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소설1 음황의 환생\병아리\새 텍스트 문서 (1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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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야... 줄리엔 형이 또 왔나? 누구세요?!”
방금 전 줄리엔과 충돌의 여파에 가시지 않은 채 누군가 초인종을 또 누르니 또 줄리엔이 찾아 왔을까봐 괜히 겁을 먹은 광희였다. 그래도 곁에 있는 선화가 자신에게 실망한 것을 목격한 이상 이번에는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큰소리로 외쳤다.
“아, 왜 또 왔어요...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오빠, 또 줄리엔 오빠야? 어? 안녕하세요. 호호.”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에서 반기는 듯한 목소리로 갑자기 바뀌자 당황한 서휘 부부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일단 들어오라는 선화의 말에 2번지 안으로 들어가는 서휘 부부. ‘우리끼리 무슨 선배냐, 방송에서는 다 형, 동생 하는 거다’라는 광희의 말에 금방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광희와 서휘였다.
“어머. 그런데 정말 피부가 좋으신 것 같아요. 진짜 잘생기기도 하셨고...”
“이게 정말 미치게 하네.”
광희 부부가 손님을 두고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확실히 이 집은 정신이 없다는 생각을 한 서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인사를 안했네.”
광희 부부만의 인사법. 남을 낮춘다는 의미에서 밑으로 누르는 듯한 손짓과 ‘안녕하(下)세요.’, ‘굉장하(下)시네요.’ 등 ‘하’자를 강조하는 그들만의 인사법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줄리엔 부부에게 썼다가 이미 알고 있는 윤세아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만큼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고자 마음먹은 광희였다.
그리고 이어진 그들만의 인사법. 서휘는 저 인사 방법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으나 그들의 손짓에 기분이 묘해짐을 느끼면서 그냥 ‘선배님들이야 말로 굉장하십니다.’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그 후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과일 바구니를 배달해야 한다는 핑계로 정신없는 2번지를 나온 서휘 부부는 1번지로 향하였다.
“진짜로 영어 잘하네.”
“응. 뭐... 그렇지. 하하”
1번지에 가서 대화를 나누던 중 어쩌다 보니 줄리엔과 서휘가 영어로 폭풍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 모습에 가슴이 살짝 두근거린 유비였다.
“그나저나 반상회라니...”
유비는 아직 자신들도 2번째 만남이어서 조금은 어색한 기운이 남아있는데 이웃 주민들과 반상회를 하려니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왜? 재밌어 보이는데...”
“남자들은 뭐... 광희 오빠가 있으니까.”
확실히 사람을 안 가리는 광희가 있는 남자들에 비해 유비의 선배님들로 채워진 여성들은 조금은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줄리엔의 의견에 따라 반상회에 바비큐파티를 곁들여 재밌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장을 봐오는 일은 남자들이 할 일. 그렇게 여자 넷, 남자 넷끼리 모이게 되었다.
장을 보러 가던 길에서 남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스킨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스킨십에 대해 어색해하지 않아서 나는 괜찮은 것 같아.”
“확실히... 나는 쑥스럽던데...”
“야, 우리는 눈도 못 마주쳐.”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서휘는 확실히 자신의 커플이 진도가 느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들 손도 잡고 셀카도 찍는 것 같은데 자신의 커플은 아직 전화번호 교환도 안했으니 말이다.
“저희는 아직 서로 전화번호도 몰라요.”
“와... 이쪽도 진짜 느리네.”
“야, 나는 오늘 햇님이한테 전화번호 줬는데 화내더라.”
“그거야 네가 이름에 인터넷용어 써서 그런거고.”
남자들의 수다가 이어지고 장을 볼 때 쯤 여자 쪽에서도 수다가 이어졌다.
“유비랑 언니들은 남편의 과거가 어디까지 허용 되요?”
선화가 던진 화두에 여자 넷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 압권은 세아의 ‘호적만 깨끗하면 되지...’이 소리였지만 말이다.
“글쎄... 우리 남편은 내가 처음이라고 하던데?”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많아. 서현 언니도 남자친구가 한 번도 없었다고 했었잖아. 우결에서 용화 오빠가 처음이니까.”
“그래도 서휘 외모가 장난이 아니잖아. 자기는 아니어도 여자가 알아서 꼬이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르지.”
유비의 말에 선화와 세아의 말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화두는 서휘로 옮겨갔다.
“유비 너는 완전 좋겠다. 너희 부부가 완전 비주얼은 극강이던데?”
“그리고 나이도 어리잖아.”
“그리고 강남스타일도 작곡했잖아요. 의외로 돈도 많을지도? 호호.”
한편 마트에 들어선 서휘는 이웃 남자들의 행동을 보고는 굉장히 놀랐다.
‘이게 바로 예능?’
아직 예능이라곤 무려 7개월 전 강심장 하나밖에 겪어보지 않은 서휘인지라 자신의 누나에게 설명을 들었어도 예능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 서휘는 예능에 대해서 한 가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오버의 극치구나...’
마트에서 쌀 몇 십kg을 드는지 내기를 한다. 남들이 보면 엄청나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이다. 물론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인지라 서휘도 그 판에 끼어서 줄리엔과 동일한 쌀 포대를 들고는 내려놓았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다 큰 사람이 과자를 사자고 때를 쓰지 않나, 수박을 던지질 않나... 서휘는 차라리 정글의 법칙처럼 어느 정도 다큐성이 있는 예능 혹은 토크쇼가 더 낫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찌됐던 카메라는 돌아가고 마음에 안 들어도 재밌는 척, 진짜로 재밌으면 실제로 웃으면서 촬영을 하던 중 서휘를 제외한 세 남편들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어? 문자다.”
“너도 네 부인한테 왔어?”
문제는 서휘 자신에게만 안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광희를 필두로한 세 남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서휘를 놀리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어떻게 전화번호를 교환하는지 확실히 보여주어야겠어.’
막상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의지를 불태우는 서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