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소설1 음황의 환생\병아리\새 텍스트 문서 (08).txt
************************************************************************
수지와 서휘가 촬영하던 곳은 눈이 발목까지 수북이 쌓인 곳이었다. 그런 만큼 땅이 파여있어도 알아내기 힘들다. 수지가 소리를 지른 것은 땅의 패인부분을 헛디뎠기 때문이다.
“왜 그래?”
“괜찮아?”
수지가 넘어지자 모든 스태프들이 수지를 걱정했다. 광고의 주인공이 서휘, 그리고 수지인만큼 수지가 부상을 당하면 광고 촬영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네... 괜찮은데 발목이 조금 삔 것 같네요.”
수지가 고통이 느껴졌지만 자신의 발목을 주무르면서 걱정하는 스태프들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다.
‘아씨... 창피하게...’
사실 수지에게 아픔보다 먼저 든 생각은 ‘창피하다’였다. 호감가는 사람 앞에서 예쁜 모습만 보여도 모자를 판에 걷다가 넘어지는 실수를 하다니... 수지는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괜찮아? 발목 삐었나보네. 어디 보자.”
서휘는 수지가 넘어지자마자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수지의 곁으로 걸어갔다. 일반인에게는 발목을 삔 것이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수지처럼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이는 아이돌에게는 발목이 삐었다면 한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하거나 자칫 무대에서 가만히 앉아 노래만 부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괜, 괜찮다니까. 많이 삔 것 같지는 않아.”
“너 조금 있으면 컴백한다며. 발목 삔 것 방치해두면 잘못하면 너 연습 못한다?”
서휘의 말에 수지는 조용히 자신의 발을 서휘에게 맡겼다.
“히야... 역시 발 크네. 진짜 285mm 아니지?”
“아니라니까! 나 진짜 250mm 이야. 하여튼 붐 오빠 때문에...”
스태프들도 모두 자신들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 잘못하면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었지만 서휘의 농담으로 인해 친한 친구끼리의 티격태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형, 여기 구급상자 갖고 왔었죠? 거기서 붕대 좀 꺼내주세요.”
서휘는 수지의 발목을 돌려보더니 수지가 계속해서 신음소리를 내면서 아파하자 수지의 말처럼 대충 넘길만한 것이 아니라 생각되는지라 발목을 마사지해주면서 자신의 기를 이용해 어느 정도 치료를 해주었다.
“누나, 이걸로 수지 발좀 감아주세요. 이렇게 응급처치 해놓아야 나중에 탈이 없거든요.”
서휘는 전 날의 여행으로 어느정도 친해진 수지의 스타일리스트에게 붕대감기를 부탁했다.
“쯧... 조심 좀 하지... 칠칠맞게...”
“이게 진짜... 야, 너 같으면 눈으로 뒤덮인 땅이 움푹 들어갔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비명소리가 ‘꺄악’도 아니고 ‘악!’이 뭐냐?”
스태프들 입장에서는 수지와 서휘는 굉장히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10대 특유의 상큼발랄함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둘이 친분이 있는만큼 둘의 호흡도 굉장히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아, 미안한데 말이죠. 그 붕대 서휘씨가 좀 감아주시면 안될까요? 이거 괜찮은 사진이 나올 것 같은데...”
스타일리시트가 붕대를 풀고 수지의 발목을 감아주려고 하자 포토그래퍼가 서휘에게 요청했다. 산에서 발목이 삐는 사건이 많은 만큼 응급처치를 해주는 사진도 산을 배경으로하는 이번 광고에 꽤나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네. 뭐... 그렇게 할게요.”
오늘의 촬영은 서휘가 수지의 발을 붕대로 감싸주는 것과 이어서 수지를 업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일찍 끝이 났지만 수지와 서휘 모두 잘 해준 만큼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지는 않겠다고 포토그래퍼는 생각했다.
“병원 가자마자 검사 자세히 받아봐. 혹시 모르니까.”
수지는 서휘에게 고마웠다. 자신이 넘어졌을 때 자칫 분위기가 다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장난으로 분위기를 어느정도 추슬러주는가 하면 자신이 넘어졌을 때 바로 일어나서 걱정해주고, 촬영의 연장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발목을 붕대로 정성스럽게 감아주었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이 영어로 뭐라 해도 쫄지 말고. 킥.”
가끔 저렇게 자신이 고마워할 찰나에 장난을 치는 것 빼고는 말이다.
다행히 수지의 발목 상태가 심각하지 않자 촬영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4박 5일 간 수지와 서휘의 사이가 더욱더 친밀해진 것은 물론이고...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서휘는 그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고, 집이 그리워졌다.
“가자마자 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가야겠네.”
한편으로는 짧은 기간에도 집이 그리웠던 자신인데 자신이 작곡해준 곡인 <강남스타일>로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싸이는 어떻게 버티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솔직히 <강남스타일>은 내가 작곡했지만 작사, 그리고 뮤비를 기획한 싸이형이랑 편곡해준 유건형PD님 덕분에 뜨게 됬지...’
<강남스타일>에 지분이 있다면 자신의 지분은 10%도 안될거라 생각하는 서휘였다.
“졸려?”
서휘는 자신의 옆에서 계속 하품하는 수지를 보았다.
“새벽이니까... 비행기 시간이 12시간이라니... 도착하면 오후라는 소리잖아? 에휴...”
수지의 투정에 서휘는 빙그레 웃고는 영화를 보려고 했다.
“아 참. 고마웠다.”
“뭐가?”
“응급처치... 그거 잘 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
“그러면 나중에 밥 한 번 사던가. 하하.”
서휘는 또다시 웃고는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일정이 끝이 났다. 서휘 자신도 모르게 수지에게 플래그를 꽂고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