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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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발매가 시작되고 그 다음날인 18일. 서휘는 오랜만에 우결 촬영에 임하게 되었다. 거의 2주 만에 만나는 부인인지라 다시 어색해져있을까봐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감수해야 할 일이고, 어색해 하면 자신이 먼저 다가가면 되니까 별 걱정은 하지 않는 서휘였다.

우결 촬영 시작 전. 이웃들과 만남이 있을 테니 되도록 집에 있어달라는 PD의 부탁을 들은 서휘는 꽤나 긴장이 되었다. 자신들이 우결에서 제일 막내 커플인 만큼(유비와 선화가 동갑이지만 생일은 유비가 느리다.) 어떤 액션을 취하느냐가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먼저 도착한 서휘는 시간이 남는 김에 저번 만남 때 가져온 교과서들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서휘는 수시를 작성하면서 공부의 열정을 더욱 불태우게 되었다. 사립대들이야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은 알았지만 믿었던 국립대인 서울대마저 등록금이 600만원이 넘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서휘는 돈이 아까워 수능을 잘 보고 장학생으로 들어갈 심산이었다.

‘땅 파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서휘는 짠돌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돈을 버는 이상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는 처지. 그런 만큼 자신의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하지만 한 번에 적게는 600만원, 많게는 900만원 가까이 등록금으로 내야 한다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이번 계기로 인해 전국의 아버지들의 고민을 이해하게 된 서휘였다.

이미 아는 내용을 복습하는 것인지라 책장을 꽤나 빨리 넘길 수 있었지만 촬영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천천히 책을 읽던 서휘. 공부를 시작한지 40분 정도 지났을까? 착한남자 촬영을 마친 유비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조금은 어색한 인사. 그 소리에 서휘도 자신의 공부를 마치고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뭘 이렇게 사왔어요?”

“오늘 이웃들 만난다고 해서... 첫 만남이니까 과일이라도 드리려고요.”

서휘는 아차 했다. 안 그래도 연하인데 너무 여자에게 의지하는 모습만 보이면 자신이 보기에도 꼴불견일 것 같아서 최대한 자신이 유비를 챙겨주려고 마음먹었는데 벌써부터 그것이 무너진 것이다.

“아, 다음부터는 제가 준비할게요.”

서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과일 바구니들을 들고는 부엌으로 옮겨놓았다.

“우리 말 안 놔요?”

유비는 10일 전 서휘가 했던 말을 놓도록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 제가 뭐라고 불러주길 원하세요?”

“음... 자기? 아니면 여보? 부인? 이런 걸로...”

유비는 말을 하면서 부끄러웠는지 점점 소리를 조그마하게 냈다.

“부인... 이렇게요?”

“아니, 반말로.”

유비는 자신이라도 이렇게 노력해야 하루라도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지나자 반말이 입에 붙은 서휘는 본격적으로 유비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나 저번 주 착한남자 봤어. 뭐랄까... 조금 슬픈 내용이긴 한데 다음 편이 기대되던데? 이번 주도 꼭 보려고.”

서휘는 말하고 나서 또 한 번 아차 했다. 우결이 MBC프로그램인 만큼 KBS 드라마를 언급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알아서 편집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말을 이어간다.

“저번 주에는 나 되게 조금 밖에 안 나왔었는데... 그런데 음... 이번 주 방송분 보고 삐지면 안 돼. 알았지?”

서휘는 갑자기 유비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다. 방송을 보고 삐지다니. 뭐 키스신이라도 있는 것일까? 솔직히 서휘도 유비를 가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결도 결국 프로그램의 하나일 뿐이고 유비가 찍는 장면도 모두 그녀의 비즈니스니까.

“왜? 설마 키스신이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내가 광수 오빠를 좋아하는 걸로 나오거든. 그리고 키스신은 아닌데 내가 오빠 사진에 뽀뽀하는게 나오긴 해...”

“헐.”

그냥 대충 넘기려고 했던 드라마 얘기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뭐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광수 형이라는 말에 무언가 안도가 되면서도 묘하게 신경 쓰이는 느낌이었다.

“괜찮아. 뭐... 그것도 비즈니스잖아?”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쿨한 척(?)일 뿐인 서휘였다.

“아, 나도 남편 앨범 샀어. 노래 되게 좋더라.”

유비는 어제인 17일 서휘의 음반이 발매되자 음반 매장에 가서 바로 앨범을 샀다. 그리고 작사, 작곡, 편곡, 심지어 앨범아트까지 손수 제작했다는 말을 듣고 서휘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던 서휘 부부는 과일 바구니들을 들고는 이웃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집은 아직 안 도착했나?”

제일 먼저 자신들과 비슷한 때에 합류한 이준 & 오연서 커플 집을 찾아간 서휘 부부는 그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은(?) 만만해 보이는 광희 & 선화 커플이 있는 2번지로 옮겨갔다.

한편, 광희 & 선화 커플은 어깨(줄리엔 강) & 체리(윤세아) 커플에게 된통 당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선화야, 나 팔 아파.”

줄리엔에게 이따금 깐죽이던 광희는 이번 기회로 줄리엔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오빠, 준이 오빠한테는 안지지?”

선화는 잠시나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단 자신의 남편 광희에게 동갑 친구이자 우결마을 식구인 이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속으로는 당연히 자신의 남편이 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친구 사이인지라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준이가 근육량이 많아...”

“남자는 힘인데...”

선화는 근처에 이길만한 사람이 없는지 생각해보던 중 불연 듯이 4번지인 서휘 & 유비 커플이 생각이 났다.

“설마 서휘 씨한테도 지는 건 아니지?”

“서휘는 태권도만 10년 했대잖아. 흉기범도 때려잡는 녀석을 내가 어떻게 이겨?”

오히려 지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광희의 행동에 선화는 ‘헐’이라는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딩동

광희 & 선화 커플이 그러고 있는 동안 서휘 & 유비 커플이 광희 부부의 집인 2번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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