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소설1 음황의 환생\병아리\새 텍스트 문서 (0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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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신혼집은 용인에 있는 <우결마을 4번지>입니다. 각자 짐을 가지고 신혼집으로 들어가세요... 벌써부터 신혼집에 살아요? 저 짐 하나도 안 챙겨서 왔는데...”
서휘나 유비 둘 모두 짐을 안 챙겨 온 상태. 결국 서휘와 유비의 집에 들르기로 결정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한 번도 안 가봤죠?”
말을 놓기로 했으나 아직은 어색한 서휘는 차차 말을 편히 하자고 제안하자 유비도 이에 수긍했다. 유비가 생각하기엔 서휘도 서현의 동생인 만큼 말을 놓기를 힘들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연하죠.”
뭐랄까... 서휘는 유비의 표정에서 부끄러워하면서도 살짝 기대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 저 그 동영상 봤어요.”
유비가 꺼내는 이야기는 여의도 칼부림 사건 동영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원래 그런 상황을 보면 못 참고 그래요?”
서휘는 기본적으로 도가의 심법을 익힌 무인. 즉, 정파에 속하므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물론 불의라는 것이 굉장히 애매모호한 기준을 가졌지만 서휘는 적어도 인륜에 어긋난 일 만큼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에... 조금 그런 성격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때는 더 특별한 상황이었어요. 흉기범이 칼로 찌른 사람을 또 찌르려 쫓아가는 상황이어서, 제가 안 나서면 그 형은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서휘가 말을 할수록 유비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유비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게 느껴졌다. 무서운 영화는 가짜라는 것이 알지만 서휘의 얘기는 실제 상황이어서 그런지 더 그렇게 느껴졌다.
“으... 나랑 같이 있을 때는 그런 일 없었으면 좋겠다. 혹시 다치면 어떡해요?”
“그럼 우리가 같이 없을 때는 그런 상황에 휘말려도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다치는게 싫다는 거죠.”
“걱정하지 마요. 오히려 제가 유비씨 옆에 붙어있어서 지켜줘야하는데... 혹시 그런 사람이 또 나타나면 어떡해요?”
서휘의 말을 듣는 순간 유비는 알 수 없는 포근함을 느꼈다. 얼굴은 미소년인데 하는 행동에서는 남자의 향기가 폴폴 났다. 그래서일까?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기대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서휘의 숙소에 도착했다. 방송에는 깜짝 공개하는 상황. 아마 이 방송이 나가면 자신의 숙소가 큰 이슈가 될 것 같다고 서휘는 생각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우와!”
저번 집들이에 초대되어 왔던 수지와 지영이와 똑같은 감탄사를 내뱉는 유비였다.
“집이 엄청 좋은데요? 우리 신혼집이 이거보다 안 좋으면 어떻게 할려고...”
유비의 말에 서휘는 ‘에이 설마...’라고 답했다. 방송을 봤을 때 우결마을에 있는 집들은 상당히 좋아보였으니까. 유비가 자꾸만 집을 들러보는 것 같아 간단히 짐만 싸고 나가려고 했던 서휘는 결국 유비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여기는 제 녹음실”
“여기는 제 침실”
“여기는 제 드레스 룸”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녹음실을 소개시켜준 뒤 복층으로 올라가 침실을 소개시켜준 후 다시 내려와서 드레스 룸을 소개시켜주었다. 서휘의 방을 볼 때마다 유비는 꽤나 놀랐다. 일단 남자치고는 굉장히 정리가 잘 되어있었고, 홀아비 냄새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여기는 제 악기 보관실입니다.”
이 집에서 안 아끼는 곳이 없겠지만 서휘는 그래도 가장 아끼는 곳이라 하면 바로 이 악기 보관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통기타부터 시작해서 일렉기타, 우클레레, 젬베, 그리고 전생의 추억을 살리고자 사 놓았던 가야금과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까지. 방은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피아노를 제외한 악기는 모두 벽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일반 보관실, 혹은 창고의 난잡한 느낌보다는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 왔으니까 제가 노래 하나 불러줄까?”
서휘는 유비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과 공통점이 몇 개가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유비는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면서 지금 하는 행동들이 카메라에 찍히는 이상 조금은 가면을 쓸 수밖에 없을 텐데 유비는 정말 자신의 말대로 가식 없이 행동했다.
짝짝짝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한 노래. 서휘는 노래를 부르기 전 전생에서의 연애할 때가 잠깐 생각났다.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는 법. 서휘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첫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꿈꿔왔던 로맨스는 첫사랑 때의 연애와 비슷하다. 그리고 지금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그 당시 상황의 하나이기도 했고...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온다네]
지금 상황과 꽤나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서휘는 10cm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라는 노래를 택했다. 오늘 첫 만남을 카페에서 만난 것도 그렇고 상대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물에 젖지 않은 성냥개비 같죠
아무리 싫은 표정 지어도
불타는 그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네]
서휘의 노래 스타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감정 전달과 노래에 담긴 진심이다. 그래서일까? 유비는 서휘가 ‘불타는 그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네’라고 했을 때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대 그대 그대 그대 그대 그대
그대 그대 그대 대박 대박]
10cm의 노래였지만 서휘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콘서트가 끝나자 유비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첫 만남부터 굉장히 로맨틱한 모습을 보여주는 서휘를 보면서 유비는 속으로 자신의 커플이 우결 내 최강 로맨스 커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제작진과의 약속한 신호 겸 1명의 관객을 위한 콘서트를 끝내고는 기타와 배게, 그리고 몇 가지 책을 간단히 챙기고는 숙소에서 나선다.
“웬 교과서?!”
서휘가 챙긴 책은 세계사, 국사, 근현대사 교과서였다. 서휘는 암기 능력에는 자신이 있는 만큼 책을 외우면 곧 점수로 나타나는 역사 세 과목을 이번 수능 사회탐구 과목으로 선택했다.
“그냥... 저 혼자 집에 있을 때 공부하려고요.”
유비는 속으로 ‘아차’했다. 저래 보여도(?) 아직은 미성년자. 심지어 올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다. 자신도 드라마로 인해 바쁘지만 어쩌면 서휘에 대한 내조가 좀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와주어야겠네... 그런데 이 집에 온 사람 내가 처음이죠?”
“음...”
솔직히 말해야하지만 서휘는 입이 차마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 집에 온 사람은 매니저 형을 제외하면 수지와 지영이 뿐이니 말이다. 이것을 그대로 말하면 아마 엄청난 질투를 할 터. 그리고 수지와 지영이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폭로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뭐야? 저 말고 누가 또 왔었어요?”
하지만 여자의 촉은 무시할 수 없는 법. 유비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이 집에 왔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마 그 대상이 여자였다면 굉장히 실망할 것 같았다.
“음... 처음에 이사 왔을 때 친구들 불러서 집들이했는데...”
“여자는 없었죠?”
“어... 없었어요.”
왠지 있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서휘는 지영이와 수지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냥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휘가 말을 길게 늘인 덕에 유비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솔직히 말하면 봐줄게요. 여자도 있었죠?”
“어... 네. 그런데 남자도 왔었어요. 게다가 2시간쯤? 그정도 있다가 갔으니까...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결국 서휘는 진실 80%에 거짓 20%가 섞인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남자가 매니저, 그리고 다른 날에 오긴 했지만 어쨌든 오긴 왔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유비가 마지막 말에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차를 타고 유비의 집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유비는 자신의 부모님과 같이 산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동생은 학교에 다니고, 아빠는 회사에, 엄마는 스케줄 나간 줄 알았는데 엄마가 예상 외로 일찍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저기... 엄마가 집에 계시다는데요?”
서휘는 첫 만남부터 장모님과 만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