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 (79/118)

l:\소설 1\새 텍스트 문서 (78).txt

************************************************************************

오늘은 서휘에게 기타를 배우러 가는 날이다. 사실 나는 과속 스캔들 때 나를 가르쳐주신 기타 선생님에게 서휘가 만든 곡을 가르쳐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감독님께 나름대로 이유를 들어서 서휘가 나를 가르쳐주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저께 감독님께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감독님 어쩐 일이세요?]

[어, 서휘가 OST를 만들었는데 곡이 상당히 괜찮더라고. 나중에 너가 이 곡을 불러야하는 씬이 있는거 알지? 그래서 서휘가 녹음한 CD랑 악보를 보낼려고. 그러니까 연습해야되 알겠지?]

언제나 자신의 할 말만 간단하게 통보하는 감독님의 화법은 오랫동안 통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언제나처럼 금방 전화를 끝내려는 감독님의 목소리에 내가 ‘잠시만요’라고 외치고는 숨을 골랐다.

[왜 그래? 뭐 부탁할거라도 있어?]

[아, 저 그게... 제가 서휘랑 아직까지 조금 어색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서휘한테 기타를 배우면서 친해지고 또 작곡자가 서휘니까 직접 배우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그런데 감독님이 서휘한테 부탁해주시면 안되요?]

[그래? 그러지 뭐. 그럼 끊는다.]

내 부탁을 쿨하게 수락해버리는 감독님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서휘에 대한 나의 감정은 뭐라 할 수가 없다. 나이는 나보다 동생인데 하는 행동은 굉장히 어른스럽기 때문에 종종 내가 오빠라고 불러도 무색할 정도이다.

내 이상형은 말이 잘 통하는 남자이다. 어린나이인 17살 때 데뷔를 한 나로서는 잘 생긴 사람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잘 생긴 남자보다는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서휘를 처음 봤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만난지 불과 10여일이 지난 지금은 서휘에 대한 감정을 뭐라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신인임에도 불고하고 안정된 연기력과 어린 나이에 인기가 대단한 만큼 자만을 할 법한데도 굉장히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날씨가 더워서 짜증이 날텐데도 군말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내가 평소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모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 이번에 한 번 내 마음을 실험해보는 거야.’

이렇게 마음을 먹고는 감독님께 특별한 부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내 마음을 시험할 때가 된 것이다.

보통 연예인들이 다른 기획사를 갈 때에는 방송이 아닌 이상 혹시나 스캔들이 날 까봐 후문으로 가지만 나는 일부러 정문으로 갔다. 정문 앞에 벤을 주차하고 서휘에게 문자를 보내자 금방 나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회사로 안내한다. 오히려 회사 밖에서 보다는 안에서 사람들을 경계하는 느낌이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물어보면 되기에 그냥 서휘를 따라 연습실로 들어갔다.

연습실 안에는 방금 전까지도 연습을 했는지 기타와 악보가 놓여져 있었다. 그 성실한 모습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습이 시작되었다. 본래 기타를 잘 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코드를 보고 틀리지는 않을 정도이다. 하지만 일부러 틀려서 서휘의 반응을 보았다. 전에 촬영장에서 내가 말을 거창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꽤나 실망할 법 한데도 내색하지 않고는 내가 세세히, 상냥하게 가르쳐준다.

서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틀리자 아예 내 손을 잡아서 직접 코드를 잡아준다. 서휘가 내 손을 잡는 순간 뭔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지만 서휘는 아무런 느낌을 못 받았는지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기타를 가르쳐준다.

몇 번의 연습이 끝나고 내가 갈 시간이 되자 서휘는 내게 휴대폰을 달라고 하고는 자신이 연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집에서도 연습하라고 했다. 그러한 서휘의 상냥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서휘에게 이끌리는 것 같았다.

나 혼자 생각을 정리하려고 혼자 나가려고 하는데 서휘가 데려다 준다고 뒤따라 나온다. 회사 로비를 지나칠 때 쯤 저 멀리서 한 명의 모습이 보인다. 알고 보니 이 회사 소속의 슈퍼스타K 출신인 강승윤씨였다. 나를 보고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으면서 인사를 한다. 나도 인사를 하고 평소 서휘의 모습이 궁금해서 조금 얘기를 나누어보려는 찰나 서휘가 급하게 나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아까 들어올 때 경계를 했던 이유가 저 아이 때문이었나? 아무튼 차에 오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묵묵히 생각에 잠긴다.

10여일 정도 철야 촬영을 한 만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이제는 말을 편히 할 때도 됬는데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서휘의 모습,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노력하는 모습,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 이 모든게 내 이상형에 가깝지만 나보다 4살 어리다는게 걸린다.

“아... 모르겠다...”

“뭘 몰라?”

나도 모르게 머릿속 생각이 입으로 튀어 나오자 매니저 언니가 갑자기 물어본다.

“아, 아니... 기타 연주가 좀 어려워서...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 하는데 생각이 안나네... 악보 좀 봐야겠다.”

그래도 나름 연기자인 만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악보를 보는 척 한다. 비록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서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