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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이제 영화촬영이 시작된다. 내일 촬영지는 순천 드라마 세트장. 이곳은 1960연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모습들을 담은 곳으로, 최근에는 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촬영된 곳이다.

자기 전에 수 없이 많이 봐서 거의 닳을 지경까지 된 대본을 다시 한 번 더 점검하고는 마지막으로 친인들한테 전화를 걸어본다.

[어, 서휘야. 왠일이야?]

그동안 내게 연기를 가르쳐준 중기 형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 형의 배역을 내가 맡은게 왠지 모르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동안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냥요... 내일이면 이제 영화 촬영 시작하거든요.]

[아... 그렇지? 열심히 해. 보영이도 착하고 스테프 분들도 착하셔서 촬영하는데 불편하지는 않을거야. 그리고 네 첫 도전이니까 너무 주눅들지 말고.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딨냐면서 당당하게 행동해. 그렇다고 너무 그러지는 말고 하하]

중기형의 말에 연기 선생님으로서 형의 이름에 먹칠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마세요. 제가 워낙 강심장이잖아요. 하하. 그냥 그동안 감사했다고 전화 드렸어요. 그런데 이제 사고 난 데는 어느정도 치료가 된거에요?]

[이제 한 달 정도 치료 받으면 정상이 된다는데? 그래서 요즘은 나한테 들어온 시나리오 검토하고 있어. 영화 촬영을 못하니까 다른 작품이라도 해야지.]

[형이 선택한 작품이 대박났으면 좋겠어요. ‘늑대소년’이 멜로였으니까 이번에 선택하는 작품의 장르도 혹시 멜로에요?]

[모르지. 그냥 내가 봤을 때 마음에 와 닿는 시나리오를 선택하려고.]

그렇게 형과 몇 분을 더 통화하고는 끊는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들어 이번에는 누나에게 전화를 건다.

[어, 휘아야. 요즘에는 네가 자주 전화를 하네? 히히]

목소리에서부터 내가 전화해서 기쁘다는 것이 느껴진다. 가끔 이런 누나를 미래에 누가 데려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응. 내일부터 영화촬영 시작하잖아. 2주 정도는 너무 바쁠 것 같아서 그냥 전화해봤어.]

[아... 맞아 너 영화 촬영한다고 했지? 잘 촬영하고... 나중에 누나가 휴식 때 되면 한 번 찾아갈까?]

[아냐. 힘들게 뭘... 그냥 집에서 부모님이랑 편히 쉬어. 나는 아직까지 집에서 살지만 누나는 집으로 자주 못오잖아.]

[부모님 뵙고 너 보러 간다고 하면 되지. 엄마도 분명히 찬성하실걸? 오히려 너 주라고 도시락 싸줄지도 모르지. 히히]

누나의 고집에 ‘그래. 그렇게 해줘.’라고 답한 뒤 누나의 근황에 대해 물어본다.

[나도 바뻐. 8월에 월드투어가 있어서 한참 연습중이야. 그래도 널 볼 시간은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렇게 누나와 통화를 끝내고 이제 막 씻으려고 하는데 내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휴대폰을 바라보니 발신자의 이름은 세경 누나였다.

[동생! 내일부터 영화촬영 들어간다고 했지?]

[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어쩐일이긴. 또 한명의 배우 후배가 생기는 것을 기념하면서 이 누나가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나 할까?]

[에이... 그러다 스캔들나요.]

[걱정마. 이번 기회에 너랑 나랑 의남매 맞은거 다 불어버리면 되지. 히히]

결국 누나의 부탁에 다시 외출을 준비하고는 누나가 말한 식당으로 나간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매니저 형을 다시 부르려고 하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올 해에 내 생일이 지나자마자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있었던 매니저 형이 우리 집에 금방 도착했다. 내가 올라타자마자 ‘어딜 가는데 이 시간에 나를 불러?’라고 묻길래 내가 세경 누나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너 그러다 진짜 스캔들 난다. 특히 이 시간에는 조심해야되. 너도 이제 연예인이야.”

“걱정마세요. 세경 누나랑 몇 일 전에 의남매 맺었었는데 이번에 그거 불어버릴거라면서 그냥 밥 사준다고 오라는데요? 그러면 괜찮지 않나요?”

“너 입장에서는 괜찮겠지만 대중들의 상상력이란 엄청나거든. ‘아니 땐 부뚜막에 연기나랴’라는 말이 있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 모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낸다.)가 매우 쉬우니까 그렇지.”

“그런가...? 그럼 차 돌려야하나요?”

“됐다. 이렇게 된거 그냥 그렇게 다녀. 어차피 우리랑 계약할 때 너 이미지를 자유로운 아티스트에 마당발 이미지로 만들기로 했잖아. 이렇게 된거 김희철씨처럼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미 소녀시대라는 엄청난 인맥이 있지만...”

그렇게 매니저 형과 얘기하면서 도착한 곳은 어느 조용한 전통 술집. 아무래도 누나가 사준다는 것이 술이였나보다.

“신세경씨 그렇게 안봤는데... 미성년자를 술집에 초대하자면 어쩌자는거야?”

“에이. 됐어요 형. 나는 뭐 술도 안먹어봤나? 수련회 가서 다 먹어봤으니까 걱정마세요. 그렇다고 제가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을거니까요. 아니면 형도 들어가실래요?”

“됐다 임마. 그럼 빨리 나와야되. 못해도 2시간 안에는 전화해라. 알겠지?”

“네. 형. 쉬고계세요.”

형의 화가 세경 누나에게 미칠까봐 얼른 형을 달랜 후 차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감춰왔던 희대의 역용공(逆容功)인 천변만환공(千變萬換功)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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