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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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휘와 이태훈의 경기가 시작되는 그 시각, 유비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다치면 안 되는데...”

이틀 전, 25일 서휘의 결승전 경기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우결 제작진에게 연락을 한 유비였다. 그리고 25일 당일, 유비는 이른 아침부터 마트에서 장을 봐 오고는 용인에 있는 신혼집에서 도시락을 싸고 태백시로 향한 것이다.

그런 유비의 모습을 유비의 엄마인 견미리가 보고는 ‘이 엄마한테 그렇게 해봐라 이년아.’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은 우결 출연 후 괄괄한 성격은 없어지고 점점 조신해져가는 유비의 모습에 만족하는 중이었다.

[이태훈 선수, 돌려차기! 들어갔습니다. 1점 획득!]

[이태훈 선수, 지금 다른 경기보다 더 공격적으로 임하는 것 같은데요. 서휘 선수, 반격이 필요합니다.]

‘좋아, 이렇게 하는 거야.’

태훈은 초반부터 자신의 돌려차기가 먹혀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돌려차기는 발차기의 기본이 되면서도 경기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되는 만큼 모든 선수들이 어느 정도 돌려차기의 타이밍을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돌려차기를 하더라도 상대 선수가 피하거나 혹은 몸을 자신에게 붙이면서 점수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초반부터 점수를 내주는 서휘의 모습은 태훈 자신의 가설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듯 했다.

1라운드 점수는 4-2로 태훈이 앞서가고 있었다. 비록 서휘가 지고 있었지만 경기 내용만 보자면 굉장히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태훈이 앞서나가자 서휘가 따라잡고... 이런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자 옆에서 다른 체급의 준결승전, 혹은 결승전을 보던 관중들도 점점 서휘측 경기로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1라운드가 끝나고 2라운드 마저 태훈이 앞선 채로 종료되자 유비는 초조해졌다. 서휘야 전문적인 선수가 아니니까 져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이왕이면 자신의 남편이 이기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리고 태훈의 점수가 서휘보다 높다는 것은 서휘가 그만큼 상대방에게 많이 맞았음을 뜻하는 것인지라 서휘의 몸 상태도 걱정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이겨줄까?’

유비가 걱정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여기 온지도 모르고 있는 서휘는 이 괘씸한 녀석을 어떻게 이겨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원래 시나리오라면 2점차로 경기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상단 점수 3점을 획득해서 1점 차로 이기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서휘의 마음은 바뀌어갔다.

‘묘하게 신경 쓰이게 웃네.’

태훈이 점수를 얻을 때 마다 웃는 웃음은 서휘에게 묘한 불쾌감을 선사했다. 서휘 입장에서는 태훈의 미소가 비웃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태훈은 그런 의도를 가진 채 웃었고 말이다.

[자, 3라운드 시작합니다. 현재 홍색의 이태훈 선수가 청색의 서휘 선수에게 8 : 6. 2점차로 앞서고 있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태훈 선수 방심하면 안 됩니다. 4강전에서 보여주었듯이 서휘선수 강력한 한 방이 있는 선수이거든요.]

[이태훈 선수, 뒤차기! 성공합니다. 이렇게 되면 서휘선수가 2점을 실점하게 되는데요.]

“꺄악! 안 돼!”

서휘가 뒤차기에 맞고 2점을 실점하자 유비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왜 남편이 할 때는 점수도 안 주고...”

태권도에서는 맞아도 점수로 계산이 안 되는 부분이 있음을 모르는 유비는 심판 탓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3라운드도 15초가 남은 상황. 경기 초반 태훈의 뒤차기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점수가 없는 두 명이었다.

‘좋아. 조금만 있으면 내가 이긴다.’

결승전에 진출을 한 것만으로도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권이 주어지지만 국민 영웅이라 불리는 서휘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은 태훈에게 또 다른 쾌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여자 친구한테도 자랑해야지.’

태훈은 서휘의 팬이었던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이번 경기를 이기고 그 무용담을 말해줌으로써 서휘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이었는지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태훈이 다른 생각을 하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서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제 슬슬 끝내야지.’

서휘는 경기를 끝낼 생각을 하고는 태훈 쪽으로 스텝을 밟아갔다.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자 날아오는 태훈의 돌려차기. 단순히 견제용이었던 그 돌려차기는 태훈의 일생일대 최고의 실수였다.

예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하던 ‘파이트 사이언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기서 브라질의 카포에라, 일본의 가라데, 킥복싱, 그리고 한국의 태권도의 발차기에서 생성되는 위력을 실험한 적이 있었다. 실험 결과 카포에라의 발차기는 시속 158km에 816kg의 힘을, 가라데의 발차기는 시속 114km에 195kg의 힘을, 킥복싱은 시속 209km의 속도에 635kg의 힘을, 그리고 한국의 태권도는 시속 214km에 1043kg의 힘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이 실험에서 측정한 속도와 힘은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서 한 발차기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태권도 발차기의 위력이 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시 태권도 선수가 한 발차기는 돌려차기였다. 하지만 지금 서휘가 하려는 동작은 그보다 더 큰 파워를 가진 돌개차기. 일명 턴 차기였다.

‘오른쪽.’

서휘의 동체시력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시력으로도 드넓은 사막을 달리며 발달된 몽고족의 시력(5.0~9.0)보다 높은 서휘였다. 그런 만큼 태훈의 허벅지 움직임을 보고는 이미 방향을 예측한 상태였다. 서휘의 시각에서 태훈의 발차기가 오른쪽 옆구리로 향하자 서휘는 왼쪽으로 회전하면서 가볍게 점프를 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이어지는 돌려차기.

“내가 네놈 할애비의 할애비보다 나이가 많다. 이 자식아.”

“컥.”

아쉽게도 태훈은 서휘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채로 그대로 기절을 했고 결국 K.O 승으로 1위를 한 서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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