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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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좋은 수작(秀作)이 나왔네. 내 마음에도 쏙 드는데?”

며칠 전 모든 녹음을 마친 CD를 들고 합정동 YG 신사옥으로 왔다. 사장님께 CD를 드렸더니 회사 내 임원들을 부르시고는 내가 가져온 CD를 틀어보셨다. 사장님뿐만 아니라 임원들도 꽤나 마음에 드셨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노래를 듣고 계셨다.

“데뷔 날자만 정하면 되겠는데?”

회의실에 계신 모든 분들이 기분이 좋은 듯이 말한다. 하긴, 로 유튜브 2억뷰를 바라보는 내가 데뷔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를 할 것이 뻔한 상황. 어느 정도의 앨범 수익은 보장된 상태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싸이 형의 유튜브 동영상도 1억뷰를 바라보는 상태. 요즘 YG주가가 치솟고 있어서인지 회사 내 분위기가 좋다.

“저기 그런데 이번 앨범 아트 말이죠, 그거 제가 한 번 그려봐도 되요?”

내 노래에 대한 평가가 끝날 무렵. 내가 앨범아트를 만들어 보겠다고 말한다.

“네가? 어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저번에 제가 이번 앨범 컨셉이 ‘기승전결’이라고 했잖아요. 앨범 아트에 기승전결을 멋들어지게 적어보려고요. 일단 한 번 보세요.”

혹시나 보기도 전에 반대를 할까봐 내가 먼저 선수를 친다. 곁에 있던 이면지에 유성매직으로 ‘The First Mini Album 기승전결 起承轉結’을 멋들어지게 적는다. 옛날에 서체로 유명한 사람들의 글씨를 보면 그 속에는 어떠한 기운이 담겨있다. 무가(武家)의 현판 같은 경우에는 서체에 웅장함이 담겨있었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 적힌 서체에는 섬세함이 담겨있었다. 나 또한 육예(六藝)를 수련한 사람으로서 서예를 배운 사람. 기운을 발휘해 글씨 속에 마치 전투의 첫 시작을 알리는 강렬하면서도 웅장한 기운을 담는다.

“오우...”

“허허...”

A4 용지에 유성 매직으로 쓴 내 글씨에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이렇게 하면 안될까요?”

내 서체를 모두에게 공개를 하자 다들 이걸로 하자는 것에 대해 찬성을 해주신다.

“넌 대체 못 하는게 뭐냐? 하하.”

사장님도 기분이 좋으신 듯이 말씀해주신다. 이번 회의를 통해 내 데뷔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 보다는 늦어졌다. 내 앨범 발배일은 9월 17일 월요일 정오. 음악방송 데뷔는 그 주에 하기로 결정했다.

점심을 먹고 시작했던 회의는 저녁시간대가 되자 끝났다. 앨범에 관한 모든 작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성보다는 본능에 의한 느낌. 하지만 현경의 경지라면 이성보다는 본능이 정확할 때가 더 많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형, 잠시만요.”

뭐라 말을 할 수 없는 느낌에 일단 매니저 형에게 먹을 것을 사겠다는 핑계로 차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 그 불안한 느낌의 근원지를 찾아서 돌아다녀본다.

“뭐 찾는데?”

“잠시만요. 아, 저기네요.”

한 제과점이 있는 골목. 이곳에서 강렬한 느낌이 나기에 형에게 빵을 산다는 핑계로 골목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 순간 사건이 터졌다.

어떤 남자가 흉기를 들고 남성의 뒤를 찌르는 것.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칼이 남성의 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잘못 찔리면 과도한 출혈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순간 모든게 느리게 보였다. 경공을 쓰고 싶었지만 옆에 매니저 형도 있거니와 모든 골목에는 CCTV가 설치되어있는 상황. 나중에 골치 아픈 상황이 될 것 같아 남성분에게는 미안하지만 칼에 찔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태허무령선천심법이 태허로 바뀐 후에 익히지 않았더라도 사용할 수 있게된 무공들 중 하나인 탄지공(彈指功)으로 칼의 방향을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곳으로 미묘하게 바꾸어 놓는다.

“꺄악!”

남성이 칼에 찔리는 순간. 그 옆에 있던 여자가 소리를 지른다. 칼에 찔린 남성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주저앉은 상황. 하지만 흉기범은 남자를 그냥 둘 생각이 없는지 남자를 쫓아간다. 그리고 남자는 우리 쪽으로 도망을 친다.

“서휘야, 피해!”

매니저 형의 말을 들었지만 내가 일부러 이곳에 온 만큼 흉기범을 그대로 둘 생각은 없었다.

칼에 찔린 남자가 나를 지나치고나서 나는 흉기범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든 무기의 소지를 불허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칼을 하나 든 것만으로도 무서운게 없어진 것일까? 앞을 가로막아도, 그리고 시간을 끌면 포위당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흉기범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순간 흉기범이 내게 칼을 휘두른다.

“안돼!”

“꺄악!”

흉기범이 칼을 휘두르자 다시 한 번 비명소리가 들린다. 곁에 있던 매니저 형과 길을 걸어가던 시민분의 비명소리....

흉기범은 오른손으로 칼을 쥐고 있었다. 밖에서 안쪽으로(내 시각에서는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휘두르는 칼. 흉기범의 오른손 손목을 내 왼손으로 잡고는 내 오른손으로 흉기범의 곡지혈(曲池穴)을 친다. 곡지혈은 팔을 접으면 생기는 바깥 주름 끝, 즉 주횡문(?橫紋) 끝에 자리한 혈로 이곳을 가격하면 손에 마비증세가 온다. 흉기범의 곡지혈을 치자 흉기범도 더 이상 칼을 잡을 수가 없었는지 칼을 떨어트린다.

인체에는 총 92가지의 급소가 존재한다. 하지만 많이 알려진 급소의 숫자는 14가지. 그중 모든 사람들이 아는 급소 중 한 곳은 명치이다. 이곳은 타격의 강도에 따라 혈액 순환 장애, 호흡곤란 등으로 졸도하게 된다.

현재 나는 오른손으로 흉기범의 곡지혈을 친 상태. 그 다음 가장 이어지기 쉬운 동작 중 하나는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윽!”

내 팔꿈치가 흉기범의 명치를 가격하자 흉기범은 숨을 쉬기가 힘들었는지 내게 뒷걸음질을 쳐서 떨어진 다음 허리를 굽히고 숨을 헉헉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온 내 돌려차기. 흉기범이 내게서 몇 걸음 떨어진 상태이고 허리를 굽힌 상태인 만큼 돌려차기를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상태였다. 내 돌려차기로 얼굴을 가격당한 흉기범은 쓰러져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와아아.”

그 순간 터져 나온 함성. 설명은 길었지만 이 모든 행동이 이루어 진 것은 불과 5초도 안걸렸다.

“형, 112에 신고좀 해주세요. 아저씨는 119에 전화해서 칼에 찔린 사람이 있다고 신고해주시고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신고전화를 부탁한 후 나는 칼에 찔린 사람에게 다가가 지혈작업을 한다. CCTV가 없고 골목에 나 혼자만 있었다면 충분히 구해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한 상황. 이런 상황도 내 탓이라 여겨지는 만큼 칼에 찔린 부분의 혈을 눌러 지혈을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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