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소설 1\새 텍스트 문서 (74).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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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을 먹은 후 촬영을 조금 더 하다가 오늘 분량은 끝났다고 말하시는 감독님의 말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한 뒤 각자의 길로 돌아간다. 내가 촬영 한 것을 포함해서 모두 합쳐도 10개도 안 찍었는데 하루가 금방 가버렸다.
“후... 차라리 노래하는게 더 낫네...”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지만 첫 촬영이라 그런지 정신적으로 약간 피곤한 기가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주무르게 된다.
“그렇게 힘들었어?”
분장을 지우려 가는 길에 보영 누나가 어느새 내 옆에 서더니 물어본다. 아 참... 나랑 누나랑 같은 대기실 쓰지...
“아뇨. 괜찮았어요. 나름 재미도 있었고.”
신인이 첫 촬영부터 힘들다고 하면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없어보일까봐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나는 아까의 내 말을 들었는지 피식 웃고는 ‘거짓말 하지마.’라고 말한다. 내 곁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던 것을 보니 오늘 촬영이 정말 힘들긴 했나보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가는거야?"
“네. 원래 근처 모텔에서 머무르려고 했는데요, 오늘은 일찍 끝난 김에 잠시 집이랑 회사 좀 다녀오려고요. 첫 촬영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 그럼 잘 갔다와. 내일부터는 진짜 철야촬영이 시작되니까 몸 관리 잘 하고.”
“네. 누나, 안녕히 가세요.”
누나와 헤어진 후 매니저 형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매니저 형도 어지간히 힘든지 자꾸 하품을 한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달려서 10시쯤이 되자 회사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직 사장님께서는 퇴근을 안 하셨는지 사장실에는 불이 켜져있었다.
“삼촌, 저 서휘입니다.”
“어, 들어와.”
사장님의 말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장님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시지만 근심이 담긴 표정이 남아있었다.
“무슨 고민 있으세요? 표정에 걱정 있다고 다 나타나있네요.”
“그래? 나름대로 표정관리를 잘 하는 편인데... 음... 너라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사실 곧 싸이의 앨범을 내려고 하거든. 그런데 아직 타이틀곡이 정해지지 않아서 말이지.”
“싸이형은 항상 <새>나 <챔피언>, 처럼 신나는 곡을 타이틀 곡으로 했었잖아요.”
“그랬지. 이번 앨범에 들어갈 곡에 그런 것도 있는데 싸이가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하네? 그리고 지금까지 준비된 곡들이 다 피처링 형식이어서 싸이가 혼자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좀 필요하기도 하고...”
“그럼 그거 제가 도전 해봐도 되죠?”
“네가?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너 바쁘지 않냐?”
“바쁘죠. 그런데 싸이 형님을 위해서라면 뭐... 하하. 장난이고요, 예전에 싸이 형 노래들 듣고 재미로 만들어본 멜로디가 있는데 그거 찾아서 조금만 손보고 갖다드릴게요. 마음에 들면 싸이 형이 작사 하셔서 사용하시면 되고요, 마음에 안들면 되돌려주시면 되고요.”
“그래. 너를 한 번 믿어보자. 그런데 첫 촬영은 괜찮았어?”
“괜찮았어요. 처음에는 저를 좀 안 좋게 보시는 것 같았는데 촬영이 끝나고 다시 인사드리니까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요. 보영 누나도 이번 촬영 기대된다고 하시고...”
“그럼 다행이네. 사실 우리 회사에 연기자가 몇 명 없어서 노하우가 아직 부족하거든. 조금 걱정했었는데 역시 너라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그럼, 그래야지. 내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의(信義)가 묻어나게 할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이렇게 잠시 생각을 하다가 사장님과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곡 작업을 시작했다. 묵혀둔지 몇 년이 돼서 수북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작곡노트를 펼쳐본다.
“어디쯤이었더라?”
평소 작곡한 날짜를 적어두는 습관이 있는지라 싸이 형의 가 나왔을 때를 검색하고는 2010년 10월에서 11월쯤 되는 페이지를 찾아본다.
“아, 여기있네...”
이 때 당시만 해도 기타에 푹 빠져있던 때라 기타로 대충 코드만 적어둔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 장르를 섭렵한 만큼 싸이 형의 스타일에 맞게 전자음도 들어가고 MPC로 비트도 넣으면서 원곡을 고쳐나갔다. 다 고치니 3분 40초 정도 되는 곡이 완성되었다.
시계를 보니 곡 작업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벌써 동이 틀 시간이 되었다. 빨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시계를 보니 6시쯤이 되었고, 매니저 형이 내려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형, 잠시만 회사에 들려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왜?”
“싸이 형 앨범 낸다면서요? 거기에 제 곡이 쓰였으면 해서 작곡 좀 해봤어요.”
“그래? 그런데 싸이씨는 신나는 곡을 주로 하지 않나? 너랑 왠지 안 어울리는데?”
“저라고 무슨 감성적인 노래만 하라는 법이 있나요? 예전에 싸이 형 노래 듣고 만들었던 곡을 손봐서 갖다주는 거에요.”
“그래? 잘 되길 바란다. 채택이 안됬다고 너무 상심하지 말고. 크크”
“저 그럴 나이 지났거든요?”
그렇게 매니저 형과 투닥거리면서 회사에 도착해서 우편함에 어제 만든 노래가 담긴 CD를 넣은 후 다시 차에 타서 촬영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