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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막바지로 갈수록 스태프들은 지쳐갔다. 특히 배우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여름인데 겨울인 척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스태프분들 및 배우들에게 몰래 기를 불어넣어주어 피로를 풀면서 잘 버텨나갔다. 그랬기 때문일가? 촬영 기간을 2개월로 빡빡하게 잡았지만 놀랍게도 실제로는 그보다 더 빨리 끝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장면을 찍기 위해서 스케이트장을 찾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철수가 눈사람을 만드는 장면. 한 여름에 눈을 스케이트장으로 공수해서 눈사람을 만들고 나머지는 CG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오케이!”

“와아아”

마지막 촬영까지 모두 끝나자 스태프들 모두 환호를 질렀다. 보통 영화 제작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단위로 찍는 영화도 있지만 우리는 기적처럼 2개월도 채 안되는 기간동안에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몇 일간 푹 쉬시고 회식을 할 테니 그때 다시 뵈요.”

감독님의 말에 모두들 해산한다. 나도 모든 스태프 분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를 말하고는 매니저 형의 차를 타고 얼른 떠난다.

“오늘 완성이란 말이죠?”

“그래, 임마. 그렇게도 좋냐?”

오늘은 행운의 날인지 겹경사가 일어났다. 한 가지는 아까 말했듯이 영화촬영이 끝난 것이고 하나는 내 집 공사가 오늘 끝났다는 것이다.

“그럼요. 제 녹음실이자 숙소가 생긴다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데요.”

“하긴. 내 집을 마련한다는게 정말 기쁜 일이긴 하지.”

매니저 형과 떠들면서 도착한 어느 아파트. 꼭대기층이 25층일 정도로 굉장히 높게 지은 아파트가 보인다. 막상 들어가려니 떨린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현관문을 여는데 꽤나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게 된 것이다.

“와...”

“어때? 멋지지? 역시 우리 YG가 멋 하나는 진짜 죽인다니까.”

여러 인테리어들이 놀라웠지만 특히 복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인테리어를 마치 2층 집처럼 해 놓아서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진짜 마음에 드는데요? 그런데 설마 여기가 녹음실이에요?”

본래라면 방에 자리해야 할 녹음실이 거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방이 생각보다 좁더라고. 마음 같아서는 방들을 없애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니까 그냥 거실에다가 만들었다. 뭐 어때? 녹음하다가 배고프면 바로 부엌에 가면 되고 좋잖아?”

“전 상관 없어죠. 어차피 맨 처음에 사장님하고 얘기할 때는 그냥 녹음실에 냉장고랑 TV만 놓아달라고 했었는걸요.”

일반 벽지와는 다르게 생긴 방음벽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고 모든게 마음에 들었다.

“이제 내일 가구가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너가 시간 되는대로 여기에 들어와 살면 돼. 우리 YG에서도 역작이라고 할 만큼 공든 숙소니까 여기서 좋은 곡 뽑아내길 바란다.”

“그래야죠. 이거 정말 기뻐서 말이 안나오네요. 빨리 회사로 가서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라도 들여야겠어요.”

그렇게 아직은 휑한, 그러나 마음에 쏙 드는 내 집을 실컷 구경하고는 회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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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경사의 날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나고 그동안 푹 쉰 늑대소년 스태프들과 배우분들이 모두 모여 회식을 가졌다. 아직은 미성년자인 나와 향기는 술을 마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초반에 스태프들과 인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른들과 떨어져서 고기와 사이다를 먹어야만 했다.

“그런데 누나는 왜 여기있는거야?”

나와 향기뿐만 아니라 90년생으로 이미 한참(?) 성인인 보영 누나도 우리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야 너희가 심심해 할까봐 그렇지.”

그렇게 우리 셋이서 신나게 떠들던 중 누나가 잠시 화장실을 갖다온다고 한다. 하긴... 아까 스태프분들 사이에서 술도 먹고 우리랑 같이 사이다도 먹었으니 화장실을 가고 싶을 수도 있다.

이제 고깃집에서 회식은 거의 다 끝나가는 분위기고, 옆에 있는 향기가 꽤나 더운지 땀을 흘리길래 후식으로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온다고 했다.

신발을 신고 예약 룸에서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와 부딪혔다.

“괜찮으세요?”

작은 여인이 내 가슴팍에 부딪히길래 나도 미안한 마음에 괜찮냐고 물어보고는 얼굴을 보니 보영 누나였다.

“어? 누나 괜찮아요?”

“어? 어. 괜찮아. 근, 근데 너는 어디 가는거야?”

“향기가 더워해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좀 살려고요. 누나 것도 사다 드릴테니까 걱정마세요. 하하”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누나를 보면서 말을 하고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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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누군가와 부딪혔을 때는 굉장히 민망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나름대로 800만 관객을 달성한 여배우인 내가 부주의로 인해 남에게 부딪혔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나고 품이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그 다음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목소리가 굉장히 좋다는 것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딪힌 대상이 서휘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다시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는 생각과 사고였지만 평소 호감을 느낀 서휘를 껴안았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흥분되는 이중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서휘가 아이스크림을 산다고 휑하니 가버렸을 때는 ‘쟤는 아무렇지도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좋아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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