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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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연은 백은식씨가 보내준 사연인데요, 남자분이 보낸 것 같은데 서휘씨가 소개해주세요.”

라디오 사연에는 청취자가 자신의 생각만 보낸 사연이 있기도 하지만 대화를 적어놓은 사연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런 만큼 한 명이 사연을 읽는 것이 아니라, 두 세 명이 사연 읽기에 참여를 하기도 하고, 적당히 애드리브를 하면서 사연을 잘 살려야한다. 그런 면에서 서휘는 굉장한 게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음공을 배운 싱어송 라이터인 만큼 창의성이 굉장히 뛰어난 편인데다가 동체시력이 초인의 경지에 이른 만큼 한 순간에 사연을 읽고 미리 애드리브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하하, 서휘씨. 사연 굉장히 잘 살리는데요? 오늘은 특별하게 ‘왓 위민 원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이 코너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게스트가 온 만큼 서휘씨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유진씨와 보람씨가 답변해주는 식으로 진행을 할게요. 자, 서휘씨는 이런 여자의 심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첫 번째 사연은 왜 여자들은 문자 메시지에서 긴 답장을 원하는지 묻는 사연이었다.

“사실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답장은 길게 하는 편입니다.”

“왜요?”

“사실 제가 남중, 남고를 다녀서 K팝스타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제 휴대폰에서 여자라고는 엄마와 누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 중에서 누나가 바쁘기 때문에 주로 문자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았는데요...”

서휘가 휴대폰을 처음으로 갖게 됐을 때는 2009년. 서휘는 중3이고, 주현은 로 대박 났을 때, 주현이 서휘에게 휴대폰을 직접 선물 한 것이다. 물론 로 소녀시대의 인기가 수직상승하자 안 그래도 행사 때문이 자주 못 보던 동생을 더 못 보게 되자 조금이나마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누나의 마음이었다.

보통 어떤 행동을 배우는 것은 부모 혹은 친구를 통해서 배운다. 서휘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계문명에 익숙하지 않은 서휘는 친구의 간단한 문자 패턴을 그대로 누나에게 적용했다. 누나가 문자를 보내면 'ㅇ' 이라고 보내는 것이었다. 당연히 주현으로써는 동생의 문자 방식에 화가 났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동생을 때릴 수는 없는 일. 당연히 자음만 보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사근사근 말했다.

그 후 서휘는 ‘ㅇ’ 대신에 ‘응’ 이라고 보냈고, 주현은 다시 한 번 서휘를 타일렀다. 조금만 더 길게 보내 달라고. 그래서 서휘는 ‘ok’라고 답장을 했고 여기에서 폭발한 주현이었다. 그 후 오랜만에 만난 누나의 장장 1시간에 걸친 문자를 할 때 지켜야 할 예의를 강습 받은 서휘는 다음부터는 할 말이 없더라도 머리를 쥐어 짜내서라도 못해도 20자 이상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습관을 들인 것이다.

“아하하, 소녀시대 서현씨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요. 유진씨랑 보람씨도 남자친구가 짧게 답장을 하면 좀 삐지는 스타일인가요?”

그렇게 이어진 코너에 서휘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어느새 올드스쿨 3교시, 즉 3부가 끝이 났다.

“이번에는 서휘씨의 라이브를 들어 볼 차례인데요. 무슨 노래를 불러주실 건가요?”

“음... 이번 앨범에 제 솔로곡이 보너스 트랙 포함해서 딱 2곡 밖에 없거든요. 그중 제 앨범의 타이틀 곡인 <고백>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이 곡은 앨범 발매 되고 여기서 처음으로 불러보네요.”

“와우. 저희가 서휘씨의 라이브 무대 첫 고객인건가요? 그럼 서휘씨의 <고백> 듣고 오겠습니다.”

창렬의 말이 끝나자 서휘는 방송국 측에서 준비해준 기타를 가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야,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8390님, 서휘씨 노래가 너무 좋아요. 우리가 첫 라이브의 주인공이 되다니! 5871님, 원래 정규 앨범만 종종 샀는데 서휘씨 미니 앨범은 꼭 사야겠네요. 4597님, 서휘씨 교복이 너무 잘 어울려요. 완전 모델포스! 등등 온통 서휘씨 얘기만 가득합니다. 이거 질투가 나서라도 빨리 코너를 진행해야겠네요. 바로 두 번째 사연을 들어보겠습니다.”

두 번째 사연의 내용은 약속시간에 늦는 여자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항상 약속시간이 다 되어 전화를 할 때면 ‘어, 다 됐어.’라고 몇 번이나 반복하는 글쓴이의 여자친구. 글쓴이는 여자의 ‘다 됐어.’의 기준이 화장이 다 됐을 때인지, 신발을 신었을 때인지 묻고 있었다.

“자, 그럼 서휘씨에게 묻겠습니다. 서휘씨도 이런 경험이 있나요?”

“비슷한 경험은 많죠. 친구끼리 약속을 정했을 때 시간 어기는 친구가 꼭 한 명씩 있잖아요? 그러면 그 친구는 항상 전화할 때 마다 ‘어, 거의 다 왔어.’라고 말하잖아요.”

“오, 그러고 보니까 이건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그러네요. 그럼 그럴 때 서휘씨는 특별한 대처 방법이 있나요?”

“한 20분 기다리다가 안 오면 그냥 버리고 가죠. 친구들끼리 향하는 장소를 문자로 보내주고 말이죠. 하하”

서휘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경험담을 말하면서 라디오를 끝마쳤다.

“서휘씨,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죄송한데 가기 전에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래요?”

“그럼요. 그리고 말 놓으세요, 선배님. 제가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인데...”

창렬의 존댓말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진 서휘는 말을 놓으라고 권했고, 서휘의 강력한 요청에 결국 말을 놓게 된 창렬이었다.

“다음에도 시간 나면 꼭 출연해줘. 오늘 되게 재밌더라.”

창렬의 말에 서휘도 알았다고 답하고는 라디오 방송국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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