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소설1 음황의 환생\병아리\새 텍스트 문서 (04).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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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 걱정하지 마요. 우리 엄마가 서휘씨 되게 좋아해요.”
유비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서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몇 번 만난 것도 아니고 첫 만남부터 장모님을 만나야한다는 부담감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서휘에게도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였다.
“그러면 다행인데... 그래도 떨리네... 옷 좀 잘 입고 올걸.”
서휘의 스타일은 꽤나 괜찮았다. 청바지에 흰색 티, 그리고 하늘색 롱 가디언을 걸친 정도이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듯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하지만 장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정장은 못 입을망정 청바지에 흰 티라는 굉장히 프리하게 입고나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서휘였다.
“괜찮아 멋있어. 엄마도 이해해줄거야.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뭘 해도 좋아 보이잖아? 엄마가 남편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뭐라고 하지는 않으실 거야. 아마도요...”
유비도 당황했기 때문일걸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쓰기 시작했다. 어느새 유비의 집에 도착했다. 서휘는 근처 마트에서 산 과일바구니와 주스를 들고는 장모님인 견미리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장모님.”
유비의 어머니, 견미리 사모님은 처음 서휘를 보았을 때 굉장히 놀라했지만 ‘장모님’이라는 말을 듣자 굉장히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호호. 혹시 사위? 어서 들어와요.”
말 그대로 ‘웰컴 투 시-월드’, 아니 ‘장인-월드’가 되어버린 상황. 서휘는 멋쩍은 웃음을 지은 채 집으로 들어갔다.
“둘이 오늘 첫 만남 아니니?”
“네. 첫 만남이죠. 그런데 제작진에서 짐을 챙기고 신혼집으로 이사하라는 미션을 주셔서요.”
서휘가 보기에 자신의 장모님은 너무 자신만 챙기는 것 같았다. 어느새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버린 유비. ‘엄마, 나도 왔는데...’라고 말했지만 ‘너는 아침에도 봤잖니.’라는 말에 침몰해버렸다.
“그래도 다행이네. 우리 사위가 서휘씨라서. 우리 사위라면 내 딸 믿고 맡길 수가 있겠네.”
아직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서휘의 장모님은 굉장히 진도를 빨리 나가길 바라고 계셨다. 뭐랄까... 서휘로서는 자신의 장모님에게서 진짜로 둘이 결혼했으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모님과의 대화 후 서휘는 유비의 집을 구경하러 다녔다.
“지금이랑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집 구경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유비의 졸업앨범. 기필코 사수하고자 했지만 서휘는 유비의 손을 피해서 졸업앨범을 보았다. 뭐랄까... 유비의 어린 시절은 꽤나 통통했다. 커가면서 지금과 비슷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조금은 성형을 한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떤가. 자신의 여자가 되면 다시는 시술(?)을 받지 않도록 자신이 몰래 얼굴을 만져주면 되는 것을...
“잠시만요.”
서휘는 유비가 마음에 들어서 제작진과 약속한 사인을 했듯이, 유비 또한 서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제작진과 약속한 사인인 ‘선물’을 주기로 했다. 서휘 정도의 파트너라면 기대를 하고 있었더라고 마음에 들었겠지만 기대를 안 한 상태에서 만나니 더 감동을 느낀 유비였다.
“이게 뭐에요?”
유비가 준 선물은 십자 모양의 배지. 평소 잘 꾸미지 않고 다니는 서휘는 유비의 방에 있는 각종 액세서리들이 낯설기만 했다.
“이렇게 달고 다니라고요.”
유비는 자신이 선물한 배지를 서휘의 옷에 직접 달아주었다. 뭐랄까... 국가 고위직들이 다는 배지처럼 금으로 치장된 것은 아니지만 서휘의 옷에 달린 배지를 보니 그 보다 백만 배는 더 멋있어보였다.
어느새 오후 3시. 폭풍과 같았던 미션을 끝낸 후 신혼집으로 이동했다. 우결마을에 대한 서휘의 첫 인상은 ‘네모난 집 네 개’였다. 말 그대로 신혼집 4채가 모여 마을을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종래와는 다른 방식의 신혼집이고 마을을 형성한 만큼 꽤나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만 누구한테 전화 좀 해도 되요?”
신혼집에 들어가니 다시 묘한 분위기를 느낀 서휘는 어색함을 깨고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자 했다.
“누구한테요?”
“유비씨도 잘 아는 사람인데... 잠시만요.”
서휘가 전화를 거는 상대는 다름 아닌 송중기. 자신과 유비를 연결할 수 있는 최적의 상대는 송중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어, 형! 나 서휘.]
[어. 무슨 일이야?]
[나 결혼하잖아. 형 동생이랑]
[내 동생? 아, 초코? 하하.]
유비는 서휘가 중기에게 전화를 건 것이 꽤나 놀라운 듯 했다. 중기가 서휘의 연기 선생님이었다는 것이 외부에 발설된 적은 없으니까 말이다. 중기는 서휘와 유비 모두를 알고 있는 만큼 꽤나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서휘가 유비에 대해 물을 때는 ‘클럽에 자주 가는 여자’라고 답해주었고 유비가 서휘에 대해 물었을 때는 ‘여자가 많이 꼬이는 녀석’이라고 답했을 정도였다.
중기와의 통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둘이 만신창이가 되어 실이 많은 듯 하지만 실제로는 득이 더 많았다. 우선 중기 형의 말을 듣고는 서로에게 할 질문들이 생겨났으며, 모두 장난(?)이라는 것을 아는 만큼 어색했던 분위기를 깰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또한 유비 입장에서는 드라마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간접 광고의 효과를 얻었고, 서휘의 입장에서는 의외의 인맥을 자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 이제 스케줄 가야되네...”
“진짜요? 아쉽다...”
어느덧 5시. 서휘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었다. 해외에서 광고촬영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 웬만한 광고 촬영은 서휘의 몸값이 올라가기 전에 대부분 거절을 해 놓은 상태이지만 너무 거절만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고른 촬영이 빈폴(Bean Pole) 광고 촬영이었다.
“제가 뉴질랜드로 가야하거든요. 4박 5일로.”
이번 빈폴 광고는 겨울옷을 촬영하기 때문에 가을 날씨인 이곳에 비해 남반구인 뉴질랜드는 봄 날씨이다. 그곳에서 가벼운 빈폴 아웃도어와 함께 고산지대로 올라가면서 겨울옷을 촬영하기로 한 것이다.
“누구랑 촬영하는지 알 수 있어요?”
“어... 수지씨랑 촬영해요.”
서휘의 말에 유비는 눈이 커졌다. 서휘의 광고 촬영 대상이 국민 첫사랑이자 대세인 수지라니. 굉장히 분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심지어 자신의 남편과 동갑이다. 게다가 국민 첫사랑으로 청순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요즘 아이유와 함께 대세이지 않은가? 부부간 첫 만남 바로 다음에 수지를 만난다고 하니 꽤나 억울한 느낌이 드는 유비였다.
“4박 5일이라고 했죠?”
“네.”
“가서 바람피우면 죽어?”
이 광고 일정 또한 몇 개월 전부터 약속한 것일 터. 우결 촬영 다음에 잡은 약속이 아닌지라 할 수 있는게 바람피우지 말라는 말 밖에 없는 유비였다.
“그런데 수지씨랑 친해요?”
“뭐... 그냥 친구죠. 같은 94년생이잖아요?”
‘우린 집들이도 같이 한 사이지’라고 말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게 뻔하기 때문에 대충 친구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수지씨보다 유비씨가 더 예쁘니까 걱정마요.”
유비를 안심시키고자 서휘가 수지 팬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 하지만 효과는 만점인 듯 유비의 잔소리가 줄어들었다.
“아, 잠시만요.”
서휘는 막 인사를 하려고 입을 땐 유비를 멈추게 하고는 가방에서 유비와 만나기 전 샀던 선물을 꺼냈다.
“그냥... 첫 만남 기념으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수줍게 주는 서휘의 모습에 유비는 감동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말 편히 하려고 노력해볼게요.”
서휘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서휘와 유비의 첫 만남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