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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밤을 보내고 새벽부터 순천으로 내려가 촬영을 시작한다. 내 첫 촬영은 순천 드라마 세트장이 아니라 그 근처 숲에서 인간에게 발견되는 장면이다.

촬영지로 가자 산에서 산 늑대소년처럼 꾀질꾀질하게 분장을 한다. 분장을 하면 할수록 더러워보이는(?) 내 모습에 속으로 감탄한다.

“보영 누나 안녕하세요.”

내가 분장을 하고 있자 첫 촬영을 끝내고 보영 누나가 도착했다.

“응. 안녕.”

아직은 어색한 듯 조용히 인사를 나눈다. 중기 형 덕분에 서로 통화는 해 본적이 있지만 얼굴을 본 것은 저번 오디션 이후에 처음이다. 본래 같으면 대본 리딩에 참석해야했지만 그 때 당시에는 중기 형이 다치기 전이었거니와 어차피 이 역할은 대사가 별로 없고 표정연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감독님이 오디션 때 내 표정연기를 보고는 사전 미팅은 생략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직 어색하지? 조금 있다가 내가 선배님들 소개시켜줄게.”

아까 한분 한분 인사는 드리고 왔지만 새로 도착하신 선배님들도 계시기 때문에 보영누나의 호의는 거절하지 않고 알았다고 한다.

“많이 떨리지? 나도 처음에 데뷔를 주연으로 했거든... ‘비밀의 교정’이라는 드라마였는데 나는 첫 촬영 하기 전날 밤에 한 숨도 못 잤거든. 그러고 보면 너는 잘 잤나보네? 아니 원래 피부가 좋나? 호호”

그래도 나름대로 누나라 그런지 어색한 분위기를 좀 더 화기애애하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줘서 좀 편히 잘 수 있었어요. 중기 형이랑 열심히 연습한 것도 있고요. 하하.”

“그래. 많이 떨지마. 떨면 연기를 더 못하게 되더라. 그 때 오디션에서 보니까 연기가 장난 아니던데? 중기 오빠랑 연습도 했으니까 기대해도 되지?”

“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연습이랑 실제랑 다르잖아요. 하하”

그렇게 말하고는 너덜너덜한 대본을 펼쳐서 이번 씬을 확인한다. 이미 내 머릿속에 다 입력이 되어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대본은 살펴보고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본다.

“우와... 진짜 열심히 했나보네. 대본이 너덜너덜한거봐. 아무래도 큰 기대를 해야겠는걸?”

보영 누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촬영장에 들어가니 스테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영화 촬영이 예정보다 늦어진 만큼 한번에 최고의 장면을 찍기 위해서 연기자들도 스테프들도 열심이다.

첫 장면은 보영 누나가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숲 속에 숨은 늑대소년인 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컷! 아직 인간의 모습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인데? 조금 더 늑대소년답게 사람의 때가 전혀 안 탄 듯한 느낌이 나와야돼.”

감독님의 주문이 추상적이지만 나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뒤에 머리를 조금 더 헝크려 한 쪽 눈을 가린뒤 다시 촬영에 임한다. 그리고 짐승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살기를 살짝 끌어올리고는 카메라를 바라본다.

“좋아! 역시 이번에는 캐스팅이 잘 됬다니까? 하하.”

내 연기에 만족하신 듯이 감독님이 웃으시며 내 연기를 칭찬해주신다.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어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진짜 생각보다 잘 하는데? 이제는 진짜로 기대해야겠어.”

어느새 다가온 보영 누나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한다. 몇 가지 촬영을 더 한 후 그 때마다 내 너덜너덜한 대본을 보고, NG없이 혹은 많아봐야 3번 안에 감독님께 오케이 사인을 받자 스테프들 사이에서 내 평판이 올라가는 듯 하다.

“서휘, 엄청 열심히 하는데?”

“노래만 잘 하는게 아니라 연기도 잘하네. 이거 진짜 대형 신인의 탄생인데?”

“저 대본 너덜너덜한거봐. 저런 노력파는 보기도 힘들겠다.”

“예의도 바르고... 잘 생긴 얼굴만 믿고 깝치는 녀석들 보기 힘들었는데 저 녀석은 난놈이네.”

사실 자꾸만 대본을 보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함도 있었다. 소문이라는 것이 연예계에서는 굉장히 빠르게 도는 만큼 스테프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내 이미지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스테프들이 다른 작품에 들어가야 그 소문이 퍼지지만 말이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아까 보영 누나의 약속대로 나는 보영 누나의 손에 이끌려 선배님들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서휘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내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인사를 드렸던 선배님들도 내 연기를 보고는 마음에 드셨는지 내가 다시 한 번 인사를 하자 반갑게 맞아주신다. 물론 공통적으로는 내 노래를 잘 들었다고 하시고, 여자 선배님들은 주로 내 피부를 보고는 감탄하시고 남자 선배님들은 ‘혹시 소녀시대 안 오냐?’라고 장난을 치시기도 했다.

“오빠. 안녕하세요. 아, 말 편히해도 괜찮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배우는 아역 김향기. 나보다 선배이지만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린지라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향기가 먼저 말을 건네주었다.

“응. 안녕? 반갑다. 앞으로 잘 부탁해.”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촬영을 하러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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