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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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후...”

서휘와 보영은 묵묵히 라면을 먹고 있었다.

‘에이... 내가 뭔 상상을 한 거야... 하긴 그게 이 시간대일 리가 없지...’

보영은 무슨 상상을 한 것일까. 어찌됐든 보영은 김칫국부터 마신 자신을 자책했다.

‘그런데 진짜 맛있네...’

라면이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서휘가 끓여준 라면은 객관적으로 정말 맛있었다. 일반 라면에 파랑 계란만 추가한 것 같았는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왔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 잘 먹었다.”

“맛은 어때요?”

“진짜 맛있는데? 너 나중에 가수 그만두면 가게 내도되겠어.”

정말로 만족해하는 보영의 모습에 서휘도 웃음을 짓고는 보영에게 말했다.

“누나, 이제 가셔야 되죠?”

“응. 이제는 가야지. 매니저 오빠가 걱정할라.”

“그럼 안녕히 가세요. 오늘 녹음한 거 정말로 유용하게 쓸게요. 아참. 이거 음반 작업으로 회사에 정식 요청해야하는 건가요?”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냥 써. 내가 사장님께 잘 말해둘게.”

보영이 속한 회사는 신생 엔터테이먼트인지라 보영만이 제대로 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회사 내에서 보영의 위치는 상당했다. 그 이유가 아닐지라도 서휘의 앨범에 스킷이라도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면 분명히 허락해주리라. 서휘의 음악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누나. 그럼 안녕히 가세요.”

“응. 그럼 다음 무대인사에서 보자. 공부 열심히 하고.”

그렇게 보영은 서휘의 집에서 별 탈 없이(?) 나왔다.

5일 후. 수능 당일 날. 서휘는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태허무령선천심공을 운공 했다.

“후... 드디어 오늘이네.”

비록 연예계 활동으로 인해 몇 달간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평소에 해둔 것이 있어서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무공이 만능은 아닌지라 약 한 달간은 거의 잠도 안자고 공부한 만큼 마지막 정리도 끝낸 상태이고 말이다.

‘아마 제갈 세가의 무공이었다면 이런건 로 공부를 안 해도 다 맞추었을까?’

문득 제갈 세가의 무공이 궁금해지긴 했다. 하지만 현대에선 무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만큼 제갈 세가의 무공 또한 필히 없어졌으리라. 서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는 감각을 한층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수능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1시간 뒤, 서휘는 평범한 교복을 입고, 평범한 가방을 매고, 평범한 신발을 신고, 평범하지 ‘않은’ 얼굴을 들고는 수험장으로 걸어갔다.

1교시 언어영역.

2교시 수리영역.

3교시 외국어영역.

4교시 사회탐구영역.

서휘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거침없이 풀었다. 얼마나 빨리 풀었느냐 하면 모든 영역에서 검토를 2번이나 하고 잠시 눈을 붙일 정도였다.

수능이 끝나고 고사장을 나가자 수많은 기자들이 학교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수능은 잘 본 것 같으세요?”

“오늘 컨디션이 어떠셨어요?”

천편일률적인 질문에 수험생의 정석 대답인 ‘공부한데서 나오긴 했는데 문제가 어려웠어요.’로 대답하고는 우결 촬영지로 향했다. 내일부터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여 3주 동안 한국에 없는 만큼 오늘이라도 촬영을 해야 했다. 보통 한 가지 에피소드로 1~2주 정도 방송을 하니 편집만 잘 한다면 3주 정도는 잘 버텨줄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우결마을에 도착하자 부인인 유비, 아니 유진이 마중을 나왔다.

“남편. 수고했어.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오늘은 내가 다 해줄게.”

“아니, 그 보다도 인터넷 좀.”

서휘는 자신의 점수가 몇 점일지 굉장히 궁금했다. 만점을 목표로 공부를 했고, 또 만점을 맞을 수 있을 만큼 문제를 굉장히 잘 풀었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닌지라 아무리 서휘라도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잠깐만, 잠깐만. 이런 엄청나게 중요한 걸 혼자 채점하게? 나랑 같이하자. 응?”

“알았어. 그럼 여보가 답 좀 불러줘. 채점은 내가 할게. 알았지?”

“알았어. 그럼 부른다.”

근처에 팬이 있었지만 서휘는 팬으로 채점을 하지 않았다. 틀려봤자 몇 개 틀리지도 않을 테고, 또 틀릴 때 마다 그어지는 소리가 오늘만은 상처가 될 것 같아서이다.

“1번에 2. 2번에 4. 3번에......”

유진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신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표정도 없는 그의 모습에 유진은 서휘가 생각보다 수능을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죄는 아니지만 시험이야 잘보고 싶은 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고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많이 틀리면 짜증나는 게 사람의 심리이니까.

“어때...? 잘 봤어...?”

유진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서휘가 다치지 않도록.

“음... 생각보다 많이 틀렸네.”

유진은 속으로 ‘역시나...’라고 생각을 하고는 오늘 서휘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주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하나 틀렸네. 내 생각엔 다 맞을 줄 알았더니...”

“뭐?!”

“바보 같은 실수를 했어. 수학에서 괜히 암산해서 빨리 풀겠다고 하다가 2점짜리 하나 틀렸네. 아... 오늘 완전 꽝이다.”

순간적으로 유진은 남편에게 품지 말아야할 마음을 품었다. 재수 없다고... 자신도 성악과 이지만 이화여대에 다니는 만큼 수능 성적도 어느 정도 나왔었다. 하지만 수능에서 한 개 틀린 게 생각보다 많이 틀린 것이라니... 평소 말로만 듣던 연예계 공부 잘하는 사람을 앞에서 보니 신기하기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기분이 그랬다.

“히히. 장난인거 알지? 채점할 때 진짜 조마조마 했는데 그래도 한 개 밖에 안 틀렸네. 나 잘했지?”

잠깐 서휘에게 나쁜 마음을 품은 유진이었지만 같이 촬영하면서 정말로 처음 보는 서휘의 애교성 웃음소리에 마음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응. 완전 잘했다. 조금만 기다려 밥 해줄게.”

우결 촬영도 모두 마치고, 자정이 다 돼서야 SBS에 들려 정글의 법칙 인터뷰까지 모두 마친 서휘는 숙소가 아닌 집으로 돌아왔다. 수능을 잘 본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누기도 하고 내일이면 아마존으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진짜? 겨우 하나 틀렸다고? 그럼 나랑 학교 같이 안 다녀도 되는 거야?”

주현은 동생이 조금 많이 틀려서 어쩔 수 없이 라도 자신과 같은 학교를 다녔으면 했지만 이 똑똑한 동생은 결국 대학을 골라갈 수 있는 점수를 얻어내고야 말았다.

“뭐.. 그렇지. 윤아 누나랑 같이 다니면 되잖아. 나까지 다닐 필요가 뭐가 있다고...”

“흑흑. 이제 이 누나가 싫어졌구나.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니? 보영 언니가 그랬니? 아님 유비씨?”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누나의 연기에 어색한 미소만을 짓고 있는 서휘였다.

“어쨌든 왜 하필 아마존에 간다고 해서... 걱정이다. 에휴...”

“걱정하지 마. 나 완전 잘 할 자신 있으니까.”

서휘는 그렇게 가족과 밤을 지새우고는 11월 9일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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