 번 감독님의 컷 사인이 내려지고 이번에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누나와 내게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신다.
“세경씨, 서휘씨를 동생으로서 좋아하는 것은 알겠는데 여기서는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그런 표정 말고 좀 더 유혹하는 표정을 지어줘.”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촬영이 시작되자 누나는 아까보다 더 과감하게 허리를 숙이고 조금 더 유혹적인 표정으로 내 귀에 속삭인다. 누나의 행동에 맞추어 내 연기를 시작하는 순간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인의 가슴골을 보게 되었다.
‘헉!’
TV에서는 많이 봤으나 실제로는 처음 본 것이기 때문에 속으로 꽤나 놀랐다. 그러나 현재는 촬영 중이고 또 내 나이가 허투루 먹은 것이 아닌 만큼 놀란 가슴은 속으로 금방 삼키고는 연기에 집중한다.
다행히 이번 촬영은 무사히 통과되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후후. 동생 좋았어?”
“네? 뭐가요?”
순간 누나의 말에 뜨끔했다. 설마 들킨 건가? 난 분명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는데...
“분명 내 가슴골이 보였을 텐데? 어때? 아직 미성년자라서 부끄럽지?”
단순히 짐작만으로 말하는 누나의 모습에 안도를 하고는 누나의 말에 반박한다.
“하나도 안 봤거든요? 진짜 연기에만 집중했어요. 누나 가슴골을 봤으면 제가 몸을 움찔거렸겠죠.”
“그래? 알았어. 그렇다고 쳐줄게. 후훗.”
“아 진짜 아니라니까요? 와... 내 진심을 이렇게 안 믿어주시네. 이게 무슨 남매야?”
내가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나가자 누나가 결국 ‘장난이야. 장난. 우리 서휘 화났어요? 우쭈쭈’라고 말하면서 다행히 그 상황은 넘어갔다.
계속해서 촬영이 이어지고 드디어 마지막 씬 만이 남았다. 이번 씬은 누나의 말에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누나가 내게 속삭이고 떠난 곳으로 갑자기 쳐다보는 장면이다.
‘혼란스러운 표정이라...’
나는 머릿속에 혼란스러울 때면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사색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대중들이게 보여주어야 하는 연기이기 때문에 눈을 감을 수는 없다.
‘가만... 눈?!’
갑자기 혼란스러운 연기에 대한 생각이 번쩍 떠오르고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자 촬영이 시작되었다.
“와... 서휘씨 흔들리는 눈빛이 아주 최고인데? 이번엔 이걸로 끝내도 되겠다. 아주 잘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행히 나의 번뜩이는 재치로 촬영이 일찍 끝나게 되었다.
“오늘 촬영 엄청 일찍 끝났는데? 서휘 네 덕분이야. 오늘 연기 진짜 잘하던데? 너 가수 맞아?”
누나의 말대로 오늘 촬영은 예상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끝났다. 나는 물론 누나도 감정이 잘 표현 되서 일찍 끝날 수 있었다.
“에이... 어디 저 뿐만 인가요? 누나도 엄청 잘 하시던데요?”
“난 배우잖아. 나는 네가 그렇게 감정표현을 잘 할 줄은 몰랐어. 이래서 영화에 캐스팅 된거구나.”
“휴... 저는 마지막 씬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한참 고민했어요.”
“잘 해놓고선 모르기는... 그리고 너는 드라마도 안 봐? 아침드라마 같은 거 보면 출생의 비밀 같은게 밝혀졌을 때 주인공이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잖아. 그 때 눈동자가 흔들리는데... 그거 따라한거 아냐?”
그런 건가? 내가 요즘 들어 인터넷은 자주 하게 되었지만 TV와는 아직도 거리가 멀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 거였어요? 저는 노래 연습 때문에 TV를 거의 안 봐서 잘 몰랐죠.”
“앞으로 연기할거면 다른 작품들도 참고 하는 게 좋아.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 연기 실력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물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지만...”
누나의 말에 나도 이제 영화계에 한 발짝 들여놓은 만큼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일찍 끝난 기념으로 오늘도 밥을 같이 먹을까?”
“죄송해요. 누나. 내일 제가 듀엣 녹음이 있어서 연습을 해야 되겠네요... 다음에 꼭 같이 먹죠.”
“아쉽네... 어쩔 수 없지. 그럼 나중에 연락하면 꼭 받아 알았지?”
누나의 말에 알았다고 하고 듀엣을 연습하러 회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