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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소설1 음황의 환생\병아리\새 텍스트 문서 (21).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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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늑대소년 출연진 대기실에서 보영은 한숨을 쉬었다. 이유는 자신의 높은 하이힐 때문이었는데 시사회 중간에 앉기도 하겠지만 하이힐의 높은 굽 때문에 앉아도 자세가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180이 넘는 장신인 서휘와 함께 무대에 서기 때문에 평소보다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은 탓도 있었다.

“너... 더 이상 키가 자라지는 않겠지?”

“글쎄요... 하하.”

“나도 자라고 싶은데... 히잉...”

서휘의 눈에 보영의 모습은 정말로 동생 같았다. 작은 키에 조그마한 얼굴도 한 몫을 하지만 저렇게 자신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애교는 어린 동생이 투정부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띠링.

서휘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 음이 들리자 보영이 재빨리 반응을 보였다.

“혹시 주현이?”

늑대소년 촬영 중 보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현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기기는 했지만 서휘의 노련한 말솜씨 덕에 주현은 오히려 보영과 종종 문자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네. 벌써 도착했다고 하네요. 누나 본 지도 꽤 오래됐는데... 한 번 마중 나가야겠어요.”

“그래. 빨리 나가봐. 너희의 그 브라콤과 시스콤은 누구도 막지 못할 테니까.”

“전 시스콤이 절대로 아닌데요?”

“남들이 보기엔 그렇거든?!”

보영과 잠시 투닥거리던 서휘는 시네마 입구 쪽에 있는 포토 월에서 주현을 맞이했다.

“누나! 오랜만이네? 누나들도 안녕하셨어요?”

주현은 자신만 온 것이 아니라 멤버인 수연과 미영, 그리고 태연과 함께 왔다. 물론 주현은 혼자 와서 프로모션이 끝난 후 남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으나 오랜만에 공짜 영화 좀 보자면서 막무가내로 따라오는 언니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존댓말은 그만 해도 된다니까? 우리는 이제 네가 친숙해. 하도 주현이가 네 이름만 불러 대서 말이지...”

“그럼 그럼. 어쩌다 보니 너희 남매의 어렸을 때의 추억까지 우리가 다 알게 됐다고.”

확실히 서휘와 주현이 남매임이 드러난 후 쉬는 시간에 주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니들에 대한 잔소리가 아닌 자신의 동생에 관한 이야기로 변했다. 처음엔 소녀시대 멤버들도 ‘드디어 해방인가?’ 하고 좋아했으나 어느덧 서휘의 어린 시절을 낱낱이 기억하게 되자 그게 더 무서워지는 멤버들이었다.

“전 이게 편해서 그래요. 어차피 말 보다는 마음이 중요하잖아요.”

“우웩. 느끼한 말이네. 하지만 네가 하니까 인정해주겠어. 역시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하는 것 같아.”

“그럼요. 누구 동생인데.”

어느덧 늑대소년 시사회이자 제작 보고회 시간이 시작되었다. 간단히 배우들과 감독을 소개 한 후 영화를 보고나서야 시사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취재하러 온 기자들도 영화를 보고는 눈물을 흘려서 곧바로 시사회가 이어지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본 감독은 배우들에게 ‘이번 영화 왠지 느낌이 좋은 것 같아.’라고 속삭이기까지 했으니 서휘가 보기에도 확실히 손익분기점은 넘을 것 같았다.

본격적인 영화 시사회가 시작되고 난 후 개인 질문 시간이 주어졌는데, 대부분의 질문은 요즘 대세라 할 수 있는 서휘와 관련된 질문이었다. 특히 최근 스캔들까지는 아니지만 수지와 엮인 기사가 많이 나가면서 기자들이 그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 것이다.

‘이러면 안 좋은데...’

서휘는 수지와 관련된 질문이 이번 시사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다고 질문을 안 받기에는 신인 주제에 건방져 보일 것 같고, 이쯤에서 수지와의 관계에 대해 확언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서휘였다.

“며칠 전 서휘씨랑 수지씨의 트위터가 꽤나 큰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수지씨랑은 언제부터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까?”

“죄송하지만 이제 수지씨와 관련된 질문은 이것을 끝으로 그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지씨와 이 영화는 관련이 없으니까요. 음... 수지씨와는 K팝스타 생방송 때 처음 만나서 동갑친구로 종종 연락하게 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음... 뭐랄까요? 수지는 편한 이성 친구에요. 그러니까...”

뭐라고 말을 해야지 수지와 자신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될까? 서휘는 짧은 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암기 관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만큼 굉장히 다양한 어휘를 기억하고 있는 서휘에게도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기자들, 그리고 익명의 네티즌들이란 어떻게 써도 조금만 틈을 보이면 스캔들로 엮어가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수지는 그냥 여자인데...’

문득 서휘에게 좋은 단어 조합이 떠올랐다. 이 말 한마디면 아마 다시는 수지와 자신의 입장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수지는 그냥 여자 사람 친구이죠.”

“풉.”

“네?”

다만 그 이상한 단어 조합은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사기에 충분했을 뿐.

‘나 혹시 바보였나?’

영화 늑대소년의 첫 시사회가 끝난 후 서휘는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자책하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라 하면 분명히 기사가 이상하게 나갈 것 같고 그냥 여자라고 하기에는 또 친구 관계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수지는 친한 여성이다.’라고 말하려던 게 이상한 단어 조합을 만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맞아... 친한 여성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자책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된 말이 생각난 서휘는 태어나 처음으로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보영은 대기실에서 혼자 머리를 박고 있는 서휘를 보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휘를 만나고 처음으로 본 어수룩한 모습. 보영은 서휘의 약점을 하나 잡았다는 사실에 괜히 서휘를 놀려주고 싶었다.

“꺄하하. 서휘야. 오늘 너 엄청 웃겼다. 너한테 그런 개그 본능이 있을 줄이야. 그럼 나는 음... 여자사람누나인가? 킥킥”

“윽, 누나까지 그러기에요? 대답하는데 시간을 끌면 변명하는 것 같이 보일까봐 빨리 말한다는 게 말이 헛나왔네요. 하아... 그건 그렇고 누나까지 저를 놀리다니...”

서휘의 실망한 듯한 표정에 보영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연하이건 연상이건 호감 있는 남자에게는 잘보이고 싶은 것이 여자 마음인지라 보영은 서휘를 놀린 것이 바로 후회되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가 귀여워서 그렇지. 맨날 나이에 맞지 않게 항상 과묵하고 말이야. 너 나이면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을 나이 아냐?”

“그건 보통 여자에게 적용되는 말 아니였나요? 여튼, 제가 한 말이 괜히 이슈가 될까봐 걱정이네요.”

“괜찮아. 오히려 재밌었어. 너무 완벽한 모습보다 그렇게 부족한 모습이 보여야 인간적이지. 너는 너무 콤플렉스가 없다는 게 문제야.”

“에휴... 하여튼 전 나가 볼게요. 오늘 누나랑 약속이 있어서...”

“응. 잘 가. 내 꿈꿔!"

“글쎄요... 아무래도 오늘 실수 때문에 잠이나 잘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보영이 나름대로 실수 회복 멘트이자 작업멘트라고 건넨 말에 서휘는 대충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칫. 카톡으로는 맨날 자상하게 답해줬었는데... ‘여자사람친구’가 저렇게 멘붕될 정도였나? 내 눈에는 귀엽기만 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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