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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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서휘 효과일까? 엄청난 팬덤을 가진 서휘 덕에 영화 늑대소녀는 멜로 영화중 최단기간에 100만 돌파를 이룩했다. 그 소식에 영화 프로모션에만 잠깐 밖에 나가던 서휘도 무대 인사에 빠질 수가 없었다.

“역시 네가 짱이다. 어떻게 개봉한지 3일 만에 100만이 넘었지?”

무대로 이동하던 중 서휘의 매니저 승우는 혼자서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말로는 멜로 영화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100만이 넘었냐고 했지만 프로모션 당시 승우도 늑대소년을 보면서 울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남자가 멜로를 보고 울 정도면 늑대소년이 확실히 감정 선을 제대로 건드린 영화라는 것이다.

“뭐... 액션 영화광인 형도 울릴 정도니까요. 큭큭”

서휘도 승우가 재빨리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본지라 연신 놀려대고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출발한 무대인사. 역시 프로모션을 끝낸 지 일주일도 안돼서 다시 보는 보영도 있었다.

“또 보네요. 누나.”

“그러게. 요즘 자주 보게 되네. 이젠 할 얘기도 없어질 것 같아. 아, 요즘 공부는 잘 되가? 좀 말이 많던데...”

“제가 그런 거에 안 흔들리는 거 아시잖아요.”

며칠 전. 서휘와 지영, 그리고 수정이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동시 입학을 한 것으로 말이 많았다. 셋 모두 입학 결정은 미뤄두고 있는 상태였지만 아역배우 출신이자 연기 11년차인 노영학씨가 같은 학과에서 떨어진 사실이 알려지자 특례입학이 아니냐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긴... 그래도 너는 그 문제에서 비껴갈 수는 있겠다. 늑대소년에서 연기 아주 대박이잖아? 내가 봐도 눈물 나더라.”

보영은 말을 하면서도 연신 끄덕였다. 확실히 서휘의 연기는 신인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촬영장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긴 했지만 영화로 보니 서휘의 눈빛 연기에는 언어가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눈빛만으로도 대본에도 없던 대사가 ‘만약 늑대소년이 아닌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는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지영이나 수정이가 걱정이죠. 일찍부터 연예인을 시작한지라 이런 구설수에 익숙하겠지만 아직 10대잖아요.”

“와우. 벌써 지영씨랑 크리스탈씨랑 친구야? 역시 너는 카사노바라 해야 할까 마당발이라고 해야 할까?”

“제 휴대폰에 저장된 500명 중에 여자는 50명도 안 된다는 거 아시죠? 그 중에 9명은 소녀시대 누나들이 차지하고 있고 또...”

“알지 알아. 그냥 해본 소리야. 서휘는 카사노바가 아니라 마당발입니다~ 됐지?”

보영은 말로는 서휘를 놀리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저 50명 중 자신처럼 서휘를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렇게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 언젠간 자신의 조그마한 소망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참. 누나 혹시 무대인사 끝나고 시간 있어요?”

“응. 난 아주 많아. 근데 왜?”

사실 보영은 늑대소년으로 과속 스캔들 이후 다시 날아오르려고 하는 만큼 스케줄이 꽤 많았다. 하지만 오늘 스케줄은 다 소화하고 온 만큼 시간은 있었다. 다만 문제는 지금이 오후 5시라는 것이지만.

“많이는 필요 없고요. 저 12월 말이나 1월에 앨범 내려 하는데 누나가 조금만 참여해주시면 안될까요? 노래 부르는 것은 아니고 그냥 내레이션 참여인데...”

서휘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서휘가 보기에는 저 작은 머리가 날아가지는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진짜? 내가 네 앨범에 참여해도 돼? 완전 짱이다. 당연히 해야지. 저번에 네가 나한테 ‘나의 왕자님’ 녹음도 도와줬었는데.”

사실 이것보다는 서휘의 숙소이자 녹음실에 놀러갈 기회가 보영 자신에게 생길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았지만, 내색을 숨기고는 마치 선물에 보답하는 것인 양 대답하였다.

“휴, 다행이네요. 사실 제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 뭔가 연인 느낌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누나밖에 없었거든요.”

“으, 응? 당연하지. 나는 너랑 멜로 영화도 같이 찍은 사이라구.”

서휘의 입에서 ‘연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보영은 심장이 덜컥했다. 뒷말이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어찌됐던 50분의 1이라는 경쟁률을 뚫었으니 말이다. 보영에게 오늘은 말 그대로 ‘운수 좋은 날’이다.

무대 인사는 별거 없었다. 그냥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늑대소년에서 주축 3인방인 서휘와 보영, 그리고 유연석이 100만 돌파 인증 샷을 찍는 것이 다였다.  한 가지 에피소드는 서휘의 ‘여자사람친구’이 알려지면서 팬들이 ‘여사친 서휘!’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어찌됐던 무대 인사를 통해 연예인을 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관객들이 많이 오기도 하는 만큼 꽤나 성심을 다해서 팬들과의 시간을 가졌다.

“후후. 이제 너의 녹음실에만 가면 되는 건가?”

“그렇죠... 그런데 누나 입에서 그런 음흉한 웃음소리가 나오다니, 색다른데요?”

“음흉하다니! 어디까지나 기대감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소리라고.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의 녹음실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데.”

“그래요? 흠... 걔네는 잘만 오던데...”

“응? 뭐라고?”

보영은 자신이 내뱉은 ‘흥분’이라는 말에 자신이 깜짝 놀라서 다른 생각을 하던 와중에 서휘의 말을 제대로 못 들었다. 아마 들었다면 끝까지 추궁했으리라.

“아니에요. 얼른 가죠. 누나 오늘 힘드셨을 텐데 빨리 끝내고 쉬셔야죠.”

그렇게 서휘와 보영은 각자의 이동차량을 타고 서휘의 녹음실로 이동했다.

“우와... 이렇게 생겼구나...”

서휘의 집에 들어온 보영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남자 집 치고는 꽤나 깔끔했기 때문. 자신은 언니와 같이 살아도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청소를 하지 않는데 이 집은 꽤나 자주 청소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

서휘는 보영 특유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말을 했다.

“진짜 별거 없어요. ‘서휘야, 지금 어디야?’라고만 해주시면 되요.”

“에게... 그게 다야? 기껏 여기까지 왔더니 힘빠지게...”

서휘가 처음부터 나레이션이라고 못을 박은터라 노래는 애초에 기대 하지도 않았지만 불러서 한다는 말이 고작 한 문장이니 꽤나 실망한 보영이었다.

“더 해도 되는데 누나가 피곤할까봐 그렇죠.”

“아냐. 나 하나도 안 피곤해. 그러니까 제게 미션을 내려주시죠. 가수님.”

정말 하고싶었는지 자신에게 존댓말까지 하는 보영을 보고는 서휘는 분량을 조금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누나 목소리를 노래 안에 삽입할려고 했는데 그럼 스킷(skit) 형태로 따로 만들어야겠네요. 음... 설정은 누나랑 제가 연인인데 제가 어디에 혼자 여행왔어요. 그리고 밤에 한참 혼자서 생각에 잠기면서 걷고 있는데 누나한테 전화가 온 거죠. 그리고 누나가 ‘서휘야 뭐해?’ 이렇게 말하면서 저랑 대화를 시작하면 돼요. 뒷부분은 따로 생각해두지를 않아서 애드리브로 해야 될 것 같은데... 괜찮으시죠?”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데뷔 6년차인 보영에게는 이런 애드립은 쉬울 뿐이었다. 저런 설정도 드라마에서는 꽤나 자주 나오는 편이니 말이다.

“그럼. 상관없지. 이제 시작하자.”

보영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에 서휘도 싱긋 웃고는 보영을 이끌고 녹음실로 들어갔다.

30분 후 보영과 서휘가 제작한 스킷이 완성되었다. 보영이 제대로 하면 1분도 안 걸릴 녹음인데 할 말이 없는 척, 서휘와 장난도 하면서 30분을 끈 것이다.

“이제 가봐야겠네...”

시간을 보니 벌써 저녁 7시. 보영은 서휘에게 인사를 건내고는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

“누나.”

서휘가 현관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왔다.

“저녁인데 여기서 라면이라도 먹고 가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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