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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촬영을 마치고 점심 시간 겸 휴식 시간을 갖는데 감독님이 잠시 나를 부르셨다.
“감독님. 저를 부르셨다길래... 무슨 일이세요?”
“서휘야, 너가 한 번 이 영화 OST 맡아볼래?”
갑작스러운 감독님의 곡 의뢰에 나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제도 싸이 형 노래를 만들었는데, 요즘 곡 의뢰가 자주 들어오는 것 같다. 바쁘긴 하지만 내 실력이 증명되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제가 맡으면 좋죠. 저는 아직까지는 음악이 더 익숙한 상태인지라... 하하, 그런데 이거 제가 맡아도 되는거에요?”
“응. 너도 시나리오 보면 알겠지만 보영이가 기타치는 씬 있지? 거기서 불러줄 노래를 찾고 있는데 다들 마음에 안들어서... 여기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인 너도 있겠다, 네가 맡아보면 어떨까 해서.”
“그럼 제가 할게요. 언제까지 만들면 되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그런데 늦어도 6월 안에는 만들어서 주면 좋겠다. 영화 촬영을 못해도 8월 초에는 끝내야 하거든. 조금 빠듯한데 괜찮겠어?”
6월 안에 만들려면 3주 정도가 남았다는 건데...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K팝스타 때는 모든 곡이 일주일 안에 만들어야 해서 조금 빠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런 상황을 여러번 겪다보니 3주라는 시간은 왠지 널널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그런데 곡이 마음에 안드는거 아니에요? 하하”
감독님과 얘기를 끝마친 후 대기 장소로 돌아가니 보영 누나가 보였다.
“누나, 제가 OST 만들게 된거 아세요?”
들어가자 마자 보영 누나에게 아까 감독님과 나눈 얘기를 말해준다. 그랬더니 보영 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어머, 진짜?’라고 말하는데 정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하네요. 그런데 누나는 어떤 곡이었으면 좋겠어요?”
“글세... 그래도 시나리오에 맞는 곡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일단 여기서 나는 소녀이니까 소녀 감성도 들어가고 철수한테 들려주니까 사랑 얘기도 들어가야 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타 반주가 조금 쉬웠으면 좋겠네. 히히”
“음... 알겠어요.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보도록 하지요. 하하”
“그러고 보니까 너는 앨범 언제 낼 거야??”
누나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가수로서 앨범은 확실히 내야한다. 비록 저번에 세경 누나와 <넌 달콤했어>를 녹음했고, 준희 누나와 <바보>를 듀엣하기는 했지만 온전히 내 곡이 아니거니와 내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도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내 곡이 필요하다. 가수인데 연기자로 먼저 데뷔하는 것은 조금 마음에 안들기 때문이라도 앨범을 조만간 내야 할 필요가 있다.
“음... 영화 촬영이 조금 느슨해지면 곡 작업하고 그래야죠. 제 생각에는 아마 8월이나 9월 쯤에 미니 앨범 하나 나올 듯 싶네요. 정식 앨범은 미니 앨범의 반응 보고 만들어야죠.”
“왜? 먼저 정식 앨범 내면 안돼?”
“안된다기 보다는 먼저 대중들의 반응을 보는거죠. 그래서 미니 앨범이 성공하면 정식 앨범도 그쪽 색깔로 만드는 거고, 아니면 조금 다양한 변화를 주는거죠.”
“그런가... 하여간 네 노래도 빨리 듣고싶다. 나 너 때문에 K팝스타 되게 열심히 봤는데. 히히. 너도 봤을거 아냐, 내가 트위터에 너 보고 있다고 적은거.”
“하하. 그랬었죠. 그런데 그 말이 조금 무서웠어요. ‘관심있게 보고 있다’ 라던가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이런 말을 해야지 ‘주목한다’가 뭐에요. 하하”
“왜? 그게 어때서? 말 그대로 주목한다는 거잖아. 얘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네?”
더 말했다가는 투닥거리는, 보기 좋은 분위기가 깨질까봐 이쯤에서 트위터에 대한 얘기는 끝낸다.
“네,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누나 기타 연습은 하고 계시는거죠?”
“그럼. 내가 얼마나 기타를 잘치는데... 물론 너 정도는 아니지만. 호호. 어쨌든 기타는 <과속 스캔들> 촬영할 때도 내가 직접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못 봐줄 정도는 아니였어.”
“다행이네요. 그럼 누나 믿고 막 만들어도 되죠? 하하”
쉬는 시간이 끝나가자 누나와의 투닥거림을 끝내고는 다시 촬영에 집중한다. 이러한 내 모습 덕분일까? 신인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선배님들도 조금 더 힘을 내는 듯하다.
어느덧 오늘의 촬영도 끝이 나고 오늘은 근처 모텔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 첫 영화의 OST 의뢰를 받은 상태에서 그냥 잘 수도 없는 일. 어느 정도 곡 구상을 하기로 하고 매일 갖고 다니는 작곡 노트와 기타를 꺼내든다.
“흠... 소녀 감성에다가 사랑, 그리고 쉬운 연주라...”
생각을 해 보아도 어떻게 만들지 감이 잡히질 않아 다시 한 번 대본을 꺼내서 본다.
“흠... 이 장면이 순이가 철수한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인데...”
순이는 아파서 치료 차원으로 시골 마을에 온 것이기 때문에 기타를 잘 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서툰 연주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자에 따라 일정한 패턴으로 한 음, 혹은 두 음으로 나누어 연주하는 아르페지오 주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아르페지오 주법이 우리나라 말로 “분산 화음”인 만큼 음이 자꾸 나누어지기 때문에 서툰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누나가 쉬운 연주를 부탁했던 만큼 박자의 빠르기는 전형적인 아르페지오 주법의 패턴이면서 중간 빠르기인 4분의 3박자로 만들기로 한다.
“그럼 이 정도만 하고 잘까?”
비록 몇 일 밤을 새더라도 내 무공의 경지 덕에 피곤함은 없겠지만 현생에서 밤에는 자는 습관이 들었고, 또 잠을 자고나면 기분이 좋은지라 왠만하면 밤에는 잠을 청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